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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시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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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시편은 감사의 시로 생명을 위협하는 큰 질병에서(2절)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 받은 시인이 예배에서 함께 부르기 위해 지은 시편이었다. 감사의 찬양으로서 이 시편은 예배를 향해 나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함께 찬양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4절). 그들은 하나님의 치유의 은혜를 경험한 설교자가 증거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5-6절). 그가 당면했던 현실은 죽음의 직전에까지 이르러 신음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었다. “무덤으로 내려가는”, “저녁에는 울음이”, “음부에서 끌어내어”와 같은 표현을 통해서 볼 때 그는 거의 죽음의 문턱에까지 내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생명을 허락받고 기쁨과 감격 속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고 있다. 하나님의 행하신 행적을 찬양하기 위해“고치셨다”, “음부에서 끌어내셨다”(3절),

“굳게 세우셨다”(7절) 등과 같은 동사들이 강조되어 사용된다. 그는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에게 있음을 확실하게 고백하면서, “영영히 주께 감사하겠다.”(야훼엘로 하이르 올람 오데카아)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12절). 반면 그는 시의 첫 머리에서“주를 높인다.”고 고백하며, “아로밈카 야훼”라는 히브리어 표현(야훼여,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을 통해 시인의 고백의 중심부에 무엇이 있는지를 선명하게 제시해 준다. 그의 생명과 구원, 그리고 감격과 예배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가 감사와 찬양의 이유가 될수 있지만 시인의 감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때문에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린다. 그 밤이 마지막 울음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하나님은 아침에 그 아픔과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다. 그에게 아직도 수많은 대적이 있지만 이 하나님 때문에 이제는 춤을 추며 찬양하는 자가 된다. 감사와 찬양, 이것은 시인에게 있어서 삶의 이유다. 만일 자기가 죽는다면 이제 그는 하나님을 찬송할 수 없기에 찬송을 위하여 진리 선포를 위해 자기를 살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서론

죽음의 덫에 걸리듯 죽을 병에서 몸부림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 받고 새 사람이 된 후, 그의 첫 고백은 새로운 생명을 허락해 주심이 이렇게 가슴 저리도록 고맙고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고난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강하게 하고, 굳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한다. 그래서 국악인들은 태평소를 만들 때 대추나무를 쓴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골라서 쓰는데 거기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벼락을 맞으면 몇만 볼트의 전압이 흐르게 되면서 입자가 단단해지기 때문에 나무결은 고와지고 단단해진다고 하는데, 이러한 나무로 만든 태평소에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가락이 흘러나온다. 마치 고난은 우리 삶의 입자들을 고르게 하며, 믿음의 고백을 더욱 굳세게 해준다. 그래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도 유익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고통과 아픔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인간 실존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에게 당하는 고통의 문제와 그 이유를 다 이해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고난 가운데서도 일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을 온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다. 오늘 시인은 이러한 사실을 온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잠잠히 주께 노래하고 있다.

주제 정의(What)

본문은 고통과 아픔 속에서 고침 받은 성도의 노래로 알려진 시편이다. 다윗의 시편으로 알려져 있는 본 시편에서 시인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큰 질병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 받아 그 은혜에 감격하여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고 있다. 시인은 지금 이 시편을 통해 예배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함께 찬양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그가 직면했던 어려움은 죽음 직전에까지 이르렀던 힘겨운 일이었다. 마치 그 길은 음부로 내려가는 것과 같이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생명을 허락받고 기쁨과 감격 속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고 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찬양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선다. 하나님이 행하신 행적을 찬양하기 위해“고치셨다”, “음부에서 끌어내셨다”(3절), “굳게 세우셨다”(7절) 등과 같은 동사들을 강조하여 사용하면서, “영영히 주께 감사하겠다.”(야훼 엘로 하이르 올람 오데카아)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어떤 의지 없이 이룩되는 일이 있던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시인은 여기에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자기의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결심을 분명하게 한다. 그에게 주어진 일이나 결과 때문에도 찬양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분명한 고백으로부터 그의 찬양은 시작된다.

필요성(Why)

흔히 사람들은 감사하는 것도 조건적일 때가 많다. 감사의 조건을 먼저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찬양에도 이유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이 클수록 감격스러운 찬양을 올려 드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경우에는 조건이 사라지면 찬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왜 성경은 찬양하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또 우리에게는 무엇 때문에 찬양이 필요한가? 그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땅한 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찬양을 부르게 하시려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존재 이유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왕 되심과 통치하심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일이다.

오늘날 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찬양은 사라지고, 노래와 공연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를 본다. 그것이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그 하나님의 존재를 기뻐하는 찬양보다는 노래나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자랑하는 공연으로 전락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이런 점에서 진정으로 찬양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천 방법론(How)

어떻게 찬양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우리는 어떤 자세로 찬양으로 나아갈 것인가? 찬양하는 사람에게는 찬양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어떤 악기나 운동을 터득할 때도 기본 동작이 필요하다.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은 늘 이 기본 동작만을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찬양하는 사람에게도 기본 동작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할 것인가?

1. 하나님은 큰 확신을 가지고 찬양하라고 말씀하신다(1-2절)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는 시인의 마음 속에는 큰 확신이 있다. 자기를 고쳐주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분의 통치하심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헤세드)에 대한 감격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자신이 다시 생명을 누리게 되었으며 원수들의 틈바구니에서 생명을 유지해 가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끌어내시며, 원수들로 기쁘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확실할수록 그분을 삶 속에서 신뢰할 수 있고, 이러한 확신만이 바른 신앙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찬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능력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무명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기에 서러운 마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기에 조용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기에 이제 눈물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기에 가슴 저미는 아픔을 지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기에 설령 상처 받을 말을 들었을지라도 돌아서서 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기에 누군가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지라도 그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기에 이 지겨운 가난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기에 내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기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은 잠잠치 아니하고 찬송함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신다(12절)

하나님의 놀라우신 고치심과 치유하심을 경험한 시인은 잠잠하지 않고 주를 찬송하겠다고 고백한다. 감격스러운 은혜를 경험한 시인은 이제 잠잠하지 않고 주를 찬송한다. 이것은 시인의 의지라기보다는 놀라우신 은혜와 크신 역사 앞에서 감격한 시인의 심령에 절로 주어지는 은혜이다.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그는 잠잠할 수 없어 감격하며 찬양을 올려 드리고 있다.

1618년부터 30년 동안이나 유럽 대륙을 휩쓸면서 초토화시켰던 참혹한 ‘30년 전쟁’이 있었다. 고통의 시간, 죽어 가면서, 혹은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했던 아픔의 시간에 원망과 불평, 자학과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 같은데,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무서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은혜로운 찬송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17세기 말 음악가 환켄나우어가 30년 동안에 경건한 성도들이 입을 통하여 불려진 찬송가들을 수집해 보았더니 32,712곡이나 되었다. 몇 년 후에 음악가 웨첼이 다시 수집하고 정리본 결과 55,500곡으로 늘어났다. 30년간의 처절한 전쟁 가운데서 어떻게 그들은 찬양할 수 있었을까? 평화로울 때 부르지 못하던 찬송이 성도들의 입을 통하여 샘솟듯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그의 임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잠잠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하나님은 영원히 감사하면서 찬양하라고 말씀하신다(12절)

은혜를 맛본 사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가슴이 붉어진 사람, 그리고 견고한 확신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영원히 감사 가운데 설 수 있게 된다. 어떤 환난과 어려움이 덮쳐 온다고 할지라도, 그 밤이 마지막 밤이 된다 할지라도 시인은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인해 마지막까지 찬양하겠다고 고백한다. 그는 만일 자기가 죽는다면 이제 그는 하나님을 찬송할 수 없기에 찬송을 위해, 진리 선포를 위하여 자기를 살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는 생과 사의 문제를 뛰어넘어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영원히 찬양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이다.

실천 결과(What then)

패트 쇼프내시 목사는 작은 교회를 목회하고 있던 분이었다. 그는 몇 년 전 한국에서 열리는 전도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L.A.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대합실에 괴한이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다. 그도 심하게 다친 중상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수술에 들어갔으나 살 수 있는 확률은 30%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매우 빠른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그는 비록 한 쪽 다리를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다시 생명을 허락받았다. 어떤 사람이 그분에게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천만에요.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 폭탄이 있는 것도 아셨고, 제가 거기에 있는 것도 아셨습니다. 폭탄이 폭발하여 나는 다리를 잃게 되었지만 선하신 하나님은 새 생명을 저에게 허락하셨고, 또 이 일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더욱 영혼을 사랑하면서 사역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목회에 큰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이일로 인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생명에 대해 진정으로 증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저는 폭발 사건의 희생자가 아니라 덕을 본 사람입니다.”이렇게 믿음으로 서는 사람은 오늘도 승리의 삶을 넉넉히 살 수 있게 된다.

결론

독수리는 둥지를 만들 때 둥지 위에 가시나무를 깔고 돌멩이를 놓고 그 위에 새의 깃털을 얹어 포근하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데 새끼들을 독립시켜야 할 때가 되면 어미 독수리는 둥지의 깃털을 다 없애버린다. 그러면 딱딱한 돌과 가시만 남게 되는데 그때 새끼는 가시에 찔려 아프니까 둥지를 떠날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은 편안한 둥지를 떠나 높은 창공을 날아오른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독수리는 어려서부터 다른 새들과 달리 독립심이 강하고 높은 곳에 살 뿐만 아니라 높이 난다고 한다.

지금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훈련시키시고 계신다. 고난이라는 연단을 통해 정금과 같은 순결한 백성으로 빚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시인처럼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 자세와 마땅히 드려야 할 고백은“주님,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영원히 섬기겠습니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 규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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