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십계명강해(3) :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게 지켜져야 한다! (신 5:1..

  • 잡초 잡초
  • 518
  • 0

첨부 1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다

TV에서 도자기 굽는 도공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도공은 도자기 하나를 굽기 위해 정말 열과 성을 다합니다. 좋은 사토를 채취해 잘게 빻은 후 물에 넣고 저은 후 침전된 고운 질흙을 받습니다. 이 질흙을 잘 반죽한 후 물레 위에서 정성스럽게 그릇 모양을 빚습니다. 이 그릇은 가마에서 7~8백도로 초벌구이를 한 후 유약을 칠하고 다시 1300도 내외로 재벌구이를 합니다. 제가 간단하게 소개해서 그렇지 이 과정은 정말 복잡하고도 엄청난 정성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애써 도자기를 구워냈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도공은 다 구워진 도자기를 섬세하게 살펴본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깨버립니다. 우리가 볼 때는 멀쩡하게 잘 구워진 것 같은데, 아니 잘 안 구워진 것이라도 거기 쏟은 그 정성을 생각해서 좀 싸게 내다 팔면 좋을 것을 왜 그리 가차 없이 깨버리는 것일까요? 도공은 말합니다. “이 도자기에는 내 이름이 붙어서 시중에 나갑니다. 이것은 그냥 그릇이 아닙니다. 내 정성과 혼이 깃든 작품입니다. 이 도자기가 내 이름으로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가차 없이 깨버릴 수밖에 없질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름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름 석 자 속에는 내 인격이 들어있고 명예가 들어있고 내 가치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니 내 이름을 더럽힐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 이름이 더럽혀지면 내 명예도, 내 인격도, 내 가치도 함께 더럽혀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친히 가르치신 기도의 모범, 주기도문 첫 구절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왜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치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져야 한다고 말씀했을까요? 하나님의 이름 속에는 하나님의 인격과 명예와 거룩함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서기관들은 두루마리에 성경을 베껴 쓰다가 소위 ‘신명사문자’(神名四文字)라고 불린 ‘여호와’ 혹은 ‘야훼’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몸을 깨끗이 하고 기도하며 쓰곤 했습니다. 그냥 단순한 글자 네 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이렇게 거룩히 여겨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님의 뜻과는 달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종종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성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영어에서 ‘Oh, My God!’이나 ‘Jesus!’라는 말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오, 나의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라는 뜻이지만 미국에서 실제로 이 말들은 ‘이런 세상에!’나 ‘제기랄’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영화에 보면 가끔 주인공이 일이 잘 안 풀릴 때 ‘Jesus’ 하고 외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저 사람 참 믿음 좋은 사람이구나. 힘드니까 예수님을 찾네”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영어를 배우면서 그것이 큰 오해임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Jesus’는 경건하게 ‘예수님,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젠장,’ ‘제기랄’이라는 욕설의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소위 기독교 국가요, 청교도가 세운 나라요,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에 손 얹고 기도하는 나라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이나 예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한 일입니까?

소중한 이름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지 않고 거룩하게 지킬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십계명의 제3계명인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우선 여기 나오는 ‘망령되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망령되이’라는 말을 개역개정판성경이나 표준새번역성경에서는 ‘함부로’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영어성경에 보면 그 뜻을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영어성경은 이 ‘망령되이’를 ‘in vain’이라고 표현합니다. ‘헛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헛되이’란 무슨 뜻이겠습니까? 1차적으로 이 말은 인간이 거짓 맹세나 저주 등에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조금 전 영어의 예에서 설명 드린 것처럼 저주하는 말이나 상소리, 욕설 등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어디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제기랄’이나 ‘이런 세상에’ 따위의 말에 사용한다는 말입니까? 절대 안 될 일입니다.

또한 인간적인 맹세를 하면서 자기의 정직성을 증명하기 위해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행위, 이를테면 “하나님께 맹세한다”고 말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일입니다. 마 5:34에서 예수님이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도 유대인들은 무언가 맹세할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신에게 맹세한다”는 말을 많이 쓰곤 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이, 의미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고 인간적인 맹세에 이용했기에 십계명조차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규정했겠습니까? 내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려서도 안 되며,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나 인간적인 방법의 일환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간혹 축구단에 ‘할렐루야’라는 이름을 붙이거나 자기가 운영하는 기업이나 가게에 성경에서 나온 이름을 붙이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식의 이름을 붙였다면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축구를 하다가 거친 행동이나 비신사적인 매너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왜? ‘할렐루야’ 축구단이니까요. 사업이나 장사를 하다가 탈세를 하거나 변칙적인 방법을 써서도 안 됩니다. 왜? 우리 회사 이름이, 우리 가게 이름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이름을 그렇게 붙였으면 그만큼 책임도 커지는 것입니다. 혹시 자신의 정직성을 입증하기 위해 그런 이름을 붙였다거나, 이런 이름 붙이면 적어도 기독교인들은 호의를 느끼고 좀 더 애용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면 빨리 그 이름을 바꾸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이나 성경의 이름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앞서 말한 세 가지 경우보다 더 자주 일어나면서도 더 위험한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잘못이나 실수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천 즉,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이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 나가서 하는 행동, 언어나 태도 등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도 있고 가리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올바른 삶을 살고 모범이 되어 칭찬을 받는다면 내 이름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광도 드러나게 되겠지만 반대로 내 불성실이나 잘못된 태도나 인간관계의 실패 때문에 “왜 믿는 사람이 저 모양이야? 왜 그리스도인이 저래?”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는 내 이름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에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든 주변 사람들, 특히 불신자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는가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또 기도의 맨 마지막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된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예수님의 이름이 귀하게 드러납니다.

둘째는, 찬양입니다. 찬양의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찬양을 할 때 입으로 가사만 읽고 음정만 맞추지, 내 가슴 속에 참 하나님이 안 계시고 예수님에 대한 참된 감사와 감격이 없이 찬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가 됩니다.

셋째는, 감사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원망이나 불평의 소리가 아닌, 습관적으로 하는 ‘죽겠다’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소리를 자주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해지고 그 영광은 점점 더 드러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할 때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은 점점 더 거룩해집니다. 내가 복음 전하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보았을 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니 앉은뱅이는 일어나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미합니다(행 3:1-8).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은 그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진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고쳤더니 그 앉은뱅이가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할 권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내 이익, 내 욕심을 위해 사용하면 죄가 되고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일으킬 때 사용하십시오. 마귀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영적으로 승리하기 원할 때 외치십시오. 오직 남을 축복할 때만 사용하십시오. 오직 그 분의 이름으로 복음 전하고 능력 행하기 원할 때 사용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주님의 이름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 일을 통해 그 분의 이름은 영원히 찬양 받고 영원히 높여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히 오늘 세례와 입교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 여러분! 이번에 교육을 받으면서 여러분은 세례와 입교를 받은 후 우리들의 삶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배웠을 것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답게, 입교 받은 사람답게, 그리스오인답게 변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 의무는 오늘 세례입교를 받는 분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그 이름 속에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을 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켜나가야 할 고귀한 의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유난히 난폭하게 운전하는 봉고차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봉고차 옆에 ◯◯교회라고 써 있을 때 오히려 제가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버젓이 교통위반을 하는 차 뒤에 물고기 표시가 붙어있을 때가 있습니다. 차라리 교회 이름, 물고기 표시를 떼든지 아니면 거기 걸맞게 운전을 잘 하든지요.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이나, 교회의 이름이나,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너무 무가치하게, 부끄러운 이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요즈음 과일이나 농산물을 포장한 박스를 보면 생산자의 이름은 물론 사진까지 붙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내 이름을 걸고, 내 명예를 걸고 품질을 보증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자부심입니다. 명예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의 명예,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명예, 교회의 명예를 이 정도로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이 하준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