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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이어가시는 역사 (창 4: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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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먼저는 뱀의 후손으로 대표되는 가인의 족보를 기록한 후에 이어서는 아벨 대신에 셋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등장하는 족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는 죄가 온 세상을 지배하려고 급성장하여 결국은 세상이 죄의 지배권 아래 완전히 들어갔다는 결정적 사실을 증거 합니다. 그리고 죄의 급성장으로 인하여 세상은 도무지 소망이 없음이 확인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자신께서는 구원을 이루어 가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증거 합니다. 

1. 본문의 족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난 시간 우리가 보았던 말씀 창4:1-15절의 말씀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범죄함으로 에덴에서 추방된 이후, 에덴 밖에서 최초의 삶은 어떠했는가를 증거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에덴에서의 인간의 삶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궁금해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범죄하여 에덴에서 추방된 이후의 삶과 비교해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하나님의 계속적인 관심과 돌보심으로 삶은 계속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이후 처음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이도 생기게 됩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꼼짝없이 죽을 줄로만 알았던 아담과 하와에게 죽음이 유보되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아이를 생산했으니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 중에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결과에 따라 가인을 낳은 하와는 혹시 이 아이가 하나님께서 창3:15절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그 후손이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기대는 비록 인간이 죄 때문에 에덴에서 추방되었다고 할지라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창3:15절에서 말씀하셨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그 후손을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에덴 밖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였다는 사실은 에덴 밖에서 인간의 삶이 결코 편안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그러면 에덴 밖에서 인간의 삶이 편안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타락이 상상한 것보다 더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심각하다는 것은 죄가 태어난 자식들에게 전가되어 그 지배권을 넓혀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성경은 에덴 밖에서 세상을 두 계열로 나누어졌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는 뱀의 후손들의 대표되는 가인계열인데, 이는 하와가 가인을 낳은 후에 혹시 이 아이가 하나님께서 창3:15절에서 말씀하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그녀의 후손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으나 하와의 기대와는 다르게 가인은 죄의 뿌리를 두고 죄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계열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여자의 후손을 소망하는 계열로서 아벨의 계열인데, 이는 구원의 하나님만을 참되게 경배하고 섬기며, 하나님만을 참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계열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계열로 나누어진 세상에서 죄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목적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죄는 마치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그 세력을 점점 확장해가고, 아예 처음부터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그녀의 후손이 오지 못하도록 미리 차단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죄는 세상에서 죄를 뿌리로 두고 죄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가인을 통하여 그 의도를 드러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아주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해하며, 안색이 변했습니다.” 이에 가인은 하나님께로부터 “선을 행하라”고 질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만약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심으로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위험을 경고하셨습니다(6-7). 

그러나 가인의 태도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완전히 거부하기에 이릅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회개를 포기하고 스스로 죄의 통치를 받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죄의 지배를 받겠다고 자처한 가인에게는 그런 사람다운 특징을 보입니다. 그것은 그가 급기야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살인을 범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가인이 죄에게 왕좌를 양보하고 죄의 충실한 신하가 되었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물론 가인이 동생을 죽인 이유는 아주 그는 단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아주시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동생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이유였습니다. 이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살인을 할만한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아주시지 않은 것은 그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만약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믿음으로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없는 자신을 탓하고 올바른 믿음으로 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  이는 창세기 3:15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즉 뱀의 머리를 깰 ‘그 여자의 후손’이 오는 것을 두려워한 사탄이 아벨을 죽임으로서  “그 여자의 후손”이 오는 것을 막고자 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여자의 후손’ 곧 메시야를 낳게 될 조상이 됨으로 아벨만 죽이면 ‘그 여자의 후손’은 오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벨의 죽음은 죄 곧 사탄의 계획적인 살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가인에게 더욱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가인이 자기 잘못에 대해 진정한 뉘우침이나 후회를 보이지 않을 만큼 뻔뻔했다는 사실입니다.  ①죄의 충실한 신하가 된 가인이 동생을 죽였으면서도 뻔뻔스럽게도  하나님께 대하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하고 항변을 하기까지 하였습니다(8-9). ②죄는 이기적입니다. 그것은 가인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순간에도 오직 이기적인 생각뿐이어서 자신의 형벌이 무겁다고 탓을 하기만 했습니다. 즉 자신의 죄에 대한 무거움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형벌이 무거우니, 이거 너무한 것 아닙니까? 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징적인 것은 본문에서 가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죽음보다는 오히려 생명을 보장받는 표시를 받고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는 도저히 보호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살인자의 생명을 죽이지 못하도록 보호하십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은 가인에게 긍휼을 베푸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비록 우리의 눈에는 보호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살인자의 생명마저도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보복을 하지 못하도록 조처하심으로서 가인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2.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가인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대로 나타나지 못했음을 증거 합니다. 성경은 가인을 향한 계속적인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철저하게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뱀의 후손의 실체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증거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내리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죄는 오히려 가인의 계열을 통하여 계속 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본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가인에게 미쳐서 그의 생명이 보존되게 되었고, 후손들이 번성하여 문명의 발전도 이루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의 후손이 번성하는 만큼 죄도 동시에 번성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죄의 번성은 가인에게서 출생한 그의 후손 중에 몇 대가 지나지 않아서 나타납니다.

본문은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라멕을 들고 있습니다. 라멕은 아담에서 가인으로 이어지는 계열의 7대손으로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정의 법칙인 “일부일처” 제도를 깨뜨리고 두 아내를 얻는 최초의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즉  처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신하여 에덴에서 쫓겨나더니,  그의 아들 가인은 동생을 죽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갔으며, 가인의 7대손인 라멕에 와서는 살인을 오히려 즐기고 찬양하며, 죄책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본문 23-24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라멕은 자신의 두 아내에게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라멕의 이러한 노래를 우리는 “살육예찬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라멕의 살육예찬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라멕은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나의 상함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라멕이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면 라멕이 어린소년을 죽인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창상과 나의 상함을 인하여’라고 하였는데, 이는 곧 라멕 자신이 어린 소년에 의해서 작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라멕은 자신이 입은 작은 상처로 인하여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살인을 함으로서 보복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살인을 한 라멕은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두 아내에게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라멕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우롱하기까지 합니다. 그 사실을 성경은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 배이리로다”라고 합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가인이 살인을 했을 때도 곧바로 죽이지 않고 그의 생명을 보존하셨다면,  자신은 오히려 상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는 것입니다. 이렇게 라멕의 살육예찬가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라멕의 교만과 복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시작한 죄는 그 흉악한 실체를 드러내어 가인을 철저하게 복종하게 함으로서 가인 계열을 통해서 죄의 영향력과 통치력을 마음 것 유감없이 발휘하게 됩니다. 

3. 창세기 4장에 나타난 가인계열의 확장과 아벨의 죽음은 하나님의 구원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음을 전하는 신호였습니다.  즉, 창세기 4장은 가인 계열의 확장과 죄의 확장이라는 상황 속에서 마치 죄가 급성장하고 또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후손의 유일한 조상인 아벨이 죽음으로서 이제 세상은 구원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4장에서 현실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후에 뱀의 머리를 깨뜨릴 여자의 후손을 낳게 될 조상은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벨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것은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고 죄가 가인을 통해서 아벨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죄는 가인 계열을 통하여 여자의 후손이 오는 길을 막았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죄는 처음부터 가인계열을 완전히 자기의 수중에 두고, 여자의 후손을 낳게 될 조상인 아벨을 죽임으로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정면으로 무산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죄의 의도는 아벨이 죽음을 당하면서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벨이 죽은 이후에, 세상에는 죄만이 있고, 구원의 소망은 완전히 끊겨진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위험신호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험신호는 곧 가인에 의해서 아벨이 죽음을 당한 이후에, 죄가 가인 계열을 통하여 확장되고, 가인 계열에 의해서 죄가 그 통치력을 발휘하면서 이제 세상은 뱀의 머리를 깨뜨릴 여자의 후손이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죄와 사망의 원흉인 사탄의 권세를 깨드리시고 정복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3:15절에서 말씀하신 “그녀의 후손”이 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관심은 죄의 강력한 세력 확장 속에서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셨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지에 관심이 집중되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아벨의 죽음으로 죄가 그 통치력을 발휘할 때, 세상을 구원할 여자의 후손에 대한 소망이 끊어졌다고 여겼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가고 계시는지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해결책으로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셋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셋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창3:15절에서 말씀하셨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셋을 낳은 후에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창세기 5:3절에는 아담이 셋을 낳은 때가 그의 나이 일백삼십 세였다고 증거 합니다.  즉 아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분”이 나타날 계열의 시조였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허무하게도 가인에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처음부터 자기에게 승리할 분의 등장을 아예 막아 보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간 사탄의 계획은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셔서 자신이 약속하신 그 계획을 외부의 어떤 세력에 의해서 중단되거나 지배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죽음으로 중단될 위기에 놓였던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아벨 대신 셋을 주심으로서 계속 이루어 가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셋을 낳고, 셋은 에노스는 낳은 후에 비로소 “여호와 이름을 불렀더라”고 함으로서 셋의 출생 이후에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서 중단되었던 하나님을 향한 공적 예배를 다시 드리게 되었다고 증거 합니다.  따라서 가인 계열의 확장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하신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은 구원이란 처음부터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4. 오늘 본문은 세상의 어떤 세력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방해한다고 할지라도 구원은 처음부터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죄로부터 건지심으로 구원하신다는 사실은 틀리지 않았음을 끊임없이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세상을 사랑하는 증거였으며, 그 증거는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십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금도 세상에는 두 계열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의 뿌리를 두고 죄의 종이 되어 죄의 삯인 영원한 사망에 이른 사람들과 다른 하나는 우리의 참 구원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만을 섬기고, 순종하며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계열 속에서 우리의 소속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 속에는 하나는 죽음이며, 하나는 생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참 생명과 참 구원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만을 섬김으로 되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본문에서 죄의 급성장과 아벨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소망이 끊어진 듯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벨 대신 셋을 주심으로 자기 백성들을 향한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고, 하나님께서 독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그 약속을 이루시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에 따라 택하신 백성들을 아들 안에서 부르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위재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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