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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대로 되리라 (막 5:25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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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믿음이 실종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가는데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기도는 하는데 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데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성도에게 믿음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강한 손 뿐만 아니라 연약한 손도 우리를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위대한 믿음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확신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역을 체험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십자가에 매달려서 신앙을 고백한 한편 강도! 그의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믿음의 열매는 얼마나 풍성했습니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였습니다(눅23:13). 오늘 우리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의 옷자락을 잡은 여인을 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길 원합니다(막5:34). 믿음대로 되어지는 축복을 안고 승리하시는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누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는가?

Ⅰ. 소망이 없는 여인이 손을 대었습니다.

본문 25절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던 차에” - 라고 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은 아마도 말기의 암 환자가 아니었겠는가? 가진 것도 다 탕진하고, 병세는 더욱 중하여갔습니다.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고대의 유대 나라는 여권부재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결혼해서 살다가 살기 싫으면 “이 여자는 나와 이혼한 여자다.” - 이혼증서 하나를 써주면 끝나는 것입니다. 유대의 인구 계산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한 백성이 60만이다. - 이 말은 20세 이상 전쟁에 나가 싸울수 있는 장정이 60만이라는 뜻입니다. 여자는 계수에도 들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12년 동안이나 혈류증을 앓고 있는 여인을 누가 지켜주고 보호하여 주었겠는가?

이 여인은 인간사는 세상에서 도태되고, 퇴출당한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게 재산만 있으면 - 내게 의원만 있으면 - 내게 약이 있으면 -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 그래서 그것들을 의지해 보았는데, 그것들은 이 여인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실로 질병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맛보는 지옥의 고통인 것입니다. 이제 이 여인에게 마지막 남은 소망이 있다면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잡아 보는 것이 최후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려 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어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뒤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예수! 예수만이 그의 소망이었습니다. 예수! 예수만이 그의 생명이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이 남편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고, 세상을 의지하여 상처 받고, 낙심 중에 있습니까? 예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믿음대로 되리라!” 믿음대로 되어지는 축복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Ⅱ. 구원의 확신을 가진 여인이 만졌습니다.

본문 28절에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가? 질병에서 구원 받는 것입니다. 그녀의 믿음은 무엇인가? “내가 그 옷에 손만 대어도 나으리라”하는 확신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이라고 했습니다(히11:1). 요한사도는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을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했습니다(요일5:15). 믿음으로 구한 것을 받은 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약1:6).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이 여인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자녀도 아니고, 남편도 아닙니다. 오직 질병에서 구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구원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행16:31).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행4:1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려하심이라”고 했습니다(요3:16). 마태복음 1장 21절에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구원입니다. 예수만이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이 여인은 이 놀라운 구원 진리를 깨달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는 이 여인에게서 곧 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걸고 - 돌에 맞아 죽을 것을 각오하고 예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왜? 어렵게, 어렵게 예수님 앞에까지 와서 예수님의 손을 잡고 예수님의 팔을 잡지 못했습니까?

이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옷자락만 잡아도 만족합니다.” - “나는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구원 받는 줄 믿습니다.” -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 앞에 나왔습니까?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수겠네”(찬205장). 그렇다면 이 시간 여기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으십시오.

“네 믿음대로 되리라” - 응답 받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Ⅲ. 담대한 믿음을 가진 여인이 만졌습니다.

본문 27절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약2:17). 믿음은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사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믿음의 발생은 들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믿음은 소망을 갖게 합니다. “내가 그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으리라” - 이 확신은 행동을 결단하게 했습니다.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 이 여인은 특단의 결단을 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의 팔을 잡고, 주님의 몸을 만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은 누가 받았는가?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이 여인이 받았습니다. 왜? “죽으면 죽으리다.” 생명을 걸고 주님을 만진 사람이 이 여인 뿐이었습니다.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구원을 얻으리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 여인 하나뿐이었습니다. 주님과의 무의미한 접촉에 무슨 능력이 임하겠는가

“주님의 옷자락만 잡아도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의 확신 우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믿음대로 되리라!” 믿음대로 소원을 이루시는 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이윤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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