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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르침을 받아 (행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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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초대 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이에 따르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은 '사도'는 복수형이지만 '가르침"은 단수형으로 사도들이 주께서 허락하신 권위를 가지고 각기 주어진바 임무대로 가르침에 전력했지만 그 교훈의 통일성을 유지했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들이 가르친 내용은 예수님의 말씀들(20:35)과 행하신 일들이었음을 말합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초대 교회기 행한 것 같이 우리도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서로 교제하며

구약에서 교제(헤브라)는 '연합하다, 협력하다, 단결하다, 쌓아올리다, 교제를 나누다, 계약을 맺다, 결합시킨다'의 뜻으로 친구와 서로 교제함을 말합니다.(호 4:17). 신약에서 교제(코이노니아)는 상호간에 서로 파트너가 된다는 말이며, '공동, 분담, 기증, 기부, 원조'등 즉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그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과 하나 됨을 통해 같은 근원 속에 묶여 있음을 말합니다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며 (갈 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도의 교제에 있어서 실패한다면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줄에서도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교제를 잃은 교회는 사랑을 잃은 교회이며, 교제를 잃은 믿음은 자기도취나 독선, 교만의 죄를 짓게 됩니다. 성도는 교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통치아래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지상목표로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성도의 교제는 인간적인 것으로 변질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 아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단절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오른편에 사는 사람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잘난 체하고 도도하고 대화가 안 통하는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라서 보기가 싫단 말이야 그래, 담을 높이 쌓아버려야 해, 상종을 안 하면 되는 걸 이제야 생각이 떠오르다니, 머리 나쁘면 평생 고생이라는 말이 맞어!" 하고는 든든한 벽돌로 담을 잘 쌓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손을 털며 기분 좋아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다가 왼편에 사는 사람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단절이는 또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원래 욕심이 많아. 순전히 자기중심이란 말야, 관계만 하면 내가 손해야 알았어" 하고는 왼편에도 담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털며 '휴'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다음에 얼마 있다가 뒷집과 문제가 생겼는데 단절이는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차라리 안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뒤에도 든든한 담을 쌓았습니다. 이런 단절이의 심정도 모르고 앞집에서 잔소리를 하며 계속 좁쌀같이 귀찮게 굴기에 너무도 보기 싫어서 앞에도 담을 잘 쌓았습니다. 이제야 조용한 세월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방이 조용했습니다. 사람들의 꼴도 보기 싫어서 대문은 물론 창문도 내지 않은 걸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아름답게 떠가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엔 참 기분이 좋게 잘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짙은 구름이 깔리더니 천둥 번개와 심한 비가 오는데 피할 데가 없고 물이 고여서 죽을 뻔했습니다. 날이 개이자 즉시 지붕을 잘해 얹었습니다. 그제야 가장 완벽한 공간을 구축한 기념으로 단절이는 혼자 파티를 한 후 안심하고 길게 잠을 잘 잤습니다. 잠을 잘 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숨이 점점 막혀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버티려 해도 숨이 막혀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는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도대체 그 원인을 단절 자신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단절이는 죽기 전에 알아내야 하는데 정신이 점점 흐려지는 것이었습니다.

  나무의 잎 하나하나가 하나의 조그만 기적입니다. 그 속에서 공기와 물과 햇빛으로 모든 생명체들의 에너지원을 이루는 거대분자들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생명이 아무리 고상한 사상이라도, 아무리 위대한 성덕이라도 푸른 잎 속의 광합성의 기적을 먹고삽니다. 그런데 만일 잎이 "나는 햇빛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면, 그 잎은 곧 시들어 죽고 말 것입니다.

  각자가 교회라는 큰 나무에 붙은 한 잎 한 잎입니다. 빛을 보내는 태양은 "외로움의 태양" 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도할 때  은총의 광합성이 이루어집니다. 마치 잎처럼 그리스도의 빛을 피해가면 시들어 초라해지고, 생각의 너비가 좁아지고 이웃사람을 위한 일들이 덜어집니다. 그러나 만일 똑같은 잎이 "나 혼자 햇빛을 다 차지하리라"고 말한다면 모름지기 그 잎은 나무에서 떨어져서 햇살을 쐬어야 할 것이며 몇 시간 안 가서 벌써 그 잎도 말라죽고 말 것입니다. 교회에서, 단체에서, 연합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은총이란 고독과 연합체관계라는 두 요소를 결합시켜 서로를 살리는 신비로운 연금술입니다. 교회는 속속들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세포 하나하나가 머리와, 또 머리를 통하여 다른 모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도의 유명한 신비주의적인 기독교 성자 가운데 썬다싱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의 기독교 신앙의 교리 가운데는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삶과 인격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가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네팔 전도에 나섰을 때 자기 친구 한 사람과 같이 그 산을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서 길가에 추위에 떨고 있는 행인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혹독한 추위라 자기들도 생명의 위기를 느낌으로 지나가는 행인을 거들떠볼 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도무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길을 가던 친구는 그냥 가자고 고집을 합니다. 그러나 썬다싱은 이대로 그 사람을 두고 갈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친구와 한참 다투다가 그를 먼저 가게하고 자기는 추위에 떨면서 길옆에 쓰려져 있던 행인을 업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산길을 갑니다. 가다 보니 먼저 길을 떠났던 그 친구가 너무 혹독한 추위로 쓰러져 죽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업은 사람 때문에 땀을 흘리고 두 사람의 체온이 얼어붙는 추위를 녹일 수 있었기 때문에 산을 넘어갔다는 감동적인 전도 여행의 행적이 남아 있습니다. 함께 길을 걸어가면서 서로 격려할 수 있다는 것. 같이 눈물을 나누고. 아픔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성도 교제의 최대의 복입니다.(디럭스바이블-교제의 복)

  떡을 떼며

떡을 뗀다는 것은 성찬과 애찬을 동시에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46절; 20:7; 고전 10:16; 11:23-25). 그런데 46절에서 '떡을 떼는 것'과 '음식을 먹는 것"이 서로 구분되어 언급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본 구절에서 떡을 떼는 것은 예수께서 제정하시고 제자들로 하여 기념하라고 명령하신 '성찬'(눅 22:19)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므로 이는 예배하는 일입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야 합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예배입니다.

주일날 놀러 갔다가 당한 일을 간증한 내용이 있습니다. 교회 등록한 후 어느 날 남편이 세일즈맨인 친구의 권유로 <여행가이드> 라는 책을 사왔습니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진들로 가득 찬 이 책을 보면서 일요일마다 한 군데씩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주일이 되었습니다. 주일을 지켜야하는 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이른 아침부터 야외놀이의 즐거움에 가슴이 부풀어 남편과 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습니다. 목적지인 일영에 도착하여 하루를 보내고 저녁 늦게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 안은 복잡하지 않아서 편안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고. 피곤한 아이들은 남편과 저의 무릎을 각각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으나 차창 밖으로 희미하게 스쳐 가는 벌판이 보였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날아온 구슬만한 돌이 제가 내다보고 있던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관자놀이를 쳤습니다. 아주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날아온 작은 돌멩이에 두꺼운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났고 깊이 잠든 아이들의 머리와 얼굴 위로 깨어진 유리 가루가 쏟아졌습니다. 기차는 급하게 멈춰서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습니다. 상비 의료상자를 든 승무원들이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아니라 아주 고운 유리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쓴 아이들과 두께1㎝가 넘는 유리를 박살낼 정도의 힘으로 날아온 돌멩이에 맞은 저는 놀랍게도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던 것입니다. 속눈썹에까지 달라붙은 유리 가루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주일인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 후부터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힌바 되어 과천으로 이사 와서 성전 중심의 생활로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하나님 제일 중심하는 예배입니다.

옛날 헬라의 도시 국가에 아주 부강한 왕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 처첩들이 많아서 그 처첩들이 모두 왕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모아놓고 "너희들이 날 사랑하기 때문에 이제부터 너희가 원하는 것을 선물로 주겠다. 나라의 주권만 남겨 놓고 무엇이든지 다 가져가라"고 했을 때 보석이니 집이니 하는 좋은 것은 모두 달라고 하면서 서로 싸우고 야단이었습니다. 왕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적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덕이 있는 부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아무 것도 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왕이 그 부인에게 "너는 왜 원하는 것이 없느냐? 욕심도 없느냐"고 묻자 그 부인은 "아니,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당신 자신입니다. 왕 자신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제일 중심할 때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전혀 힘쓰니라"는 동사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어떤 행동 방침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지속적으로 기도했음을 의미합니다(1:14; 6:4; 8:13; 롬 12:12; 13:6; 골 4:2).

  기도가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이란에 444일 동안 인질로 갇혔던 쿠브(Kathryn Koob)양은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처음 5개월 동안 작은 독방에 갇혀 지옥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안정되고 있었고 두 손을 모으고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기 때부터 어머니께 배운 버릇이었습니다. 내가 청년으로 성장할 때 어머니는 줄곧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을 잊지마라. 네가 하나님 편에 서 있으면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너를 도와주실 것이다.’ 5개월 후에 스위프트(Ann Swift)양과 함께 있도록 허락되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신앙을 토론했습니다. 테헤란은 지옥이 아니라 우리의 일생을 바꾸어 놓는 성장의 천국이 된 것입니다."

  기도가 도움이 됩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한번은 어느 선교사들의 집회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집회가 끝나자 한 성도가 그를 찾아 나아와 다정하게 말을 붙이더랍니다. 그리고 어느 선교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선교사에 대하여 어찌나 자세한 일들까지 알고 있는지 테일러는 그에게 "당신은 어떻게 그 선교사에 대하여 그렇게도 자세히 알고 있소."라고 물었답니다. 그 성도는 "예. 말씀드리지요. 저는 그 선교사님과 여러 해 전부터 기도의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이건 무슨 일이건 제가 기도로 도와드릴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시기만 하면 저는 그 일을 위하여 꼭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이러한 기도의 동지를 얻음으로 그 선교사는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받은바 은사가 다릅니다. 그러나 서로 서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각기 자기가 맡은 사명을 다 한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복된 생활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는 각기 다르다 할지라도 기도하는 사명은 모두가 공통된 사명일 것입니다. 아직도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신자라 할지라도 주의 종들을 위하여 세계 각처에 흩어져 일하는 선교사들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은 가능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큰 사명을 완수하는 일입니다.. 이 고귀한 기도의 사명을 오늘부터 실천에 옮기는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다. 기도의 힘만큼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기도할 때 힘과 능력을 얻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하이든과 그의 성공한 친구들이 어느 날 각자 피곤하게 일한 후 다시 어떤 방식으로 내적인 힘을 얻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어떤 이는 여행을 통해 힘을 얻는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연극이나 오페라를 관람한다고 밝혔으며, 또 다른 이는 술을 마시면서 피로를 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이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칠 때면 골방에 들어가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항상 용기와 의욕을 얻습니다."

우리도 기도로 새 힘과 능력을 얻어야 합니다.

기도 할 때 문제가 해결 됩니다.

어떤 마을에 별거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이혼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였습니다. 하루는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었는데 이 부부도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져서 앉아있었습니다. 기도가 있기 전에 주례자로부터 일종의 광고 비슷한 말이 있었습니다. "여기 참석한 가운데서 이 제단 앞에서 서약한 혼인서약을 깨뜨린 사람이 있으면 다시 화해할 기회입니다." 축도가 끝난 다음에 안내인이 목사에게 찾아와서 기도 중에 놀라운 일이 생긴 걸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별거하고 있던 그 남편 되는 사람이 자기 자리를 떠나 부인의 옆자리로 가서 부인의 손을 꽉 잡고 함께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식이 끝나자 그 부부는 정답게 팔짱을 끼고 교회당을 나가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어려운 문제를 거룩한 성전에서 기도로 해결했던 것입니다.(와이즈)

옛날에 어느 임금이 사람을 많이 고용해서 융단과 옷을 짜게 했습니다. 그 중에 어린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소년은 베를 짜는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임금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비단실과 견본을 주고 언제든지 문제가 있으면 곧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일렀습니다. 그 소년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하게 일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자꾸 틀려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루는 사람들이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렇게 일을 잘 해내고 또 즐겁게 하는데, 왜 우리의 일은 항상 순조롭지 않지? 우리가 짠 것은 꼬이지 않으면 견본과 달라지니 말이야." 소년은 대답하길 "임금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 못하세요. 언제든지 필요하면 도움을 청하라고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임금님께 도움을 했지만 일들은 헝클어지고, 잘못된 것을 해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단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소년은 "제가 임금님을 몇 번이나 불러야 했는지 아세요."하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알지. 그렇지만 그분은 바빠서 그렇게 자주 방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소년은 "저는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했어요. 그 분은 그 때마다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환난 날에 부르기를 원하십니다.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더러 우리의 삶이 꼬이기도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활이 그 분의 뜻에서 멀어지기 전에 도와주십니다. 오늘 그분의 도움을 청해 내일의 큰 문제를 피합시다.

초대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우리도 성회를 통해 가르침을 받았으니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이루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하며 기도에 전혀 힘쓰는 모두가 됩시다. (강 성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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