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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곧 길이니 (요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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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중국이 오늘날까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한 가지는 중국인들은 길을 만드는 대신 성벽을 많이 쌓은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을 쌓는 그 에너지를 길을 만드는데 활용했더라면 중국의 발전을 크게 앞당겼을 것이라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미국이 빨리 발전한 것은 거미줄처럼 얽힌 고속도로와 철로를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빨리 발전하게 된 원인도 고속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건설된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는 누구하나 동조하지 않고 모두가 반대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한 사람의 의지와 결단으로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누가 이 고속도로를 잘못된 결정이라 하겠습니까? 모든 문화와 문명의 발전은 길을 통해 이룩되기 때문입니다.“인류의 모든 문명은 창조적 사고력을 지닌 소수의 무리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다.”라는 말을 실감나게 합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에 예수님께서“내가 곧 길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앞서간 많은 성인들이 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했습니다. 석가는 길을 찾기 위해 출가하여 10년을 방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곧 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길이십니까?

1.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길입니다.

“참호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갖게 되는 때는 죽음 직전이라고 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참호 속에서는 모두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은 그때의 마음이 가장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평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일까요? 이는 사람의 마음이 그만큼 순수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8)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가장 명확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 땅위의 모든 종교가 주장하는 교리 가운데에는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윤리를 강조하는 것, 선한 일에는 상이 있고, 악한 일에는 벌이 임한다는 것, 내세를 말한다는 것, 정성을 다할 때 바라는 소망이 성취된다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입니다. 빈 무덤입니다. 만일 무덤에서 다시 나신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윤리도덕을 말한다면 유교로도 족합니다. 병 낫는 것을 기독교의 특색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불공을 드려 병 나은 사람이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물로서 병을 고칩니다. 무당도 주술로 병 고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의 의술로도 병을 고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유가 기독교의 특색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 가운데 물질의 윤택함과 가정의 융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독교의 자랑은 오직 부활입니다. 빈 무덤입니다. 타종교는 그들 교주의 웅장한 무덤을 자랑하지만 기독교의 자랑은 빈 무덤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죽음을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죽음은 모두가 무서워하며 싫어합니다. 인간 최대의 난제가 죽음입니다. 이 난제를 해결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므로 유일한 구주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하셨습니다.

60억이 넘는 세계 인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섬기는 기독교 성도의 수가 20억이 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후진국이 아닌 선진국 사람들입니다. 현대 과학을 창조하며 발전시킨 주역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주로 섬기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성경 말씀에“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종교입니다. 무능한 사람을 유능한 사람으로, 우둔한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약한 사람을 강한 사람으로, 쓸모없는 사람을 없으면 안 될 꼭 필요한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평양에 악명 높은 깡패 두목 김익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날에 시장 가는 사람들은 산 고개를 넘으면서, 오늘 부디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서낭당에서 빌고 갈 정도였습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외국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훗날 목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어느 날 한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고자 산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더워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웃옷을 벗고 나무 그늘에서 편안히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술이 건아 하게 취한 한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올라왔습니다. 그 사람이 김익두 목사님께 오더니 시비를 거는 것이었습니다.“왜 당신이 내 앞서 여기 먼저 올라 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어의가 없어 말대답을 하지 않자, 이 술 취한 사람은 김익두 목사님을 이유 없이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아무 말 없이 맞고 있었습니다. 힘이 없어서 맞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천하의 주먹 김익두가 이처럼 말없이 맞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한참을 때리더니, 이 사람이 때리던 것을 멈추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묻기를 “형님 다 때렸소?”그랬더니, 이 사람이“다 때렸다 왜?”하고는 또 때리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 때 김익두 목사님이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내가 김익두라는 사람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 사람이 김익두라는 말을 듣자 안색이 변하며 벌벌 떠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김익두 목사님이 하는 말이,“내가 예수 믿기 전이라면 당신 오늘 장례식 날이요, 내가 예수 믿은 덕에 당신이 오늘 살아남은 줄을 아시오.”라고 했습니다. 이때 이 사람이 머리를 땅에다 대고 “형님, 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무얼 어떻게 해, 따라와.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부흥회를 인도하는 교회에 데리고 가서 자리에 앉혔습니다. 이 사람이 훗날 예수 믿고 훌륭한 장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깡패도, 술주정뱅이도 고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행복의 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가는 곳곳마다 길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곳곳을 잇는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여행하면 얼마나 즐겁습니까? 그러나 여행을 통해 얻어지는 즐거움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순간적인 것뿐입니다.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에 관해 구약성경 신명기에 기록하기를“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명기 10:12~13)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 지혜의 왕으로 널리 알려진 솔로몬 왕이 행복을 찾아 세상의 연락을 추구했습니다. 세상 것에서 행복을 찾았던 솔로몬은 말하기를“내 마음이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도서 2:3-8,11)하였습니다. 술도, 재산도, 은금보화도, 남여의 즐거움도 그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모두가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수고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행복을 찾아 세상의 원하는 것은 모두 다 누려 보았던 솔로몬 왕은“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상태에서, 세상의 그 어떠한 것을 소유하고 누려도 그것은 행복과 거리가 먼 헛된 수고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시 행복을 찾은 후 그는 말하기를“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3)라고 했습니다.

행복이란, 헬라어로“유다이모니아”라고 합니다.“다이모니아”란“하나님”이란 말이며,“유”란 “같이”라는 말로“하나님과 같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과 같이 있을 때만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자리에서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채워도 참된 행복은 누릴 수 없습니다.

마러린 먼로는 20세기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최고의 인기 배우였습니다. 전 세계 남성의 우상이었습니다. 죽은 지 오래 되었어도 아직도 그 힘이 대단합니다. 미국의 존 F케네디 대통령도 자기 생일에 귀빈은 한명도 초대하지 않고 비밀리에 먼로를 초대하고는 기뻐했다고 합니다. 영국 왕실에서도 마릴린 먼로를 특별히 초대해서 극진한 예우를 했다고 합니다. 그야 말로 마러린 먼로는 인기 정상에서 살았습니다. 지금도 헐리우드에 가면 상점에 있는 사진 10장중에 8장은 다 먼로의 사진입니다.

마랄린 먼로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나는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이렇게 공허함 속에 살아가던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므로 생을 마쳤습니다.

인기 정상에서, 부의 정상에서, 모든 것의 절정에서 살았지만, 타살인지 자살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나신으로 죽었습니다. 그녀의 시신 옆에는 메모장이 있었는데 거기에 씌어 있는 글이 바로 이것입니다.“돈, 인기, 명예, 이 모든 것은 찰나적인 행복의 요소에 불과했다. 돌아보니 내 인생은 한 손으로 손뼉을 친 인생이었다.”그리고 죽은 것입니다.
한 손으로 박수가 가능합니까? 허공만 날리게 됩니다.“내 인생은 허공만 날렸다.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라는 뜻입니다. 허무했다는 것입니다.

한 손으로는 박수가 불가능 합니다. 인생은 예수님과 부딪쳐야, 예수님과 만나야 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한 손으로 손뼉을 치는 인생입니다. 뒹구는 낙엽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이 없고 인기가 없고 혹 병들고 초라해도 예수님을 만나면 그 삶은 행복합니다. 이 비밀을 모두 깊이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예수 그리스도는 풍요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하셨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에 자주 뉴스의 초점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재벌의 아들에 대한 재산 편법증여에 관한 뉴스입니다. 이 사건에서 세법의 적법성을 떠나 한 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왜 이 사람에게만 편법으로라도 증여하려고 할까요?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고자 원하십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명기 28:1-6)하셨습니다.

오늘날 인류의 역사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교회당을 불사른 공산주의 국가 가운데 망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1917년 레린은 혁명을 일으켜 1000년 동안 열렸던 교회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공산당 당사와 노동자 숙소, 심지어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미국은 20만개의 교회를 가지고 세계 선교에 힘썼습니다. 소련은 자기들의 나라가 붕괴된 원인을 각 분야 전문가 100명에게 3년 동안 연구하여 발표하게 했습니다. 총 한방 쏘지 않고, 내란도 없었는데 왜 망했습니까? 그것은 본인들 뿐 만아니라 모두가 궁금한 일입니다. 연구결과 첫째는 내부분제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 소련의 공산당 지도자는“교회 문을 닫으니 모든 문이 닫혔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불교국가 가운데 선진국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한 나라도 없습니다. 이슬람 국가 가운데 선진국이 있습니까? 단 한 나라도 없습니다. 선진국은 모두가 기독교 국가들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를 비추는 하늘의 태양 빛은 백 년 전에도 있었고, 이백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백여 년 전 이전을 가리켜 암흑시대라고 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저는 백 년 전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한국이 어떠했는지 모릅니다. 당시 계셨던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그 분들이 그 사회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와서 40년간 수고하신 아치볼드 캄벨이라는 분이 글을 쓴 것이 있습니다. 그분이 서울 장안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사람들이 여자를 천대하여 자기의 딸을 팔아먹고, 아내를 천대하여 거리에서 머리채를 끌고 다니고, 아내는 매를 맞고, 의사는 먹고 살기 위한 상술로 환자를 대하고 있으며, 문둥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소경과 거지들이 거리에 우글대는 서울 장안이다.”

우리나라에 개화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암흑이 물러가고 새로운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는 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하신 생명의 복음 즉 기독교가 선교사들에 의해 이 땅에 들어오기 시작한 때를 가리킵니다. 그로부터 학교가 세워지고, 문맹퇴치 운동이 일어났으며, 병원이 세워졌습니다. 이로 인해 오늘처럼 발전된 대한민국, 세계속의 한국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삶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고 섬기는 자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길입니다. 쓸모없는 사람을 꼭 필요한 사람으로, 무능한 사람을 유능한 사람으로, 우둔한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능력의 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섬기는 자들로 하여금 행복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받들어 섬기는 사람들을 풍요로운 곳으로 인도하시는 길이십니다. 이토록 존귀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섬기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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