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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에 이끌려 사는가? (렘 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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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해리슨 포드'가 주연하는 '도망자'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해리슨 포드는 저명한 외과 의사 '리차드 캠블' 이라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 헬렌이 괴한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은 남편이 살인범이란 누명을 쓴 채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이제 죄수들과 함께 교도소로 향하는 호송버스 안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이 주인공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내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자신은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호송버스 안에서 몇몇 죄수가 탈주를 시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버스가 전복되면서 지나가던 열차와 충돌하게 됩니다.
아비규환의 와중 속에서 캠블은 탈주에 성공하게 되는데, 사형수의 탈주 소식이 알려지자 미연방 경찰이 직접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캠블과 경찰관 제랄드 사이에 쫓고 쫓기는 숨가쁜 추격전이 전개됩니다.
그러나 이 주인공은 무작정 도망만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누명을 벗어야 하기 때문에 경찰의 집요한 추격을 받으면서도 범인을 찾기 위해서 주력합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건물과 건물사이를 뛰어넘습니다. 차가 질주하는 도로를 뛰어드는가 하면, 하수구의 긴 터널 속에 들어가 도망칩니다.
그런데 그 하수구는 댐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뒤에는 총을 든 경찰이 있고, 앞에는 떨어지면 죽는.... 밑이 아물거리는 댐입니다. 다급해진 그는 댐 아래로 뛰어듭니다.
경찰차가 좇아오고, 사냥개와 헬리콥터가 동원되어... 계속해서 좇아옵니다.
좇는 사람과 도망가는 사람... 영화를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정말 스릴 있죠....

도망자라는 영화가 히트를 치니까 '도망자 2'가 나왔습니다.
도망자 2의 내용은 뭔가 하면, 시카고 도심 한복판에서 자동차 사고가 발생했는데, 부상당한 운전사 마크는 병원에 실려갑니다.
사고를 조사하던 경찰은 마크가 뉴욕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명 수배 중임을 알고 병원에서 그를 체포, 뉴욕으로 호송하게 됩니다.
특급 죄수가 되어 범죄자 수송 비행기에 오르고, 그 안에는 다른 죄수를 호송 중인 미 연방 경찰 샘 제라드, 그리고 마크의 목숨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암살자가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죄수로 위장한 암살자는 마크를 향해 총을 쏘지만 총알은 빗나가서 비행기 창문을 맞히고 비행기는 오하이오 강에 추락합니다.
아수라장이 된 사고 현장을 틈타 탈출에 성공한 마크... 그리고 눈 앞에서 사라진 도망자를 추적하기 위한 샘의 치밀한 수색 작전은 마크에게 불리하기만 합니다.
한편 샘이 이끄는 수사팀에 스타일과 성격면에서 샘과 반대되는 정부 요원 존 로이스가 연방 정부 기관의 입김으로 합세하게 되는데... 그러나 샘은 도망자 마크를 추적하던 중 뜻밖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데, 바로 마크는 단순 살인범이 아니라 해병대 특수요원 출신이자 셰리던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전 CIA 스파이이며, 최근에는 정부 기관의 비밀 요원 암살자로 활동했다는 것입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이 영화도 역시 계속해서 도망자의 뒤를 좇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쫓기는 도망자... 숨조차 쉴 겨를이 없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생각해 보면서... 어쩌면 그렇게 우리네 인생의 모습과도 같은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바쁘게 바쁘게 쫓기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쫓겨 삽니까?... 그렇게 달려가는 이유는 뭡니까?...
무엇이 그토록... 여러분으로 하여금 달려가게 만들고... 도망치게 만듭니까?..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끌다' 라는 동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길을 '인도하다', '통제하다', 또는 '방향을 제시하다' 그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든, 축구 공을 차든, 못을 박든... 그러는 순간에 그것을 우리는 인도하고, 통제하고, 그것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계속 떠올리며 그것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떠오르는 어떤 두려움 때문에 그것에 지배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잘못된 믿음에 의해 끌려가고 있습니다.
수백 가지의 각기 다른 상황이나 감정들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갑니다.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다섯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죄의식
첫째로, 많은 사람들은 죄의식에 끌려 다닙니다.

죄의식이라는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 때문에 그것에 얽매어 자유롭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갇힐 필요는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과거에 제한 받지만... 우리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과거로 인해서 제한을 받거나 영향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모세와 같은 살인자를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바꾸셨습니다.
기드온이라는 겁쟁이를 용감한 장군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를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죄의식에 끌려 다니거나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새롭게 하시는데 전문가이십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리차드 훼플러'(Richrd Hoefler) 라는 사람이 '아침이 밝을 것인가?' 라는 책에서... 샐리와 쟈니라는 남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죄의 노예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재미있게 묘사해 주었습니다.
동생 쟈니에게 어느 날, 고무줄로 만든 새총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래서 새총에다가 조그만 돌을 끼워 넣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나무를 맞추는 연습을 합니다. 처음에는 잘 안 맞지만 점점 실력이 좋아지면서 나중에는 목표물을 정확히 맞추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곳간에 들어갔을 때 할머니께서 아끼시는 오리 한 마리를 보게 됩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 쟈니는 그만 오리를 겨냥해서 새총을 쏘았는데 오리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소년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엉겁결에 얼른 그 오리를 장작더미 속에 감추었는데, 고개를 드니 그걸 누이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점심을 먹고 나서 할머니께서 그 누이에게 말합니다. "샐리야 식사를 마쳤으니 같이 그릇 좀 닦을까?"
그러자 샐리는 얼른 대답하기를 "할머니, 오늘은 쟈니가요.. 자기가 부엌일을 하고 싶다고 그러네요... 그렇지 쟈니야?" 그러면서 얼른 허리를 굽혀 쟈니의 귀에다 속삭였습니다. "오리... 알지?"
쟈니는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접시를 닦았습니다.

나중에 할아버지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낚시하러 가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어쩜 좋지? 샐리는 저녁 만드는 걸 좀 거들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샐리는 웃으면서 "걱정하실 거 없어요. 오늘은 쟈니가 하고 싶다는데요?" 그러면서 또 귀에다 대고 속삭입니다. "오리...."
쟈니는 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샐리가 할아버지와 낚시를 간 동안에 집에 남아서 할머니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두 번이 아니고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반복됩니다.
쟈니는 자기가 해야되는 일 뿐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샐리의 몫까지 하고 나니... 쟈니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할머니께 오리에 관하여 고백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쟈니가 솔직히 오리를 죽인 것을 말씀드리자 할머니께서는 쟈니를 꼭 안아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쟈니야... 나는 그 일을 다 알고 있단다... 나는 그때 창 문에 서서 다 봤거든... 널 사랑하니까 다 용서해 줄께... 나는 네가 왜 그렇게 샐리에게 꼼짝을 못하는지 궁금했단다..."

여러분,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음으로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들볶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죄는 우리를 꼼짝하지 못하게 묶어 버리고 맙니다. 결국 우리는 그것을 털어놓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에 얼마든지 죄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원수 마귀는 우리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입니다. "넌 이제 끝장이야. 넌 실패자야. 넌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꺼야.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어?" 그렇게 속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모든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하나님은 우리가 죄책감이나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사탄의 하수인 노릇하고 있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자녀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죄에 대해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엎드리는 한... 아무리 심각하고 중한 범죄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용서되지 못하는 죄는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죄의식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얼른 주님 앞에 나아가 그 죄를 자복하고 죄 용서함을 받으며... 참 자유와 기쁨을 얻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원한과 분노
두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끌려 다니는 것은 원한과 분노입니다.

대부분 원한을 갖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상처받은 것을 용서하지 못할 때 생겨납니다.
그가 나를 힘들게 하고, 수치스럽게 만들고, 참을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 속 깊이 원한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외칩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아니... 평생 용서하지 않을꺼야!"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의 응어리는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자리잡고 맙니다.
그리고 그는 시간만 있으면 머릿속에서 계속 그 일을 떠올립니다... 고통의 순간들을 되풀이 하면서... 그 원한을 더 크게 쌓아갑니다. 결국 그 원한은 크게 증폭되고 그것은 고스란히 자신의 상처로 남게 됩니다.
'원한' 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살펴보면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원한을 품다', '원한이 뼈에 사무치다', '원한이 골수에 맺히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데... 결국 그것을 품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기에... 그것은 자신의 뼈에... 자신의 골수에... 사무치고 맺혀서... 자신에게 큰 상처가 되고 병이 되는 것입니다.

원한을 품게되면 그것이 나중에는 분노로 표출됩니다.
두 종류의 분노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 분노를 침묵하며... 내면화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켜 다른 사람들에게 그 분노를 쏟아 붓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가지 다 건전한 방법은 아닙니다.
원한을 품게 되는 것은 결국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상처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지나간 과거의 일을 오늘에 와서 어떻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원한을 품고 있는 한... 그것은 분노로 표출되고... 결국 그것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에서 교훈만 얻고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욥5:2)
무슨 말씀입니까?... 분노를 품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 분노가 결국은 자기를 죽인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원한을 갖지 마세요. 분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죽이는 일입니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그를 용서하세요. 포용하세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 있어서 용서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신 것입니다(롬5:8).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랬습니다(요13:34).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가 사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18:3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랬습니다.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형제에 대한 억울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원한을 품으며, 분노를 발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3. 두려움
세 번째는, 두려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두려움은 어떤 큰 충격적인 경험이나... 가정환경... 유전적인 요인 등으로 인해 찾아옵니다.
혹은 미래에 대한 막연함 때문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원인에 상관없이 두려움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은 종종 좋은 기회들을 놓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안전한 방향으로... 위험을 피하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스스로를 가둬놓는 감옥입니다.
이러한 감옥에 갇혀 살게 되면... 그 감옥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도록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두려움은 믿음과 사랑이라는 무기로 물리쳐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예수를 믿는 성도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두려움은... "내가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입니다.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은 주님의 사랑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까?.... 그것은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닙니까?... 내가 죄에서 자유하고 질병에서 자유하고 가난에서 자유하고 죽음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 주님이 대신 십자가에 달려 모든 죄의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죽음으로 갚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2:15절은 말씀합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이유입니다.
죽음 때문에 종노릇하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했습니다.

요즘 감기가 유행이죠.
아이가 감기를 걸리면 엄마, 아빠는 아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하지만 그 아이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은 그 아이로부터 멀리 떨어지려 합니다. 아예 그 아이를 격리시키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엄마나 아빠 같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부모는 자식이 감기 걸릴 때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전염이 될지도 모르는데 왜 엄마 아빠는 아이에게 더 가까이 갑니까?...
그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감기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습니다. 몇 년이 남았을지 혹은 몇 달이 남았을지... 아니면 몇 일이 남았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두려움을 내쫓고 참 기쁨과 자유함을 얻으려면... 주님이 오늘 내게 주신 사명의 자리에 서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이야 말로... 주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물질
네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물질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삶의 목표입니다.
이 욕구는 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해 지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더 안전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소유물은 일시적인 행복만을 줍니다.
결국 그것을 소유하게 되면 그것에 싫증을 느끼고 보다 새롭고 더 크고 나은 것을 원하게 됩니다.

우리의 가치는 결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들은 물건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흔히 돈이 많을수록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부는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한순간에 잃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안전은 그 어느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것에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5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여러분은 어디에서 인생의 가치를 찾습니까?...
물질에서 찾습니까?... "돈이면 다 해결된다... 많으면 많을수록... 나를 더 안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돈이 있으면 없는 것 보다는 낫겠죠.
그러나 물질이 최고의 가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랬습니다(딤전6:10).
여기서 '찌른다'는 말은 '꿰뚫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자멸, 자살행위라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그 욕구가 한이 없기에... 가졌으나 여전히 공허하고 여전히 만족할 수 없는 갈증을 항상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기초를 둔 인생은 그것에 따라 쉽게 무너지고 좌절하게 됩니다.
이기적인 사람, 경쟁적인 사람이 되어 안하무인이 됩니다. 재물로 인하여 평안하기보다는 근심과 염려로 살게 됩니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다스 왕은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되게 해 달라고 요청하여 디오니수스 신에게 허락을 받았습니다.
의자를 만지니까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얼마나 신이 나는지 모릅니다. 책상, 옷장, 침대…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좋은지.... 그러나 음식을 만지니 황금으로 변하여 먹을 수가 없습니다. 물도 만지니 그것이 황금으로 변합니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딸까지도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오히려 저주로구나!..." 그래서 그것을 거두어 달라고 애원합니다.
원수 마귀는 물질에 관심을 갖게 하여 어찌하든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윤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고 말합니다(딤전6:9).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성에 따라 행복이 결정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여러분은 주님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지금보다는 더... 주님과 더 가까운 관계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인정
다섯 번째로,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들은 부모나 배우자, 혹은 자식이나 스승, 또는 친구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가 그들의 삶을 주관하도록 내버려둡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변의 압력에 이끌려 갑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항상 걱정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은 실패한 인생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해서 통제 받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6:24).

이 이외에도 우리의 삶을 이끄는 많은 다른 힘이 있지만... 이 모두가 막다른 골목... 그리고 만족하지 않는 삶을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인도되고, 하나님에 의해서 통제되며... 하나님에게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염려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에 이끌려 살아가십니까?...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빌3:8).
아마 사도 바울처럼 좋은 가문과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물 것입니다.
그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당대의 최고 석학인 가말리엘에게 교육을 받았고, 철저한 율법주의자였으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귀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 보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부르시는 부르심을 상급만 바라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의 모토는 '오직 주님' '오직 하나님 영광'입니다.
주님을 좇는 삶, 주님에게 이끌려 가는 삶... 그는 순교의 이슬로 사라지는 그 날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에 쫓겨 삽니까?.... 무엇에 이끌려 살아갑니까?
죄의식입니까?, 원한과 분노입니까?, 아니면 두려움입니까? 물질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살아갑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분명코 어제 태어난 것 같은 느낌... 이 땅에서의 삶은 그림자만큼이나 순간적이다" 그랬습니다(욥8:9).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첫째는 영생에 비하여 이 땅에서의 삶은 지극히 짧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지구라는 곳은 우리가 임시로 거주하는 장소라는 사실입니다.

오래 머무를 곳이 아니기에 지나친 애착을 갖지 말고, 우리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여! 내가 이 땅에서 보낼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나는 아주 잠시동안 이곳에 있는 것임을 알게 해 주십시오!"(시39:4, LB)

우리도 다윗과 같이 그렇게 소원하며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기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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