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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착잡하고 우울할 때 (시 91: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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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놀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세계는 매일 재난과 분쟁과 불안한 소식만 들려오며 우리 경제와 형편도 회복되지 않고 점점 얼어붙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끊임없는 분열과 불신에 지쳐 그 어디서도 희망을 찾지 못하여 마음이 착잡하고 우울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귀를 기울여 듣고 용기와 희망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1.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우리가 주를 사랑하면 어떠한 위기에 처할지라도 주께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과 거기에 있는 것들만 사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오직 세상과 눈에 보이는 것들만 좇아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육체적인 쾌락을 좇거나 도박, 마약, 술취함과 방탕함, 음란 만을 추구합니다. 또한 이들은 세상의 지위와 명예, 자랑과 허세 등을 따라 삽니다. 이처럼 세상 풍속을 따라 사는 것이 이들 삶의 전부입니다. 혹은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영혼은 완전히 망가지고 죽은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육체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그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들 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가족들은 교회의 직분자들로 장로와 권사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가족이 모두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이들에게는 삶 가운데 세상에 대한 사랑이 더욱 중요하여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단지 삶의 액세서리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이들의 영혼은 깊은 병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세상과 하나님을 함께 사랑하려고 하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삶 가운데 많은 영혼의 갈등이 있습니다. 세상도 사랑해야 되겠고 하나님도 사랑해야 되겠기에, 세상도 놓칠 수 없고 하나님도 놓칠 수 없으므로 늘 갈등과 방황을 반복합니다. 이들은 교회에 와서는 회개하고 참회하다가 교회 밖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 세상을 따라 세상과 타협하며 손잡고 삽니다. 이들의 영혼은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피를 흘리고 그 영혼은 피폐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3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 안에 살되 세상이 그의 가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는 마치 오리가 물 위에서 헤엄치고 다니지만 물이 그 깃털에 스며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새는 항상 깃털에 기름을 발라놓기 때문에 물이 깃털에 닿으면 굴러 떨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그 마음에 모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사는 사람은 이와 같아서, 세상 안에 살되 세상이 그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들어오지 않은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분명히 알고 그에 따라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공부와 기도 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기뻐합니다.

이들은 물질과 시간을 드려 하나님을 섬기며 세상살이에서 언제나 먼저 할 것은 먼저 하고 나중할 것은 나중에 하는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을 늘 자랑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 대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예수님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삶 가운데 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께서 우리를 그 위기에서 건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관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상에 절하라고 할 때 그들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포로로 잡혀와 바벨론에서 살면서 그들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바벨론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먼저 섬겼습니다. 그 결과 느부갓네살 왕은 진노하여 이들을 잡아 풀무불 속에 던졌으나,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들을 풀부불에서 건져내셨습니다. 뜨거운 풀무불 가운데에서 이들은 옷은 커녕 머리카락 한 올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경제적인 위기로 인한 고통이 올지라고, 그로인해 우리 삶이 아무리 곤고해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을 주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말씀이 응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수록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시편 91편 14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음미하고 이를 우리 삶의 모든 고통 가운데 위로의 근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2.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이름을 경배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 이름에 머리 숙이고 예배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안즉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교회에 나왔습니다.

또한 하나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직장 예배와 가정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이름을 늘 찬미하고 찬양하는 일을 합니다.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처럼 하나님 이름을 알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신 계명과 말씀을 순종하고 지키는 것은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높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할수록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하나님의 성호를 높여 예배 드려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면 아무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고 하나님 이름 앞에 모여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을 그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우리는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일반적인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으로써 우리 영혼에 생기를 줍니다.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고, 새벽에 새벽 기도를 드리는 이러한 기도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통을 통해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고 생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특별 기도, 즉 간구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우리 운명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기도하지만 어떤 특별한 기회나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특별기도를드려야 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1∼13절 말씀처럼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전심으로 마음을 다하여 외치고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이와 같은 특별한 기도는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특별한 개인적인 문제나 사회, 국가적인 문제를 두고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이러한 특별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간구하는 기도이고 하나님께서는 간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 36장 37절에 말씀하기를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교회들과 여러 단체들이 모여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심으로 기도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오직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기도가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간구하는 과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자신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주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이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므로 이 과부의 요청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오직 한 가지 목적, 즉 자신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하는 마음으로 전심을 다하고 일심으로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청을 듣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아침, 점심, 저녁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결국 이 재판관은 이 여자가 자주 와서 자기를 괴롭히므로 그 원한을 들어 풀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밤낮으로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가정과 생활, 자녀와 사업을 위해 특별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는 일상적인 하나님과의 교통이 아니라 간구의 기도로써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께 부르짖어 응답이 오도록 몸부림을 치고 외치는 기도입니다. 그럴 때 마귀의 모든 진을 훼파하고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나며 주의 사자가 임하여 문제의 해답을 응답으로 주실 것입니다.

4.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환난은 우리를 죽이는 독이 될 수도 있고 우리를 살리는 보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환난이 독이 되는 경우는 그 어려움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고 겁을 내어 비관적이고 절망적으로 보며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입니다. 이는 마치 가데스 바네아에서 주님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보낸 열 두 정탐꾼 중에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없다고 주장한 열 명의 정탐꾼과 같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관점에서 인간의 이성과 경험, 감각을 통해 봄으로써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없다고 부정적인 생각을 말했습니다. 이들에게 가나안 땅을 점령한다는 것은 곧 두려움으로 이는 패배의 독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 펼쳐진 상황에 겁을 먹고 비관하여 부정적이고 절망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모두 죽고 그들의 말을 듣고 믿은 사람들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환난이 보약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떠한 환난과 어려움에 처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기도하면서 그 상황을 참고 긍적적이고 낙관적이며 소망적으로 보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바라볼 때 거기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광야 같은 인생에 처할지라도 광야만 보지 말고 광야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처할지라도 우리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소망차게 바라보고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환난이 변하여 우리에게 좋은 보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제적 어려움은 원수입니다. 이 원수가 올 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낙관적이고 소망적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이 때를 통해 오히려 우리에게 풍성한 상을 차려서 잔치를 베푸는 때로 만들어 주십니다. 환난 때문에 오히려 주님은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우리의 잔이 넘치는 영화로운 삶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환난은 우리에게 독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보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지느냐에 달렸습니다. 환난을 보고 비관하고 절망하여 부정적이고 불안과 공포의 마음을 품으면 그 환난은 우리를 죽이는 독이 됩니다. 그러나 환난을 당하여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낙관적이고 소망적이며 믿음을 가지고 긍적적, 적극적으로 대하면 오히려 환난은 우리에게 보약이 되어서 큰 축복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환난은 우리에게 오히려 우대한 승리가 되고 더 큰 축복으로 나아가는 단계가 될 것입니다.

5.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주님은 우리가 장수하기를 원하십니다. 장수의 비결은 간단합니다. 일상생활 가운데 우리가 질서 있고 절제하며 깨끗한 삶을 살면 장수하게 됩니다. 무질서하게 살고 음란하고 방탕하며 술취하고 절제하지 않는 생활을 하면 결국 육신이 견디지 못하고 파멸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날 우리 병의 70∼80%는 스트레스에서 발병됩니다. 모든 병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길은 하나님께 나와서 우리 짐을 예수님께 맡기고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고 기도드리며 우리 짐을 맡기는 그 길 만이 우리의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는 길입니다.
또한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갖는 것이 장수하는 비결입니다. 잠언 14장 30절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화평하면 육신은 생명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마음에 시기와 분노가 가득하고 질투와 염려가 꽉 들어차 있으면 뼈가 쇠하게 됩니다. 잠언 17장 22절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면 온 몸은 치료하는 양약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의 기쁨은 어디로부터 올까요? 빌립보서 4장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 앞에서 우리는 기쁨이 충만하고 즐거움이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시고 섬길 때 주님은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기쁨을 부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평화를 얻고 기쁨을 얻어, 육신의 생명이 넘치고 치료가 넘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장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 가운데 언제나 우리는 긍정적이고 플러스 발상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마이너스를 보거나 생각지 말고 항상 플러스를 봐야 합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치료의 하나님을 늘 의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십니다. 우리 아버지 앞에 늘 기도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의 치료가 넘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병들기 전에 늘 치료가 가득하여 건강한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치료하는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고 치료의 생명수를 마셔서 병들지 않게 만드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장 30절 말씀과 잠언 3장 15∼1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나무이시며 우리 복의 근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우리 지혜의 근본이라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먼저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고 마음속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의 태도를 취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마다 태어난 그 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가슴에 품고 태어납니다. 오늘날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었다 해도 그 과학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든 사람입니다. 과학이 발전되고 향상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과학과 사회의 발전을 만들어 가는 사람 자체는 바로 죽음에 이르는 병든 자로, 얼마 있지 아니하여 이 세상을 떠나가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 존재는 100년이 되지 않아 지상에서 사라지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죄의 부끄러움과 수치의 옷을 입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통 받으시고 피흘리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는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분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오늘날 세계에 모든 종교인이나 도덕 군자들은 우리에게 종교를 주고 철학을 주고 윤리와 도덕 강령을 주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위해 대신 몸 찢고 피흘리며 우리 죄를 대속해준 분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하늘에서 오신 이가 우리를 위해 몸 찢고 피 흘려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이제 우리가 갈 그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면, 우리는 장수 할 뿐 아니라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잠시 잠깐 후에 이 세상 삶은 다 끝나고 주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서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는 서로 헤어져 살다가 죽지만, 결국 나중에는 한 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즉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 모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소망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편 91편 14∼16절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의 환경이 어수선하고 삶이 우울하고 착잡할 때 우리를 붙잡아 주는 힘은 하나님 말씀 밖에 없습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어둡고 캄캄하며 암울할 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내 발에 등이 되시고 내 길에 빛이 되십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혼돈과 불확실성으로 들어차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우리가 평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그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인생을 승리로 살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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