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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솔로몬이 축복을 받은 이유 (왕상 3 : 1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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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왕상 3 : 1 - 13
제 목 : 솔로몬이 축복을 받은 이유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줄로 압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바친 일천번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역대 왕들이 받지 못했던 전무후무한 축복을 받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솔로몬의 축복을 부러워  하면서, 자신도 이러한 축복을 받기를 소원하며 일천번제 헌금을 작정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 귀한 헌금이지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라고  했는데, 누구라도 작정해서 3년 가까이 꾸준하게 매일같이 헌금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드려지는 일천번제를 기뻐 받으시고, 다른 성도들과는 구별된 귀한 축복을 반드시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에는 항상 있어야 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정성입니다.  정성.  우리의 진실된 마음이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작정했을 때는, 그 작정한 바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드리는 것이, 일반 제물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작정해서 헌금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관심있게 지켜보십니다. 
왜 관심을 보이십니까?  일단 특별하기 때문이지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열심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다.  그런데 조금 하다가 그만 두거나, 정한 대로 하지 못하고 들쭉날쭉 한다면, 그 드리는 제물에 가치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일반 제물보다 못하게 평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정한 것을 꾸준하게 중단됨이 없이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될 때,  하나님은 비로서 그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받으시고, 일반의 보통 성도들에게는 주시기 아니한 특별한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 시간 한번 생각해 볼 것은, 과연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드린  그 일천번제만 보고, 그에게 그런 놀라운 축복을 허락해 주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라고 했는데, 이런 하나님의 임재가,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 때문에 나타난 것일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천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현몽하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져 있으니까요? 
그러나 일천번제가 솔로몬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 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축복의 전제 조건이 되지는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에, 단편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떤 결과가 있을 때, 우리는 그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결과가 있기까지의 출발과 과정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교훈을 발견할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여러분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나에게도 이런 말씀을 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내가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 말씀하시면서, “무엇이 네게 필요  하느냐?  구하라.  네가 구한대로 내가 네가 줄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신다면, 우리 인생에 무엇을 염려하며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불행 끝 행복 시작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축복이 우리에게 그냥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요, 또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축복도 아니라는데, 우리의 마음에 근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를 모양을 흉내 내며 작정 헌금으로 드리지만, 이것이 과연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을까?  양 한 마리에 적어도 10만원씩만 잡아도, 일천 마리면 1억인데, 금액 면에서도 내가 드리는 작정헌금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참 힘이 빠지지요.  우리가 아무리 많이 드린다 할지라도  솔로몬과 같이 드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금액의 크기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중심, 우리의 정성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주님은 부자의 헌금보다 과부가 드린 두 렙돈, 동전 두 닢의 헌금을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눅 21 : 2절 이하에 보면,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솔로몬에게 있어 1억이나 10억이나, 사실 그리 큰 금액은 아닌 줄로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금액에 상관없이 그의 중심을 보셨기에, 그가 드린 일천번제를 기쁘게 받으시고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우리가 우리의 형편대로 작정한 금액을 최선을 다해서, 정한 대로 하나님께 드리면, 우리가 드리는 일천번제도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와 같이,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일천번제 드리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이왕 시작한 것, 빠트리지 마시고 매일 정한 시간에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드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천번제로 정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받는 하나님이 축복이, 과연 솔로몬이 받은 축복과 같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왜 틀릴 수밖에 없습니까?

솔로몬이 역대 왕들이 받지 못했던, 전무후무한 놀라운 축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천번제 한 가지 때문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만,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전에 또 다른 두 가지를, 하나님께 더 드렸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두 가지가 더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런 놀라운 축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오늘 본문 3절에 나타난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우리가 구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 넘치게 축복을 받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솔로몬이  일천번제 이전에 하나님께 드렸던 그 두 가지를 찾아내서, 우리 또한 그것을  일천번제와 더불어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일천번제 안 드리니까, 이 두 가지를 찾아서 해도 소용없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일천번제는, 우리가 드리는 모든 헌금을 대표하는 겁니다.  우리 가운데 헌금생활 안 하시는 분 없잖아요.
그러니까, 일천번제를 하든, 일반 헌금을 하든, 여러분의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께 드렸다면, 그 모든 예물을 하나님이 다 기뻐 받으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외에 두 가지를 다 같이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일천번제 이전에 드렸던, 그 두 가지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 두 가지 중에 첫 번째는, 바로 성전이었다는 겁니다. 
일천번제 이전에, 솔로몬은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해 드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세요.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그 딸을 취하고 데려다가 다윗 성에 두고, 자기의 궁과 여호와의 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이 필역되기를 기다리니라.” 라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성전이 완공되지는 아니했지만,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고, 이제 성전이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호와의 전인 성전이 지어지기까지 들어간  비용이나 정성이 얼마였겠습니까?  우리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어머 어마한 비용이 들어갔을 줄 압니다.
비용으로 따지면, 그가 드린 일천번제와는 비교가 안 되지요.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림 이전에, 이런 정성과 노력을 들여 여호와의 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해 드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헌금생활  이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여호와의 전인 성전을 건축하는 일, 무엇입니까? 예배를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호와의 전에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솔로몬과 같이 실제적으로 여호와의 전을 짓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섬기는 이 벧엘 교회를, 내가 하나님께 봉헌해 올리는 여호와의 전이 되게 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예배하고, 정성을 다해 예배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대 왕들 가운데,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해 올린 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솔로몬에서 감동하신 것 아닙니까?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기 이전에라도 수많은 사사들이 있었고,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들은 왕은 아니었지만, 왕과 같은 권세를 가진 민족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해 올릴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도 아무도 이러한 일을 한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했는데, 너의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단순히 솔로몬과 같이 지혜를 구한 자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일천번제나 성전을 봉헌해 드릴 정도로 귀한 헌신을 한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했기 때문에,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과연 남들과 구별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예배를 위해 여러분은 얼마나 정성을 드리며,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요 4 : 24절에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령과 진정은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집중이라고 했습니다.  집중해서 드리는 예배.
바로 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집중해서 드리는 예배를,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지은 여호와의 전과 같이, 기쁘게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그러나 여러분, 이 요 4 : 24절 이전에 무슨 말씀이 있습니까?
4 : 23절에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어떤 자들을 찾으신다고 했습니까?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집중해서 예배드리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런 자들이 그 때나 오늘이나 흔치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예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으로 찾아보아도, 눈에 띄는 자가 많지를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들과 똑같이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은혜의 체험이 나에게는 없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나의 신앙생활이, 형식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예요.  특별히 예배하는 일에 있어 그렇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한,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한, 집중하는 예배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지나온 신앙생활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이 드린 예배가 어떠했습니까? 
예배에 여러분 목숨을 걸었습니까?  만사를 제쳐놓고 예배에 힘썼습니까? 
여러분이 드린 예배에 얼마나 여러분의 마음이 실려 있었습니까? 
“온 맘으로 송축 하리, 생명 다해 주 섬기리, 나의 힘 나의 맘 내 모든 것 드려 주 경배,  경배해 내 삶을 드려, 주께 경배 경배 드리리, 내 삶을 드려 주께 경배 경배드리리”  여러분, 바로 이런 예배가 신령과 진정의 예배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보에 나온 공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습니까?  우리 가운데 절반 이상이,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예배의 현실이라는 것이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예배에 잘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을 책망하기 위해 이런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잘 못한다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그렇다고 잘 하고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냥 보통 정도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이 상태로도 주님께 책망들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또 주님께 칭찬들을 정도도 아니라는 겁니다. 

남들과 다른 은혜의 체험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남들과 다른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이런 소원 저와 여러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정도의 보통의 신앙으로서는 이런 은혜,  이런 축복 받을 수 없습니다.  받을 수 있다고 설교를 하면, 저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겁니다.  목사가 어찌 설교를 하면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듣기가 싫어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이 받지 못한 은혜를 체험하고 싶고,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한 특별한 축복을 받고 싶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 다른 성도들과는 다른,  다른 성도들과는 구별된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헌금을 드려도 남들이 하지 못하는 헌금을 하세요.  예배를 드려도 남들이 드리지 못하는 구별된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별해서 귀하게 여기십니다.
남들에게 주시지 아니한 특별한 은혜, 특별한 축복 주실 줄 믿습니다. 

예배를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예배를 사모하세요.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모든 공 예배를 참석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배 자체를 귀하여 여기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각하지 마세요.  적어도 10분 일찍 나오셔서 기도하며 예배를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집중해서 예배드리며 모든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 하나님이 그토록 기뻐하시는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성도들을 반드시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로, 솔로몬이 일천번제의 제물을 드림 이전에 하나님께 드린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의 제사였다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2절과 3절 말씀을 보세요.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솔로몬은 여호와의 전이 완공되기 전이라도, 하나님께 제사하기를 쉬지 않았는데, 어디서 제사를 드렸습니까?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산당에서 드린 제사는 예배와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산당에서의 무엇이 주된 목적이었겠습니까?  기도가 주된 목적  이었다는 겁니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다는 것은, 곧 기도를 드렸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세요.  기도를 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향이라고 했습니다.  계 5 : 8절에 보면,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가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좀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왜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기도의 제사를 드렸던 것일까요?  그 당시에 산당이 기브온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외에도 여러 군데에 있었는데, 왜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일천번제도 드렸던 것일까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 말씀을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무슨 이유 때문이었습니까?  기브온 산당이 제일 컸기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이처럼 기도를 드림에 있어서도, 남들과는 다른 정성과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머물고 있는 곳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기브온 까지는 족히 10키로가 넘는 거리입니다.  지금 10키로야 멀지 않게 느껴지지만, 그 당시에 10키로는 제법 먼 길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차가 있었던 때도 아니고, 그렇다고 솔로몬이 한가한 사람도 아니지 않습니까? 
왕으로서 국정을 수행하는데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께 기도의 제단을 쌓기 위해 그 먼 길을 마다 않고 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남들보다 더 큰 은혜, 더 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솔로몬과 같은 이런 기도의 노력과 수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보통의 기도생활 정도로는 안 된다는 것이예요.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축복을 받으려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집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날 교회에 일찍 와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작은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는 것입니다. 이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솔로몬이 왜 기드온까지 갔습니까?
거기에 가장 큰 산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인데, 어찌 소홀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솔로몬은 멀어도 제일 큰 산당이 있는 기브온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 기브온 산당은 어디  이겠습니까?  바로 우리가 지금 모여 있는 이곳, 벧엘 교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이 성전이 바로 기브온 산당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짜 축복을 받고, 은혜를 받고 싶다면, 힘들고 어려워도,  이 성전을 향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솔로몬이 산당에서 기도할 때에 아무 때나 가서 기도했겠습니까?
정한 시간이 분명 있었을 줄 압니다.  그 시간을 지키며, 법도를 지키며 기도의 제사를 드렸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정말 축복을 받기를 소원하며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교회에서 정한 새벽 기도회 시간에 나오셔야 합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셔야 합니다.  왜 아멘 안 하세요. 

“목사님, 너무 힘들어요.”  제가 억지로 하라 소리 안 합니다. 
여러분이 남들과 다른 축복을 받기를 소원한다면, 그렇게 하셔야 한다는 말이예요.  그러나 그런 마음이 없다면, 그냥 지금처럼 가까운 작은 산당에서 기도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칭찬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선택은 여러분이 하시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 솔로몬을 그토록 크게 축복하셨을까요? 
솔로몬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그야말로 지극정성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일천번제만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솔로몬이 드린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이루지 못했던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예배하고자 하는 열심, 가장 큰 산당을 찾아가 기도를 하는 열심,
이런 열심이 일천번제를 드림 이전에도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크게 감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무후무한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이런 솔로몬과 같은 신앙, 우리 모두가 본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할렐루야!!!

정성을 다한 헌금, 정성을 다한 예배, 정성을 다한 기도, 이 세 가지가 오늘 저와 여러분의 신앙 가운데도 나타나서, 솔로몬이 받은 축복, 오늘 우리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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