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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칭찬들은 사람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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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는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사는 사람도 있고,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사는 사람도 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은, 칭찬들을 수 없지만, 남을 기쁘게 하며 사는 사람들은, 칭찬 받게 되어 있다. 성도는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하지만, 예수님께 더욱 칭찬을 받아야한다.

  성도는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과, 주님께서 사랑하신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 본문의 백부장은 로마 군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전혀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인데, 10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기이히 여기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기이히 여기셨다는 말은 칭찬하셨다는 말이다. '세상에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하면서, 최고로 칭찬해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계급과 신분을 주목하지 않으셨다. 그의 믿음을 주목하셨다.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큰 믿음을 가졌느냐가 중요하다.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닌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믿음이 적다고 책망을 받았다. 따라서 하나님께 가장 필요한 사람은, 예수님께 칭찬 받은 백부장 같은 사람이다. 그러면 백부장이 도대체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깜짝 놀라셨을까요?

1. 예수님께서 누구인지 알았다.

(1)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하인이 중풍으로 매우 고생하고 있을 때,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이 문제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백부장은 주님 앞에 나와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주"라는 말은, 그리스 사람들은 종이 주인에게 붙이는 칭호였다. 로마 사람들은 황제를 칭할 때, 쓰는 용어다.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을 말할 때 썼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의 주인이시며, 황제며,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올바른 신앙고백이다.

  백부장은 랍비(선생)라는 흔한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주님이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메시아임을 믿었기에 이렇게 불렀다. 로마 군대에서 백부장의 신분과 위치에 있는데.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존경심이 없이는, "주여"라고 부를 수가 없다.

  예수님은 그 당시 사회적 신분으로 보면, 아무 계급도 없는 평민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백부장은 허리를 굽혀 "주여"라고 불렀으니, 예수님을 올바로 알았다는 말이다. 주님 앞에 나오려면, 자신의 계급을 떼어야 한다(이승만 대통령).

(2) 예수님께 구하면 해결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구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실 수 있다고 믿었기에, 도와달라고 간구하였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나 사건들을 만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의 해결하는 방법을, 어떤 때는 물질, 권력, 사람에게 둘 때가 있다. 물론 이런 작은 문제들은, 사람이 도와줘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해결할 수 없을 때는, 누구에게 해결해 달라고 부탁해야 할까요?

  병원에서 아무리 진찰을 해도 나오지 않는 병은, 어디에 가서 도움을 받아야 하나요?
  지옥 갈 영혼을 누가 건져줄 수 있나요? 자녀 문제 뜻대로 되지 않잖아요? 악한 영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드는데, 누가 구원해줄 수 있나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다. 오직 하나님만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주님께 나와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결코 시험이나 방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핍박과 방해가 있다. 마귀는 내적으로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고, 외적으로는 환난과 핍박을 가져온다.

  사단은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주님 앞에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내가 로마군대의 백부장인데 어떻게 평범한 예수의 말을 들을 수 있나? 나는 못해, 더군다나 내 문제도 아니고, 종의 문제인데 내가 왜 해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사회적인 신분과, 체면이 있는 분이면 쉽지 않다.

  나아만 장군은 신분과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자신의 문둥병을 고치지 못할 뻔했다. 자기 생각에는 상처에 손을 얻고, 기도해 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을 거부했다. 그러나 잘못을 깨닫고, 자신의 방법을 버렸을 때, 문둥병에서 깨끗하게 치료될 수 있었다.

  우리가 구원 얻지 못하도록, 마귀는 방해공작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존심, 낙심, 환난… 이런 방법으로 넘어뜨리려고 하지만, 오직 믿음으로 나와서 승리해야 한다. 문제 때문에 넘어지지 말고, 예수님을 바로 알아,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2. 삶이 변화된 믿음이었다.

백부장은 지금 자기 병을 고쳐달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 가족을 고쳐달라는 요구도 아니다. 자기가 데리고 있는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달라는 간청이었다. 백부장에게는 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마8:6절의 하인(  )이란 단어는, '아이'라는 말이다. 그는 이 하인을 자기 아이처럼 사랑했다.
눅7장에 보면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2절에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었다고 했다.
그 당시에 하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팔고 살 수 있는 소유물이었다.

  인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생활도구와 같았다. 당시에 종은 그저, 집에서 기르는 가축과 별 차이가 없었다. 굳이 다르다면, 종은 말을 할 줄 알고,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할 뿐이었다. 종은 인격도 없고, 근로환경 조건도 없다. 그래서 종이 병에 걸리면, 죽더라도 별로 신경을 안 썼다.

  설령 중병에 걸리면, 그냥 갖다 버렸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보면, 흑인들의 조상이 어떻게 노예로 살았는지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정말 사람의 삶이 아니었다. 그런데 백부장은 짐승과 똑같이 취급당하는 종이, 병든 것을 알고서 그를 사랑했다.

  자신이 친히 예수님께 나아와서, 고쳐달라고 간구하였다. 백부장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구세주이며, 능력의 예수님이라고 믿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 수준을 넘어서, 사랑을 실천하는 단계에 이르렀던 사람이었다. 사랑하면 닮기 마련이다.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은 사람을 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셨다. 그래서 낮고 천한 자들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셨듯이, 백부장도 사람을 귀히 여기고, 낮은 자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다. 눅7:1-10에는, 백부장의 신상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유대인의 장로 몇이 예수님께 나아와, 백부장의 간청을 들어주는 것이 너무 합당하다며,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눅7:5).
  백부장은 철저하게 훈련받은 로마황제의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유대민족을 사랑하고, 유대인을 위해 회당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그의 인품이 얼마나 훌륭했는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인품에 대한 평가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평가되어진다.

  유대인은 철저히 선민의식에 빠져 있어서, 이방인을 구원의 대상으로 보지도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할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 잘못된 신앙을 가진 유별난 민족이었다.

  그런데 이런 유대인 장로들이, 자기 나라를 강제 점령하고 착취하는 이방의 로마장교를, 이렇게 칭찬하고 있음은, 백부장의 인품이 얼마나 고상하고 훌륭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이와 같은 삶, 칭찬 듣는 삶을 원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문제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들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과 돌봄을 갖고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2가지를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 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백부장은 유대민족을 위해 성전을 지어 봉헌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보 잘 것 없는 하인을 위해, 예수님께 나와 겸손히 간청하고 있으니,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본을 보이고 있다. 균형 잡힌 신앙이었다.

  예수님께서 그의 이런 믿음을 보시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자기 문제만 갖고, 씨름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늘 자기에게 집착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모든 삶의 초점을 자기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믿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단계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열심히 예수님을 믿다보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닮게 되어,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된다.

  부부도 사랑하면, 생각도 닮고 외모까지도 닮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반드시 예수님을 닮게 되어,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런 삶이 진실한 믿음이었기에, 예수님께서 칭찬하셨다. 주님의 모습을 닮아 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3. 말씀의 권세를 믿었다.

예수님께서 당장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시는데, 백부장은 극구 사양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 사람은 로마 사람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유대 법에 의하면, 금기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집에 들어가시면, 비난을 받으실 것은 뻔한 이치다. 전에 예수님께서 세리의 집에 들어가신 일로 인해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비난을 받으셨다. 이미 알았기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오시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기했다. 그리고 자신도 남의 수하(권세)에 있다고 했다. 당시 로마의 군대는 황제에게 속해있어서, 백부장의 명령을 거역함은 로마 황제의 명을 거역하는 것과 같았다.
  로마의 군대와 그에 속한 사람들은, 반드시 복종해야 했다. 이런 명령체계를 알고 있는 백부장은, 예수님의 권세를 하나님의 전능하신 권세로 인정하는 믿음이었다.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인가? 말씀의 권세를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다.

  말씀의 권세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말씀의 권세는 무엇인가? 권세는 위임받은 능력을 말한다. 막11:20-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무화과나무가 마르자, 제자들이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믿음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믿음은 크게, 2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신념이고, 또 하나는 신앙이다. 세상 사람들은 신념으로 살아가지만, 신앙은 없다.

  신념은 자기 믿음이다. 착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 같은 느낌은 내 믿음이다. 그러나 신앙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믿음을 받아들임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기에, 반드시 보장이 있다. 현대인들은 신념이 강하다. 자신의 신념으로, 모두 다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의 젊음, 건강, 지식과 경험, 물질을 의지하면, 이런 것이 인생의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신념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 소용없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유한한 것으로, 영원한 것을 대신할 수 없다.

  신념을 가지고 신앙을 대신할 수 없다. 육체적인 것으로 영적인 세계를 측정할 수 없다. 백부장은 말씀을 붙드는 신앙을 가졌다. 그 믿음을 보시고 하인의 병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치료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원수 마귀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만들고, 말씀을 빼앗아 간다. 따라서 말씀을 빼앗기지 말라.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13) 라고 놀랍게 축복하신다. 이런 놀라운 은혜가 있기 바란다.

  결론입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고 믿었다. 백부장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들도 믿지 못하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믿었다. 삶이 변화된 사람일 뿐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원거리에서라도 병마가 쫓겨가고 깨끗하게 고침 받게 됨을 믿었다. 

  그래서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11) 믿는 사람들은 천국 간다는 말씀이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12). 본 자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한다.

  교회에 앉아 있다고, 다 천국 간다는 보장은 없다. 직분을 가진 자와, 주의 종들이 다 천국 간다는 보장이 없다. 말씀에 권위를 믿고, 순종하는 자만 천국 간다(11, 13).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기준은 오직 믿음이다. 출신 성분과는 상관없다. 믿음만 강하면 이방인도 하나님께서 쓰신다.

  믿음만 강하면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 수가 성의 우물가의 여인도 쓰시고,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도 쓰셨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과거를 논하지 않으신다.
믿음의 용사가 되시어, 주님께 칭찬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이건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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