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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선교회 헌신예배] 성령으로 헌신한 사람 (롬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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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월간지에서 읽었던 유우머입니다.  젊은 여자 한 명이 늦게 정신병원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벌거벗은 남자 한 명이 병원에서 뛰어나와 여자의 뒤를 쫓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여자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을 갔습니다. 남자도 역시 죽을힘을 다해 쫓아왔습니다. 도망을 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자 젊은 여자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빌었습니다. “하자는 대로 다 할 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 주세요”
  “그래? 그럼 이제 네가 날 쫓아와 봐!”

리브가 헌신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 위에 성령 안에서 주시는 위로와 능력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리브가 라는 여인은 이삭의 아내로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얼굴도 모르는 가운데 이삭과의 결혼을 결단한 믿음의 여인입니다.

또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리리라” 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자신의 둘째 아들 야곱을 편애하였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장자권의 축복을 받아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지만 자신은 그 이후로 평생에 사랑하는 야곱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에 대한 성경적인 좋은 점들은 신앙적으로도 성숙하고 지혜로운 여인이요 세운 목적을 성취하는 진취적인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리브가 여선교회 회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리브가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성령으로 헌신한 사람” 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옛날 백 여 년 전에 어떤 부자집 여인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는 매우 부자였지만 또한 매우 검소했습니다. 그런 여인이 자기 집에 제일 먼저 전기를 가설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드디어 전기를 가설하고 몇 주 후 계량기 검침원이 찾아왔습니다. 검침원이 전기가 잘 들어오는지를 묻자, 여인은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때 검침원이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군요. 부인 댁 계량기는 거의 제 자리 걸음입니다. 전기를 쓰고 계신 겁니까?” “물론이죠”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녁마다 해가지면 촛불 붙이는데 필요한 시간만큼 전깃불을 켜지요. 그리고 꺼버립니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이 여인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 충만한 은혜를 약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나약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성령강림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촛불 인생에서 전기 인생으로 능력의 등급을 바꾸어 주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신 것을 헌신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도들도, 초대교회 성도들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주의 거룩한 일에 전 인생을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보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도 사도 바울을 만나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그들의 인생을 크게 헌신했습니다.

첫째로, 인생의 목적이 달라진 헌신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천막제조업이라는 사업상의 이유로 사도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헌신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후로 인생의 목적이 환연하게 달라진 것입니다. 그들은 사업상의 동역자가 사역상의 동역자로 바뀌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소개했는데 동역자간 헬라어로 “짐을 같이 지고 매를 같이 맞는 자”란 뜻입니다. 4절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 내놓았나니” 곧 그들은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그리고 주의 종 사도바울을 위하여 생명 바쳐 헌신하는 동역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목회자로서 그런 동역자가 있는 사도 바울이 부러웠고,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서도 많이 양육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엄 케리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면서 독학을 했습니다. 그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꾸준히 공부하여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까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 느날 케리의 친척 동생이 자기가 들어가기로 한 옥스퍼드 대학에 케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 단과 대학의 유명한 어학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 교수는 케리의 어학 실력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케리에게 “당신이 이 학교에 들어오면 이 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요, 그리고 이 나라의 여왕께서도 당신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분의 말에 케리는 이렇게 거절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여왕을 말씀하셨는데 제게는 이미 저의 전 생애를 건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는 여왕보다 더 높으신 분의 부름을 받았고, 그 분을 향한 저의 충성은 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케리는 그 교수의 제의를 거절하고 세계 선교를 위해서 인도로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리브가 여선교회 회원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여러분 인생의 비전과 목적에 새로운 헌신의 도약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교회 중심으로 헌신한 사람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성령 충만함은 최고의 이상적 모델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그들이 교회 중심으로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했습니다. 고린도에서도, 에베소에서도 그리고 로마에서도 여전히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하고 있었습니다.(5절) 그래서 바울은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안에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고전 16:19 말씀을 보면 “그들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들은 나그네 인생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므로 환경이 안정되지 못했는데도 온 가족이 교회 중심으로 헌신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만하고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만 해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드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좋은 것도 하고 내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126편에서 “울며 씨를 뿌린다”라고 했고 울면서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자기 기분대로 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 중심으로 생각하고 교회 중심으로 말하고 교회 중심으로 일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 생활에 충실해야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상고해야 하며 주의 종의 충고를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이왕 신앙 생활하는데 교회에서도 사랑받으며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사랑을 받습니까? 첫째로, 주인으로부터 신뢰를 받은 종의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일해야 합니다. 셋째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스럽게 일할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의 주인공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고전16:19에는 고린도 교회를 세웠고, 롬16:3에는 로마교회를 세웠고, 딤후4:19 에는 에베소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랑하는 리브가 여선교회 회원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사람은 철저히 교회 중심으로 헌신합니다. 성전 중심의 섦을 삽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주님을 섬기면 성령께서는 교회를 부흥시켜 주십니다. 전도에 불을 붙여 주시고 기도에 불을 붙여 주시고, 봉사에 불을 붙여 주십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교회를 더욱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가슴에 불을 붙여 주시므로 우리의 영혼이 살고 범사에 형통한 삶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셋째, 부부가 함께 한 헌신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성경에 여섯 번이나 언급이 되는데 그 중에 네 번이 아내의 이름이 먼저 언급됩니다. 일반적으로 아내보다 남편의 이름이 먼저 언급되는 것이 당신의 풍습이었는데 그럼에도 아내의 이름이 먼저 언급된 것은 아내인 브리스가가 헌신의 주도자였기 때문입니다.

대체적으로 볼 때 아내들의 신앙이 그 가정의 신앙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 하나님 앞에 온전히 헌신된 한 사람이 그 가정을 주도해 나가면 모두가 함께 헌신하고 함께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될 줄을 믿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함께 생명 걸고 헌신하는 훌륭한 섬김의 모델인 것입니다.

잠언서 11:22에 보면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으니라” 고 했습니다. 금고리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돼지코에 걸려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헬라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부인은 3대 악처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철학하는 사람이 돈을 버는 경우는 드뭅니다. 언젠가 TV를 보니깐 머리 빡빡 깍은 사람이 나와서 노자니 공자니 하면서 소리 꽥꽥 지르면서 떠드는데 꽤나 유명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가장 가난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철학자입니다.

하루는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는데 부인이 저녁 끊일 것이 준비가 되지 않아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여전히 강의에 몰두하자 그의 아내가 신세타령을 하면서 궁시렁 궁시렁하는 것입니다.

“철학을 하면 밥이 나와? 쌀이 나와!” 그러면서도 하도 화가 나니 부엌살림을 막 내던졌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계속 강의만 하고 있으니까 이 번에는 양동이에다 물을 하나 가득 담아 가지고 와서 문을 열고 남편과 제자들에게 확 끼얹어 버렸습니다. 갑자기 물벼락을 받은 것입니다.

이 때 소크라테스가 젖은 옷을 툭툭 털면서 하는 말이 “뇌성벽락이 대단하더니 소나기가 쏟아지는 군!”하더랍니다. 얼마나 어이가 없습니까?  그래서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우리도 앞으로 결혼을 해야 할까요? 말까요?” 그 때 소크라테스가 눈을 크게 뜨며 하는 말이 “암 해야지! 결혼은 반드시 해야 돼. 어진 아내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고, 나처럼 저런 아내를 만나면 적어도 철학자는 될 걸세”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언 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다.’ 고 했습니다.

모두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서로 다른 성향과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 되어 충성하고 헌신의 사람들이 되시 길 바랍니다. 부부가 함께 성령 충만하고, 함께 성경 공부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찬양하며, 함께 봉사하는 헌신의 동역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간적인 의지로 온전히 헌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인생의 목적이 달라진 헌신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부르심의 상을 취하여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중심으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부부가 함께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바라옵기는 리브가 여선교회 회원 여러분을 통하여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 성령의 능력 안에서 날마다 세워지고 부흥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김명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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