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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전도회 헌신예배]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라 (시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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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부족한 사람을 강단에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헌신 예배에 불려올 정도로 유명한 사람은 아닌데 작은 종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 같습니다. 말씀을 전하게 해주신 이승구 목사님과 방화동 중앙교회 성도님들, 그리고 남신도회 회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1. 너는 내 아들이라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 말씀이 선포합니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말씀을 하나님의 살아 있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왕이 등극하면서 낭송합니다. “내가 만방 가운데 칙령을 반포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길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너를 낳았다.”

성경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인생을 향하여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이 확신만 가진다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1) 나는 너만 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유력한 왕들이 많을 지라도 이스라엘 왕 너만 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무수한 민족이 있을지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너 이스라엘만만 안다는 뜻입니다. 중근동에서 이스라엘 나라와 그 왕은 정말 볼품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남쪽의 애굽 문명권과 북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 낀 작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애굽에 붙을까 바벨론에 붙을까 이것이 그들의 정치요 외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열국의 유력한 나라를 제치고 이스라엘만 안다는 선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만 아십니다. 수십 억 인구가 있고, 인생을 살다보면 자기는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고 잊혀져 가는 존재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나는 너만 알고 너만 사랑한다! 우리 어린 시절에 운동회 많이 했지요. 부모님들이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가면 애들이 새까맣게 몰려 있고, 똑같은 체육복을 입고 있어 그놈이 그놈 같습니다. 부모님은 그 가운데서 자기 자녀를 찾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기 자식이 다치거나 잘못되면 화가 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2) 너는 내 아들이라는 의미는 가장 좋은 것을 주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 자녀에게 최상의 것을 물려주고 싶은 것은 부모의 당연한 마음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두 가지를 약속하십니다. 하나는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모든 원수를 물리칠 수 있는 철장권세입니다.

2.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1) 유업(나할라)

우리 각 사람은 태어날 때 한 가지씩 사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주 창조 때의 말씀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은 바로 창조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부모는 우연과 실수로 우리를 낳았을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 창조 때 인간을 만들기 위해 심사숙고하셨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사랑과 목적 가운데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특별히 각자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인생이란 이 사명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우리에게 유업이 있다 말씀합니다.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유업은 나할라, 곧 기업입니다. 나할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배받은 “땅”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할라 곧 땅을 주시듯 우리에게 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땅은 무엇입니까?

저는 땅을 사명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사명은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될 일로 우리 평생의 사역이나 직업을 말합니다. 직업은 영어로 calling 입니다. 라틴어로는 vocation 입니다. 부르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일로 부르셨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이 ‘땅’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말씀 중 십자가 상에서 하신 “다 이루었다”(요19:30)는 말씀을 좋아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어도 여한이 없으셨습니다. 리빙스턴은 “사명자는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사명을 발견하셨습니까?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사명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명이면 하는 일이 ① 즐겁습니다. ② 잘 합니다. ③ 보람 있습니다.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행복하니 잘하고 또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다른 무엇보다도 이 말씀을 꼭 들려주십시오. “너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땅이 있다 그 땅을 찾아가라.” 그러면 자녀들이 큰 꿈을 품습니다. 그래서 큰 사람됩니다.

2) 땅 끝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땅을 주시되 시시하게 겨우 몇 평 정도만 주시려하지 않습니다. 우리 소유는 땅 끝입니다. 자기 인생의 경계선을 작게 치지 마십시오. 크고 높게 넓게 치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부모 되신 하나님이 자녀인 우리를 향한 기대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성경은 우리를 흥분하게 만듭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75세의 늙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은 (창12:1-2)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저희 한신교회 창립 비전 말씀은 창세기 49장22절 말씀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故 이중표 목사님은 이 말씀 붙잡고 교단과 지역과 민족과 사상의 담을 넘으신 분이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경은 우리를 흥분시킵니다. 가만히 있게 놔두질 않습니다.

저는 복음서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읽다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떡덩이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먼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난 다음 남자만 5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를 먹이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기대를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5천 명을 먹이는 인생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인생의 비전으로 잡았습니다. 5천 명을 먹이는 목자! 이중표 목사님이 병상에 계실 때 병 간호를 했습니다. 그때 제가 그 분의 발을 붙잡고 엘리사처럼 기도했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저에게 갑절의 영감을 주시옵소서.” “이중표 목사님의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저에게 갑절의 영감을 주시옵소서.”

예전에 제가 좋아했던 말씀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였습니다. 이제는 바꿨습니다. 5천명을 먹이는 목자로. 이는 제가 교회 성장에 목매는 사람이기 때문이거나, 명예심 때문이 아닙니다. 제 인생을 풀가동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분명한 목표를 향하여 달려나감으로써 제 자신을 채찍질하려는 의도입니다.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저는 녹슨 칼이 아니라 닳아 없어진 칼로 서고 싶습니다.

모세가 행복했던 것은 120이 되도록 그 손에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이 들었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카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꿈을 줍니다. (행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칼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우리 인생을 태양에 비유했습니다. 태양이 동쪽에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과 같은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 태양의 경로는 중천에 떠오르기까지의 과정과 서쪽으로 지기까지의 과정이 다릅니다. 우리 인생 길도 이렇게 구분됩니다. 중년기를 기준으로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있습니다. 전반부의 인생의 목표는 성공이고 이기적인 삶의 양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인생의 목표는 다릅니다. 인생 후반부에 중요한 것은 의미입니다. 삶의 의미입니다. 내 자신에게 충실해지고, 이타적인 삶을 통하여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의 의미를 채웁니다. 이래야 행복이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이제 90까지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 것입니까? 보람 있는 일을 찾으십시오. 여러분의 사명을 찾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자기 인생을 시시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3.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이런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데는 장애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장애물들을 다 제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그릇 한 번 깨보셨습니까? 시원하죠! 철장으로 질그릇들을 깨뜨리고 밟아 보십시오. 얼마나 통쾌합니까? 직장 문제, 진로문제, 가정문제, 자녀 문제, 건강 문제, 영적인 문제 그 어떤 것이든 철장으로 바싹 깨뜨리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1) 생육하고 2) 번성하여 3) 땅에 충만하라, 4)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5)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본질이 정복하며 승리하는 존재입니다. 절망이나 침륜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은 우리 본질이 아닙니다. 절망과 무기력 가운데 빠지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죄는 우리 인생에 우연처럼 들어와서 자기가 마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우리는 승리자요, 정복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우리가 승리자임을 우주 만방에 선언합니다.

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지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담대히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다 이루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얼마나 대단한 약속입니까?

우리에게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기도 제목만이 있을 뿐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철장 권세를 주십니다. 우리 인생에는 동굴이 없습니다. 다만 터널이 있을 뿐입니다. 막히지 않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부르짖으며 나아가다 보면 조금씩 빛이 들어오고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밖으로 나온 연후에는 오히려 더 빨리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4. 내게 구하라

그래서 중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구하라” 무엇을 구하느냐 첫째는 여러분의 땅을 놓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둘째는 그 난관을 깨뜨리고 나갈 철장권세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됩니다. 찾고 구하고 두드릴 때 문은 열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간절히 구할 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냥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아요. 입을 크게 벌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입니다. 가끔 TV에 보면 새 새끼들이 어미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봅니다. 어미는 입을 크게 벌린 새끼에서 먹이를 주십니다. 그처럼 부르짖으십시오. 구하십시오. 반드시 주십니다.

예화 하나 들고 마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천국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안내를 받아 천국 이곳저곳을 돌아보는데 너무 황홀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천국 한 모퉁이에 허름한 창고가 한 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창고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간청을 합니다. "베드로 사도님, 저 창고를 꼭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해진 이 사람은 강청을 해서 결국 그 창고 안을 구경하게 됩니다. 창고 안에는 빨간 리본으로 묶인 하얀 상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이 쓰인 상자도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간곡히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호기심에 그 상자를 열어 보았습니다. 그 상자 안을 들여다 본 순간 이 사람은 얼굴빛이 침울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상자 안에는 이 사람이 평생 동안 받을 수 있는 축복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 복을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못했고, 그 많은 복들이 여기 천국 창고에 썩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누리고 또 그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며, 그 모든 문제를 철장으로 부수고 밟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종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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