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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랴! (삼상 17:17-30, 벧전 5:5-11, 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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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의 유명한 영성가 유진 피터슨은 다윗의 이야기를 지탱하는 세 가지 기본적인 뼈대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카메라의 삼각대 같아서 다른 모든 내용은 이 3가지 기본골격 위에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1) 하나님께서 베들레헴 이새의 막내아들 양치기 소년 다윗을 새 왕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다윗을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그 거룩하신 목적을 위하여 오늘 저와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다는 이 놀라운 은총입니다.

(2)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하여 무슨 특별한 교육을 받거나 그런 과정을 이수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기에게 주어진 현제의 일에 믿음으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이 나중에 그가 왕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절실하게 필요한 수련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이 무엇이든지 여기에 최선을 다할 때 “적은 것에 충성하는 자에게 많은 것을 맡기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3) 다윗이 마침내 전쟁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앞에 서있는 적장 골리앗은 사울을 비롯한 온 이스라엘이 벌벌 떨 정도로 대단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은 그 골리앗에 의하여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는 하나님께 사로잡혔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우리가 문제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대처할 때 문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사무엘서 본문 26절에 다윗이 골리앗을 대하여 한 말이 있습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이것이 하나님께 사로잡힌 다윗의 신앙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교회 일을 의논해 보면 평소에는 신앙, 신앙하는 사람도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자리에서는 전혀 신앙을 내세우지 않고 문제에 사로잡혀 부정적인 언행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사고나 말은 당장 전염이 됩니다. 그래서 긴가민가 하던 사람을 사로잡게 되고,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대처하려고 하던 사람마저 흔들리게 합니다.

가나안 정탐꾼들이 그랬습니다. 12명을 보냈는데, 그 가운데 대다수인 10명이 이런 부정적인 생각, 불신앙적인 사고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우리는 가나안 원주민에 비하면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메뚜기 사고방식”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 이 불신앙과 부정적인 사고는 삽시간에 온 이스라엘 백성을 전염시켰습니다. 그래서 불과 며칠이면 갈 수 있었던 약속의 땅 가나안 행을 40년이나 지연시켰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감자 농사를 지었는데 이것을 캐어다가 일단 창고에 갖다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일이 바쁘니까 창고에 쌓아둔 감자를 제때 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감자 가운데 상한 것이 있어서 이것이 다른 성한 감자끼지 상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서야 상당히 많은 감자가 상해서 그것들을 골라내어서 버려야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생각도 하고 말도 하고 또 행동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고 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는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믿음의 소유자, 믿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런데 이런 다윗의 믿음은 사건현장에 가서 비로소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믿음의 훈련을, 믿음의 연단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시편의 대부분은 다윗의 이름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시편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 아닙니까? 거기에 다윗의 말씀에 대한 묵상이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가 있습니다. 다윗의 찬송이 있습니다. 신앙은 그의 생명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의 사람 다윗이 전장에 나가보니 상황이 전혀 엉뚱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 현상은 왕이나 온 군인들이나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제는 블레셋이나 골리앗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믿음이 없었던 그것이 바로 문제였습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십시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시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 자신이 양의 목자였습니다. 그는 양을 이끌고 좋은 목초지를 찾아 먹였습니다. 배가 부르면 푸른 초장에 누워 쉬게 했습니다. 목이 마르면 잔잔한 시냇가로 몰고 가서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만일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면 다윗은 자기 양을 위하여 그 사나운 짐승과 싸워서 자기 양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병이 나면 치료해 주었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기 전에 그는 결코 잠자리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다윗은 자기 사역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했습니다. “사람인 목자도 자기 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면 내가 무엇을 걱정할 것인가? 내가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그래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즉 “하나님 한분 계시면 더 이상 내가 무엇을 소원하리요?” 그런 신앙 고백입니다. 이런 다윗 즉 하나님을 모신 다윗에게 저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도대체 무슨 문제꺼리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신앙은 하루아침에 완성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훈련해야 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기도훈련을 해야 합니다. 말씀 훈련을 해야 합니다. 예배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섬기는 것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심지어 헌금도 되는대로 형편대로 할 것이 아니라 훈련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다 군대에 다녀오게 됩니다. 처음에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면 하는 말이 “과거를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지에서 출발하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군대 생활 할 때 보면 전투모에 온갖 낙서들을 해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의 애인 이름을 써놓고 “보고 싶다”고 쓴 사람, 그리고 매우 도전적으로 “뭘 봐?”라고 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가장 많은 것이 “생각을 말아야지”라는 것입니다. 마음 고쳐먹고 군대생활 열심히 하자는 뜻입니다. 신앙으로 말하자면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또 하는 말이 있습니다. “훈련 때 땀을 흘리면 전투에서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수없이 많이 듣습니다. 부대를 옮겨 보면 지휘관마다 하는 말입니다. 평소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은 실전에 임해서 용감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승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평소 신앙 훈련을 착실하게 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신앙의 위치를 떠나지 않습니다. 생각도 그렇고 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에서도 그 신앙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특히 교회 공동체에서 아무렇게나 불쑥 말을 해서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해놓고도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사람, 전체 공동체의 분위기를 엄청나게 흐려놓고도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는 사람, 부정적인 사고와 말과 행위로 교회가 가는 길에 장애요인이 되면서도 오히려 자기가 잘 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회개해야 합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그 불신앙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자신도, 가정도, 이웃도, 공동체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런 전능의 믿음을 소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축원합니다.

3. 여기 이스라엘의 대적, 다윗의 대적인 골리앗은 어떤 존재입니까? 삼상17:4에 보면 이 사람은 블레셋 진영의 “싸움을 돋우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체격이 단연 압도적이었으며 그 음성은 산천이 떨만했는데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연속 40일을 공갈 협박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사람 앞에서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싸워보기도 전에 이미 온 군대의 사기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백성을 이같이 괴롭히는 골리앗은 누구입니까? 그가 바로 사탄의 화신입니다.

(1) 먼저 골리앗은 매우 공격적입니다.

이스라엘 앞으로 나와서 하나님을 모욕하면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행여 우리 가운데 일마다 이렇게 도전적인 사람은 없습니까?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보통 말해도 될 일을 싸우듯이 덤벼드는 사람은 없습니까? 우리 기질이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가급적이면 서로 대화를 하든지 회의를 하든지 혈기를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미 살인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옛날 교부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를 만났기 때문에 행복하도록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화를 만드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하는 사람, 행복의 전도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2) 골리앗은 대단히 크고 무서워 보입니다.

그의 키는 3m에 가까운 장신입니다. 머리에는 투구요 몸에는 60kg에 가까운 청동 갑옷을 입었습니다. 거기다 장정 몇 사람이 달라붙어야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창을 들고서 천둥 같은 목소리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괴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 앞에 아무도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저 골리앗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이 던진 돌멩이를 맞고 쓰러지는 마치 허깨비 같은 존재가 바로 사탄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열방이라고 할지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할 때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고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골리앗은 오만하고 추악한 존재입니다.

자기 힘만 믿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마치 짐승 대하듯 놀려대고 있습니다. 자기 힘에 도취되어서 약한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고 짓밟으려고 하는 사람이 바로 골리앗입니다. 사탄의 조종을 받는 세상적인 힘은 말이나 행동에 절제가 없고 오만방자합니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비굴하면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은 무시하고, 폭언을 퍼붓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사탄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한다고 하신 것은 그 속에 사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식사를 조금 빨리 하는 습관이 있어서 어떤 때는 혀를 깨물려서 쩔쩔 맬 때도 있습니다. 거기다 치아가 좋지 못해서 한번 깨물리면 혀가 상해서 피가 납니다. 그러나 내가 나이 더 많아지고 지금 보다 치아가 더 상해서 나중에는 의치를 하게 될 때에도 그 치아에 자주 깨물려서 피를 흘리던 혀는 여전히 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땅 뿐이겠습니까? 하늘나라에도 온유한 사람이 들어가게 됩니다. 모세는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서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주님이 나를 주장하여 주옵소서, 성령께서 나를 성결하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이 내 안에 풍성하게 거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의 품은 뜻, 내 입으로 하는 말과 내 일거수일투족이 주님을 닮게 하옵소서.”

그렇게 할 때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놀라운 승리에 우리도 참여하게 될 줄 믿습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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