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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와 복 (신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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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신 16:15)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깎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데다가,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 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모임을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나에게 불만을 토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래도 내게 친구로 가까이 있음이 아니던가요?

모든 일에 원망 불평 하지 아니하고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소출을 저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되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복 주실 것이란 말씀은 지금 까지 복을 주셨고 앞으로도 복을 주실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앞으로도 복을 베풀어 주실 것과 지금까지 줄 곧 복을 베풀어 풍성한 소출을 얻게 하신 사실을 인해 감사함으로 초막절을 지켜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도들이 복 받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추수 감사절을 지키게 하심도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을 주시고자 합입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주일을 지킴으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감사할 때에 물산의 복이 임합니다.

가난과 질병의 저주에서 축복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정진숙 집사 (46세, 여,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의 간증이 있습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는 친구를 따라서 교회에 나가기도 했으나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서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시댁은 대대로 우상을 섬기는 가정이었습니다. 남편의 외할머니는 무당이셨는데 딸에게까지 대물림 하려고 하셨다 합니다. 시어머니는 신내림을 받지 않으려고 많은 돈을 가져다주고 굿도 하면서 그 일은 피하였지만 가산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결혼 후 날마다 술을 먹었고 점점 심해지면서 정신 분열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남편의 행패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가혹했고, 괴로움에 지쳐 언니의 전도를 받고 남편 모르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남편이 변화되기를 기도하던 어느 날, 남편에게 교회 다니는 것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마구 때리면서 "너 왜 하나님을 믿는 거야! 나 죽으라고 교회 다니는 거야!" 하며 시누이에게 끌고 갔습니다. 남편은 시누이와 여러 시집 식구들이 있는 앞에서 예수 믿지 않겠다고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순교하는 정신으로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더욱 화가 나서 그때부터는 닥치는 대로 때렸습니다. 매를 너무 많이 맞아서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고 너무 서러워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살아 계십니까? 하나님 안 계신 것 아니에요. 정말 살아 계신다면 살아 계신 표적 좀 보여주세요." 그런데 하루는 남편이 자다가 일어나서 누군가에게 고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너 이놈! 우리 가정이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데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 어서 나가! 나가!" 하더니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하나님 아버지, 나 미련해서 그렇습니다. 용서해 주시고 술, 담배 끊게 해 주세요." 하며 교회를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러한 산 표적을 체험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남편은 술과 정신 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도 했었으나 완치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남편이 예수를 영접하자 그날로 교회 철야 예배에 가서 눈물로 회개를 하였고, 성령 충만을 받아 밤새도록 기도하고 새벽 기도까지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예수 믿기 전 이야기를 했는데 어떤 시커먼 사람과 매일 같이 다니며 너 한잔 나 한잔 하며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 술 귀신이 이제 쫓겨나고 주님 안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남편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술, 담배도 끊었고, 정신 분열증도 치료받았습니다. 이전에 정신 분열로 수없이 때리고 핍박했던 남편이었지만, 그것을 잘 참아 내고 인내하자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신 것이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불행했던 가정에 평화의 꽃이 피기 시작했으나 가난은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너무 가난한 것은 덕이 되지 않으니 우리에게도 집을 달라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정아버지가 사놓은 집이 있는데 싸게 줄 테니 사라고 하셨습니다. 적은 돈을 가지고 그 집을 샀습니다. 약간은 허름한 집이었지만 어느 맨션아파트도 부럽지 않은 집이었습니다. 남편은 작게나마 전기 공사 주식회사를 차리게 되었고 한전공사를 맡게 되면서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주일마다 감사 헌금을 드렸고 돈이 들어오는 대로 건축 헌금도 많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매주 감사할 일이 생겨났고 나중에는 집이 네 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 한 채는 집 없는 사람들에게 일 년씩 살고 좀 나아지면 이사 가게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욕심이 들어와서 감사 헌금을 한 달 동안 드리지 않았더니 한 달 내내 감사할 일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는 주일마다 감사 헌금을 빼놓지 않고 드리고 있고 십일조와 헌물을 아낌없이 드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가난했을 때도 좋은 쌀 대신 나쁜 쌀 사고, 연탄도 100장 들여놓을 것을 50장만 들여 놓아가며 남편 모르게 알뜰살뜰 절약해서 십일조를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차비가 없어서 2번씩 차를 갈아타고 다녀야 될 먼 교회를 두 아이를 업고 끌고 걸어 다니면서도 하나도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간절히 기도한 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받지 못한 것이 있다면 게을러서 기도하지 않았던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남편은 믿음 안에서 안수 집사가 되었고, 올 6월에는 장로로 장립(將立)을 받기 위해 공부하고 있으며 사업도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딸은 신학대학을 나와 전도사와 결혼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고, 작은아이는 대학을 다니며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고 핍박했던 시집 식구들은 모두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바로 위의 형님은 그 동안 혼자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이제까지 자기를 위해 기도했으니 이제는 위해 기도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제사 문제도 다툼이 많았지만 이제는 추도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모두가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남편 사업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는 대로 앞으로도 더욱 하나님 사업과 구제에 힘쓰며 살려고 합니다.

  모든 일들에 복을 주십니다.

복 주실 것을 하신 말씀은 그가 너를 축복 하실 것이다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하는 모든 일들이 잘 된다는 것입니다.

CBS의 뉴스 앵커 돈 래더(Don Rather)는 워터 크롬카이트 이후 미국의 방송인 가운데 최고로 꼽힙니다. 그는 <나는 기억한다(I remember)>라는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너무나 가난해서 대학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교 시절에 운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일단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풋볼 선수로 스포츠 장학금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샘 휴스턴 사범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계획대로 풋볼 팀에 들어가 1 개 월 간의 시험 연습 과정을 거쳐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코치는 퓨니(Punny, 꼬마)라는 별명을 가진 윌슨 씨였습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인격적으로도 존경받는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어느 날 윌슨 코치는 돈을 개인적으로 불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너는 너무 작아. 155파운드로는 대학 풋볼 팀에 들어갈 수 없어. 하지만 실망하지는 마라. 나는 너보다 훨씬 작지만 풋볼 코치가 되지 않았니? 내 어머니께서는 늘 자기가 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은 그를 더 귀한 그릇으로 쓰신다고 말씀하셨다. 너는 풋볼 선수는 되지 못해도 머리가 좋고 말을 잘 하니까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 어떻겠니?"  이렇게 해서 그는 윌슨 코치가 소개한 시골 라디오 방송국에 발을 디뎌 놓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의 명 앵커 돈 래더가 된 것입니다. 그는 그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쳐 준 윌슨 코치에게 지금도 나는 감사한다."(디럭스바이블-명 앵커가 된 돈 래더)

  억지로 베풀어도 복되게 하십니다.

“집에는 아이들이 다섯이나 있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아내는 작년에 죽었지요.” 피리 하나만 팔아달라고 통사정을 하면서 노인은 가정 사정을 늘어놓았습니다. 어딜 가나 듣는 얘기였습니다. 워낙 인도의 피리 음악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잠깐 기웃거렸을 뿐이지 사실 형편없는 대나무 피리들을 살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는 관심을 보이자 필사적으로 달라붙었습니다. “훌륭한 물건입니다. 인도의 어딜 가도 진짜배기 피리들을 구하긴 어렵지요. 싸게 해드릴 테니 제 사정 좀 봐주세요. 막내아이가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답니다.” 그가 하는 거짓말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집세도 못 내서 쫓겨났겠군요.” 그러자 노인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우리 식구는 완전히 거리에 나앉았답니다. 그러니 적선하는 셈치고 하나만 팔아 주세요.” 다시 말했습니다. “물론 1주일 동안 한 개도 못 팔았겠죠?” 노인은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이 피리들이 좋은 것이긴 해도 누가 사줘야 말이죠. 솔직히 말해 당신처럼 히피 같은 사람들이 아니면 누가 인도 피리 따위를 사려고 하겠습니까?” 노인은 말을 마치고 나서 환심을 사려고 피리 하나를 꺼내더니 휘엉청 불어제끼기 시작했습니다. 피리 장사를 오래 한 때문인지 피리 솜씨는 더없이 훌륭했습니다. 더구나 갠지스 강의 낙조를 배경으로 허공에 솟구치는 피리 곡조를 들으니 감동이 더했습니다. 피리 한 개를 팔려고 상투적인 거짓말을 하는 것이 틀림없긴 했으나, 피리를 부는 모습은 더없이 진지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인도 여행 때마다 피리 한두 자루를 꼭 사들고 돌아오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 갖고 온 피리들은 번번이 너무 형편없어서 제대로 소리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파는 사람만 멋들어진 곡조를 낼 수 있을 뿐 아마추어는 흉내 내기도 어려웠습니다. 또다시 쓸모없는 피리를 사고 싶지 않아서 노인에게 10루피(300원)정도 적선하고 자리를 뜰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머니에서 10 루피 짜리를 꺼낸다는 것이 그만 덜렁 1백 루피 짜리 종이돈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아차 하는 사이에 1백 루피는 노인의 재빠른 손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노인은 종이돈을 꽉 움켜쥔 손을 합장을 하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습니다. “아, 이런 고마우실 데가! 신께서 틀림없이 당신을 기억하실 겁니다. 나 또한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연신 합장한 손을 이마 위로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때는 늦어서 돌려 달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맥없이 1백 루피를 빼앗긴 터라 속이 쓰렸지만 내색할 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 자비스런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습니다. 더 손해를 보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었습니다. 노인은 몇 걸음 더 쫓아오며 감사 표시를 하다가 내가 그만 됐다고 손짓을 하자 마지막으로 합장을 하고는 작별의 손을 흔들었습니다. 노인으로선 뜻밖의 횡재를 한 셈입니다.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온 나는 할 일도 없고 해서 일찌감치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녘이 됐는데, 난데없이 피리소리 하나가 잠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깬 의식으로, 이 피리소리가 꿈속에서 들리는 건지 창밖에서 들리는 건지 몰라 한참을 그냥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창밖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눈을 부비며 창문을 열자 베란다 밑에서 어제의 그 노인이 피리를 불며 서 있었습니다. 쳐다보더니 손을 흔들어 보이고 얼른 또다시 피리를 불기 시작했습니다. 가락이 긴, 아침에 듣는 인도 전통의 라가 곡이었습니다. 순간 기가 막혀서 창문을 도로 닫았습니다. 어제 1백 루피를 빼앗아가더니 이제는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서 흥정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는 금방 쪼개져버릴 피리를 떠넘기고 또다시 거금을 우려낼 계획이었습니다. 고약한 노인네 때문에 잠이 확 달아나버렸습니다. 창문을 닫은 뒤에도 피리소리는 멎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작은 미워도 피리 부는 솜씨는 역시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타일러서 보낼 생각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노인은 합장을 하며 아침 인사를 했습니다.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어제 그만큼 돈을 줬으면 됐지 왜 또 와서 이러는 거요? 분명히 말하지만 피리를 살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어서 가시오.” 그러자 노인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에요.” 더 엄숙하게 소리쳤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녜요? 어서 가세요. 더 이상 뭘 뜯어낼 생각일랑 하지 말아요” 노인이 말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난 당신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아침마다 당신의 방 앞에 와서 피리를 불어주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도움을 주었으니까요. 난 그것 말고는 당신한테 해줄 것이 없거든요.” 노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서 순간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노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더 우려내려고 찾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준 돈에 고마움을 느껴 뭔가 보답을 하려고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노인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그것이 곧 밝혀졌습니다. 그는 그 갠지스 강가에 머무는 닷새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내 방 앞에 와서 필릴리 필릴리 피리를 불었습니다. 피리소리에 잠이 깨어 창문을 열면 미명을 헤치고 갠지스 강 위로 오렌지색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노인이 불어주는 피리 곡 때문에 날마다 새롭고 뭔가 다른 하루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내키지도 않은 상태에서 1백 루피, 약 3천 원 정도를 적선한 덕분에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노인은 작은 베풂에도 보답하는 자세를 가르쳤고, 가난하지만 아직은 부유함을 잃지 않은 마음을 전해주었다. 그 노인 덕분에 지금도 잘난 체하며 말합니다. 인도 여행을 멋지게 한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어떤 국가 원수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과연 아침마다 누군가가 와서 환상적인 피리소리로 잠을 깨워 주었느냐고. 인도 역사상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마지못하여 베푼 일로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 할 때 약속하신 은혜와 복이 아름답게 임할 줄 믿습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복되게 하십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어둠속에서 한 성공한 사업가가 먹 문을 닫으려던 정육점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정육점 주인은  "크리스마스 파티용 칠면조를 사려고 그러나?"  하고 묻자, 사업가는  "아니, 핫도그 몇 개만 사려고"  하면서 미안하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핫도그를 사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해 주었지요. 오래 전 그는 사업이 완전히 망해서 갑자기 빈 털털이가 된 적이 있었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을 때까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는 선물을 살 돈은 커녕 당장 저녁에 먹을 찬거리를 살 1달러가 전 재산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그와 아내 그리고 어린 딸은 서로에게 축복을 한 다음 감사한 마음으로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한 사람 앞에 하나씩 잡고기를 섞어 만든 작은 소시지를 각자의 식탁위에 놓아 주었지요. 놀랍게도 이 작은 소시지에 딸은 완전히 매료되었고, 딸의 기쁨은 전염이 되어 가난을 잊은 채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가족들은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사랑이 넘치는 축제가 되도록 허락해준 하나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렸습니다. 소중했던 그 가난한 날의 크리스마스 만찬을 회상하는 듯 사업가 친구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젠 그날 일이 우리 집 크리스마스 전통이 되어서 지금도 크리스마스에는 핫도그를 먹는다네. 돈은 없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서로 의지할 가족이 남아 있다는 것 또한 작은 일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와 서로를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깨달았던 그 행복했던 날을 기억하게 만들어 주거든." 이라고 말했습니다.(크리스마스 만찬-둘로스자료)

1975년 12월 22일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른 파바로티는 어느 때보다 지쳐 있었습니다. 오페라 가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킬로그램이 넘는 뚱뚱한 몸도 성공도,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도 부담스럽고 힘들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는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잊고 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밀라노의 말펜시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가 짙은 안개 속에서 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를 벗어나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사고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그가 깨어난 곳은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사망한 끔찍한 사고 현장의 한가운데였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장면을 보며 그는 어떤 울림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아, 이런 생사의 갈림길에서 내 삶은 아무래도 좋은가? 여기 많은 죽음 앞에서도 내 삶이 헛된 것이란 말인가?' 그 와중에서 와이셔츠 차림으로 오들오들 떨던 그는 누군가 건네 준 손수건을 받아들자 자신도 모르게 그 손수건으로 목과 입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결코 노래와 떨어져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 살아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구나.' 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을 뻔했던 그 사고 이후 열아홉 살 때 처음 노래를 시작하던 열정으로 연습을 했고 다이어트를 해서 몸무게도 줄였습니다. 그에게 비행기 사고는 모든 일을 아름답게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다시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내가 노래를 그만두기 전에는 공부하고 또 공부할 것입니다. 타고난 재능이 50퍼센트라면 나머지 50퍼센트는 철저한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사고로 다시 태어난 파바로티)

추수감사주일을 앞두며 이스라엘이 감사할 때에 더욱 복이 임함 같이 감사하며 물산의 복과 모든 복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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