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세상이 미워하는 사람 (요 15:18-27)

  • 잡초 잡초
  • 625
  • 0

첨부 1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주님의 간곡한 부탁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그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시고선, 친구 갖지도 않은 우리를 친구 삼으시고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던 그런 사랑입니다. “그렇게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겁니다.
정말 예수 말씀처럼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겠지만 세상 사람도 기뻐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성공한 모습을 “짠!”하고 세상에 나타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기를 원합니다.

신앙 생활하는 그리스도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길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 안 믿는 이웃, 예수 믿는다고 조롱하던 이웃들 앞에서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너희들은 나를 놀렸지만, 봐라, 주님께서 나에게 복 주신 것을”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신명기 28장. 누구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십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도 복을 받습니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도 복을 받고, 나가도 들어가도 복을 받습니다.
이 정도 되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 수 있을까? “나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나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 수 있을까? 아마도 사람들은 나를 칭찬하고 복 있는 사람이라 하여 나하고 가까워지려고 애쓸 것입니다.

사도행전 2:47에 보면, 초대교회 교인들은 온 백성으로부터 칭송 받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내 모습을 보여주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또 그렇게 되어야 그 사람들도 예수 믿으려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아니라는 겁니다. 초대교회는, 교인들이 복을 받아 잘 먹고 잘 살았기 때문에 믿는 자가 날마다 더한 것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생명을 잃기도 했습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믿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숨어서 지내야 했고, 숨어서 예배드려야 했습니다. 아무도 예수 믿고 복 받았다고 자랑할 거리가 없었습니다. 또 자랑했다가는 오히려 잡혀가고 죽음을 당했습니다.
“내가 예수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사업을 번성케 하셨다.”
“내가 예수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잘 되게 하셨다.”
“내가 예수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관직을 높여주셨다.”
이런 말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업이 번창케 된 것도 아니니까. 아이들이 잘 된 것도 아니니까. 관직이 높아진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예수 믿는 것이 발각되면 사업이 망했습니다. 아이들은 왕따 당했습니다. 관직이 높아지기는커녕 잘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안 다면 누가 예수 믿을까?
예수 믿어도 사업이 안 된다는데 누가 예수 믿을까? 예수 믿어도 아이들이 왕따 당한다는데 예수 믿을까? 예수 믿어도 관직에서 쫓겨난다면 예수 믿을까? 예수 믿어도 생명마저 잃게 된다면 누가 예수 믿을까?
그런데, 그럼에도 초대교회는 날마다 믿는 자의 수가 더 해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예수 믿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사업이 망한다고 하면 여러분 예수 믿었겠어요? 예수 믿으면 아이들이 잘 되기는커녕 사회에서 왕따 당한다면 그래도 여러분 예수 믿었겠어요? 예수 믿으면 관직이나 직장을 잃게 된다면 여러분 예수 믿었겠어요?
“아이고,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믿어 사업이 망한다면 예수 믿는 거 그만 두어야지요." 그러시겠습니까? 아니면,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믿으면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얻는데 그까짓 사업이 문제 입니까? 예수 믿어야지요.” 그러시겠습니까?
그랬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예수 믿어 영생 얻음에 그들의 모든 것을 내놓았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천하를 다 얻었다 하더라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그 천하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아침 안개 같아서 잠시 보이다 곧 사라지지만, 주님의 말씀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영원하기 때문에 그들은 믿음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이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무슨 복이냐에 따라 다르다고요?
그럼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틀리지요. 부자 되기 위해 예수 믿는다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이 말이 맞는다면 아직 가난한 사람들은 믿음이 없거나 잘못된 믿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맞는 말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더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자 되기 위해 예수 믿는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므로 주님을 위해 충성하면 부자 된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 누구든지 예수 믿으므로 부자 되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봐라. 예수 믿으니까 부자 되지 않았느냐?”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고 부러워하도록 하고 싶은 마음들 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에서 보면, 예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당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16:2에 보면, 회당에서 쫓아낼 뿐 아니라 죽이기까지 한다고 하셨고, 16:33에는 환난을 당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세상에서 잘 되고, 그래서 세상 사람으로부터 칭찬 받고, 대접 받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수 있지요. 옆집의 예수 안 믿는 사람이 괜히 예수 믿는 나만 보면 인상 쓰는 경우 있지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모여 괜히 예수 믿는 나를 두고 쑤군거리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고 할 때, 그 세상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하나님 없이 돌아가는 사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요소 곧 사람과 조직, 계획, 활동, 철학, 문화, 가치관 등을 총 망라한 영적 실체가 바로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는, 요한일서 2:16을 보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돌아가는 이 사회의 모든 구성 요소는 바로 이 세 가지 지배원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인간의 욕심만 있을 뿐입니다. 때로 하늘을 이야기 하지만, 그 속내는 땅에서 누리는 자기 욕심뿐입니다.
때로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며 생명 바치겠다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어찌나 많은지……. 선거철에는 더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속내가 그들 입에서 나오는 말과는 전혀, 다른 그들의 육신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이 땅에서의 자랑거리이기에 더욱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상대를 어떻게든 쓰러뜨려야 내가 올라간다는 생각으로, 치사하고 저질스러운 일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 “왼 뺨을 때리면 오른 뺨도 돌려대라”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들이 좋아할 리가 없는 거지요. 오히려 예수님이 유다의 지도자나 로마의 관원들과 싸워 이겨서 끝내 높은 자리에 앉으셨다면 아마도 세상은 예수님은 예수님을 높이며 칭송했겠지만, 예수님은 사랑을 말씀하시고, 오히려 세상을 위해 당신의 생명을 십자가 죽음에 내어놓으셨으니 성공, 성공을 외치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아할 리 없는 거지요.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왜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밀어내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라는 분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려니까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2천년의 역사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많이 죽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들은 죽은 것입니다. 그들이 끌려갔을 때, 그들의 이름이 무엇이며 신분이 어떠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죽은 죄목은 단 하나였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죽인 자들이 누구입니까? 하나의 예로, 네로 황제를 들 수 있습니다. 그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을 죽였을까? 아닙니다. 그의 권력 대한 욕심이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자,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탄을 헤롯을 시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예수 죽이기를 실패한 그 사탄은 지금도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더스다이제스트 1997년 10월호에 실린 충격적인 글이 있습니다. 20세기 들어 2억에서 2억 5천만에 이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끔찍한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선교하던 호주선교사 한 분은 자기 아들과 함께 차 안에 갇혀서 폭도들에 의해 타 죽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선교사 부자가 그렇게 순교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세상 그들을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러나 그 세상으로부터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미움당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미움 당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19절 보십시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 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하나님 없는 세상은 사탄의 소유입니다. 그렇기에 만약 우리가 하나님 없는 세상에 속한 자라면 오히려 사탄은 우리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자기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와 사망에서 자유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탄이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 없는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교회와 세상”, “빛과 자녀와 어둠의 자녀”와 같이 흑백 논리로 전개했습니다.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이것들이 하나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 소속된 자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인 것이며, 이 둘은 실질적으로 어떤 타협이나 하나 됨이 불가능합니다.
왕따. 그것은 자기편에 들지 않으면 미워하고 외톨이로 만드는 것인데 이 세상은 원래부터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스 핸웨이(Jones Hanway)는 우산을 처음으로 발명했답니다. 어떻게 하면 우산을 보급할까하고 고민하다가, 비가 오는 날, 동네에서 자기가 만든 우산으로 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해서 어느 비가 오는 날, 드디어 그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참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돌멩이질을 하는가 하면, 쓰레기를 집어 던지며 놀려 댔습니다. 세상은 자기와 조금 다르면 미워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명절 때에 제사 때가 되면 홍역을 치르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는 죽은 혼이 와서 제사음식을 먹는다고 믿지 않습니다. 제사의 배후에 있는 조상신에 대한 종교식 신앙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그 이유 하나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핍박 합니까? 그것은 자기들과 한통속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빛으로 오신 예수님. 사람들을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내 팽개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2:15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고, 로마서 12:2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비록 세상에서 살지만 천국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비록 어둠 속에서 살지만 빛의 자녀들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세상과 동일하지 말아야 하며, 세상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받는 미움은 감수해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왜 미워하는지 그 이유를 또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군지 압니다. 또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구원을 어찌 알며, 구원 받은 우리의 기쁨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주님을 이야기 하고, 구원을 이야기하는 우리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게끔 되어 있습니다. 때로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잘못해서 손가락질 받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세상이기에,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우리를 미워할 수밖에 없기에 손가락질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어떤 사람은 “목사님 다 옛날이야기 입니다. 요즈음 누가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미워합니까? 함께 더불어 잘 살아야지요.”라고 말할 겁니다.
물론 그래야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흑인과 백인. 겉으로는 서로 사랑하고 교제합니다. 회사에서도 같이 일합니다. 나라에서 필요하면 함께 전투에 나가 싸웁니다. 스포츠에서 흑인들이 매달을 따면, 백인들도 소리치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자연스러운 환경으로 돌아가면, 흑인은 흑인끼리, 백인은 백인끼리입니다. 억지로 섞지 않는 이상, 필요에 의해 섞일 수밖에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흑은 흑이고, 백은 백입니다.

1992년 2월 뉴욕 시에서 백인 경찰관 4명이 무장도 하지 않은 22살의 흑인 디알로에게 41발의 총을 난사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맨해튼 거리에서 양말이나 장갑을 팔고 있는 그 젊은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이 난사했던 겁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 싶으면 함께하는 것 같아도 그들의 밑바닥에는 미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자는 세상과 하나님과 함께 사는 그리스도인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어울려 살지요. 인사도 하고, 함께 여행도 다니고, 차도 마시고……. 그러나 그 사이에는 영적으로 통하지 않는 어떤 이질감이 있습니다. 그 바닥에는 메울 수 없는 골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싸움입니다. 우리를 미워하고, 어떻게 하든 쓰러뜨리려하는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과 싸워야합니다.
에베소서 6:12, “우리의 싸움을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와 권세 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하는 것입니다.” 13절,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한 날에 능히 대항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한 뒤에 서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 하십시오.” 14-18절, “그러므로 여러분은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를 하고 버티어 서십시오. 발에다가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채비를 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이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으로 악한 자가 쓰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십시오. 온갖 기도와 간구로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또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며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신천교회 윤권사(대한항공에 근무). 갓 결혼하고 중동지역에 나가서 근무했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아라비아 항공사라 하는 회사에 입사원서를 냈습니다. 같이 원서 낸 몇몇 직원들이 윤권사님과 입사원서의 종교 난에 “기독교”라는 글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에서, 기독교를 미워하는 나라에서 취직하려는 사람이 기독교라니.’ 같은 직원들은 “불교라고 하지.” 그러나 그는 기독교라 쓰고 원서 냈습니다. 당일 제일 먼저 그를 부르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기독교라고 종교 난에 쓴 이유를 묻더랍니다. 그 권사님은 “신앙은 내 생명과 같은 것이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부정할 수 없다.”고 대답했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권사님이 합격했습니다. 다시 대한항공으로 돌아와야 하기에 그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는데, 그 회사에서 이 권사님에게 준 증서가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오면 받아 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증서로 다른 사람들 취직시켜 주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때문에 미움 당하는 것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욕당하게 된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이제야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담대하고 태연한 자세를 가지고 세상을 상대하면 세상을 우리를 오히려 존경합니다. 그러나 비겁하게 굴면 세상은 우리를 멸시합니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처럼 발밑에 놓고 밟아 버립니다.

요한복음 6:33, “너희는 세상에서 시련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
갈라디아서 6:8, “자기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9절,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않으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랬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 교인들은 세상이 미워하든 박해를 받든 심지어 생명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에 주를 믿는 사람도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는다는 요한일서 2:17의 말씀을 그들은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과 저의 믿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없이 사는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한다고 풀이 죽거나 용기 잃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세상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부러워할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여러분을 미워하더라도 여러분은 세상을 사랑하십시오.
이 믿음으로 오히려 여러분을 미워하는 하나님 없는 세상을 이겨 승리의 찬양을 부르시는 여러분과 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영기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