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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치유하시는 하나님 (사 30: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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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난히 아름답다던 단풍도 어느 덧 고개를 숙였습니다.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나온 올해의 삶의 여정을 돌아볼 때 참으로 고단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아직도 어려운 일들이 마무리 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힘든 길을 가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전히 피곤하고 지친 발걸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길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이제 모든 추수를 마무리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시를 뿌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수가 다 끝났습니다. 이처럼 우리 고단한 인생도 마무리 될 때가 곧 오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추수를 끝낸 농부처럼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들과 기회들을 선용하여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길을 인도하셨는가를 살펴봄으로 함께 은혜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험과 환난이 있을 때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힘들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일이 제대로 풀리지를 않고 하는 일이 어그러지고 말 때 느끼는 좌절감이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잘 될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어긋나버릴 때 참으로 답답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 어긋난 모습을 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무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고 원했던 길이 아닌 모든 것이 엉클어져 버린 사실을 깨닫게 될 때의 답답함은 또 어떻습니까?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 아픔은 또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어둠으로 바뀌어 버리고 남은 것은 허망함과 고통뿐인 때 무엇으로 이를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득 돌아서서 돌이켜 보면 그 어려운 시절들을 어떻게 보내고 여기까지 왔나 싶습니다. 잠시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지금까지 버텨내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전히 붙들어주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방황할 때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가 아파할 때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 헤매고 있을 때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도무지 어디로 가야될지 갈 길을 알지 못할 때도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네가 땅에 씨앗을 뿌려 놓으면, 주님께서 비를 내리실 것이니, 그 땅에서 실하고 기름진 곡식이 날 것이다. 그때에 너희 가축은 넓게 트인 목장에서 풀을 뜯을 것이다. 밭 가는 소와 나귀도 아무 것이나 먹지 않고, 키와 부삽으로 까부르고 간을 맞춘 사료를 먹을 것이다.” 라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함께 하셔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의 계획하고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함께 이루어 주셨습니다.

나는 아직도 어려운데요? 물론 아직도 어려운 가운데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한 번도 약속하시고 어기신 적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따라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땅에 씨를 부려 놓으면 주님께서 비를 내려주셔서 그 땅에서 실하고 기름진 곡식이 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이제는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거의 포기할 정도까지 되었는데 문득 새로운 길을 하나님이 여시더란 말입니다. 도무지 길이 없는 것만 같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줄만 알았는데 지나놓고 보니 그 너머에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까지 하나님이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힘듭니까? 괴롭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그 앞에 18절에 무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며,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려고 일어나신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되다”
그래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일어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또한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시온 백성아, 이제 너희는 울 일이 없을 것이다. 네가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틀림없이 은혜를 베푸실 것이니, 들으시는 대로 너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 부르짖어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지 우리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지 주님은 다 아십니다. 그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언제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까? 우리가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할 시간이 있거든 걱정할 정신이 있거든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지를 말고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이를 잘 아는 바울 사도도 그래서 우리를 권면하기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키시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면 되는데 기도는 하지 않고 염려와 근심으로 한숨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와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데 하나님께서 모든 준비를 다 마쳐놓고 기다리고 계신데 도와달라고 하지는 않고 혼자서 이리저리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으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아니 도움을 청하기는 하는데 하나님께 청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데로만 다니며 도움의 길을 찾고 있으니 이 또한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실하고 기름진 곡식을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며 가축들조차도 넓게 트인 목장에서 풀을 뜯도록 만들어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십시오. 그 풍성하신 은혜 가운데 우리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도 엉뚱한 데로만 돌아다녔습니까? 그저 염려만 하고 있었습니까? 땅이 꺼지라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심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씨앗을 뿌려놓으면 주님께서는 때를 따라 비를 내려주시고 그래서 그 땅에서 실하고 기름진 곡식이 나도록 만들어 주신다고 하신 약속을 믿으십시오. 믿고 순종함으로 씨를 뿌리십시오. 우리의 정성을 다하여 주님만을 믿고 섬기십시오.

그렇다면 우리가 심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고백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믿음의 고백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주님께서 이루신다고 고백하십시오. 주님께서 도우신다고 고백하십시오. 주님께서 채우신다고 고백하십시오. 아울러 감사와 찬양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순종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그리고 정성들여 물질로 심으십시오. 몸이 아프고 힘들기에 더욱 주님께로 달려 나오십시오. 피곤하고 지쳐있기에 더욱 주님께 예배하기를 힘쓰십시오. 그리고 부르짖으십시오. 믿고 구하였다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십시오. 그럴 때 약속대로 우리가 복된 자가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농부가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창고에 들이듯이 우리가 이렇게 믿음으로 심음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모든 삶에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고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천지개벽하듯이 큰 시련이 있습니까? 도무지 헤어나갈 길이 없습니까? 그러나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큰 살육이 일어나고 성의 탑들이 무너지는 날에, 높은 산과 솟은 언덕마다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주님께서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치료하고 고쳐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니 우리가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시며 주님은 안타까워하십니다. 우리가 고통당하는 것을 주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안전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바른 길로 가기를 원하십니다. 자 보십시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2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오른 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려 하면, 너의 뒤에서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 길로 가거라’ 하는 소리가 너의 귀에 들릴 것이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할 때 바른 길로 가도록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소리를 통해 들려주시기도 하고 주의 종이 전하는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기도 하고 이웃의 말을 통해 들려주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환상과 계시로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바로 깨닫고 바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를 고쳐주십니다.

“주님께서 백성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매 맞아 생긴 그들의 상처를 고치시는 날에, 달빛은 마치 햇빛처럼 밝아지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서 마치 일곱 날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이 밝아질 것이다”라고 주님 약속하셨습니다. 고통당하던 사람에게서 모든 고통이 다 사라져 보십시오. 그날에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아마 뛸 듯이 기쁠 것입니다. 문제가 다 해결되고 난 다음에 개운함이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베드로가 손을 잡아 일으킬 때 벌떡 일어났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그러니까 걸어도 보고 뛰어도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기쁨은 어느 특정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주님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이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단 말입니다. 주님께서 백성의 상처를 싸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인줄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백성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신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힘들게 만듭니까? 하나님이 그 매 맞아 생긴 상처도 고치신다고 했으니 그 마음의 아픔도 다 씻어주실 것입니다. 오히려 아픔이 있었기에 더 감사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 상처란 단지 육신의 아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상처된 모든 것들, 우리의 마음을 힘들께 만들었던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마음에 근심되는 것들, 우리의 삶에 드러났던 문제들을 주님께서 다 바로 잡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바로 잡아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께 믿고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부르짖어 구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 없이 구하는 기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고치신다고 하셨으니 그 약속을 의지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걸으라 하시면 당당하게 걷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는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주님께서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면 받은 줄로 믿으십시오. 다 문제가 해결된 줄로 믿으십시오. 그런데도 아직도 염려가 됩니까? 아직도 걱정이 됩니까?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에 평안이 임할 것입니다. 씨앗을 심는 자가 싹이 나지 않을까 염려합니까? 아닙니다. 싹이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면 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농부는 씨앗을 심고 나서는 기다립니다. 정성껏 물을 주고 비료를 줍니다. 그러면서 기다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가 복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다립니까?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다 이루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주님 또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 모든 수고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씨앗을 뿌리고 나서부터 더 바빠집니다. 비료도 줘야하고 잡초도 제거해줘야 하고 때로는 약도 주어야 하고 너무 말랐다 싶으면 물을 대주어야 하고 비가 많이 온다 싶으면 물을 빼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땀 흘려 수고하기에 추수할 때의 기쁨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당장 힘들기에 고만두겠다고요? 아니요 힘들기에 더욱 해야 됩니다. 사랑하기가 힘들기에 더 사랑을 베풀어주어야 하고 말썽장이이기에 더욱 감싸 주어야 하고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기에 더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어렵다고요? 그렇다면 더욱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십시오. 더 감사하란 말입니다. 내가 쓰기에도 부족하다고요? 그렇기에 이웃을 더 돌아보아야 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씨앗을 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 코가 석자라고요? 그렇다면 더욱 이웃을 돌아보십시오.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고 그들을 돌보아 주십시오. 미운 사람에게 떡 한 개 더 준다고 했습니다. 그건 단순한 속담이 아니라 성경에서 무어라고 했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는 그러므로 닫혔던 마음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 앞에서 즐겨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나의 모든 아픔을 치료하여 주시는데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직 부족하기에 더욱 즐기십시오. 아직 온전치 않기에 더욱 믿음으로 고백하시고요. 온전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어렵습니까? 아주 힘이 듭니까? 그렇다면 더 즐기십시오. 이 어려움이 변하여 복이 될 줄로 믿고 고백하십시오. 주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고난이 더 큰 복이 될 것이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고백하였다면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조금도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래서 그날의 기쁨이 놀랍도록 우리의 심령과 삶을 사로잡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시온 백성아 이제 너희는 울 일이 없을 것이다” 주님 약속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시온 백성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전을 찾는 하나님의 백성이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성전을 기쁨으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전에서 흘리는 눈물을 주의 가죽부대에 담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주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을 주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주님의 성전을 찾으십시오. 바쁠수록 더 주님 성전으로 나아오십시오. 피곤하고 힘들기에 더 성전을 찾으십시오. 마음에 고통이 가득하기에 더 주의 전으로 나아와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아뢰십시오. 그래서 “달빛은 마치 햇빛처럼 밝아지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서 마치 일곱 날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이 밝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처럼 그래서 우리의 모든 피곤한 것이 다 사라지고 마음의 고통이 오히려 기쁨으로 바뀌어 넘쳐나는 삶이요 그래서 순간순간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 없는 그런 환히 빛나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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