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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도 자비하라 (눅 6: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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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너희도 자비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은혜 받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3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자비라는 말은 '동정하다, 인자, 확고한 사랑, 은혜, 호의, 용서하다, 긍휼히 여기다, 불쌍히 여기다'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자비는 용서, 긍휼히 여김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그의 자비와 관계가 있습니다.  자비는 로마서 3:12에는 '선'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념적이 아닌 실천적인 선으로 남에 대한 부드럽고 인자하고 친절한 행동을 말합니다. 
  의만 부르짖고 자비가 없으면 냉정하고 무자비한 의가 되기 쉽습니다.  또한 의가 없이 자비만 있으면 무분별해서 죄를 용납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의와 자비는 나눌 수 없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중병을 앓던 사람이 병이 나으면 좋은 식물을 차근차근 섭취하여야 건강이 회복되는 것처럼 의를 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은 나아가서 자비를 베푸는 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게 될 때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을 때 평화가 있으며, 어려움이 있을때 자신에게는 인내하게 되고 타인에게는 자비로서 나타나게 됩니다.  요한1서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함이로다"   

  우리가 자비를 행한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증거이며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지속하는 방법입니다.
  잠언 19:17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라"  우리가 구제헌금을 내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0:4에 보면 천사가 고넬료에게 나타나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가이사랴 지방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는 네 가지 신앙의 덕이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경건했습니다.  그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그는 항상 기도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와서 네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하나님이 기억했다는 말씀입니다.  구제는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자비를 베풀면 하나님의 더 큰 자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자비는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103:17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고"
  시편 108:4 "대저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 미치나이다"
  예레미야 애가 3: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진멸'이라는 뜻은 죽여 없애버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있기에 우리가 죽여 없앰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죄 지은 그대로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참으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더러워져 있는 아들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 반기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죄 지은 그대로 즉시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사실 죄 지은 그대로 심판하시고, 벌 주시면 살아남을 자가 몇명이나 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자비하시기에 자기의 자녀들이 멸망 당하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후서 3:9절 말씀같이 "주의 약속은 더딘 것이 아니고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1절)
  자비하신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니 믿음 주소서(2절)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후렴)
  (찬송가 337장 1-2절)

  예수님은 그의 삶 자체가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자비의 삶이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을 보실 때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병든 자, 약한 자, 주린 자, 손 마른 자, 눈 먼 자, 다리 저는 자, 말 못하는 자, 나병환자, 심지어 죽은 자도 살려주시는 역사를 나타내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죄인의 집에 들어가서 같이 잡수셨으며,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보면 죄인의 괴수라 할 수 있는 여리고의 세무서장 삭개오의 집에도 가셔서 유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혀 온 여인도 용서해주시면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사랑의 실천이 자비입니다. 
  누가복음 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본문 누가복음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그러면 자비를 베푸는 방법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나보다 생활이 못한 사람을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아직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농무장관은 세계 인구의 1/3은 뚱뚱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지만 2/3는 다음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21:13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우리는 낮은 곳에 처한 모든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자비는 행위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 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본문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흔든다, 누른다.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말입니다.  주는 일은 더 많이 받는 일입니다.  더 많이, 단단히, 견고하도록 복을 받는 길입니다. 

  둘째,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잘못된 생각은 편견입니다.  '편견'이란 사실을 다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일을 말합니다. 
  어떤 시골 중학교 교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생님이 첫 시간 출석을 부르는데 한 학생의 입에서 술냄새가 났습니다.  선생님은 왜 술을 먹고 학교에 왔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약 1개월 후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그 학생은 먹을 것이 없어서 아침 식사 대신에 술걸르고 난 찌꺼기를 먹고 학교에 왔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중에 선생님은 깊이 사과를 했습니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밖에 드러나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 이것을 편견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교회를 봉사하시는 여러분은 이런 면에서 정말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쪽 말만 듣고 말하면 안됩니다.  평가하면 안됩니다.  그러다가 작은 교회에는 말썽이 생겨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정승 댁에 시집간 딸이 친정에 와서 아버지께 신세한탄을 합니다.  아버지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네 말이 옳다"고 했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사위가 와서 장인어른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신세한탄입니다.  "자네 말도 옳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이것을 보고 이야기합니다.  "영감! 다 옳으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임자 말도 옳소"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딸편을 들 것입니까?  사위편을 들 것입니까?  그러다가 요새 같으면 갈라선다는 소리가 나올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 37절은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편견이 아주 많았던 사울청년은 기독교를 박해할 때 충성스러운 집사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무서운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몫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편견없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려면,
  1)자비로운 눈을 가져야 합니다.  자비의 눈을 가지고 이웃을 보고, 형제를 보고, 친구를 보고, 불쌍한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2)자비로운 귀를 가져야 합니다.  불한당 만난 사람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무자비한 자는 귀가 있어도 이웃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3)자비로운 입술을 가져야 합니다.  전도서 10:12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을 자기를 삼키나니"  자비로운 입의 말은 사람을 살립니다.  그러나 무자비한 자의 혀는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말만 하십시오.  칭찬의 말만 하십시오.  그래야 사람을 살립니다. 
  4)자비한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나이팅게일같은 간호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링컨의 흑인해방은 얼마나 귀한 손입니까?  나병환자 치료를 위해 90생애를 바쳤던 슈바이쳐의 평생은 어떠합니까?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된 테레사수녀의 손은 어떠합니까?  이들은 빛나는 기독교적 사랑의 표현이 자비로 나타난 흔적인 줄로 믿습니다. 

  셋째, 최고의 자비의 표현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는 그리스도의 자비를 나타내는 최선의 길입니다.  사실 영혼의 빈곤은 물질의 빈곤보다 더 불행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지 2,000년이 되었지만 아직 지구인의 반 수 이상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인류의 역사 이래 인간문명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발달했습니다.  지식이 급속도로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만큼 인간이 사나와지고 조급해지고 무정하고 무절제한 시대가 일찍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파리목숨으로 취급됩니다.  돈벌이라면 아기도 유괴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가족 4명을 죽이고 보험금을 타려는 가장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무정합니까?  지식은 발달했는데 사람은 더 난폭해집니다.  그 발달한 지식이 인간을 구원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인류를 구원하는 길은 인간의 심령 속에 복음을 심는 길 밖에 없습니다.  복음 없는 돈, 복음 없는 지식, 복음 없는 기술, 복음 없는 권리는 모두 죄악의 기구 밖에 되지 못합니다.

  복음은 인간에게 상처를 가르쳐 주고 나서 사랑을 줍니다.  인간이 매인 것을 깨닫게 하고나서 깨끗한 의복을 줍니다.  인간이 가난한 것을 알게 하고서 하늘의 재물을 인간의 생명에 부어줍니다.  인간이 얼마나 죄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서 구주를 가르쳐 줍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자비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충만히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이 있는 곳에 희락이 있고 희락이 있는 곳에 평강이 있습니다.  내가 평강할 때 이웃에게 자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영국 웨일즈 지방의 어느 시골에 한 소년이 위험한 병으로 중태에 빠졌습니다.  그의 과부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고자 비가 퍼 붓는 밤길 20리를 달려 의사에게로 갔습니다.  의사는 여러 가지로 망설여졌습니다.  이 비오는 밤길 20리를 어떻게 가나?  치료비는? 소년의 생명을 건져보았자 노동자에 불과할텐데!  그러나 의사는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왕진을 갔습니다.  경각에 달린 소년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이 소년이 장래에 영국 정치계를 지도한 내무장관, 군무장관, 국방장관을 역임한 로이트 조지경이었습니다.  로이드 조지가 재무장관 되는 날, 그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비가 퍼 붓는 밤길 20리를 가서 그 시골 가난한 농가의 소년을 구한 것이 바로 영국의 대 지도자의 목숨을 구한 것이라고는 저는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오늘 이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찬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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