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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빈 들에 날은 저물었으나 (마 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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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가 추수감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설교를 해보면 절기 설교가 가장 어렵습니다.
다른 목사님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의 경우에는
부활절이나 성탄절, 추수감사절 설교가 제일 어렵습니다.
각각의 절기 정신에 꼭 맞는 설교를 해야되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 감사주일인데 한 주간 내내 고민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본문을 선택해서 감사에 알맞은 말씀을 전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감사의 절기에 꼭 맞는 본문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저는 2005년도 추수감사절의 설교본문으로 마 14: 13-21절 말씀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에 대한 말씀이지요.
주일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은 예수님께서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 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남게 하셨다는 말씀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도대체 추수감사절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아마 조금이라도 성경을 아시는 분들은 의아해하실 것입니다.
저 역시 일단 이 본문을 선택한 다음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과연 감사에 대한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추수감사 설교의 본문으로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는 중에 15절 말씀이 눈에 크게 들어왔습니다.
특히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라는 말씀에 주목했습니다.
왠지 우리 교인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바로 이런 상황 속에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빈 들, 즉 광야에 있는데 날은 저물고 허기지고 지쳐 있습니다.
여러분, 빈 들은 어떤 곳입니까?
광야입니다.
사막의 버려진 땅을 말하지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워서 사람 살기에 아주 힘든 곳입니다.
먹을 것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곳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무리들은 집을 멀리 떠나 빈 들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을 먹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빈 들에서 날은 저물어가고 있는데 지치고 배가 고팠습니다.
빈 들에서 날은 저물어가고 있는데 고달픈 인생에 지쳐 허기진 모습,
저는 이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으로 읽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신학적 의미를 찾아서>
오늘 추수 감사절이라고 해서 주님 앞에 나와서 감사하기는 해야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확신이 안 가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위로 받으시고 새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에 다 나오는 유일한 기적입니다(막 6: 30-44; 눅 9: 10-17; 요 6: 1-15 참조).
대개 공관복음서에 다 나오는 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병이어 이야기는 사복음서에 공히 다 출현합니다.
이것은 이 기적설화가 그만큼 유명했고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이야기를 실제로 일어난 기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인간 심리의 전환으로 해석할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직접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 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다고 보는 대신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로 요 6: 1-15절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표적설화를 근거로 한 것인데,
수많은 군중들이 실제로는 먹을 것을 다 준비해왔는데
자기 혼자만 먹으려고 몰래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인색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자기만 먹으려고 했지
이웃과 나누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어린 소년 하나가 자기가 싸온 도시락, 즉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선뜻 공개해서 이웃과 나누려 하자 이기심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소년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축복하시고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 곧 탐욕과 이기심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몰래 자기만 먹으려고 싸온 음식을 슬금슬금 꺼내놓고 함께 나누려고 해서
오 천명이 다함께 배불리 먹고서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된 기적이지
어떤 물리적 기적이 아니라 심리적 변화에 불과하다는 해석을 합니다.

이와 같은 심리적이고 인간학적 해석 방법이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결코 성서적인 해석 방법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다 안 일어났다, 하는 역사성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사복음서 기자들이 이 말씀을 소중하게 여겼는지
그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를 찾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추수감사절에 던져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추수감사절에 찾아보는 오병이어의 영적 교훈>
①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헤아려야합니다.
여러분, 14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 마음 속에는 늘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넘쳐났습니다.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런 긍휼과 자비의 주님이 날 저문 빈 들에서 지치고 허기진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들의 허기를 해결해주시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기적은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입니다!

더욱이 본문에 나오는 오병이어 이야기 바로 전에는
분봉왕 헤롯이 세례 요한을 무참히 살해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헤롯은 자신의 생일 잔치 때 공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인 세례 요한의 목을 벴습니다.
사치하기 이를 데 없는 헤롯왕의 궁전에서 먹을 것이 차고도 넘쳐나는 잔칫상 앞에서
한 의로운 사람이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이 이야기의 뒤에 오병이어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태는 폭군중의 폭군이요, 탐욕과 복수심으로 일그러진 헤롯왕과
평강의 왕이요, 무리를 한없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살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헤롯왕의 궁전과 외롭고 척박한 빈 들, 광야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 마실 것이 넘쳐나는 헤롯왕의 잔칫상과
먹을 것이 없어 겨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 달랑 남은
날 저문 빈들의 쓸쓸하고 외로운 풍경을 날카롭게 대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쪽에는 산해진미(山海珍味)로 넘쳐나는, 화려한 식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식탁은 증오와 탐욕과 복수심으로 얼룩진 식탁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이 예비하신 조촐하고 소박한 식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가난한 이스라엘 농부들의 일용할 양식, 보리떡 다섯 개와
정어리 정도 크기의 작은 물고기 두 마리만 달랑 올라가 있는 가난한 식탁입니다.
그러나 이 식탁은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풍성하신 주님이 예비하신 식탁입니다!

오늘 이 추수감사절에 여러분의 식탁이 혹시 풍성하지 못합니까?
겨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올라가 있지 않습니까?

빈 들에 날은 저물어가는데 여러분의 식탁이 너무 보잘 것 없습니까?
그래도 염려하지 마시고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주님께서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 천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는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려한 헤롯왕의 궁전에서 넘쳐나는 잔칫상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헤롯왕의 잔칫상에서 최고의 요리를 먹는 것보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주님이 예비하신 식탁이 더 좋습니다!
사랑과 자비와 긍휼과 평화의 주님이 함께 하시는 식탁이기 때문이지요!       

② 현재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빈 들에서 꾸물꾸물 땅거미가 밀려오자 제자들이 무리들을 걱정했습니다.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이 제자들 마음에까지 전염이 되었던 것이지요.
15절을 보세요.
"선생님,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러니 무리를 헤쳐 보내어, 제각기 먹을 것을 사먹게,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의 저녁 식사를 걱정했던 것이지요.

이 때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16절을 보세요.
"그들이[무리들이] 갈 필요가 없다. 너희가[제자들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무리들이 동네로 흩어져 먹을 것을 구하러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무리들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순간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의 수중에는 겨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것들을 주님께로 가져오라고 명하셨을 때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제자들의 위대한 믿음을 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그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평을 토로하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말씀에 묵묵히 순종하는 제자들의 모습, 우리는 이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리하게 세상에 나가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습 그대로, 현재 가지고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나와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가진 것이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크게 됩니다.
적은 것이 풍성해진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어떤 분이 여행을 하다가 구두를 잃어버리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발목이 없는 사람이 감사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다 낡은 신발이라도 신을 수 있는 발목이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진 것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고 할지라도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이 감사할 때 하나님은 그것으로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③ 주님의 손에 사로잡히면 적은 것도 풍성해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가져왔던 것이지요.

이것을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19절 말씀이 중요합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보세요.
첫째로, 주님은 무리를 풀밭에 앉게 하셨습니다.
오 천명이 넘는 무리들을 일사불란하게 정돈시켰던 것입니다.
풍성한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준비시켰던 것이지요.

둘째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높이 들었습니다(TOOK).
하나님께 감사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성만찬 때 떡과 포도잔을 높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입니다.

셋째로, 축사(祝謝)하셨습니다(BLESSED).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셨던 것이지요.

저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극히 적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풍성해집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무 감사도 없이 어떤 일을 즐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다."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선물로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 분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내가 잘나고 내가 능력이 많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을 때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도 절대로 풍성하지 않습니다.
늘 부족하고 늘 쪼들리고 늘 불평과 원망 속에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때 우리의 삶은 풍성해집니다.
왕상 17장에 보면 사르밧 과부는 기근이 들어서 겨우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 밖에 없었지만 엘리야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서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지극히 적은 것을 수중에 가졌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먼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랬더니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고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실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그 작은 것이 변하여 큰 것이 되게 하십니다!
적은 것이 변하여 풍성하게 만들어주십니다!

루터는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감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 수 있습니다!

넷째로, 떼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니 제자들이 다시 무리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GAVE).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겨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났더니
끝없이 끝없이 늘어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 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풍성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 어른 남자들만 오 천명이 먹고도 남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배불리
먹이셨던 것처럼 저문 날 빈 들에서 허기진 군중들을 먹이셨던 것이지요!(출 16장; 민 11장)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이 깊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추수 감사절을 맞아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빈 들에 날은 저물었는데 가진 것이라곤 겨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 나와 감사하십시오.
주님은 그 작은 것을 크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 적은 것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배우는 사람이고,
참으로 강한 사람은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며,
정말로 부유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옳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궁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비록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 가졌다고 할지라도
감사하는 사람이 진실로 부유한 사람이며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생은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지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깊이 냉철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 '감사한다'는 말은 'THANK'인데 '생각한다'는 'THINK'와 어근이 같다고 합니다.
찬찬히 생각하는 사람이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이지요!
오늘 이 추수감사주일에 지난 한 해를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빈 들에 날은 저물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남아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리하면 이 작은 감사가 오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풍요함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아멘.  (김 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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