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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분노는 사람을 쓰러뜨립니다 (창 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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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를 깨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은 분노입니다. 마귀는 분노를 통해 수많은 인간관계를 깨뜨려왔습니다. 수많은 가정을 깨뜨렸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사람 속에는 누구나 표출되지 않은 분노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분노는 멀리 있는 사람들보다도 가까운 사람들로 인해 생겨나기 쉽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을 향한 숨겨진 분노는,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을 가장 미워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우리는 멀리 있는 사람들은 쉽게 사랑합니다. 부담 없이 사랑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물질적으로 도와줍니다. 동정을 베풉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에게는 익숙한 것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쉽게 화를 냅니다. 쉽게 짜증을 냅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대에 대한 자신도 모르는 기대가 있습니다. 만족되지 않은 기대는 분노를 불러옵니다. 가족들이 자신이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분노가 일어납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의 뜻대로 행동해 주지 않을 때 분노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의 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벨을 향한 그의 분노는 살인으로 나타납니다. 분노는 관계를 깨뜨리고, 생명을 앗아가며, 사람을 파멸시킵니다.
그러나 분노는 다른 사람을 쓰러뜨리기 전에, 먼저 분노한 사람을 쓰러뜨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잘못된 분노에 휩쓸려 사단의 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분노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분노의 원인과 정체를 분명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랑의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1. 분노의 원인
우리는 가인을 통해 세 가지 분노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인정받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분노를 만듭니다.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인간의 뿌리깊은 본능입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은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문제는 잘못된 방법으로 인정받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뜻대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방식이 인정받기를 바랐습니다.

2)질투심이 분노를 만듭니다.
가인은 아벨을 질투했습니다. 자신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도 분한데, 동생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질투는 투기라고도 합니다. 투기는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아 8:6)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질투심은 멀리 있는 관계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까운 이들과의 비교와 경쟁에서 생겨납니다. 가인은 아벨을 형제의식이 아닌 경쟁의식으로 대했습니다. 상대를 돕지 않고 경쟁함으로 상대를 눌러 이기려고 한 것입니다.

3)비현실적인 기대가 분노를 만듭니다.
분노의 또 다른 원인은 바로 잘못된 기대입니다. 인간은 보통 네 가지 경우에 분노하는데, 이 네 가지는 모두 기대와 관련됩니다.
①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분노합니다.
②우리가 원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분노합니다.
③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일어날 때, 분노합니다.
④우리가 원하는대로 사람들이 행동해주지 않을 때 분노합니다.

우리는 인생과 인간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들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원치 않는 실패와 좌절, 질병, 사람들의 배신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할 때 당연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대는 높여도 좋지만 사람을 향한 기대는 조금 낮추어야 합니다.

2. 분노의 정체
분노의 원인을 알았다면, 분노의 정체도 깨달아야 합니다.
1)분노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감정입니다.
예수님도 때때로 분노하셨습니다. 성경은 365번이나 하나님의 분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신 9:8) 『호렙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분노를 다스린다는 것은 분노를 말살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는 죄가 되는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셨을 때, 하나님의 성품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잘 사용하면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고,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2)분노는 거대한 에너지입니다.
분노를 다스리라는 목적은 그것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마틴 루터는 나는 분노함으로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설교도 더 열정적으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위협 속에서도 종교 개혁을 할 수 있었던 힘이 바로 분노의 에너지였습니다.

3)분노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부정적 분노는 화가 되고, 긍정적 분노는 의분이 됩니다.
화는 자신의 이기심에서 나옵니다. 자신을 위해 분노하는 것은 화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선한 목적을 위해 분노하는 것은 의분이 됩니다. 의분은 충동이 아닙니다. 의분은 도적적이며, 집중력이 있으며, 정의를 만들어 냅니다.

4)미숙한 사람은 화를 내고, 성숙한 사람은 의분을 갖습니다.
인간 관계의 문제는 미숙함에서 비롯됩니다. 미숙한 사람은 이기적입니다. 가인은 의분을 낸 것이 아니라,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화를 냈습니다. 반면,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와 사시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골리앗을 보며 의분을 품었습니다. 그는 분노해야 할 대상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5)잘못된 분을 내면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됩니다.
(엡 4:26-27)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6)잘못된 분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분노는 순간이지만, 결과는 무서운 것입니다. 잘못된 분으로 무서운 결과를 경험한 인물 중에 웃시야 왕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강성해지자 갑자기 교만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성소에서 분향하는 일을 하려다가 제사장들의 만류에 부딪혔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제사장들에게 분노를 발합니다.

(대하 26:19-21)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나가니라 [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7)분노는 다스릴 수 있는 감정입니다.
잘못된 분은 분별력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분별력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터는 짐승과 같습니다. 인간은 화에 조종을 당합니다. 화의 기운은 마치 불과 같아서 무서운 기운으로 사람을 쓰러뜨립니다.

그러나 분노는 감정입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에든지 왕노릇하기를 원하십니다.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를 다스릴 줄 아는 자만이 진정 자기를 정복한 자입니다. 성숙한 인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를 탁월한 인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 분노의 관리
사랑과 지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은 열정만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지혜가 바로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입니다.

1)화가 나면 화를 바라보십시오.
어떤 이들은 화가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화가 본능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화를 내면 안됩니다. 그것은 바지에 오줌, 똥을 그냥 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은 화가 나면 화를 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화풀이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다른 것을 통한 분풀이는 잠시의 만족일 뿐, 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화가 나면, 화를 바라봐야 합니다. 화는 달래야 합니다. 그리고 내 화의 정체가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2)화의 원인을 깨달아야 합니다.
화는 어두운 세력입니다. 그 정체를 감추고 있습니다. 마귀는 화를 통해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분별력 없이 말하고 극단적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빛 가운데 통찰력을 얻어야 합니다. 화가 날 때는 다음의 세 가지를 질문하십시오.
①내가 왜 화를 내는가?
②누구를 위해 화를 내는가? 나인가, 상대인가, 하나님인가?
③화를 내서 무엇을 얻기 원하는가?

3)화를 사랑으로 다스리십시오.
화는 풀지 말고, 잘 달래서 다스리십시오. 화를 달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모든 화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려는 마음이 바로 사랑입니다. 모든 경쟁과 분노와 질투와 이기심과 상처를 감싸안는 것이 바로 따뜻한 형제애와 사랑인 것입니다.

4)평소에 화의 씨앗에 물을 주지 않도록 하십시오.
분노는 우리의 마음에서 자랍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마음의 정원을 잘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과 평화와 온유와 겸손과 감사의 씨앗에 늘 관심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그런 것들이 자라날 것입니다. 분노의 씨앗은 뿌리내리지 못할 것입니다.

5)해가 지도록 화를 품지 마십시오.
화는 오랫동안 품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마치 독과 같아서, 품으면 결국 자신을 병들게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지고 단단해집니다. 그러므로 항상 그 때 그 때 화를 파헤쳐서 원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화를 제거한다는 것은 화에 올바르게 반응하고 건전한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6)분노 관리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화내는 것도 습관입니다. 견고한 습관은 견고한 진과 같습니다. 견고한 진을 깨뜨리는 가장 강력한 힘은 기도입니다. 화내는 습관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결 론>
분노는 하나님이 주신 감정 가운데 하나입니다. 잘못된 분노는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오지만, 분노를 잘 다스리면 창조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와 지혜로 분노를 잘 다스릴 능력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박성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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