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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 (시 69: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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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감사절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부모님은 다니지 않고 두 형제만 주일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성도님들이 헌금을 하시면 재정부에서 집계를 하고 헌금 봉투는 저에게 옵니다. 그러면 그 봉투를 가지고 봉투에 써놓은 기도제목을 보고 제가 기도를 드리는데 그 어린 아이들의 기도 제목을 보고 제가 많이 웃었습니다. 동생의 감사 기도 제목은 "하나님 감사해요 우리에게 많은 좋은 재능을 주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나이다. 아멘."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의 봉투에는 "제 동생을 바보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감사를 기쁘게 받으셨겠습니까? "제 동생을 바보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와 "하나님 감사해요 우리에게 많은 좋은 재능을 주어서"라는 감사 중 어느 감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물론 아이들의 감사를 다 받으셨겠지만 제가 볼 때는 하나님께서는 "동생을 바보로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는 것"보다는 "우리에게 많은 좋은 재능을 주어서 감사하는" 동생의 감사헌금을 더욱 기쁘시게 받으셨을 것같습니다. 오늘 일년 동안 농사를 다 지은 후 하나님께 감사하는 추수 감사절입니다. 어떤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혹시 불평과 불만이 마음속에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불경기로 고통을 호소했는데도 계속 어려움만 닥쳐 왔다고 불평하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추수 감사절 예배를 통해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마이로 H 게이트는 "신앙을 알아보는 가장 정교한 방법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실속있는 감사를 하느냐로 판명될 수도 있다."라고 했습니다. 괴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지금 이 모습 이대로를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라고 했고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빌헤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무슨 일이 있든지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하나님이 참으로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기뻐하시는 이유를 발견하였습니다. 만약 내가 이런 처지에 있다면 다윗처럼 이렇게 감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극한 고난 가운데서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 시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이 때 다윗은 극한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고 도망 다니면서 썼던지 혹은 아도니아의 반역으로 고난당하면서 썼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입니다. 아들에게 반역을 당하여 궁중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자신이 거느렸던 신하들이 역적이 되어 자신을 배신한다면 얼마나 가슴아프겠습니까?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1)수많은 원수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4).
과거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이 자신에게 칼을 들어대는 상황입니다. 그들에게 쫓기어 물이 목구멍가지 차 올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1)

2)극한 상황에서 문제가 풀릴 희망이 없었습니다(2).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같은 극한 상황입니다. 빠져들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는 늪을 만난 것입니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가중시켜오는 두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말입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큰물이 또 밀려오는 것입니다.

3) 사랑하고 의지했던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소외되었습니다(8).

4) 천한 사람들에게서조차도 조롱을 받습니다(12).
상류 계급의 인사들에게 심지어는 술주정뱅이들의 입에까지 다윗을 조롱하는 말이 오르내리게 됩니다.

5) 하나님을 위한 열정으로 당하는 억울한 고난이었습니다(6).
정도를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7). 주를 위한 열성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뜨거운 열정이 있었던 분입니다. (1)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기 위해(삼하 6:12-19) (2) 성전 건축을 위해(대상 28:11-18;29:2-5) (3)사울의 핍박에서도 말씀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열정이었습니까? 그 뜨거운 열정이 하나의 불꽃이 되어 다윗의 뼈 속에서 타오르는 듯했다는 말입니다.

6)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께 찬양이 나오겠습니까? 이런 극한 상황을 만나면 누구나 원망하고 좌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참으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확실한 구원의 감격과 성령의 체험, 은혜 체험을 한 신앙인이었습니다.
30절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 찬양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결국 온유한 자(의인)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기뻐할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34절 이하를 보십시오. 만물들도 찬양할 것을 권유합니다. 하나님이 결국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은 건설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곧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를 더 기쁘시게 하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7)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원망하지 말고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며 찬양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극한 고난이 있습니까? 우리는 오히려 그럴 때 감사와 찬양을 드림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기회입니다. 그 때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 증명할 기회입니다. 고난 가운데 찬양하며 감사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얼마나 즐거워하시겠습니까? 극한 어려움 가운데 원망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나와 눈물로 찬양하며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잡혔습니다. 그 때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께 찬양을 합니다.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찬양드릴 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받게 됩니다. 요나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요나가 무엇을 합니까? 회개하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결국 요나는 12만 여명을 회개시키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경기가 어렵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원망하는 삶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을 많이 겪은 단풍나무일수록 그 잎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히려 감사하며 찬양하면 고통은 풍요로 변하고 아름다움과 인생의 경륜으로 쌓이게 될 것입니다. 전기가 없는 사람들의 수가 20억이 넘습니다. 식수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아무데서나 퍼 마시는 사람들의 수는 10억이 넘습니다. 12억이 하루 1달라 미만으로 살고 있습니다. 1억명의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8억명이 영양실조이고 5세 미만만 매년 4만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양이 양을 낳고 소가 소를 낳듯이 불평은 불평을 낳고 원망을 원망을 낳지만 감사는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한 만큼 삶은 풍요롭고 여유 있으면 행복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감사만큼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기도하였지만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의인의 간구를 들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자식에게 왕궁에서 쫓겨난 아버지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가슴 아프겠습니까? 얼마나 처절하겠습니까? 다윗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려고 합니까? 다윗은 신앙의 사람입니다. 신앙인 답게 문제를 풀어갑니다. 자신이 처한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
1)먼저 하나님께 회개합니다(5). 자신의 우매함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고백합니다.
2)그리고 기도합니다(10-29).
(1)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수치를 당치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6) 다른 많은 백성들이 다윗의 대적을 좇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계속 다윗을 추종하던 사람들이 수치를 당치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2)수렁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합니다(13-21).
구원의 간구(13-18)합니다. 속히 응답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17). 공의의 심판을 간구(19-29)합니다. 그러나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응답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는냐가 중요합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을 성전을 짓기 위해 하나님께 메어달렸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때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반역을 당한 다윗은 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금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조롱해도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은 3절에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였다고 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훼방이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근심이 충만합니다. 긍휼히 여길 자가 없습니다. 안위할 자를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금 당장 문제가 풀리지 않고 어렵다하여도 하나님께서 문제를 풀어줄 것을 확신하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궁핍한 자를 들으시며 자기를 위하여 수금된 자를 멸시치 않으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것이 좋은 때 형식적으로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황소를 드릴 형편이 못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문제를 풀어 주실 것을 보며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3)우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광야에서 5000명이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겨우 있는 것은 어린아이의 한 끼 식사 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입니다. 그 때 그 위기 상황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합니까?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5000명 먹을 것이 이미 있는 것처럼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이게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미래의 주실 것을 미리 내다 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성을 믿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나사로를 살 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사로를 다 살려 놓고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살 것을 바라 보며 감사한 것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 11:41)" 그리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불렀습니다.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입니다. 감사하고 믿고 나가면 그 감사의 조건들이 이루어 지는 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감사는 삶의 풍성을 가져오며 불평은 빈곤을 가져옵니다. 다니엘은 감사하여 기도할 때 사자굴에서 살아났습니다.

감사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돈도 별로 들지 않습니다. 감사한다고 세금 내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음으로 표정으로 언어로 행동으로 표현하면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 싫어할 사람없고 감사하는 얼굴에 침 뱉을 사람 없습니다. 양이 양을 낳고 소가 소를 낳듯이 불평은 불평을 낳고 원망을 원망을 낳지만 감사는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한 만큼 삶은 풍요롭고 여유 있으면 행복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감사가 메마른 시대입니다. 감사 불감증에 걸린 시대입니다. 감사 결핍증에 걸린 시대입니다. 노동자들이 감사를 모릅니다. 사용자들이 감사를 모릅니다. 지도자들이 국민을 감사할 줄 모릅니다. 국민이 지도자를 감사할 줄 모릅니다. 모두가 감사하는 민족으로 변해야 합니다. 이 정도 사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 사람이 절간의 쥐처럼 가난하다고 했습니다. 봉건 이씨 왕조, 식민지 생활, 해방하자마자 민족상잔의 비극을 격은 나라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탄가스에 질식사했습니까? 그것이 불과 20-30년 전의 일입니다. 자원도 기술도 아무것도 없는 나라가 자생력으로 선진국 대열에 끼여들려고 하는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저 앉아서는 아니 됩니다. 감사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기독교가 가는 곳마다 감사를 넘치게 하는 종교입니다. 추수 감사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는 축제였습니다. 불쌍한 이웃을 기억하는 절기였습니다. "절기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 함께 참여하라"(신16:11) 하였습니다. 인간은 가만히 인간성대로 방치해 버리면 감사 불감증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리스토 텔레스가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지적했듯이 감사를 의도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쉽게 입술에서 잊혀지게 됩니다. 의도적으로 감사를 해야 합니다. 체스터튼(G. K. Chesterton)은 "나의 주된 인생관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연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감사를 의도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성경은 감사를 못하면 우리의 마음이 허망해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우둔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롬1:21,22) 반면에 감사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시 50:23) 기쁘시게 하고 우리가 풍요롭게 산다고 말씀합니다.(눅17:19) 템플턴 상을 제정한 존 템플턴은 그의 책 '열정'에서 감사의 생활을 실천하려면 첫째, 감사할 대상을 찾아 칭찬하고 마음을 전하고, 둘째 우리가 열망하는 좋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감사하며 셋째 우리에게 닥친 문제와 도전 과제에 감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다같이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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