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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옥합을 깨뜨리자 (막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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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오늘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충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무엇을 어떻게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감사가 될 수 있으며 또 온전한 축복이 되는 감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제물과 감사를 드리고도 축복은커녕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행5:1절 이하에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밭을 팔아다가 거액의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도 그 아나니아는 성령을 속인 죄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막12:42절과 눅21:2절 의 말씀을 보면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연보궤에 넣었는데 예수님은 그 과부의 헌금에 대하여 그 어떤 사람보다 많이 하였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막12:42-44)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그러므로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들은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을 드려야 할 것은 물론이려니와 또 흠이 없고 정결한 것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미6:7-8)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시40:6-8)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 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면 한 여인의 아름다운 행위가 우연히도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하는 축복을 받게되는 장면입니다. 이 여인은 전혀 아무런 의도가 없이 주님께 감사의 표시로서 정성을 다하여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발라드린 것뿐인데 이와 같은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우연이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르밧에 사는 가난한 과부가 엘리야를 공궤한 것이 3년 동안의 기근을 면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그네를 대접한 것이 천사를 대접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벳새다 언덕에서 한 소년이 5병2어를 주님께 드린 것이 5천명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나 거둘 수 있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여인은 예수님께 정성을 다하여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린 것뿐인데 아무도 엄두조차 내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한 것이 되었으며 본문 9절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이 여인의 행한 일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서 오늘의 우리들에게까지 귀감이 되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가셨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누가복음 7:36 이하에 기록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을 부은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입니다. 그 사건은 갈릴리에서 있었던 사건이고 또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베다니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이 여자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요한복음 12:3절 말씀에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순전한 것이란 당시에 사용하던 향유는 대개 포도주의 원액을 가지고 희석을 하여서 만든 것인데 이 마리아가 가져온 향유는 순수한 고급 향유였습니다. 이 향유는 인도의 히말라야 산에서 자생되는 나르도스타키스(Nardostachys) 라는 식물에서 생산되는 값비싼 것으로서 그 시가가 300데나리온이나 나간다고 합니다. 한편 솔로몬이 지은 아가서에는 사랑의 향기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나드 향에 대한 언급이 세 번이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나 눅7:46절에서와 같이 귀한 손님이 오면 향유를 머리에 발라주는 전통적인 관습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향유를 예수님에게 발라드리기 위해서 옥합을 깨뜨렸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옥합을 깨뜨렸다는데 관심을 가지고 함께 생각하며 은혜 받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1. 마리아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되었습니다.

(1) 마리아는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마리아는 나폴레옹 같은 영웅도 아니고, 필리핀의 이멜다 같은 정치가도 아닙니다. 또 영국의 쟌다크나 우리나라의 유관순 같은 독립 투사도 아닙니다. 당시 빌라도 총독이나 헤롯왕의 영부인도 아닙니다. 평범한 한 여인에 불과합니다. 베다니 마을에서 언니 되는 마르다와 동생 나사로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여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활에 충실하며 오르지 주님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의 집에 오셨을 때에 언니 되는 마르다의 책망을 들으면서도 오르지 주님의 말씀만을 사모하였습니다. 온 세상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는 믿음의 여인입니다.

(2) 마리아는 가난했지만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가진 것 중에 소중한 것이라도 다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여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아깝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낭비” 라는 말도 있습니다.
<예> 헨리 박사의 ‘사랑의 선물’ 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이 성탄절에 가난한 부부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을 선물 할까 를 고심하다가 남편은 줄도 끊어진 낡은 시계를 팔아서 아내의 긴 머리를 예쁘게 장식할 수 있는 머리핀을 샀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20년 간 고이 길러온 머리를 짤라 팔아서 남편의 시계 줄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계 없는 시계 줄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머리 없는 머리핀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두 부부는 그 날밤 밤새도록 눈물로 새웠습니다. 사랑은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옥합을 깬 여인은 요한복음(12:3)에는 마리아라고 기록이 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큰 죄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기록에는 간음하다가 잡혀왔던 여인이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향유를 조금 몇 방울만 주님께 발라드린 것이 아니라 옥합을 깨뜨려서 통째로 전부를 주님께 부어드린 것입니다.

(3)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린 것에 대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① 과거를 청산하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옥합의 향유를 쏟지 않고 옥합을 깨뜨렸다는 것은 미련을 없애기 위함입니다. 옥합을 남겨두면 돈 생각이 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배와 그물을 내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또 레위 마태는 세관에 앉아서 세금을 거두고 있다가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는 그 말씀 한마디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만약에 제자들이 배와 그물을 그냥 두었다면 미련 때문에 사명 감당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사람은 죄악의 미련을 남겨두면 언젠가는 다시 범죄를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주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신이 가진 명예와 권세와 지식까지 모두다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빌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복음 9:62절에 말씀하시기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고 하셨던 것입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성을 탈출하여 피신을 하면서 그렇게 천사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는데도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3:14절 말씀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도 주님이 부르실 때 뒤돌아보지 말고 미련 없이 따라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오늘의 우리들은 요한계시록 3장에 기록된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인들과 같이 미지근하여서도 안되고, 열왕기상 18:21절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머뭇머뭇 해서도 안됩니다.

② 옥합을 깬 이유는 우물쭈물하면 마음이 변하니까 순식간에 깬 것입니다.
사람이 오래두고 생각을 하면 마음이 변합니다.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밭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래 생각하고 우물쭈물하다 보니까 사탄이 그의 마음에 들어가서 결국 시험을 당했습니다.
신앙에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머뭇머뭇하면 안됩니다. 주일성수를 하는 것이나, 새벽기도 하는 것이나, 헌금을 하는 것이나, 봉사를 하는 것이나, 충성을 하는 것, 모두가 결단력이 있고 푯대를 향하여 전진해 나가는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첫번 생각은 성령의 생각이고, 두 번째 생각은 사람의 생각이고, 세 번째 생각은 마귀의 생각이다”

③ 이것은 단 한 번의 마지막 기회를 포착한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이 기회야말로 최초이며 마지막 기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평생 언제든지 할 수가 있지만 예수님께 나드 향유를 부어드리는 것은 마지막 유일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야말로 칭찬과 축복을 받을 절호의 기회이며 역사에 남을 기회입니다.
전도서 3:1절에 “천하에 범사가 때가 있다” 고 하였고 고후 6:2절 “지금은 은혜 받을 때” 라고 하였습니다.

④ 앞날을 결심하는 소망의 순간입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릴 수 있었기에 두려움 없이 주님을 따라서 골고다를 올라갈 수 있었으며 그리고 눅23:27절 말씀에서와 같이 십자가 밑에서 운명하시는 예수님을 지켜 볼 수가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옥합은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예비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하지 못하였고, 사랑하는 제자 요한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는 평범한 한 여인에 의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이 행위는 기독교 2천년 역사에 찬연히 빛났고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을 성경에 기록이 되어서 이 기사를 읽고 은혜 받고 거듭난 사람이 수만, 수천이며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과연 주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옥합을 깨뜨릴 수 있습니까?


2. 오늘날 깨어져야 할 옥합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들도 마리아와 같이 우리들이 간직하고 있는, 또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옥합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우리들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과, 잘못된 사고방식과,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여온 우리들의 생각, 그리고 이만하면 되겠지 하면서 자신의 신앙에 자만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깨뜨려야 합니다.

(2) 우리들의 나쁜 습관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한 번 습관이 되어진 것은 쉽게 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된 습관 때문에 자신의 건강은 물론 자신의 소중한 가정이 불행해 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박의 습관을 끊지 못하여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마약을 끊지 못하여 파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본드 흡입이라든가, 또 호기심에 하기 시작한 음주와 흡연 때문에 자신은 물론 가정까지 파멸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나쁜 습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3) 우리들의 잘못된 신앙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이 과정을 회개와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자신은 지금 생각하기를 자기의 신앙생활이 어느 정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하나님 편에서 보던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잘못된 것이 많이 발견이 되어집니다. 이럴 때 빨리 잘못된 것은 고치고 돌아서야 합니다.

(4)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들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명예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성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과감하게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병아리가 햇빛을 보고 세상에 태어나려면 달걀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서 고고 지성을 지르려면 어머니의 태에 연결된 탯줄을 끊어야 새로운 생명으로 새 출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옥합은 반드시 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옥합 안에 고이 간직된 향유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단단한 껍질로 싸여져 있는 호두나 은행과 같은 과실도 그 껍질이 깨어져야 먹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지금 주님께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믿음의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이와 같은 장애 요소를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이, 향유가, 흘러나올 수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부서지고 깨어질 때 비로소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 주은혜교회의 성도 여러분들은 베다니 마을의 마리아와 같이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옥합을 깨뜨리는 감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진정한 감사가 있는 곳에 마리아가 받은 축복과 같은 주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미쳐 생각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던 것들과 또 지금까지 말 못하여 온 것은 과감하게 깨뜨려 버리고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요 참 감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바라기는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룰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임영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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