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최선을 다하는 신앙 (마 22:34-40)

  • 잡초 잡초
  • 842
  • 0

첨부 1


가을이 깊어가면서 이제는 제법 추워지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에 나오신 분들을 보니 이제는 두꺼운 옷을 내어입으시고 몸도 조금은 움츠러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체감은 나이에 배속이라는 말을 합니다.  60세라고 하면 120Km의 속도로 달려가는 느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한 해를 시작한 것이 어제 같은데 오늘은 기온이 뚝 떨어진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제는 남은 두 달 동안 최선을 다하여 정성스럽게 살아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다 지나가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고 할 때에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어떻게 살았노라고 답변할 것인지 걱정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책임적인 인생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이란 밥을 먹고 사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람을 먹고, 의미를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주님과 함께,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하면 어떠한 고난도 참을 수 있고, 힘들고 어려워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보람도 없고 아무런 의미 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새생명축제는 한 해의 결실입니다.  한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가장 귀한 열매요, 보람이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 년을 잘 마무리하고 더욱 새롭게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 교회는 심령부흥회를 개최합니다.  이번에 오시는 목사님은 우영수 목사님이신데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교동교회를 시무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찬양예배에 오셔서 말씀하시는 권영복목사님은 우리 평양노회의 남시찰에 속한 방주교회의 목사님으로 평양노회 노회장인신데, 아주 기도 많이 하시고 말씀을 중심으로 목회를 잘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새생명 축제인 다음 주일 낮3부 예배에 오실 이영후 장로님을 통하여 은혜받아야 합니다.  새생명축제는 새생명을 위한 축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참석하지 않은 집회에 성령이 임하시면 나만 손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목회자요, 부흥사인 스펄죤 목사님이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한번 따라 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참석하지 않은 집회에 성령이 임하시면 나만 손해다”  시간 시간마다, 모든 집회에 참석하셔서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당장 입원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면 입원해야 합니까?  그냥 돌아와야 합니까?  어떤 나라에 가서든지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서 쓰러졌다고 하면 그 나라에서 치료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조금 후에 몸이 좋아졌다고 하여도 의사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치료받겠다고 하지 말고 우선 그 나라에서 치료바아야 합니다. 우리는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정말 사랑하신다는 생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의도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지나놓고 보면 우리로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손해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이 부르시고, 신학을 공부하게 하시고 당신의 사자로 세우셨는데, 잘 훈련하고 연단하고 정금 같이 사용하여 귀한 일에 쓰실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해도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부흥회 강사로 오시는 분들마다 다 하나님이 붙잡고 쓰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 오실 목사님을 통하여 겸손도 배우고, 인내도 배우고 감사도 배우고 충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내가 참석하지 않은 집회에 성령이 임하시면 나만 손해다”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요즈음 무엇을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 걸리는 때도 아니고, 어디 구경 가지 못하여 아쉬운 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천국잔치가 준비되어 있는데, 모두 다 참석하셔야 합니다.  우리 시대가 하도 악해지고 있습니다.  악한 사탄을 우리를 그냥 두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악한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악한 시험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사랑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금년 일 년 동안 성경을 얼마나 읽어보셨습니까?  성경은 잠 오지 않을 때 읽으면, 잠이 오는데 정말 특효약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전혀 읽지 않는 분들은 저녁에 잠이 오지 않으면 꼭 읽어보세요.  정말 잠이 잘 옵니다.  “아니 목사님, 무슨 목사님이 잠이 오지 않으면 성경을 읽으라고 하십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안 읽는 것보다는 그렇게 해서라도 성경을 읽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가방 안에 있는데, 어떻게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까?  책장 깊숙한 곳에 꽂혀 있는데 그 성경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 것입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성경을 손에 잡아야 읽을 수 있습니다.  무슨 목사가 잠이 오지 않을 때에 성경을 읽으라고 하느냐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성경을 가져다가 손에 들고 펴야만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손에 잡지 않으면 읽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읽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들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되는 것입니다. 

팀 라하이 목사님은 뛰어난 교육가요, 성공적인 목회자요, 베스트셀러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가 쓰신 「성경공부의 비결」이란 책은 정말 은혜로운 책이요, 실제적인 책입니다.  그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기하학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헬라의 수학자의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이 말은 성경을 알고 싶다면, 노력하지 않고는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는 “하루 15분이 영어를 정복한다”는 광고 문구를 보고는 그 말을 성경공부에 적용하였습니다.  하루에 15분만 일찍 일어나서 맑은 정신에 성경을 읽으라고 합니다.  하루 15분을 제가 계산해보았습니다.  하루에 15분, 일 년 365일이면 5,475분, 시간으로 보면 91시간 15분입니다.  이 하루의 15분이라는 시간은 4일에서 5시간 정도 빠지는 시간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그렇게 빠르지 않게 소리 내어 성경 1 페이지를 읽는데, 1분정도 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루 15분이면 10페이지를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5개월 정도면 완독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이 1,754페이지입니다.  하루에 10 페이지를 읽으면 5개월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1년에 2독을 할 수 있습니다.  하루 15분간 꾸준히 매달려야 합니다.

라하이 목사님의 경험으로 하루 15분이면 성경을 완전히 통독하고, 성경 중에 중요한 부분은 여러 차례 읽을 수 있고, 중요한 진리, 약속, 계명이 마음속에 뿌리박게 되며, 가장 중요한 말씀들은 묵상하게 되며, 요절을 깨달을 수 있고, 성경말씀에 해박하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는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어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는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하는 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힘써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일 년을 보내면서 진솔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한 해를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며, 얻은 것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얻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정신없이 산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바쁘게 산다는 말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 차리고 살아가야지, 정신없이 산다는 말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닙니다.

스테판 M. 폴란과 마크 레빈이 함께 쓴 “2막”이란 책이 있는데 부제로 “나도 내 인생을 리모델링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스테판이란 사람은 70이 넘은 대학교수요, 변호사이며 상담가인데, 그는 48살에 폐암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결핵인데 오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잠시나마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보았습니다.  그는 그 일을 계기로 자기 스스로에게 의미가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자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상담하기 시작하여 25년 넘게 신용불량자에서 대기업의 총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상담하면서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하라고 조언하였습니다.  스테판 박사의 사위가 유명한 영화배우인 마이클 폭스인데, 마이클은 장인의 조언에 감사하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마이클 J. 폭스라는 사람은 세계적인 배우인데 파킨슨씨병에 걸렸습니다.    언제나 소년 같은 미소를 짓던 사람이 노인성 치매에 걸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인생이 끝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이클 폭스는 파킨슨병 재단을 설립하고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가 병마와 싸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럭키 맨」을 발표해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새로운 제2막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와서 많은 사람들이 다져 묻기도 하고 시험하려고 하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이들은 부활이 없다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지만, 예수님은 아주 명쾌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라고 잘 알려주셨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소문이 났습니다.

이제는 바리새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에 대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율법의 대가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구도자의 자세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몰라서 물어보는 것도 아닙니다.  유대인으로 바리새인이 되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인데, 율법교사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율법교사 랍비가 된다는 것은 그냥 누가 그렇게 불러주어 랍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성경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문제를 가지고 지금 예수님을 시험하고,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이 사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참으로 걱정입니다.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들은 옳지 않다고 합니다.  신앙에 교만이 들고, 자기 과욕에 빠지고 자신만이 최고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신앙의 교만 속에 빠지고 맙니다.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예수님을 신뢰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자신만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고, 율법학자라는 권위를 돋보이게 하려고 나서고 있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이 때에 예수님은 거침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 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대나라의 언어 히브리어는 비교급이라든지 최상급이라는 문법이 없습니다.    히브리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드러내는 언어요 종교적인 언어요 생각하게 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최상급을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들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강조하는 말과 비교급과 최상급을 만들게 됩니다.  같은 말은 한 문장에서 반복하여 두 번 사용하면 비교급입니다. 그리고 세 번 이상 반복하면 최상급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하고 다하고 다하라고 하십니다. 같은 병행 구절인, 마가복음12:30에 보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구약의 본문에 세 번 말씀하신 다하라는 말씀을 한번 더 사용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한 나무의 두 가지로 사실은 하나입니다.

신명기 6:5에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주님은 마가복음에서는 “목숨을 다하라”는 말씀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목숨을 다하라는 말씀은 있고, 힘을 다하라는 말을 제외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더 들어가고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여도 사실은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라”, 목숨 걸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을 하면 말씀하는 저를 포함하여 우리 모든 사람들이 나는 최선을 다하지 못하였는데, 하나님 앞에서 어쩌란 말이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라고 감조하면서 피차 은혜를 받자는 것입니다.

저를 가장 아껴주신 목사님이 계시는데, 저 때문에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의 주일 낮 예배 강단을 네 번씩이나 비우시고 저를 위하여 수고하신 분입니다. 지금도 만나면 꼭 아버지를 보고 만난 것처럼 반갑고 고마운 분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저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의 차로 어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물었습니다.  은퇴하신 목사님으로 저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은퇴하고 보니 어떤 심정이냐고 하였더니, 이렇게 빨리 은퇴하는 것이라고 하면 현역에 있을 때에 “왜 좀 더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참으로 후회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분은 정말 한국교회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신 목사님이라고 생각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에 그 말씀을 아주 소중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최선을 다하자, 잘하고 잘 못하는 것은 다음의 문제이고 우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지금 성경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이해가 잘 되고, 좋은 번역이라고 봅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말은 등한히 여기고 소홀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원어로 보면 “비웃는다, 코웃음 친다, 같잖게 여긴다는 말인데, 하나님은 비웃음을 받지 아니하시고 코웃음 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같잖게 여김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업신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 것이 신앙의 세계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다가 우리의 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민32:23)라고 하셨습니다.  죄와 악은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은 호리라도 버려야 합니다.  죄는 아무리 작아도 죄요, 악은 악이 가벼워도 악이라고 선언하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퍽 힘든 것을 봅니다.  사람이 자기 몸을 아끼고 보호하는데 대단합니다.  몸에 좋다는 말을 들으면 귀가 번쩍 뜨이고 혹하게 됩니다.  사람이 자기 몸을 단장하고 가꾸는데 정말 대단한 열성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의 몸이 소중하고 내가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나아가서 우리의 이웃을 구원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만남이 있었다고 하면 일찍부터 예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 한편 감사하면서도 이것이 감격이 없는 일상의 생활이 되었고, 습관적으로 믿는 것은 아닌가 하여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롬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여 영혼을 구원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또한 사랑하는 것입니다.  알맹이가 있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직분이라든지, 오랜 연륜이라는 것은 알맹이가 될 수 없습니다.  정말 우리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이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사랑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죄악을 버리고, 우리 하나님의 임재를 감사하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