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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하박국의 감사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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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은혜로 올해도 궁핍한 가운데도 풍족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가을이 되면 웬지 넉넉해지는 마음입니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계절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햇빛을 주시고 맑은 공기를 주시고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 결실할 수 있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감사해야 할 이유을 찾아보면 참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감사가 조건과 보상에 따른 감사입니다.  그래도 이만한 열매, 이만한 건강, 이만한 형편 등을 누리고 있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감사가 그렇습니다. 대게 셋 중의 하나인데 어떠한 것들을 받아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자기만도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좀 나은 것은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시는 게 없고 받은 게 없다면 감사자체의 의미도 없어지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 가운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리고 범사에 라는 말씀은 주는 게 있어서 받는 게 있어서 하라는 말씀은 아니듯 싶습니다. 그렇다면 항상, 그리고 범사는 조건과 보상, 그리고 상황에 관계없이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누군가 ‘고맙다’라는 말을 풀이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곰 앞에 서다’라고 풀이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곰은 임금, 하늘, 하나님 등을 높이는 우리의 옛말인데 고맙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서다’라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감사가 이와 같을 것입니다.

감사는 상황이나 보상에 따른 반응이 아닙니다. 추수, 건강, 평안, 받은 무엇 등 모든 것이 감사할 일들이기는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그런 것들을 넘어섭니다.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감사는 조건에 관계없이,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감사입니다.

하박국의 감사가 그렀습니다.
하박국은 전체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서는 하나님께 질문하는 내용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을 그렇게 징계하십니까? 그리고 하필이면 징계의 도구가 저 원수 같은 이방의 제국들입니까?
그리고 2장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그리고 3장에서 하박국의 기도가 나오는데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구하며 수년 내에 부흥을 요청합니다. 그러면서 하박국의 감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히리로다.”
하박국의 감사와 찬양은 어떤 풍요함이나 보상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 찬양하며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성빈 찬양사역자의 영상은 우리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감사인지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이제는 죽어야 하겠다고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느끼고, 그 하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감격과 기쁨 속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모습, 상황과 조건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의 마음속에 원망과 짜증과 불평이 감사로 바뀌는 순간 그의 모든 삶의 모습들이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감사인 것입니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레나 마리아 그는 손과 발이 불구인 볼품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그에게 주신 능력을 발견하고 멋진 수영선수가 되었을 뿐 아니라 천상의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셔서 찬양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잘 알고 계시지요.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감사절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사실 풍성한 수확도 없고 감사할 만한 어떤 좋은 조건도 없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황무지가 있었고 낯선 인디안들이 있었습니다.
신대륙의 기후 조건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어떻게 지어야 될 지 잘 모르니까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식이 모자라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전염병까지 번져 결국은 절반 가까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기도하였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농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생각 에는 어려울 때마다 금식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이 해 봤지 않습니까? 이제 불평은 그만합시다.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이곳에 와서 살기 때문에 이전에 누리지 못하고 있던 정치적인 자유도 누리고 있고,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신앙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 금식은 그만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축제를 엽시다.  비록 어렵지만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축제를 열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시다.' 

그 말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 시켰습니다. 그래서 금식하려고 하던 생각을 바꾸어서  축제를 열었습니다. 여위고 해쓱해진 모습들이었지만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알려준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함께 기쁨을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추수감사절, 사실 우리들의 정서로 따진다면 추석 명절의 때에 맞추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또 요즘은 도시화된 현실을 감안해본다면 추수감사절은 그렇게 마음에 썩 와 닿는 절기가 아닙니다.

성탄절이나 부활절은 예수님의 탄생하심과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며 뚜렷한 신앙의 고백들을 담아낼 수 있지만 추수감사절은 성도들이 가장 힘들어 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절기이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을 통해 우리가 다시 깨닫고 듣기를 원하는 것은 감사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감사가 어떤 조건과 보상으로만 하는 감사가 아니라 진정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감사가 바로 우리들이 깨닫고 실천해야 할 진정한 감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환경이 어렵고 고통 중에 눌려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환경의 눈으로 보지 말고 믿음의 눈, 우리를 싫어 버리지 않으시고 귀찮게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지금까지 은혜로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의 삶도 은혜로 살아가게 하실 하나님을 다시금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려서 회복해야할 것이 많지만 그중에 가장 소중한 것, 감사의 언어를 여러분의 삶 속에서 회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래할 수 없을 때 노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그 노래가 민족의 눈물을 닦고 다시금 새로운 희망의 걸음을 걷게 만들 것입니다. 

하박국의 감사는 우리의 관점을 바꿀 때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똑같은 사물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피카소의 이해할 수 없는 그림들이 세계적인 작품이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시각이 고정된 채 사람을 보지 않고 모든 방향에서 사람을 보면서 그것을 한 곳에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초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초점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초점이 맞지 않으면 그림이 흐릿합니다.
요즘은 디지털 사진기가 나와서 별문제가 되지 않지만 과거에는 조리개를 열어서 찍는 사진기였기에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면 이상하게 나오는 것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초점을 잘 맞추고 분명해지면 감사가 넘칩니다. 초점이 맞지 않으면 흐릿하여 감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성경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야 감사하게 됩니다.
모든 삶의 초점이 하나님께로 맞춰지면 인생의 그림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맞춰진 초점만이 두드러지고 다른 것들은 그 두드러진 것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감사만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족해도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이의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도 감사했습니다.
그 까짓것을 가지고 감사 기도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감사할 때에 기적은 나타났습니다.
남의 것에 관심을 가지면 불평이 넘칩니다. 부족해도 내기 주어진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게 되면 물질에 대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내 소유 가운데 얼마를 하나님께 드려야 할까?” 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 가운데 내가 얼마를 사용해야 할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인간은 소망의 존재입니다. 미래의 존재입니다. 미래에 소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미래에 초점을 맞춘 감사는 열망하는 좋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먼저감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러 가셨을 때에 무덤 앞에서 말씀합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11:41). 말씀 들으실 것을 미리 감사하셨습니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내 욕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넷째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존재 그 자체가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지식과 재물이 아닙니다. 병들고 눈물짓고 한숨짓는 인생을 살아가는 바로 여러분들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결코 포기하지 않고 버리시니 않으시는 것은 여러분이 가진 소유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임을 알고 나를 존재케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삶의 관점을 바꾸면 행복이 보입니다.
나의 삶의 초점이 분명해지면 어디에서든지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박국의 감사는 바로 관점을 바꾸고 초점을 분명히 함으로 얻어진 진실한 감사였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멘
감사하면 삶이 달라집니다. 감사하면 인생이 변합니다. 감사하면 더욱 아름다운 모습이 됩니다. 감사는 놀라운 영적 에너지를 공급해줍니다. 승리는 감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감사의 시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로 인해 저의 연약함을 깨닫습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비틀어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저의 교만했던 행실을 발견합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친구가 짐처럼 버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사람 사는 보람을 느낍니다.
먹고 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 먹는 빵의 의미를 이해합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보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더욱 분명히 깨닫습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가능성이 있음을 압니다.

미국의 기업가 하워드 휴즈는 영화사, 방송국, 항공회사, 호텔, 도박장 등 50개 업체를 가진 굉장한 부호로 젊은 시절에 할리우드 영화배우들과 수많은 염문을 뿌리기도 했는데 그는 45세 때부터 대인기피증에 걸려서 사람들과 대면하지 않고 혼자서 살았습니다.
집에도 무균실을 만들어 놓고 병균을 두려워해서 무균실에서 살고 음식도 독이 들었을까 싶어서 치킨 스프만 먹고서 살았습니다. 이발사가 혹시 면도나 가위로써 자기를 찔러 죽일까 겁이 나서 이발도 안하므로 머리가 여자머리같이 길게 내려오고 손톱과 발톱이 매 손톱과 발톱처럼 길었습니다.
그는 계열사 사장하고도 직접 만나 이야기하지 않고 전화로 말하거나 마이크로 지시를 했습니다. 그는 너무나 영양실조가 걸려서 나중에는 비행기타고 여행하다가 죽었는데 그가 죽을 때 남긴 말이 유명합니다. 그는 “nothing! nothing! nothing!" 즉 ”헛되고, 헛되고, 헛되구나!“하고 죽었습니다. 그렇게 큰 부자가 죽을 때 한 탄식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구나!“ 아무런 재산하나 손에 쥐고 갈 수 없는 너무나 어둡고 캄캄한 지옥을 향해서 그는 들어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노벨상을 수상했던 어네스트 헤밍웨이도 62세에 사망할 때까지 그는 허무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부귀, 영화, 공명, 명예 다 있었습니다. 결혼도 여러 번 했다가 이혼하고 또 결혼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는 “필라멘트가 끊어진 텅 빈 전구처럼 공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사냥총으로 자기 머리를 쏘아서 자살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전혀 다른 또 한사람을 영상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는 진정 자살해야 할 사람 같았습니다. 사는 것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피하여 숨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장애우들을 위로하며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었던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감사를 찾은 것입니다. 조건과 보상에 따른 감사가 아닌 존재의 필요를 발견한 감사이며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감사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안성빈 찬양 사역자가 발견한 감사를 우리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2005년 11월20일 주일낮예배 추수감사절, 이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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