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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고난도 받게 하십니다 (욥 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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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glas MacArther가“저의 자식을 이러한 인간이 되게 하소서!”라는 자녀를 위한 기도문 가운데 이러한 대목이 있습니다.

약할 때 자기를 잘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며 온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
패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해 주소서!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기도합니까?“내 사랑하는 자녀의 앞길에 평탄한길, 형통한 길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맥아더의 기도는 참으로 지혜롭고 현실적인 기도입니다. 평탄하고 형통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없겠습니까만 그것은 우리의 희망사항입니다. 이 세상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풍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고난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것 가운데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잘 섬기면 언제나 평안하고 하는 일들마다 형통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잘 섬긴다하여 그것이 공로가 되어 고난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과 싸워 이기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인 주기도문 가운데에“시험이 없게 하옵시고”가 아니라,“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태복음 6:13)하셨습니다. 시험 즉 고난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에 빠지면 안됩니다. 바다의 배는 바닷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배에 구멍이 뚫려 물이 배안으로 물이 들어온다면 그 배는 침몰하게 됩니다. 시험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바다의 바람을 잘 이용하면 그 바람을 통해 더 빨리 가게 됩니다. 찬송가 503장에“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라는 찬송가의 내용과 같습니다.

조금 전 봉독한 본문에도 욥은 말하기를“복 받기를 바랐으나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으나 도리어 흑암이 왔구나.”라고 했습니다. 욥은 불신자가 아닙니다. 악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욥이 살았던 우스 땅에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인들의 거주지였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살아가면서도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며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진실하고 선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욥의 삶에 대하여 욥기 1:1에“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욥을 가리켜 어느 신학자는 이상적인 신앙인이라 했습니다. 또 그의 가족과 재산 관계는 이렇습니다.“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겨리요 암 나귀가 오 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욥기 1:3)고 했습니다. 그의 신앙, 그의 인품, 그의 가족, 그의 재산. 그의 사회적인 위치, 어느 것 하나 복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대풍이 몰아닥쳐 집이 무너졌고 그 집안에 있었던 열 자녀는 모두다 압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많던 가축들은 스바 사람과 갈대아 사람들이 몰려 와서 다 약탈해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욥은 전신의 피부병으로 가려움을 견디지 못해 깨어진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이 참담한 모습을 지켜본 아내 까지“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기 2:9)고 했습니다. 이런 기막힌 처지에서 욥은 말하기를“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하고 한탄조의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입을 모아 만복의 근원 하나님이라 찬양을 하며, 기도할 때마다 축복을 간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니라”(빌립보서 1:29)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시며 자비의 하나님이신데 어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그의 자녀들에게 큰 고난을 주시는가? 악한 사람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으며, 게으른 사람이 망했다면 그 또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상대는 동방의 의인으로 완전한 자라 불리는 욥이기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상선벌악의 하나님으로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는 분으로 모두가 알고 있는데 그 반대의 현상들이 우리들의 주위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악한 사람이 건강하며, 자녀들이 잘 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진실한 신앙인 인데 질병과 가난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입니다.

옛날부터 이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욥의 말 가운데에도 이러한 의문이 담겨져 있는 말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삶의 고비를 겪기 마련인데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 큰 복을 받아 누린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극한 고난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니엘, 모세, 다윗 등 누구하나 예외가 없습니다.

1. 고난을 통해 삶의 뿌리가 튼튼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기 전 반드시 그 사람을 연단시키십니다. 훈련된 병사라야 적군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강군이 됩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 신명기 32:10-12의 말씀에“여호와께서 그를......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인도하셨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눈동자처럼 지키시되 독수리 같이 연단을 시키신다고 하셨습니다. 독수리가 새의 왕자가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어미 독수리로부터 극한 고난의 훈련 과정을 거친 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성도에게 복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기둥으로 쓰이는 큰 나무가 되려면 뿌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멀리 깊게 뻗어 나간 뿌리가 그 나무를 지탱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높이정도 뿌리가 뻗어 나가야 그 나무가 쓰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나무의 뿌리가 언제 멀리 뻗어나가게 될까요?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올 때 나무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뿌리를 멀리 뻗는다고 합니다. 만일 나무에게 사람과 같은 이성이 있다면 여름에 몰아치는 비바람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그 비바람의 고통이 나무를 지탱시키는 튼튼한 뿌리가 되어 더 크게, 더 굵게 자라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당하는 괴로운 고통의 연단이 장차 있을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튼튼한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욥이 그 큰 고통을 잘 견딘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2. 고난은 그 삶을 존귀하게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말하기를“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고 했습니다. 금광에서 캐낸 광석은 반드시 용광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순금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역시 고난을 통해서만 인격의 불순물이 사라지고 그리스도를 닮은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성경에 기록하기를“너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1:7)고 했습니다. 고난을 통해 교만의 불순물이 제거됩니다. 세상만사가 내 힘을 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심령을 사랑하셔서 축복하시며 귀하게 쓰시게 됩니다.

우리는 진주조개에서 이 원리를 다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다이아몬드가 있어서 진주는 그렇게 귀한 보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진주가 최고의 보배였습니다.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조개 속에 작은 모래알이 들어왔습니다. 그 부드럽고 연한 살 속에 모래가 들어왔으니 그 아픔과 고통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리하여 조개는 온힘을 다해 분비액으로 그 모래알을 감싸고 또 감싼다고 합니다. 이렇게 감싸는 가운데 분비액이 응고된 결정체가 진주라고 합니다.

인간의 삶 속에도 때로는 모래알 같이 나를 괴롭히는 원치 않는 환난과 고통이 있습니다. 이 아픈 고통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실망하여 낙심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며 불평을 합니다. 자포자기를 합니다. 아무렇게나 생을 방치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더 큰 불행을 자초합니다. 최선의 방법을 진주에게 배워야 하겠습니다. 내 삶에 고통이 올 때에 내 생명의 분비로 감싸야합니다. 믿음의 기도와 눈물로 감쌉니다. 감사함으로 감쌉니다. 순종으로 감쌉니다. 소망으로 감쌉니다. 그리하면 훗날 그 고통이 도리어 삶을 빛나게 하는 진주가 될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욥은 그 쓰라린 고통을 잘 이겼기에 성서중의 진주와 같은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3. 고난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야고보서 1:2-4의 말씀에“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시험이 사람을 온전케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알 수 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여 지식의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사람의 인격도 고난을 통해 인격자로 다듬어집니다.

미국의 존슨 전 대통령은 사람을 채용할 때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고 합니다. 너무 빨리 출세한 사람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채용을 꺼렸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너무 쉽게 출세한 사람은 독선적이기 쉬우며 실패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남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카프만 부인이 쓴“광야의 샘”이란 책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카프만 부인이 테이블 위에다가 누에고치를 놓고 거기서 나비들이 동그랗게 구멍을 뚫고 나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 고치 속에 있는 나비가 동그랗게 구멍을 뚫고 나오는데 구멍은 좁고 나비의 덩치는 구멍보다 크니까 그 구멍을 빠져 나오는데 무척 고생을 하며 힘들게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 나비가 누에고치 구멍으로 나오려고 할 때에 이 부인이 조그만 가위로 고치의 구멍을 넓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나비는 쉽게 나왔는데 윤기도 나고 덩치고 크고 보기에 썩 좋았습니다. 그때에 카프만 부인이 하는 말이“신의 지혜가 이것만은 나만 못했구나. 내가 신이었다면 고치의 구멍을 좀더 넓게 뚫고 나오도록 했을 텐데.”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나비들이 이제는 날기 시작했습니다. 좁은 구멍에서 고생스럽게 나온 나비는 훨훨 모두 날아가는데 자기가 구멍을 뚫어 쉽게 나온 나비는 날지를 못하고 날개만 파닥파닥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이에 대하여 연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고치 속의 나비는 모두 영양분이 어깨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어깨에 있는 영양분이 좁은 구멍으로 나올 때 어깨의 영양분이 점점 날개로, 그리고 밑으로 밀려 내려가서 골고루 영양분이 퍼져 균형이 잡힌 나비가 되어 어디든지 훨훨 날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구멍을 뚫어주어 쉽게 나온 나방은 영양분이 어깨에만 있어서 깡패 모양으로 어깨만 으쓱거렸지 전혀 날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카프만 부인이 또 말하기를“역시 신은 나보다 지혜가 있으시다”라고 했습니다.

이 역시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비좁은 곳을 빠져 나오는 것 같이 비록 힘이 들고 어려운 시련이 있어도, 그 시련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하게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성숙해야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됩니다. 머리에만 가득히 차있는 지식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고난을 통해 자만이 깨어지고 인간의 무능과 무지함을 알아야 주님께서 쓰시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배에만 가득 차 있는 세상 욕망이 고난을 통하여 세상의 허무함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4. 고난은 사람의 정신을 일깨워 줍니다.

시편 119:67의 말씀에“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의문을 가집니다.“하나님은 전능하신데 마귀 같은 것은 싹 없애 버리지 않고 왜 그걸 놔둬서 사람이 마귀에게 넘어갈 것을 아시면서 네가 거기 졌다, 이겼다 자꾸 책임을 인간에게 돌리시는가?”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도 필요합니다.

캐나다의 토론토에 유명한 수족관이 있습니다. 희귀한 물고기가 많아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옵니다. 한번은 그 수족관 기사들이 태평양연안의 희귀한 물고기를 여러 종류 잡아서 물통 속에 넣었습니다. 넣되 태평양 물을 담고 온도도 태평양 온도와 같이 유지하며 두 주일의 여정 끝에 토론토에 도착을 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물고기는 모두 죽어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1년을 연구한 후 다시 태평양쪽의 희귀한 물고기를 잡아 물통 속에 넣었습니다. 이번에는 물통마다 쓸모없는 문어새끼 같이 발이 많은 것을 물통마다 한 마리씩 집어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괴물 같은 것이 잡아먹을 듯, 쫓아다니니 물고기가 쉴 수가 없어 밤낮 긴장하여 움직이며 돌아다닙니다. 이렇게 토론토 까지 왔더니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처음의 물고기들은 왜 죽었을까요? 그 물고기가 살던 바다는 물결이 세었습니다. 그러므로 물고기들이 항상 물결을 거슬러 투쟁을 했습니다. 또한 약육강식의 세계인지라 큰 고기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항상 정신을 차리고 돌아다닙니다. 그러던 고기들에게 물결이 없어졌습니다. 잡아먹으려는 원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너무 편안한 나머지 운동부족으로 보두 죽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시련의 이유와 사탄을 그대로 두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의 일부분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련이 있고 마귀의 유혹이 있어야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자격자와 무자격자를 분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시험의 까닭입니다.

혹 우리들이 처한 환경이 힘이 들고 어려워도 너무 염려하거나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육신의 질병으로 일평생 고생을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 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린도후서 12:7-9)고 했습니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 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무명 신체장애자는 이러한 기도문을 썼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강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으나 약자가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셨다.

나는 하나님께 부자가 되어서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으나 하나님은 나에게 가난을 주셔서 현명하게 살게 해 주셨다.

나는 하나님께 건강한 자가 되어서 더 위대한 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 였으나 하나님은 불구의 몸이 되게 하셔서 더 좋은 일을 하게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인간으로부터 존경받는 권력을 달라고 기도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약자가 되게 하셔서 그것 이상의 보람된 삶을 느끼게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내가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나에게 주시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하셨다.

나는 주어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나는 가장 많이 축복을 받은 자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야고보서 1:12에 말씀하시기를“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한때의 고난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잘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1. 고난을 통해 삶의 뿌리가 튼튼해집니다.
2. 고난은 그 삶을 존귀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3. 고난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4. 고난은 사람의 정신을 일깨워 줍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는 욥의 믿음, 욥의 다짐이 우리 모두의 믿음과 다짐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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