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살전 1:1)

  • 잡초 잡초
  • 850
  • 0

첨부 1


바울과 데살로니가교회
데살로니가전서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요즘 재독 철학자인 송두율 교수 때문에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송두율 교수가 평범한 사람으로 간첩활동을 했으면 지금처럼 시끄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이기 때문에 더욱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매스컴에서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은 그만큼 송교수의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명한 사람일수록 말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얼마전 대통령이 국군의 날에 사열을 하면서 국방부 장관이 우산을 받쳐든 것을 가지고 여론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다. 직위가 높을수록 힘들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제가 왜 서론에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우리 기독교 역사상 이 사람 만큼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없었다면 문제의 발단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시킨 사람이 있는데 그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쓴 서신을 단순히 성경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그 서신을 읽는다. 그러나 학자들간에는 바울 때문에 교단이 갈라지기도 하는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그것은 그만큼 바울이 기독교에 있어서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바울이 쓴 최초의 서신을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다.
오늘 본문은 한구절 밖에 되지 않는 매우 짧은 구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구절안에 바울의 사상과 세계를 엿볼수 있다. 누군가가 글을 쓸때는 자기의 생각이나 사상을 글로 남긴다. 그래서 그 사상이 세계적으로 인정할 만한것이라면 상을 수여하기도 한다.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오늘 처음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이 인사말 속에 바울의 놀라운 사상이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간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있게 보아야 할 대목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표현입니다. ‘안에’라고 하는 전치사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단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듣는 자들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라고도 표현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것뿐입니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극도의 고난을 겪으면 우리가 어디에 소속이 되어 있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정말로 나와 함께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이렇게 역경과 고난이 찾아올수 있을까? 하는 신앙의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은 오히려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바울은 이런 환란이 있다고 할찌라고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에게, 그리고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할때에 세웠던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세우면서 바울은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바울은 선교를 할때에 제일 먼저 유대 회당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울의 말에 설득되어진 몇몇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데리고 교회를 설립합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유대회당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교회를 개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개척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교회를 세우려고 하면 여기저기에서 교회를 반대하고 데모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는 이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단을 선포하는 우두머리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울과 그 교회를 핍박을 한 것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바울이 야손이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 교회를 설립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유대인들은 동네 깡패들을 데리고 그들을 급습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불안과 공포로 두려움에 떨기도 했습니다. 어떤때는 로마 관원들에게 잡혀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사역을 그만두고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설립한지 3개월만에 다른곳으로 피신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아덴을 거쳐 고린도까지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디모데를 보냈다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디모데가 가지고 온 소식중에는 기쁜 소식도 있지만 슬픈소식도 있었습니다. 슬픈 소식중의 하나가 바로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가 많은 핍박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곳에서 사역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고스란히 그 교회가 지금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렇게 고난과 핍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말합니다. 많은 어려움과 핍박이 있다 할지라도, 때로는 주님이 안계시는 것 같고, 때로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것 같은 느낌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넓은 품안에 들어가서 그 안에 푹 안겨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어려움과 고난과 결핍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엄마가 아기를 껴 안 듯이 푹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비록 유대인들이 성도들을 갖은 어려움과 핍박을 주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 가운데서 지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디 지키고 있는 것 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풍성한 은혜가운데 살게 하셔서 그들이 넉넉히 고난을 이기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 가운데서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는 믿음까지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이 어렵고 힘들때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수가 있습니까?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는데, 세상사람들은 삶이 너무나도 힘들어서 또 고달파서 자살을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자살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겠습니까?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다라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붙잡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넉넉함과 풍성함을 덧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풍성함과 은혜로 우리를 죽지않게 하시고 계속적인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그 넉넉함과 풍요로움을 믿음으로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은혜의 사상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놀라운 지혜를 엿볼수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지금 서신의 발신자가 누구입니까?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 전서의 발신자로 세사람을 언급합니다. 자신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입니다. 비록 편지는 자신이 썼지만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이 편지를 쓸때 같이 동참한 것으로 보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부교역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실루아노는 ‘실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실라는 디모데와는 달리 바울과 거의 대등한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본문에는 실루아노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루아노는 로마식 이름이고, 실라는 헬라식 이름입니다. 바울이 1차 선교여행을 하고나서 바나바와 갈라선후 바나바와 비슷한 자격이 있는 사람을 선택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실라인 것입니다. 나이도 바울과 비슷하고 영향력도 바울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지혜를 엿볼수 있는 부분이 실라에게서 발견됩니다. 바울이 선택한 실라는 원래 디아스포라 출신입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서도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그래서 양쪽문화, 즉 헬라문화와 유대문화를 다 알고 양쪽 언어를 다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과 비슷한 사람입니다. 바울도 실라와 같이 유대땅 밖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입니다. 그리고 공부는 예루살렘에서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문화와 헬라문화 양쪽에 다 익숙할 뿐만 아니라 양쪽 언어인 헬라어와 아람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라는 처음부터 초대교회에 참여했기 때문에 예루살렘교회의 신뢰가 아주 돈독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의 전승을 바울에게 아주 잘 전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혹시 우리들 중에 이것이 바울의 지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시피 예수님의 직접적인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바울이 찾아가서 가르침을 배운적인 없는 사람입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공회에 넘겨주는 핍박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 증거자로서 항상 자신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을 사도로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라고 한다면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알수 있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은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것 때문에 복음을 증거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바울이 지금까지 수고했던 사역이 수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 자기 자신을 소개하면서 “사도 바울”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자신이 사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인들간에 관계가 잘 형성되었고 또 교인들이 바울의 말을 잘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의 사역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고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바울의 사역이 헛되지 않고 열매를 맺기 까지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실라였던 것입니다. 실라는 바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데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복음을 증거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삶과 사역, 그리고 가르침의 의미가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배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현장감있게 이야기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울이 선포하는 복음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이 실라였던 것입니다.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예수님의 직접적인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의 삶과 사역 그리고 가르침을 잘 배우고 왔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복음을 잘 선포할 수 있도록 바울에게 예수님의 삶과 사역 그리고 가르침을 잘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증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서 거기에 알맞은 사람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이 넓을 것 같은데 참 그렇지가 못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서로 싸워도 술 한잔 먹고 화끈하게 풀고 금방 친구가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한번 싸우면 풀지를 않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서로 인사 한번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약점을 알까봐 말을 안하고 숨깁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오늘 우리가 바울에게서 배워야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다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약점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합니다.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을때 주님의 사역이 헛되지 않고 아름답게 열매를 맺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명을 감당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자신의 약점을 실라에게서 보완을 했습니다. 실라에게서 실제적으로 복음의 씨앗이 되는 부분을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사역을 이루어 갑니다. 자신의 사역이 헛되지 않고 열매를 맺어가도록 했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대신 채울수 있도록 열린 마음을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열린 마음을 통해서 주의 사역들을 헛되지 않고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은 하나님이 여전히 풍요러움과 넉넉한 은혜로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 사역이 헛되지 않고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실라에게서 채워 나갔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넉넉한 은혜로 승리하시고 복음의 귀한 열매를 많이 맺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