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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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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기도>
두려움 없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
춥고 불경기의 소식으로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이런 저런 일들로 답답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세상 앞에 떨고 서 있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소망으로… 천성을 향해 전진케 하옵소서.
오늘 예배드림으로 천국을 향한 발걸음에 새 힘 얻게 하시고
소망을 든든히 붙잡게 하시며 영육간에 병든 이들이 치료받고
성령의 역사에 가슴 뜨거움을 체험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힘든 가정, 무너진 일터, 사라진 희망에도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실 줄 믿습니다.
멀리 외국에 나가 있고, 객지에 나가 있는 성도들, 아픔으로 병상에 누운 환자들,
나라를 지키는 일에 동참하는 군인들…
기둥교회에 속한 이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 지켜 주시옵소서.
거룩한 주일, 부족한 종을 붙드시옵소서,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세상엔 답답하고, 기막히고, 한숨쉬며 탄식할 만한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기둥교회 모든 성도들은 희망을 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희망을 말하며 사십시다. 소망 중에 사십시다"라고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형제가 연합한 아름다움

생각지도 않았던 좋은 일이 생기면 감탄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생기면 감탄합니다.
너무나 좋은 일이 생기면 감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감탄으로 시작합니다.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것은 "얼마나 좋고 기쁜 일인가!"
(How good and pleasant it is … NIV) 라고 환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가정에/일터에…
이렇게 감탄할 일들이 많아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둥교회에도 이렇게 감탄할 일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 1절에 나오는 감탄의 이유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함께 살다보면 형제간에 다투는 일도 있습니다.
형제간에 속상하게 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울타리 안에서, 한 집에서, 가족이 함께 산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복된 일입니다.
형제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티격대며 서로 쥐어박고
내가 잘났다 네가 잘났다 다투기도 했지만, 가족이, 형제가 함께 사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찬송가 305장("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3절에 보면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 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고 했습니다.
이 찬송은 오늘 본문 말씀의 1절의 뜻을 잘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가족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서
더 이상 대가족으로 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이모가 무엇인지, 고모, 작은 엄마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가족이라는 피로 얽힌 관계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한 형제되고 자매되어 살아가는 대 가족으로 모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서 가능합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47절을 [쉬운성경]으로 보면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 뜰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함께 모여 기쁘고 순수한 마음으로 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늘어나게 하셨습니다." (행 2:46~47)

이 말씀을 보면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가족> 같았습니다.
함께 모이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러다 보니 기쁨이 충만하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고,
그 기쁨의 자리에 함께 하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많은 교회가 비난을 받고 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지금도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이룰 수 있었던 아름다운 모습을
예수님 이름으로 교회에서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교회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예수님 믿고 만나는 곳이 교회입니다.
아무리 비교해봐도 어울릴 수 없는 사람 같은데
예수님 믿고 어울릴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친구 될 수 없는 사람 같은데
예수님 믿고 친구 될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잘난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많이 배운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많이 가진 사람만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도 잘난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하고는 못 어울리겠다.
나는 그 사람이 있는 선교회에는 가기 싫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 잘났습니다. 싫어하는 그 사람이 천국가면 어디에 갈 건가요?
우리교회 건물에는 농아교회가 같이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식사할 때는 농아인들도 함께 식사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기둥교회에 가보니 장애인들이 많아서 못가겠다고 했답니다.
그 말한 사람이 사람입니까?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장애인입니다.
안경 낀 분들, 여러분 모두 시각장애인입니다.
저는 특별한 장애인입니다. 근시에, 난시, 돋보기까지 넣은 안경을 끼었습니다.
저는 목디스크 수술을 한 이후로 잠자리에 들 때면 아주 불편합니다.
부흥회에 나갈 때면 특별한 베개부터 챙겨야 합니다.
저는 다리가 불편해서 바닥에 앉아야 하는 식당에 가지 않습니다. 장애인입니다.
저는 그 말도 안되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얼마나 잘났습니까?
무엇이 그리 대단합니까?
왜 어울리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하나가 되어 어울리고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며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우리의 사명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연합하여"(in unity)라는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연합"함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귀(악마)를 뜻하는 'devil'은 헬라어 'diabollein'에서 온 것입니다.
'diabollein'은 뜻은 '동강내다, 떼어내다'라는 뜻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떼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목회자와 성도들과의 관계를
성도와 성도의 관계를… 떼어내려 합니다. 동강내려 합니다.
사탄은 교회도 동강내려고 합니다.
동강내면 평안이 깨지고, 평안이 깨지면 교회는 저절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떼어내는' 사람이 되시렵니까? 아니면 '연합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까?
여러분은 "선하고 아름다운", "연합"하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보배로운 기름이 넘쳐흐름 같고…

연합하는 일을 본문 2절에서는,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시119:2) 라고 했습니다.
연합하는 일이 "보배로운 기름"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기름이 아니고, "아론"의 수염으로 흘러내리는 기름이라고 했습니다.
아론의 예복의 깃으로 흘러내리는 기름은
제사장의 성별의식에 사용된 거룩한 기름입니다(출30:22~33).
기름은 아무 때나 쓰이지 않습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세울 때 사용하였습니다(삼상 16:13).
그들을 세울 때 사용되는 기름은 보통 기름이 아닌 <거룩함의 기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기름입니다.
이런 기름이 부어질 때 하나님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아론이 수염이 있었다니 얼마나 멋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나이 들면 머리카락을 희게 하십니다.
그 모습 그대로 멋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건강에 좋지 않은 염색을 합니다.
수염도 기를 수 있으면 기르세요. 참 멋있습니다. 저는 수염을 기르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 미국에 갔을 때 3주 동안 수염을 길렀습니다.
제가 볼 때는 멋있었는데 가족들의 반응은 별로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깎았습니다.
제 아들이 수염 기른 제 모습을 사진 찍어서 홈피에 올렸습니다.
몇 몇 분들이 그 사진을 보셨나 봅니다. 다음에는 더 오래 길러 보려고 합니다.
수염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아론의 수염으로 기름이 흘러 옷깃에까지 흐르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교회의 일에 불리움을 받아 일하게 되는 사람들은
교회의 제도와 조직에 따라 그리고 목사의 임명절차를 따라 세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기쁨과 감격으로 일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일할만한 능력을 주시고,
감당할 만큼의 은혜의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 맡은 일을 대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대충하는 것은 악한 것이고 게으른 것이라 책망 받게 됩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약, 부패, 살인, 게릴라의 나라로 알려진 남미의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ICM (International Charismatic Church) 이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의 쎄자르 카스텔라노스 목사님은
속회(주: 쎌 교회로의 전환을 의미)를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70개의 속회가 10년 만에 2만개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숫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교회를 통해
남미의 한 나라가 변화의 소망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교회 이야기를 쓴 조엘 코메스키가 그 교회를 찾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G12 이야기] 조엘 코메스키 저/정진우 역 | NCD | 2001년)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로 갑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믿음이 없는 택시 기사임에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변하거든요!"

교회의 조직이란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합니다.
저는 부흥회를 다니며 큰 교회, 작은 교회, 도시 교회, 농촌교회를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봐도 대부분 비슷비슷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조직되었느냐가 아니라,
그 조직에, 선교회에, 부서에 속한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는 사람들은 자신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변화시키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는 '더하기(+) 성도'가 있습니다.
그 사람만 들어가면 늘어납니다. 좋은 소문이 그 사람을 통해 납니다.
'빼기(-) 성도'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일 맡으면 늘어나는 것은 고사하고 줄어듭니다.
속회지도자를 맡기면 속도원이 줄고, 선교회 임원을 맡기면 선교회 회원이 줍니다.
'나누기 성도'가 있습니다.
자꾸 편을 갈라놓습니다. 자기 좋은 사람 아니면 이리 가고 저리 가고
이 속회/저 속회/이 선교회 저 선교회 옮겨다니며
가는 곳에서 또 사람들 사이에 틈을 만들어 냅니다. 분열을 만들어 나눕니다.
나중에는 더 이상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혼자 남습니다.
'곱하기(×) 성도'가 있습니다.
그 사람만 일 맡으면 사람이 늘어납니다. 곱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성도입니까?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가 빼고, 나누는 사람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빼기 성도나 나누기 성도도 나름대로 열정이 있습니다.
열정이 있으니까 빼고 나누어댑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열정, 자기 감정을 내는 열정, 자기 자존심을 세우는 열정,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열정… 이런 잘못된 열정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참 희한한 것이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느라고 열을 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할 때 열을 내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낮추시려고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 받은 80넘은 모세도 잘못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말로 열 받은 때가 있었습니다.
므리바에서 물을 낼 때 열받은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위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민 20:8)고 하셨음에도,
모세는 너무나 화가 나서 지팡이로 반석을 쳐버렸습니다.(민20:10)
그는 그 잘못된 감정 표현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열이 없으면 화도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열을 낸 것으로 인해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해도
자기 감정 억제 못하고 열을 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 사람은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저는 늘 말합니다. 두 가지 경우가 아니면 교회에서 큰소리 내지 말라고…
- 불나면 소리 질러야 합니다.
- 예수님 재림하시면 "할렐루야" 하며 소리치고 찬양하고 기뻐함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이 두 경우가 아니면 자기 감정 때문에 교회에서 큰 소리 내지 마십시오.
그것은 잘못된 열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정은 화목하고 평안한, 화평케 하는 열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정은 하나되어 연합하는 열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정은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열정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헐몬의 이슬 같은 복

3절에 보면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고 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는 일은 '헐몬산의 이슬'이 내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헐몬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해발 2,815m가 되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이 산은 갈릴리 북동쪽 64km 지점에 있어 요단강의 주요한 물 공급처가 됩니다.
산봉우리에는 일 년 내내 눈이 덮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산마루의 저온이 대기중의 수분을 급격하게 냉각시키기 때문에
야간에는 비처럼 대량으로 내리는 이슬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사실 때문에, 3절의 말씀을 해석하면서 신학자 커크파트릭(A. F. Kirpatrick)은,
"형제들이 하나되어 화목함이 (그 나라에) 주는 영향은
마치 이슬이 채소에 생기를 주는 것과 같다"고 해석했습니다.

헐몬산의 이슬은 많은 이슬을 말합니다.
많아도 보통 많은 것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이슬', 비처럼 내리는 이슬을 말합니다.
이 이슬이 "시온의 산들", 즉 이스라엘 모든 땅에 내리는 것입니다.
이 이슬이 생기를 줍니다. 이슬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좀체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슬은 식물을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합니다.

이스라엘처럼 건조한 땅에는 헐몬산의 이슬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천국백성으로 살며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며 사는 성도들도 이슬처럼
가정에, 일터에, 교회에… 다른 사람에게 살게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스프링클러(sprinkler) 같은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은 원래 사막입니다. 이스라엘 지역도 사막입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에 들어가면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집트 지역에는 나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집트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에 가면
거기엔 풀이 자라고 야자나무가 있고 곡식이 자랍니다.
요단강에 있는 물을 끌어들여 지하에 배수장치를 해서 스프링클러가 물을 뿜어 댑니다.
마치 비가 오는 것처럼 뿜어 댑니다. 그래서 잔디가 자라고 나무들이 자랍니다.
캘리포니아 지역도 사막이지만 물을 끌어들여 스프링클러를 통해 물을 뿜어내서
나무들이 있고, 풀이 있고, 집집마다 잔디를 기릅니다.
땅 속에는 보이지 않게 곳곳에 스프링클러가 있어 시간에 맞춰 물을 뿌려 주면
마른 잔디와 나무를 사철 푸르게 유지시켜 줍니다.

교회도 스프링클러와 같은 교인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건조함을 날려보낼 수 있는 스프링클러 교인이 많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지만 물을 내뿜고
다른 식물체를 살게 하는 스프링클러 같은 교인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 사람만 있으면 속회와 선교회가 살고, 부서가 살고 팀이 새로워지는
스프링클러 같은 사람이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스프링클러 같은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지 말고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기러기 나는 것을 보셨나요? 화면을 보세요.


 




기러기가 나를 때는 V자를 만들어 날아갑니다.
"까옥까옥" 요란하게 울며 날아가는데 시끄럽게 소리를 내는 것은
뒤쪽에 있는 기러기들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울며 날아가는 이유는 앞에 날아가는 기러기가
속력을 늦추지 않도록 격려하기 위해 뒤에 있는 기러기들이
마치 "힘내라~ 힘내라~"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러기들이 V자형을 만들어 나는 것은 앞에 있는 기러기가
날개를 휘저어 만드는 바람 파도를 탈 수 있기 때문이며
뒤를 따르는 기러기는 71%나 쉽게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러기들은 앞에서 날던 기러기가 지치면 뒤로 가고,
뒤에 날던 기러기가 앞으로 나오고… 서로 자리를 바꾸어가며 난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올해는 김집사가 회장이 되어 맨 앞에서 날아가고,
박집사는 뒤에서 "잘한다 잘한다~, 힘내라 힘내라~"하며 격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자리를 바꿔서 앞에서 회장하던 김집사가
뒤에 가서 다른 사람을 격려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회장을 할 때 앞서서 열심히 끌고 나가고, 다른 사람들은 뒤에서 격려해주고,
힘이 빠질 때면 힘을 북돋아 주는 소리를 낼 수 있다면 다 잘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러기떼처럼 자리는 늘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힘을 내도록 격려해 주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다.
'나 하나쯤 빠져도 되겠지' 하면 기러기 대형이 무너지듯이
우리의 선교회가, 부서가, 팀이, 교회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소리나지 않는 일꾼

성경에는 "형제가 연합"하는 일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일인가를 감탄하면서,
"보배로운 기름"과 "헐몬의 이슬"에 비유했습니다.
이 두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름이 흐를 때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이슬이 내릴 때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참으로 일 잘하는 사람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조용하게 일합니다.
스며들 듯 일하는 기름 "윤활유"가 되어 기계를 움직이듯이
다른 사람이 일하도록 돕는 기름 같은 사람입니다.

로마서 16장 3~1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를 도와 주었던 사람 26명의 이름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만약 제가 2005년의 목회를 정리하면서 저를 잘 도와 주었던 사람
26명의 이름을 적는다면, 여러분의 이름이 거기에 적히겠습니까?
로마서 16장의 26명 중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무명씨에 가깝습니다.
로마서 16장에만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숨겨진 일꾼들이었으나 사도 바울을 위해서는
"자기의 목이라도"(롬 16:4) 내 놓을 만큼 바울을 사랑하고 도와 주었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다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신일 목사를 위해 목을 내놓을 사람이 있을까?' 고개 숙이지 마시고 저를 보세요.
제가 제 아내에게
'당신은 나를 위해 목을 내놓을 수 있는가?'라고 물어 보고 싶었는데 참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목을 내놓으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몸은 좀 내놓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드리는 자리에, 기도하는 자리에, 봉사하고 섬기는 자리에…
여러분의 몸이 와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름내고, 얼굴 드러내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감사했던 사람들은 아무런 표도 나지 않게 일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보배로운 기름과 이슬처럼, 사도 바울이 고마워했던 사람들처럼 조용히 일하되
다른 사람들에게 일할 맛이 나게 하고, 살맛이 나게 하여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소금 같은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둥교회에 이런 일꾼들이 넘쳐나기를 소원합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많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려고 하면
힘들고 어렵고 갈등되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찬송가에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힘들고 어려우니 "내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여러분 때문에…
우리 모든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때문에…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참 멋있다. 아름답다.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하는
감탄의 소리가 나오게 할 수 없는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참 멋있다. 너희들을 보니
너희들의 선행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훗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아름다운 칭찬의 소리를 여러분 모두 들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신 하나님!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기쁨과 감사로 섬기는 자리에 몸이 와있는 복된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저들을 통하여…, 우리를 통하여…, 나를 통하여…
참으로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격찬의 소리가 날 수 있도록
연약한 우리를 도우셔서 힘있는 믿음의 생활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고신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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