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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탕자 이야기(1) - 홀로서기는 위험합니다.(눅 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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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 사람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둘째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큰아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셋 중에서 어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설명하느냐에 따라서 이 비유의 해석이 달라 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재산을 다 가지고 가서 허랑 방탕한 둘째 아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탕자의 모습 속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그 말씀을 무엇일까요? 

  1. 홀로서기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의 독립, 즉 자유를 선언했습니다.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하는 것은 홀로 서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신앙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 인간을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붙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15:4절에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가지는 줄기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이것은 생명, 즉 생존의 문제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수 22:5절에 보면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라고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에게 친근히 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친근히 한다는 말은 원어로 “다바크” 라는 말인데 “꼭 달라 붙어있다“ 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우리가 영원한 삶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꼭 달라붙어 있어야 합니다. 홀로 서기 또는 독립선언은 안됩니다. 주님을 붙들고 서야 합니다. 사단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인간들은 언제나 사단의 그 계략에 속아 넘어가고 있습니다.

  2. 하나님 없는 내 계획은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아무 계획이 없거나 또는 허랑 방탕하기로 했다면 아버지가 절대로 재산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형도 반대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에게 재산을 달라고 했을 때 아버지나 그 형이 안 된다고 반대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나름대로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을 어떻게 투자하여 얼마만큼의 이익을 얻겠다는 완벽한 사업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아버지와 형은 그를 믿고 그가 받을 상속 재산을 미리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사업 계획속에 아버지의 존재가 없었습니다.

  13절에 보면 그는 “먼 나라”에 갔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어디에서 먼 나라입니까? 그것은 아버지에게서 “먼 나라”입니다. 완전히 아버지의 간섭과 보호의 틀에서 벗어난 것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계획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우리의 의식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그는 먼 나라에 와있는 것입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먼나라에 계시지 않습니까?
  사 29:13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호11:2 에서도 호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외채고 잇습니다.
  이같이 멀리 떠난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돌아오라 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사 31:6, 사 44:22, 사 55:7,렘 3:12)
  대하 30: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저가 너희 남은 자 곧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에게로 돌아오시리라

  특히 행 14:15절에 보면 바울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바로 헛된 우상을 섬기던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함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그러므로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엡 2:13절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3. 한번 탕자라도 영원한 탕자는 아닙니다.
  성경은 한번 탕자가 영원한 탕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탕자는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아버지와 먼 나라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돌아왔을 때는 잃었던 모든 것을 다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에 받지 못했던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뜨겁게 느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고쳐서 쓰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한번 탕자는 영원한 탕자로 인식합니다. 전주 교도소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모범수로 출소하고 나서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다시 범죄하고 감옥에 오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한번 탕자는 영원한 탕자라고 생각하고 저 사람은 다시 죄를 지을 것이라는 선입관념에 사로잡혀서 취직도 안 되고 사람들이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때문에 모범수로 출소하고서도 다시 범죄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일 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실수와 잘못으로 크게 어려움을 겪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고쳐서 쓰셨습니다.
  호 14:4절에 보면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출 15:11절에서는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고 했습니다.
 
  육신의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혼의 질병입니다. 하나님은 패역을 고쳐서 사랑 하신다고 했습니다. 패역이란 타락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영적 행위입니다.
 
  육신의 질병 때문에 지옥 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교만과 패역은 지옥가게 하는 영적 질병입니다. 그 패역 영적 질병을 고쳐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뿐입니까? 즐거이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치료와 돌보심이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 우리의 잘못을 고쳐서 사랑하시고 쓰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한 번 탕자가 영원한 탕자가 아닙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는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빗나가고 잘 못 가던 길에서 하나님께로 유턴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회복시켜서 쓰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떠나 나 홀로서기는 위험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은 무너집니다.
  한 번 탕자라고 영원한 탕자가 아닙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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