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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사 2:1-5, 롬 13:11-14, 마 24: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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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림 첫 주일이요 교회력으로 새해 첫 날입니다. 네 주일이 지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인 성탄절을 맞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새롭게 기다리게 됩니다. 그래서 대림절 촛불의 첫 번째 불을 붙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미 오셨고, 지금도 계속 우리를 찾아오시고, 그리고 마지막 날 다시 오십니다. 여기에 대림절과 성탄절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성경 특히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와 다스리심이 온전하게 성취되는 때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날은 우리 인간이 창조 이래로 그토록 기다려 온 참된 평화 즉 “샬롬”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사실 인간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또 끝없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모순된 존재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이 땅의 평화를 소원했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왔습니다. 유엔이라고 하는 국제적인 기구가 그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땅에는 전쟁과 테러, 폭력과 투쟁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여기 인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는 결코 참 평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인간들이 그렇게 추구해 온 평화의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참된 평화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이루실 수 있다는 이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온 땅에 충만할 때 참 평화가 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천사들의 성탄 메시지가 “하늘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했습니다. 전쟁, 지진, 기근 등 말세의 징조가 끊일 날이 없는 오늘 이 지구촌에 해마다 맞이하는 성탄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항상 절실한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이 우주적 통치를 위하여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1. 사 2:3절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성경을 통하여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우리 인생 교과서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중요한 진리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그가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가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둘째로 성경은 인간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을 거역한 죄인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요, 구속 받아야할 존재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성경은 지난날의 역사를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과거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하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그 역사의 자취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그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은 메시야가 오시면 우리에게 “그의 길(His Ways)”을 가르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우리에게 가르치신다는 그의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고 우리를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죄의 문제요, 고통의 문제요, 죽음의 문제요, 영생의 문제입니다. 이 네 가지 문제는 인간이 반드시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오시면 바로 그 문제, 인간의 가장 궁극적이고 절실한 문제에 대하여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오신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장을 풀어서 말하면 “내가 참 생명의 길이라”고 하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맨 먼저 입을 열어 외치신 말씀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이 바로 복음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살고 구원받는 길은 우리 주님을 믿는 길밖에 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힘써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 복음을 들어야 하고, 이 복음을 믿어야 하고, 이 복음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그리고)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잘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업가가 사업을 위하여 투자하듯 그리스도인들도 신령한 유익을 위한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배우기 위하여 시간도 투자하고, 노력도 투자하고, 물질도 투자해야 합니다. 단지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만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양식을 위하여 이렇게 투자할 때 우리 인생은 더욱 풍성하게 될 줄 믿습니다.

2. 역시 3절에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고 했습니다.

신앙이란 듣고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대로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그 길로 행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길”이라고 하는 말은 오솔길, 사이길, 좁은 길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그 길이 좁고 험해서 사람들이 꺼리지만 사실은 거기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옛 선지자들과 성도들은 한결같이 이 좁은 길을 간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길을 갔고, 다윗이 그랬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 길을 갔고 바울이 역시 그 길을 간 사람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이 길을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이제까지 가던 옛길을 중단해야 합니다.

지난날 우리는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간다고 해서 무조건, 아니 뒤질세라 열심히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세상의 풍조대로 움직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이 흔들리는 갈대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열심히 달려가던 그 옛길에서 일단 멈추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따라 움직이던 그 삶을 중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의 첫 걸음입니다.

(2) 자기 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가치관에 변화가 와야 하고, 인생관 세계관에 변화가 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이전에 좋다고 생각하던 것이 이제는 분토와 같아서 버렸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사도 바울은 정말 옛 것은 지나가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3)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일로매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소망을 향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후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정체도 아닙니다. 전진이요 향상이요 발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대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우리 주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회개가 곧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력 새해를 맞게 되었습니다. 세월의 분수령이요, 우리 자신에게도 새로운 기회입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온전한 회개로 새 출발할 때 비로소 새해에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은총과 축복을 소우하게 될 줄 믿습니다.

3. 4절에는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사3:4을 보십시오. 메시야가 다스리시는 나라에서는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메시야가 다스리시는 나라의 참된 평화를 말합니다.

골로새서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하여 승리하심으로 이 평화를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교회가 감당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야말로 이 땅에 평화를 이루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 지극히 소수요, 세상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줄로만 알았던 그 남은 백성을 통하여 이 땅에 메시야를 보내 주셨습니다. 정말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지금도 이 땅의 남은 백성인 참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그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현대인들은 교회의 존재를 하찮게 생각합니다.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니까 이제는 종교의 시대 교회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성급하게들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이런 시대, 인간 상실의 이런 시대에 처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실 도구는 교회 밖에 없습니다.

여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칼이 아니고 창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무기입니다. 골리앗의 무기입니다. 그리고 그 무기는 이미 세상에 참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판정이 났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세상의 방법에 빠져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여전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평화를 이루는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시대 때, 그 무서운 박해의 시절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사람 7천을 남겨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찾으십니다. 주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면서 주님의 평화의 도구 될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실 때, 이것은 은총의 기회입니다. 깨어있는 사람만이 우리를 향해 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불과 함께 기름을 가지고 주님 맞을 준비를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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