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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딤후 4: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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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밍웨이의 대표작품인 [노인과 바다]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52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가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58년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인생의 삶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한 노인이 자기의 작은 배를 가지고 바다로 나가서 고기잡이를 합니다. 이 노인은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습니다. 84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노인. 하지만 노인에게는 언젠가는 꼭 거대한 물고기를 잡고 말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의 바램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는지, 85일 되던 날 노인은 그가 본 물고기 중에서 가장 큰 물고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노인과 물고기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노인이 물고기를 잡아본 수많은 경험에 의하면 그 거대한 물고기는 그 어떤 물고기보다 크고 멋진 놈이었습니다. 이 고기를 꼭 잡고 말겠다고 마음먹은 노인. 그리고 노인의 손에서 벗어나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물고기. 노인과 물고기와의 사흘동안의 혈투가 시작된 것입니다. 노인은 인내로서 물고기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고기뿐만 아니라 노인 역시 기나긴 싸움에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그 싸움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물고기를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용기를 냈습니다. 그 큰놈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바다를 포기한다는 것, 그런 생각이 노인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결국 노인은 자신과 그리고 바다와의 싸움에서 이겼고, 그 거대한 물고기를 낚았습니다. 그토록 소원했던 큰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노인의 인내와 용기의 결과였습니다. 노인은 단지 물고기와의 싸움에서이긴 것이 아닙니다. 노인에게 있어 물고기와의 싸움은 곧 자신과 그리고 바다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노인이 그 큰고기를 작은 배에 메어달고 사투를 벌리며 뭍으로 끌고 나오는데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뭍에 와 보니 그 큰고기는 앙상한 뼈 밖에 남은게 없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우리의 인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노인 어부가 생활을 하는 무대인 바다는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현실세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가 잡은 큰고기는 우리가 이루기를 꿈꾸는 것이요 우리의 소원이며 목표입니다. 이에 대해서 큰 고기를 뜯어먹고 헤치우는 상어 떼는 우리의 꿈을 침해하고 빼앗는 강탈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이에서 결국은 종말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소원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마지막 자리에 도달해 보면 허무한 것 밖에 남는게 없다는 것을 말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절기상으로 소설이 가까운 때입니다. 소설은 입동을 지나 대설로 가는 중간에 있는 절기입니다. 소설은 11월 22일입니다. 처음으로 얼음이 얼고 첫눈이 내리기 시작해 겨울의 징후가 나타나는 때가 소설이라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소설 추위는 꾸어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라는 제목으로 말씀으로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사도바울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생의 겨울 날을 느끼면서 그 마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계절적으로도 겨울이 오고 있음을 찬바람을 통해서 느끼면서 그의 생각을 잠잠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말씀 가운데는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고기잡이 노인의 모습이 사람낚는 어부가 된 바울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토록 생명을 걸고 전도하고 양육하고 함께 한 사람들이 바울을 버리거나 배반하거나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해를 입혔습니다. 마지막 겨울을 맞고 있는 자리는 따스하고 포근한 곳이 아닌 춥고 어두운 감옥이었으며 병은 깊어가고 몸은 쇠약해갔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두드러지게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문장들이 "나를 버리고 갔다",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며",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다" 라는 것들입니다. 대부분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 낙을 위해서 바울을 버렸고 바울을 떠났고 바울을 배신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복음 때문에 바울의 겉을 떠나가야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와는 반대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 낙을 위해 주님을 떠나고 정말 눈물 흘러 그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들을 저리버리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에 대해서 허무해하고 있고 쓸쓸해 하고 있으며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곧 이런 모든 허무함과 쓸쓸함과 배신감 등의 온갖 감정들을 잠잠히 소화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잠잠히 자신의 겨울을 이렇게 맞게 했습니까? 그것은 주께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시고 사용해주셨다는 것, 그리고 그가 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갚으리라는 것, 그리고 주께서 사자들의 입에서 건지셨으며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 세상보다는 장차 들어갈 천국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하고 화해를 시도하고 전에는 해롭게 여긴 것도 이제는 유익하다고 여기며 관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당한 일들이 디모데나 주와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교훈만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전에 급한 나머지 챙기지 못하고 남에게 맡겨 놓은 겉옷을 찾고 가죽 종이에 쓴 것을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찾지 못하고 남에게 맞겨둔 것들, 잊고 살았던 것들을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자꾸만 내일 하리라, 나이가 더 들면 하리라. 뒤로 미뤄둔 일들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젊은 혈기로, 과욕으로, 혹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서 어긋나버린 관계들을 바르게 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생각할 때는 옳은 일이었고, 정의로운 것이었지만 그것을 고집함으로 인해서 발생한 이별과 돌아섬과 분리와 원수 맺은 것들을 이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고 달래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움과 성숙함과 어른스러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된다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겨울이 오기 전에, 그리고 그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화해를 시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당한 일을 신앙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간증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연의 겨울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의 겨울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다면 그 겨울 맞을 준비를 하고 그 겨울을 당할 때 기쁨으로 당할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겨울을 기쁘게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겨울 전에 빨리오라는 재촉이 두번이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겨울 준비를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 올 수 있었던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송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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