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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약 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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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수영선수가 잠이 오지 않아 수영장으로 갔습니다. 달빛 아래서 수영을 즐기려 다이빙대에 올라서서 두 손을 벌렸습니다. 달빛에 자신의 그림자가 커다랗게 보입니다. 그런데 팔을 벌린 까닭에 십자가 형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형상을 보는 순간 그는 갑자기 십자가의 의미가 생각납니다. 이어 잊어버렸던 찬송이 생각나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그 후 수영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수영장 바닥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수영장에 물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관리인이 청소하려고 물을 빼 놓았던 것입니다. 조금 전에 자신이 뛰어 내렸더라면 틀림없이 죽었으려니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였습니다. 달빛에 비추인 십자가가 자기를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수영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았던 자신을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함으로 나를 살려주셨구나 생각하며 감사하였습니다. 그 날 밤 그는 자신의 영혼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간증을 통하여 “그 날 밤, 나는 영육 간의 이중의 구원을 경험했노라” 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면 할수록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합니다. 그러기에 마귀의 음성을 듣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모든 비극과 불행은 하나님과 멀어지는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73편 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 모든 행복의 원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보다 더 큰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최대의 소원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평생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아가기 원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원어에 “가까이 하라” 는 단어는 “엥기사테”입니다. 원 뜻은 “쥐어짜다” 입니다. 가까이 함이란 아주 쥐어짠 듯한 밀착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쥐어 짤 만큼 압축되어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가까워 밀착될수록 좋은 것입니다. 같이 찬양합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부디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첫째로 하나님께 순복하여야 합니다

어느 수도원에 수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수도원은 지원자들에게 한 가지 시험을 내 주며 그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수도자의 길을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수도원에서 준 문제는 “밑 깨진 항아리에 물 붓는 것” 이었습니다. 지원자들은 옆에 있는 웅덩이에서 물을 길어다가 항아리에 부었지만 물이 다 새어버리고 말자 불평하며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지원자가 남아서 하루 종일 물을 길어다 부었습니다. 붓고 또 부어도 밑이 깨진 항아리는 채워지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묵묵히 같은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하루가 저물 무렵이 되자 웅덩이가 바닥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 바닥을 드러낸 웅덩이에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상자를 열자 거기에 “순종” 이라는 글자가 쓰인 종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지원자는 마침내 시험을 통과하고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때로는 밑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 같아도 자기생각과 주장을 버려야 합니다. 본서를 기록한 야고보는 모든 다툼의 원인은 자기주장에서 시작된다고 지적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자기를 주장하는 데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툼을 극복하는 비결은 속히 자기 주장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본문 7절에 기록된 ‘순복할지어다’ 라는 동사는 헬라어 ‘휘포타게테’입니다. 전치사인 휘포(아래)와 동사인 탓소(놓다)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이는 주로 군대에 사용되는 용어인데 그 뜻은 ‘하나님 아래 자신을 두는 것’ 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아래에 자기를 두어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기주장은 문제를 가져오나 자기주장의 포기는 치유와 해결을 가져옵니다.

마귀에 해당되는 ‘디아블로’ 는 어찌하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케 하여 자신을 드러나게 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순복을 훼방합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마귀는 자연인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이나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주께서 피로 사신 성도들을 절대로 해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본문은 힘차게 외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적극적으로 마귀를 대적함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아래 자신을 두어 자신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정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복하는 성도가 될 때 하나님이 더욱 가까이 해주십니다.

둘째로 마음을 성결케 하여야 합니다

탄광촌을 방문한 어느 젊은 목사가 탄광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어둡고 더러운 갱 안의 통로에서 아름답고 하얀 꽃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목사님은 광부에게 “어떻게 이 시커먼 탄광에서 이와 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광부는 “탄가루를 그 꽃에 부어 보라” 고 하자 목사님은 그대로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탄가루가 꽃잎에 닿자마자 가루들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꽃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꽃잎이 너무나 매끄러웠기 때문에 탄가루가 꽃잎에 붙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의 환경에서 살지만 하나님께 속한 마음을 품어 죄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오염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이 갱 안에서 피는 것처럼 믿음의 꽃을 피우고 살아야 합니다. 본문 8절은 이것을 가능케 하는 비결을 소개합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에서 손을 씻었습니다. 손은 부패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이 서기를 원한다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손을 씻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외적인 행동보다 내적 마음을 더 원하십니다. 손만 씻음이 아니라 마음도 씻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한 보혈로 씻기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두마음을 품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단 마음을 가지라고 명하십니다. 이는 마음의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의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의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세상을 향한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두 마음은 단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의 단 마음은 순수한 마음이며 성결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마음을 성결케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내 방식과 내 마음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속여 오지는 않았습니까? 이제 마음을 성결케 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합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하찮게 여기는 것을 하찮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을 가짐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 앞에서 낮추어야 합니다

요한 세바스챤 바흐는 1,100 여곡 이상을 작곡한 작곡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죽기 몇 달 전까지 실명상태로 악보가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작곡을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코랄은 “주여 당신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입니다. 이 곡을 끝으로 바흐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음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은 경건한 음악과 함께 하신다” 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1,100여 곡이 넘는 작품의 끝에 그는 항상 S.G.D라는 서명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Soli Gloria Deo” 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란 뜻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Soli Gloria Deo!”.

10절을 보면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고 했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는 겸손한 성도만이 하나님의 높임을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행위는 ‘주 앞’이 되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라틴어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 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게 합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것도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사회생활도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가정생활도 하나님 앞에서 해야합니다. 모든 인간관계도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 앞에서 낮추어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머리 숙이고, 예수 이름으로 자신을 낮추며 예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이것이 겸손한 모습입니다. 겸손은 결코 나약함이 아닙니다. 겸손은 결코 비굴함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추는 것입니다. 이처럼 낮추며 겸손할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으로 변하게 됩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공적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묘비에는 간단한 비문을 남겼습니다. “윌리암 케리, 1761년 8월 17일 출생, 1834년 6월 9일 죽다. 가엽고 비천하고 연약한 벌레 같은 내가 주님의 온유하신 팔에 안기다” 라고 새겼습니다. 그는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다가 하나님께로 간 사람입니다.

한 시대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축복을 받았던 사람들은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소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생애를 살아갈 때에 모든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길입니다. 아무리 고난과 고통이 와도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기적을 일으킨 사람들의 공통점은 시간마다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디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후로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위로부터 주시는 풍성하신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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