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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추(晩秋)의 뜨락 (고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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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여름은 땀이 흐를 사이도 없이 증발해 버립니다. 그 무엇에든 한두 번쯤 유혹에 넘어간들 그 누구도 탓할 리 없을 만큼 힘들었던 우리의 여름이었습니다. IT최강국, 세계 10대 도시 중에 하나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은 그만큼이나 단조로운 일상이었습니다. 서울의 만추는 적은 산소로 1,500만을 호흡시키느라 지금도 숨이 찹니다.

만추는 호수를 담은 하늘과 자연의 옷 벗는 소리에 주야로 시끄러운 계절입니다. 호수를 담은 하늘에 목을 담그노라면 잔잔한 하늘 물결을 타고 그 풍성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가을 타작마당에서 농부들의 이야기는 밤을 기다립ㄴ다. 그 수에 관계없이 밤에 만난 이웃들과 숱한 화제가 오가는 동안 밤이슬에 대지는 무거워만 가는 계절입니다.

별빛이 야공에 반짝일 때면 저마다 농부들은 자신의 몫에 숙명의 노래를 부르며 눈물지우는 계절입니다. 만추는 겨울의 동면과 봄의 파종과 여름의 성장이 가져다주는 훈장입니다.
본문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연보의 원리를 교훈하면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했습니다.

Ⅰ. 씨를 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계절입니다.

본문 9장 10절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씨'는 농부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농부는 그 해의 추수에서 다음 해의 씨를 좋은 것으로 준비합니다. 씨와 먹을 양식은 하나님이 풍성하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55장 10절에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씨를 심어야 합니다. 좋은 씨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25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씨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를 뿌릴 우리의 밭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8절에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씨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참으로 그는 한 알의 밀알이십니다.

Ⅱ 최상의 밭에 심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 이 남는 계절입니다.

1) 길가에 씨를 뿌려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13장 19절에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무지를 길가에 뿌린 씨라고 했습니다.

2) 돌밭에 뿌려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13장 20-21절에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흙이 얇게 덮인 돌밭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에 씨를 뿌리면 싹이 나는 듯하지만 햇볕이나 심한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싹이 자랄 수 없는 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히려 씨가 빨리 나서 감격적이고 희생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뿌리를 내려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곧 옛날로 돌아가 버립니다.

3) 가시떨기에 뿌려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13장 22절에 {가시 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얼마 동안은 믿는 듯하지만 결국 믿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미 뿌려진 씨들로 식물들이 엉겨 있는 복잡한 땅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자신의 환경과 처지에 따라 한없이 요동하는 사람입니다.

4) 좋은 땅에 뿌려야 됩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좋은 땅}이란 다른 식물이 없는 순수한 땅입니다. 좋은 땅은 씨를 받아 성장시킬 수 있는 수용력이 강하고 비옥한 땅입니다. 이런 유의 사람은 그가 듣기를 원하고 들은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행동합니다. 이런 유의 사람들은 말씀하신 자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좋은 땅과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성경은 세상 사람들 중에 이런 마음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땅을 만들고자 하면 이 밭이 기경(起耕)되어야 합니다.
이 밭을 기경하는 것도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결국 좋은 씨는 옥토에 심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씨는 좋은 땅에 심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열매를 맺는 분량은 다르더라도 무엇으로든지 결실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Ⅲ. 적기에 심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 계절입니다.

전도서 3장 2절에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라고 했습니다.
심는 자는 종자를 파종할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농부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 중에 하나입니다.

1) 어린 아이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9장 48절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고 했습니다.

2) 청년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서 12장 1절에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3) 노년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71편 18절에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심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이 환난을 당할 때 천재지변으로 환난을 당할 때 소망의 예수를 심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2절에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전도할 때가 인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서 계속해서 말씀의 씨를 심으면 되는 것입니다.
디도서 1장 3절에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오늘 이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유치부의 때, 유년부의 때, 초등부의 때, 중등부의 때, 고등부의 때, 대학부의 때, 청년의 때, 장년의 때, 노년의 때가 그 때를 따라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단계를 밟는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루의 때, 일주일의 때, 한달의 때, 한해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행사는 택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를 심기 위한 수단의 때로 선용되어야 합니다.

Ⅳ. 적게 심고 많이 심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 계절입니다.

본문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적게 심는 자'에 대한 '적게'는 헬라어로 '인색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뿌린 자가 많이 거두는 것은 아주 평범한 진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강철 왕 카네기 아내는 그의 회고록에서 자기 남편은 남을 위하여 배려할 뿐 아니라 상대가 누구이든지 인색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심기는커녕 씨까지 까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무지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씨는 먹는 것이 아닙니다. 씨는 반드시 다음 해의 파종을 위해 잘 간수했다가 이듬해에 심는 것입니다. 씨를 먹으면 결국 다음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인색한 사람은 금생과 내세에 있어서 받을 상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19-20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33-34절에도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해 헌금에 대한 교훈을 구체적으로 교훈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많이 심어야 많이 거둔다는 원리는 연보(捐補)가 축복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원리는 모든 곳에 광범위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씨는 소중한 것입니다. 씨는 소망입니다. 씨는 약속입니다. 씨를 심는 운동은 아름다운 운동입니다.
예배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공적인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의 씨입니다. 기도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기도는 풍성한 응답의 씨입니다. 물질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십일조와 정한 각종 연보는 재물과 부요의 씨입니다. 봉사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한 봉사는 상급의 씨입니다.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교육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씨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씨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씨는 좋은 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으라고 주신 것일 뿐만 아니라 풍성한 결실을 약속한 씨입니다. 우리가 씨 뿌릴 밭은 좋은 밭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씨를 심을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잠언 11장 24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많이 거두려고 하면 많이 뿌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고린도후서 8장 2절에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20절에도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11절에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5절에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교인들이 각자가 작정한 연보입니다.
마가복음 12장 44절에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3절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라고 했습니다.
심는 씨도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도서 11장 1절에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겨울 문턱에서 마지막 힘을 다해 보았건만 마침내 길바닥에 떨어져서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르는 소속 불명한 바람결에 뒹구는 낙엽을 생각합니다. 떨어진 낙엽은 밟히기를 계속하더니 뒤집혀서 또 밟히다가 마침내 흔적조차 없어져 버립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인생에다 비유하면서 쓸쓸함과 고독함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인생무상(人生無常),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인생은 낙엽일 수 없습니다. 인생은 심은 대로 거두는 부활하는 낙엽입니다. -아멘 -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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