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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스로 있는 자 (출 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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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도 한 달밖에 남지 남았습니다. 이때가 되면 허전함을 느낄 이유들이 더 많아집니다. 성탄절이 가까울수록 혼자 있는 이들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선물 광고가 넘쳐납니다. 멋있는 옷들이 많아요. 좋은 집도 있고요, 기막히게 아름다운 차도 많습니다. 뭐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무능한 느낌이 일어날 수 있어요. 마음이 어두워지기 쉽습니다.

최고 부자의 막내딸이 자살했습니다. 유산이 2천억 원이나 된답니다. 평생 죽도록 일해도 1억원도 가질 수 없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26세 처녀가 벌써 그 많은 재산을 가졌습니다. 그뿐이 아니지요.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몇 십 배 더 많이 가질 수 있었어요. 별로 노력을 안 해도 말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목표를 벌써 다 이루었어요.

교육도 최고로 받아 이미 여러 면에서 단연 실력자입니다. 배경을 통해 오는 권력도 대단할 것입니다. 아무 남자나 인물 좋고 똑똑하다고 결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사진 보니 인물도 아름다웠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분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전 세계 인구의 99%였으리라 믿어집니다. 인류가 목표로 달려가는 대상이지요.

1. 채워질 수 없는 공간

그런데도 세상은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직하면 자살을 선택했겠어요? 그 많은 재산과 배경과 실력으로도 안 되는 게 인생입니다. 인류 전체가 부러워하지만 본인은 홀로 목을 매야하는 처지였어요. 몰라서 사람들이 뒤 따라 죽도록 달려가지만 가본 사람은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속지 말아요. 여기까지 와도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최고위층 자살 사건은 꽤 많습니다. 현대 회장이 그랬지요. 유명한 여배우가 그랬습니다. 권력의 고위층에 있던 이도 그랬습니다. 회사의 고위직에 있는 이들도 여럿이 그랬습니다. 사람은 웬만해서는 자살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살 힘이나 이유가 없다고 할 때 일어나는 마지막 일입니다. 많이 가져도 행복이나 삶의 힘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심각한 질문입니다. 모든 면에서 많이 가져도 이러면 우리는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합니까? 그리고 도대체 산다는 건 무엇입니까? 죽도록 노력해서 결국 얻는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오늘도 힘든 세상에서 어렵게 어렵게 하루를 보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픈 가슴으로 나온 분들도 있어요.

독신인 분은 결혼을 아름답게 생각합니다. 부부가 나란히 걷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고 “여보”라는 말 만 들어도 약이 오릅니다. 힘들 때 서로 격려해주고 누가 욕하면 같이 싸워주고. 한 마디로 좋은 점만 상상합니다. 결혼 때문에 해야 할 힘든 일은 생각 안 해요. 결혼 후 행복은 둘째로 치고 그럭저럭 사는 커풀 조차 1/3이 안 된다는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결혼을 목표로 달려가고 안 되면 자살하는 이들도 많아요. 앞에 말한 분도 그렇습니다. 재벌이 아닌 평범한 총각과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도 자살의 큰 이유였다고 추측을 합니다. 결혼뿐인가요? 학위도 그렇고 진급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사모하고 그것을 얻으면 행복해지리라 막연히 목을 걸고 있어요.

정리하자면 사람 속에는 텅 빈 공간이 있습니다. 누구나 항상 느껴요. 그걸 채우려고 평생 뛰는 것입니다. 돈으로 명예로 결혼으로. 아무리 해도 안 채워질 줄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허전함이 덜해질 줄 알고 평생을 속아서 뛰어다닙니다. 성탄절이 가까워오면 그 공간의 허전함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분주히 다니고 실수도 많이 합니다.

교회 나오는 이유도 그 텅 빈 공간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리라 믿고 옵니다. 열심히 기도하지요. “이것 주고 저것 주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 공간에다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채워주시는 신이 되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채워주셔도 여전히 오늘도 내일도 채워달라는 기도뿐입니다. 사실상 하나님도 그 공간은 채울 수가 없어요.

2. 스스로 만족하는 이

오늘 말씀의 모세를 보세요. 그도 어느 정도 세상의 것들을 다 맛보았습니다. 왕자로 최고대우를 받으며 40년을 보냈어요. 그리고는 살인자로 도망합니다. 광야에서 거의 아무 것도 없이 40년을 보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던 40년에 비해 뒤의 40년은 더욱 허전한 삶입니다. 그가 사는 광야에서보다 그의 가슴에 부는 찬바람은 더 큰 것이었어요.

어느 날 모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만나는 방법도 특이합니다. 광야에 있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도 나무는 계속 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나무가 있으면 에너지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열과 빛을 내지만 아무리 태워도 없어지지 않는 나무이니까요. 하도 신기해서 모세가 가까이 접근합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이렇게 모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극적인 장면 속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름을 물어봅니다. 그냥 신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말해줍니다. 이름이 놀랍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스스로 있으니까 자기 속에서 모든 필요함이 공급됩니다. 그러니까 나무가 하루 종일 불탈 수 있습니다. 태양처럼 영원히 연료 없이 탑니다.

스스로 있는 존재, 그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세상의 모든 신은 시작이 있었습니다. 제우스도 옥황상제도 부처님도 다 없었던 시절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시작이 없습니다. 스스로 있어요. 누구의 도움이 필요 없어요. 스스로 있습니다. 애인도 자식도 필요 없어요. 스스로 만족합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필요 없어요. 그 속에서 다 나오니까요.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속에 텅빈 공간이 있어요. 늘 찬바람이 일어납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계속 무엇인가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 기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돈을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다른 사람들이 내게 봉사하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그 구멍은 너무 큽니다. 아무도 아무 것으로도 그 구멍은 메울 수 없어요.

그러니까 만족이 없는 겁니다. 거기에 온 우주의 좋은 것을 다 넣어도 그 자리는 채워지지 않는 겁니다. 인류의 역사는 그 자리를 채우려는 몸부림입니다. 하나님으로 채우지 않고 다른 아무 것을 넣어도 허전함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혼하고 돈벌고 높은 자리에 가도 별 수 없어요. 하나님을 모셔 들이면 그 공간이 실제로 채워집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 구멍이 우주보다 넓어도 충만히 채우십니다. 그런 다음에야 세상 좋은 것들이 제대로 사용됩니다. 모세는 자기 속에 채워진 하나님 힘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스스로 있는 자”의 힘을 공급하십니다. 모세는 그 힘으로 애굽 왕을 제압하고 홍해를 갈랐습니다. 40년간 이스라엘을 인도했어요.

먼저 허전함이 어디서 오는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풀어 말하면 이래요. “애인 없거나 결혼 안 해 외로움이 아니요, 돈이 없어 가난이 아니다. 몸이 아파 병들고 늙어서 몸 마비되는 게 아니다. 있을 것이 없어서 힘들고 허전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3. 하나님을 즐기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적용해야 합니다. 기갈이 사라집니다. “스스로 있는 자”께서 스스로 못 있는 우리 속에 힘을 발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는 무엇이 부족해 천지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랑과 존경 받으려 인간을 만들지 않았고 헌금과 예배 받으려 신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가진 기쁨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 기쁨대로 만물이 순종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은 외로우니까 결혼하려고 합니다. 그런다고 외로움이 없어지나요. 아쉬우니까 돈을 법니다. 돈 있다고 아쉬움이 없어지지 않아요. 힘 좀 쓰려고 권력을 얻으려 합니다. 동호회에 가서도 회장하고 총무하려고 합니다. 그런다고 허전함 메꾸어지지 않아요. 세상이 다 그렇게 미쳐있어요. 스스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요.

“스스로 있는 자”를 모셨다는 의식으로 살아보세요. 이상스럽게 힘이 납니다. 갈수록 그 의식이 마음을 넉넉하게 만듭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결심하고 노력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에서 그렇게 만들어주십니다. 술 담배를 끊거나 성질을 차분하게 하거나 좋은 인격을 만드는 것, 모두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합니다. 믿음의 의식이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유지해 보세요. 사람이 붙어요. 돈도 붙고요. 그러니까 애인이나 돈으로 행복하려 하지 마세요. 오히려 행복해서 애인이나 돈이 오게 하세요. 그러면 그들에게 매달리지 않습니다. 애인에게 봉사하고 사랑하지요. 돈으로 좋은 일을 하게 됩니다. 권력으로 자기 목숨 내놓고 사람들을 유익하게 합니다. 일의 순서가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넉넉함으로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있는 자” 되려고 하나님을 배반하자 넉넉한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목숨을 줍니다. 그래도 부족함이 없어요. 계속 주고 또 주는 겁니다. 정말로 태양처럼 영원히 뜨겁게 사는 겁니다. 지금 하나님은 나를 “스스로 있는 자”의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으려면 단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어요. 돈 많이 벌고 최고로 잘난 애인을 구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적은 돈으로도 큰일을 합니다. 스스로 만족하니까 외롭지 않아요. 외로운 사람들이 기댑니다. 무엇이나 모든 것을 잘 이용하고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이 그러셔요.

그분은 예수 안에 들어와 “스스로 있는 자”의 힘을 발하셨어요. 그래서 예수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풍랑을 잠잠케 했습니다. 수천 명 굶주린 백성을 먹였습니다. 지금 그 “스스로 있는 자”는 믿는 내 속에 구체적으로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처럼 위대한 일 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그를 즐기세요.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 덕분에 나도 스스로 있을 수 있다는 의식을 유지하세요. 작은 일부터 훈련해보세요. 위로 필요할 때 위로를, 능력 필요할 때 능력 주심을 믿으세요. 그의 기쁨이 내 기쁨이라 생각하세요. 그의 건강과 풍요로움이 내 것이라 하세요. 보이는 상황은 달라도 그렇게 주장하세요. 그럴수록 우리는 스스로 있는 자가 되어갑니다.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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