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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여 !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시 80: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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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은 여러모로 어수선한 느낌이 든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주간이었다. 삼성회장의 사랑스러운 딸이 뉴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렇게 많은 돈이 있고, 세계의 경제를 움직이는 힘있는 사람이라해도 사랑하는 딸의 죽음 앞에 침통한 마음은 같을 것이다. 도청 사건으로 인해서 검찰에 조사를 받아왔던 대학교 총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 지금은 대학교 총장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 앞에 교육자로서 살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줄기 세포의 연구, 노벨상을 받게될 확률이 많을 정도로 기대를 모았던 황우석 박사의 침통한 모습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보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게 된다. 돈이 많은 삼성회장도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경험할 수 있고, 권력과 명예를 갖고 있었던 대학교 총장도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어찌할바 모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과학의 최첨단을 겪고, 생명공학에 선두 주자로 있었던 사람도 윤리적인 문제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스라엘의 역사에도 이러한 아픔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다. 80편 8절 말씀에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었나이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정복하고, 번성하고, 발전하고, 많은 나라에게 영향을 주고, 힘있고 영향력있는 나라가 되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나라가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하시옵나이까?
마치, 대기업의 회장이 온 세계에 많은 반도체를 수출하고, 영향력있는 나라가 되었는데 왜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하였는가? 대학 총장이 되고 영향력있는 사람으로 잘 나가는 나를 왜 이렇게 초라한 모습이 되었는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데 왜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가?
이러한 경험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라져 버리면 되는 것일까? 내가 하는 일을 모두 내려 놓고 초야에 묻혀 있으면 되는 것일까?

본문은 이러한 상황에 있는 우리를 향하여 주시는 메시지이다.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힘을 잃고 나라를 빼앗겼다. 주권을 모두 잃어버렸다. 숲 속의 멧돼지들에 의하여 먹히는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 이럴 때에 시편기자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한 해답을 찾는다. 나라를 빼앗겨서 멧돼지의 먹이가 되었을지라도 그 원인을 다른 데에서 찾지 않았다. 그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분명히 그들은 나름 데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군사적인 힘이 약해서 나라를 빼앗겼다. 정치를 잘못해서 나라를 빼앗겼다. 국민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서 빼앗겼다. 이런 식으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근본적인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분명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구체적인 문제도 회복시켜 주신다는 점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여기에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대답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주신다. 여기에 놀라운 진리가 담겨져 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그곳에 마음데로 움직일 수 없는 중풍병자가 있었다. 친구 네 사람이 이 환자를 데리고 예수님에게 찾아왔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있어서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그 중풍병자가 누운 곳에 상을 달아 내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께서 그 환자의 중심을 보시고 죄를 용서해 주셨다. 죄는 무엇인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는 것이 죄이다. 죄의 용서함을 받아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죄 용서를 받아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예수께서 이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시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육신의 문제도 회복시켜 주셨다.

성경에 보면 이런 공식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께서 죄 용서함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그 다음에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풀어지고 회복되는 것을 발견한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이 여인의 마음 속에는 예수의 옷자락만 만져도 깨끗하게 고침 받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향하여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구원의 역사는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요, 그 결과 평안도 주시고 몸이 고침 받는 건강도 주셨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가 살면서 깊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질 때가 있다.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경험할 수도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면서 깊은 시름에 잠길 때도 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하여 손가락질 하는 괴롭고 침울한 밤을 홀로 지내야할 때도 있다. 이럴 때에 어떻게 하겠는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질 줄로 믿는다.

어떤 시련이 있어도 믿음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그 자리를 지키라. 어떤 시련이 있어도 순종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그 자리를 지키라.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겠는가?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그 대답을 찾는다. 먼저, 나를 회복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확신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다른 방법을 통해서는 회복될 수 없나이다. 오직 당신 만이 나의 구원이시오, 오직 주님 만이 내 삶의 해결자가 되신다는 믿음의 고백이 필요하다.

어떤 환자를 방문한 의사가 있다. 그 환자는 고통이 심해서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오자마자 물었다. “당신은 나를 전적으로 신뢰합니까?” “그럼요, 선생님, 전적으로 신뢰하고 말고요!” “그럼 됐습니다. 이제 당신이 먹고 마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세요.” 환자가 의사의 지시대로 알려준다. 그러자 의사는 환자가 그 음식들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음식을 포기하고 자신이 보내줄 약을 복용하겠는지를 묻는다. 시키는 대로 무엇이나 하겠노라는 환자의 대답을 듣고서 의사는 돌아간다. 며칠 후에 의사가 다시 방문했는데 환자의 병세가 악화된 것을 알게 된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병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의사가 자세히 알아본 결과 환자는 예전에 먹었던 음식을 여전히 먹고 있었다. “약은 드셨나요?” “한번 먹어보았지만, 맛이 고약해서 중단했답니다.” 그러자 의사는 환자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았음을 알고서 서글퍼하며 떠난다. 신뢰 없이는 환자에게 아무런 처방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하고 그분의 지시대로 해야 한다. 나를 회복시켜 주실 분은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이심을 신뢰할 때에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심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주신다. “주여 우리를 소생하소서.”

욥을 보라. 욥은 많은 것을 가졌던 부자이다. 그러던 욥이 재물도 빼앗기고, 자식들도 잃게 되는 엄청난 고난을 당한다. 욥의 친구들이 와서 너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 묻는다. 오히려 그 하나님을 부인하라고 빈정거리는 말까지 내뱉는다. 그러나 욥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어도, 남은 것이 하나도 없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욥은 믿음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욥기 42장에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는다고 고백한다. 하나님 앞에 분명한 신뢰의 고백이다. 자신의 죄의 고백이다.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 졌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경험했다. 어떤 상황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던 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였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의 상황이 지금 어떤가? 고통 때문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부인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태중에 있는 생명은 엄마와 연결된 탯줄이 끊어지면 죽는다. 우리 인생의 탯줄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돈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건강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명예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소중한 탯줄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생시켜 주신다.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얼마나 소중한 고백인가?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면 안된다. 주에게서 물러간다고 해결될 것 같은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주에게서 물러가지 말라.

“이럴 땐 조심하세요!” “만약 여러분이 기도보다 더 큰 즐거움을 발견한다면, 성경보다 더 좋아하는 책을 발견한다면, 교회보다 더 좋은 장소를 발견한다면, 주님이 베풀어 주신 식탁보다 더 좋은 식탁을 발견한다면, 예수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천국보다 더 좋은 희망을 발견한다면 여러분은 신앙에 경보를 울려야 합니다.” 내가 지금 믿음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가 늘 확인하며 살자.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어떤 시련 가운데에서도 회복시켜 주시고, 소생시켜 주시는 은혜가 임하게 될 줄로 믿는다. 아멘 (곽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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