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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늘 평안하세요 (살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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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만만치 않다. 힘에 겨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나라까지 정신 차리지 못하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안정을 찾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분명히 썰물이다. 부풀었던 잘못들이 빠지느라 고통스럽고 어렵다.

그러나 희망이 있음은, 썰물 뒤에는 반드시 밀물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넘어져 있고, 사방으로 포위당해 있고, 어찌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어도, 잊지 말라. 우리들은 복되고 소중한 존재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존재다.

이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엄청나게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이다. 그러므로 힘을 내십시오. 우리는 넘어질지언정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절망이라고 여겨지는 그 벼랑 끝에서, 곧 소망의 빛이 환히 비쳐올 것이다. 우리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꿈을 꾸시기 바란다.

사람들에게 꿈(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모두 행복하시기 바란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겠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로또복권에 당첨되면, 행복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요?

MBC ‘시사매거진 2580’은 로또100회를 맞아, 대박 꿈을 이룬 사람들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특집을 마련했다. 먼저 강원도 춘천시, 로또 최고당첨금 407억 원의 당첨자를 찾았다. 하지만 평범한 경찰에서 일약억만장자가 되어, 세상의 부러움을 샀던 당첨자는 그곳에서 없었다.

“당첨된 이후에, 동네 주민들에게 왕따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폭력배들이 찾아와 협박을 하는 등 당첨 후유증을 심각하게 겪었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당첨자의 행로를 따라, 서울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촌으로 갔지만, 새로 이사 간 곳에서도 사는 게 쉽지 않았다.

그곳 주민들은, 갑자기 부자 된 당첨자 가족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첨이 되고 나면,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운데다, 손을 벌리는 친척과 이름 모를 단체, 또 은밀한 협박이나 뒤바뀐 생활이, 엄청난 후유증을 부른다는 내용이다.

충남 홍성에서 당첨된 또 다른 1등 당첨자는, 당첨 이후 아예 가족과 연락을 끊고 잠적한 상태로, 이 당첨자의 경우 후유증은 심각했다. 당첨자의 부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협박전화를 받았다고 털어 놓았다. 부친은 “함께 떠난 손자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로또를 사는 사람은, 미친 사람들”이라고, 절규에 가까운 말을 울먹이며 토해냈다.

생각해 보면,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주고, 평안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없는 사람은, 문 잠글 필요도 없이 편안하게 잠든다. 그렇지만 많이 가진 사람은, 담을 높이 쌓고, 가시철망을 씌우고, 경비견과 경비원을 두고, 그것도 모자라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산다.

또 사람들은 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말 한마디면 모두 다 되고, 자기 밑에서 굽실거리기에, 사람들은 권력을 움켜쥐려고 한다. 그러나 결코 권력도,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으려고, 남을 경계하고, 견제하고, 암투가 있는 싸움을 해야 한다.

과거 역대 대통령 중에, 제대로 물러난 사람이 누가 있나? 말로가 다 비참하다.

또한 사람들은 명예를 얻고, 인기를 얻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화려한 빛 뒤에는, 그늘이 있듯이, 화려한 찬사 뒤에는 고독이 있고 허무함이 있다. 그래서 인기 연예인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 허탈과 외로 때문에, 남몰래 무대 뒤에서 눈물 흘리고, 마약도 하게 된다. 허준 드라마의 예진이 역을 맡았던 황수정 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어느 목사님께서 TV에 나와, 아주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상점에 가도, 음식점에 가도, 사람들이 알아보았다. 유명인 되어서 좋은데, 자유를 빼앗기게 되었다. 예전처럼 아무데나 가서, 부담 없이 차 마시고, 놀거나, 마음 편하게 쇼핑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부도 권력도, 명예나 인기도, 행복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올까요? 사람들은 외형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만, 실상 행복은 자신의 내면, 마음의 평안에 있다.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심령 속에 임한다.

돈도 많고 높은 권력도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도 있지만, 자기 마음속에 평안이 없다면 그는 진정한 행복자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 죽어서 천국 가는 축복도 있지만, 지금 주님 안에서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 성도들의 최고 행복은, 심령의 평안이다.

폭군 네로 황제는, 당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처형했다. 원형경기장에 몰아넣고, 굶주린 맹수들을 풀어놓아 맹수의 밥이 되게 했다. 그러나 처형장으로 가는 성도들의 얼굴모습은, 마치 결혼식장을 향해 들어가는 신부의 얼굴 마냥, 평화가 넘쳐흘렀다. 티테디오스(결코 염려하지 않는 자)라고 불렸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천국을 바라보며, 순교자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어떻게 가능한가? 요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노라…” 하신 그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주님께서 평안을 주신다.

참다운 행복은, 심령의 평안함에 있기에, 바울 사도는 “평강의 주께서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참다운 평안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한다.

본문을 보면, 평강의 주께서 평강을 주신다고 했다. 주일 날 아기들이, 엄마와 함께 교회에 오지요. 그러면 아기들을 본 성도님들께서, 아기들을 예뻐하며 안아준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옮겨 다닌다.

그러나 아기들은, 엄마 품에서 제일 편안함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주님을 떠나면,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우리 심령은 평안을 잃고,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된다. 주님만이 평강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2. 죄를 버려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사람과 사람을 가로 막는 무서운 도구다. 죄가 있으면 평안이 임할 수 없다.
손끝에 작은 가시 하나가 박혀도, 온 몸이 편안치 않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품으면, 평안을 상실케 된다. 왜냐면 성령님께서 탄식하시기 때문이다. 남을 미워해 보면, 심령에 평안이 없다. 시기 질투하는 사람 심령에는 평안이 없다. 성령님은 아주 예민하신 분이시기에, 주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평안을 허락하시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살펴보면, 진정한 평안이 없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말이다. 성령님께서 탄식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주께 토해내기 전까지,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시32:3)라고 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면, 유쾌하고 평안케 된다(행3:19).

3. 염려근심을 버려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염려와 근심은 마치 가시덤불과 같다고, 주님께서는 밭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다(눅8:14). 염려와 근심은 평안의 가장 큰 적이다. 염려와 근심이 있으면, 평안은 설자리가 없다.

어니 J 젤린스키는, 걱정의 40%는 절대로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30%는 이미 일어난 일이며,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고, 걱정의 4%는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며, 나머지 4%의 걱정은,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고민하나 안하나, 결과는 똑같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평강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염려와 근심은 내 힘만 가지고는 안 된다. 주님께 맡겨야 한다. 아주 귀한 귀중품이나,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을 때, 아주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면, 맡길 수 없다.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찌 맡기겠는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근심걱정을 하나님께 맡길 수 없다. 우리 마음에 염려와 근심이 자리 잡고 있어서,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까? 내가 안고, 이고 있으면, 고민과 한숨, 절망과 피곤에서 시달리게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서 달라고 하셨으니, 맡기시기 바란다.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힘들여 길을 가셔서, 지나가던 미군이 차에 태워드렸다. 그런데 백미러로 보니, 그 할머니가 머리에 짐을 그대로 이고 계셨다. 그래서 미군 병사는 “할머니 짐 내려놓으세요. 왜 이고 계시나요?”라고 말했더니,

“아이고 이렇게 태워 준 것만도 고마운데, 어떻게 짐까지 태울 수 있나?”했다고 한다.

우리들도 이처럼 하고 계시지는 안나요? 예수님을 믿는다면 아직도 염려 속에 있다면, 그 할머니와 마찬가지다. 주님께 맡겨버리면, 참 평안을 누리게 된다.

결론이다. 평안을 헬라어로 ε?ρ?νη(에이레네)라고 하는데, 하나 됨을 말한다. 평안은 하나 될 때 행복하다. 행복은 관계다. 올바른 관계를 바로 맺어야 행복하다. 우리는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야 평안도 행복도 누리게 된다.

부부간에 하나가 되지 못하면, 가정에 평안이 없다. 고부간에 틈이 벌어져 있으면, 평안이 없다. 성도들 간에 하나가 되지 못하면, 금이 가 있으면 평안이 없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금이 갔다. 이 금을 매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이 간격을 매꿨다.

우리는 화해할 것은 화해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여 관계를 바로 맺어야 한다. 그 때에 주어지는 선물이 평안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지 않으면, 행복은 없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위해, 죄에 대한 회개가 필요하지만, 사람과 온전한 관계를 위해서는 용서와 관용, 이해와 사랑이 필요하다.

잘 사는 미국에서 수면제가 1년에, 700억 알이나 소비된다고 한다. 하루에 1,900만 알이 소비됨을 의미한다. 즉 하루에도 1,900만 명이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외형적인 것들을 추구하고, 추구하던 것들을 차지하게 되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사람의 행복은 심령의 평안에 있고, 그 원천은 예수님 안에 있다. 주님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주시지 않으면, 참 평강을 누릴 수 없다.

주님과 사람들과 하나 되어 평안하고, 관계를 잘 맺어, 행복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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