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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미의 제사 (히 13: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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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1.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린다.

기독교 포털인 갓피플에서 지난 10월 20일부터 11월 6일까지 보름동안 “비기독교인들에게 이런 질문 많이 듣는다”라는 제목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신자와 비신자간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1위였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의 삶이 자신들의 삶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말은 성도들의 삶이 세상 사람들의 삶과 큰 차이가 없다는 표현입니다.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증거하고 있는 성도로서의 모습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비난입니다.

성도들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삶의 증거들을 무수히 많이 주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인에게서만 발견되는 수많은 증거들입니다. 히 13:15는 그 증거를 “찬미의 제사”라고 표현합니다. 신자와 비신자의 삶의 차이는 찬미의 제사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찬미의 제사는 신자와 비신자 사이의 모든 삶의 차이의 출발입니다. 성도의 찬미의 제사는 그의 삶 가운데 수많은 증거의 열매들을 만들어 줍니다.

찬미의 제사는 세상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모습입니다. 히 13:15에서 강조하며 표현하듯이 “예수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삶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 가운데 나타내 주시는 열매가 찬미의 제사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도덕이나 학문,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서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수양을 쌓아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찬미의 제사를 흉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그 “찬미의 제사”를 받기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찬미의 제사를 기대하십니다. 성도로서 세상 사람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내었던 찬미의 제사를 받고자 기다리십니다. 세상의 비신자들 속에서 신자의 모습을 드러내었던 우리들의 찬미의 제사를 받기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열심으로 하늘 보좌에서 일어나셔서,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벌리시며 맞이하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찬미의 제사가 하나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찬미”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이네시스”는 성경 중 이곳에서만 단 한 번 사용된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찬미”로 번역된 헬라어가 총 7가지입니다. 첫째, “아이노스(마 21:16)”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의 찬미입니다. 둘째, “휨네오(마 26:30; 막 14:26; 행 16:25)”는 가곡 형태의 노래로 찬양하는 찬미입니다. 셋째, “아이네오(행 2:47; 3:8; 3:9)”는 하나님 자신을 찬양하는 찬미입니다. 넷째, “프살로(고전 14:15)”는 현악기를 연주하며, 송시가 동반된 경배로 찬양하는 찬미입니다.

다섯째, “에파이노스(엡 1:6; 1:14)”는 하나님을 칭송하며, 찬양할 만한 것을 지니신 분을 향한 찬미입니다. 여섯째, “휨노스(엡 5:19; 골 3:16)”는 시편 중의 하나로서, 신이나 영웅이나 정복자를 찬양하는 찬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가 “아이네시스(히 13:15)”로서 “하나님의 행위를 찬양하며 그에 대한 감사로서 감사의 물질을 바치며 찬양”하는 찬미입니다. 그러므로 히 13:15에서 요구하시는 “찬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행위에 대한 감사 예물을 드리며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히 13:15는 “이러므로”라고 표현합니다. “이러므로”라고 결론짓는 표현 속에 압축되어 담겨진 “하나님의 행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나는 감사의 표현과 헌신이 “찬미”입니다. “이러므로”는 히 13:15에 이르기까지 히브리서 전체에서 중심내용으로 설명하는 것으로서,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으므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한 유일한 희생 제물로 드려지셨습니다. 자신의 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고난의 십자가와 보혈의 피로써 우리를 세상 죄에서 구원하시고 거룩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모시는 성도들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의 헌신을 드리는 “찬미의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라는 단어가 “희생, 제물”을 뜻하므로 “찬미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드려지는 우리들의 감사의 헌신들입니다. 우리의 시간, 물질, 능력, 은사, 환경 등 모든 것들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로 드려지는 헌신의 찬양으로서 “찬미의 제사”의 구체적인 내용들입니다.

2. 찬미의 제사는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보호와 은혜와 평강의 응답이다.

우리의 삶의 영역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물질들, 사건들, 일들, 관계들, 계획들이 있습니다. 그 대상 자체를 바라본다면 신자와 비신자사이의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누구 안에 있느냐에 따라 그것들의 움직임의 역사가 다릅니다. 성도 안에 있을 때는 찬미의 제사로 나타나지만 세상사람 가운데 있을 때는 타락과 부패와 갈등과 싸움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 대상들 자체가 우리의 복이 아니라 그것들이 누구 안에 있는가가 복입니다. 성도들은 그 모든 소유가 복 안에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 이유를 “예수로 말미암아”라는 단 하나의 표현으로 나타냅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와 존재가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찬미의 제사”로 드려지는 복의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복의 개념은 구약에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이 우리의 모든 것으로 찬미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구체적인 법령문인 민 6:22-27의 명령과 약속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민 6: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6:23)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민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 6: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이 축복 기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의 기반이 되는 세상과 인간의 모든 영역들과 질서들과 과정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계속 공급해 주실 것을 기도하는 표현입니다. 그중 민 6:22-23은 축복 명령의 시작이며, 앞 문맥에서 하나님께 몸을 바치는 나실인의 규례를 다룹니다. 그리고 민 6:27은 축복 명령의 끝이며, 뒷 문맥에서 장막을 위해 지도자들이 예물을 바치는 내용을 다룹니다. 모두 대제사장인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부여된 명령입니다. 민 6:22-27은 대제사장에게 위임된 축복권입니다.

민 6:22-23에서 대제사장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시며 축복권을 위임하셨습니다. 민 6:24-26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축복선언 내용이며, 민 6:27은 대제사장이 축복할 때 그 축복대로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민 6:24-26의 모든 축복 내용은 대제사장의 축복기도 안에 들어있습니다. 대제사장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과 대제사장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축복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즉 대제사장으로 말미암아서만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알려주십니다. 구약처럼 주기적으로 바뀌는 대제사장이 아니라 단 한 번에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피로써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누리는 복은 오직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께 위임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때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복을 주셨습니다.

민 6:24-26에서 약속하신 축복 내용은 그 내용과 형태가 시적으로 평행하는 세 개의 행으로 구성되어 백성들이 언제나 기억하고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각 행은 두 개의 사역절로 되어 있습니다. 첫 절들은 모두 하나님께 청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둘째 절들은 첫 절의 결과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는 주제들입니다. 즉 첫 절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인격적인 행위를 보여주시기를 호소하는 것이고, 다음 절은 그 호소로 이루어지기 원하는 내용들입니다.

민 6:24에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우리들은 “보호”를 받습니다. 민 6:25에서 여호와는 그 얼굴로 우리에게 비취실 때, 우리들은 “은혜”를 받습니다. 민 6:26에서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여 드실 때, 우리들은 “평강”을 누립니다. 즉 우리가 누리는 축복은 “보호와 은혜와 평강”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모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적인 보호와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것이 복입니다. 이 모든 복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고, 얼굴로 비취시고, 드실 때만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우리의 모든 영역과 대상들은 번성하며, 승리하는 축복을 누립니다. 점층적으로 구성된 세 행의 관계는 그러한 하나님의 복이 우리가 보호받는 것에서, 은혜를 받는 것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샬롬”의 평강을 누리는 것으로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즉 축복의 최종 목적지는 평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평강에 대한 응답이 “찬미의 제사”입니다.

3. 찬미의 제사는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는 성도의 교제로의 제사이다.

우리의 소유의 많고 적음, 좋고 나쁨, 환경의 선함과 악함, 건강의 좋고 나쁨 등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우리의 영적 생명을 보호하게 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입게 하고,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 속에 평강을 누리게 한다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며, 그 복을 누리는 인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은혜를 입으며, 평강을 누리는 자들은 찬미의 제사를 드릴 복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향하여 히 13:15에서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축복기도 문맥의 결론 부분인 민 6:27에서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축복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은 축복입니다. 그 축복을 받은 우리의 찬미의 제사는 히 13:15에서 말씀하시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섭리적인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입으며,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그 자비하신 행위와 그 역사를 기억하며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평강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입으로 말하는 입술의 열매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헌신으로 말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히 13:16은 그 입술의 열매가 되는 찬미의 제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로서의 찬미의 제사를 두 가지의 삶의 모습으로 구분하여 알려주십니다. 첫째는 “선을 행함”이며, 둘째는 “서로 나눠주기”입니다. 그리고 후반절에서 “이같은 제사”라고 표현하며 그 두 가지 삶의 모습이 찬미의 제사임을 밝혀주십니다.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는 세상 사람과 성도들의 삶의 모습을 명확하게 구분짓습니다. 이것은 오직 대제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의 외적인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와 평강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외적인 모습이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입니다. 그래서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우리들이 주일마다 모이고, 절기마다 모이는 이유는 공동체적으로 이러한 찬미의 제사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드릴 첫째 찬미의 제사는 “선을 행함”입니다. “선을 행함”의 헬라어는 “유포이이아”라는 하나의 단어입니다. 이 단어도 여기에서 단 한 번 사용한 단어로서, “성공하여, 잘하여”라는 뜻의 헬라어 “유”와 “만들다, 생산하다”라는 뜻의 “포이에오”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찬미의 제사인 “선을 행함”은 “남들의 성공을 만들어 내는 사역”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찬양 받기에 합당한 선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추구하지만, 성도는 복의 근원으로서 타인의 성공을 위해 수고합니다.

우리가 드릴 둘째 찬미의 제사는 “서로 나눠주기”입니다. “서로 나눠주기”의 헬라어 단어도 하나의 단어로서, 너무나 유명한 단어인 “코이노니아”입니다. 즉 “서로 나눠주기”란 자신의 소유를 사랑과 봉사의 마음의 나누어 주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코이노니아”의 성도의 교제를 위해서는 물질만이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시간, 물질, 능력, 수고 등 모든 존재들이 그 교제를 위해 움직여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모든 소유와 존재들은 남들의 성공을 위해 사용됩니다. 성도의 교제를 위해 사용됩니다. 이것이 찬미의 제사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결코 “잊지 말라”고 권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잊지 않고 행한 그 두 가지의 열매가 드려지기를 기대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복을 누리는 자로서 남들의 성공을 위해 행한 사역의 열매와 성도의 교제를 위해 헌신한 삶의 열매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입으로 발설되는 찬양 자체를 기뻐하는 분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는 찬미와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찬미의 행동화된 찬양을 기뻐하십니다. 물질과 소유의 드려짐 자체를 기뻐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 물질과 소유가 선을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일 때 기뻐하시며, 성도의 교제를 위해 사용될 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찬미의 제사를 위해서 우리는 늘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주시는 복을 누리는 자의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김종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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