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를 따르는 자의 삶의 모습 (제자도) (막 8:27-38)

  • 잡초 잡초
  • 384
  • 0

첨부 1


마가 8장 27-38절            주 제 : 예수를 따르는 자의 삶의 모습 (제자도)

서 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대부분은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대표적으로 가버나움, 벳새다, 게네사렛과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전파,병자를 치유하시고, 귀신을 내어쫓아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한참 떨어진 가이사랴 빌립보지역까지 제자들과 동행하신 장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갈릴리 북쪽의 헤르몬산 기슭에 있었던 도시입니다. 그 노중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의 목적은 “아마도, 얘들이, 나와 동거하며, 따르고는 있지만, 진정으로 내가 누군지를 알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왔는지?를 알고싶으셔서 그랬을 것입니다.”
27절에 -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절에 - 가로대 세례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8절의 말의 핵심은 - 일반적으로 민중(무리)들은 예수를 그냥 위대한 선지자(인물)중의 하나정도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답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위해 오셨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29절에 -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기름부음받은자(메시야)/ 통치자(왕)”의 개념입니다 - 라고 아주 멋진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대답에 예수님은 정말 기뻐하셨던것같고, 매우 흡족해 하셨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30-31절을 통해 드디어 “처음으로 수난예고”를 하셨습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성)을 밝히신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가실 십자가의 길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깨달을수 있다는 확신으로, 또한 제자들 또한 그 길을 함께 걸어갈수 있을것이라는 가능성의 창문을 열고 이런 말씀을 하신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뜻박의 결과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32절에 -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 여기서 간하다라는 것은 “반대하다/거부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돌발행동은 “예수님께서 바라셨던 제자들의 성숙한 신앙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호통을 치셨습니다. 너무도 분통하고, 어이가 없으셨던것 같습니다. 33절에 베드로를 향해서 - 사단다!!!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라고 말입니다.
그런후에, 결론적인 멘트를 하십니다. 이것은 “진정한 제자도(弟子道)에 관한 것입니다.”
34절에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고 말입니다.

본 론> 본문의 말씀을 통해 어떤 중요한 진리/교훈을 발견할수 있습니까?

1. 따라다닌다고 되는것이 아니라, 인격적(영적)으로 만남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 (예수-나의 생명의 주)
비록 3년을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하면서 따라다녔지만, 지금 예수님의 12제자중에 단 한사람도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다시말해 어떤 사명을 가지고 오셨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왜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오셨는지?를 몰랐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과 인격적인/영적인 만남과 교제가 없어서 였습니다. 비록,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되십니다’라고 정말 기가막힌 신앙고백은 하였지만, 그 고백의 진정한 내용과 의미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입술의 고백은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 고백에 담긴 진정한 복음의 의미를 모른체, 말하는것은 실상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라는 것을 말입니다.
<간 증> 저의 중고등학교 시절에 함께 신앙생활했던 수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동훈,창건,완구,지영... 지혁형,동욱형,영아...” 그런데, 간혹 연락이 되거나,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지금 예수님을 떠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도 저와함께 교회에서 거의 살다시피하였고, 수련회나 기도원에 가서 부르짖고, 고백하였던 이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님을 떠나/교회를 떠나서 세속에 빠져삽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나의 생명, 나의 주님, 나의 모든 것”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성가 - 나의 생명, 나의 기쁨, 나의 예수님. 영원토록 정성다해 사랑합니다. 나의 힘되신 여호와여 내가 사랑합니다. 영원토록 정성다해 사랑합니다.)

교회를 다니는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때 믿음이 생깁니다. 이 믿음이 진정 나의 믿음, 나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하며, 결국 “예수님을 떠난 나를 생각할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말해, “이제는 더 이상 나사는것 아니요. 주님안에서 내가 살아야 할것입니다.”

2. 십자가의 길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 유월절 어린양)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들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모든 현실적인 어려움들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시고, 자유케하실 전능하신 분으로 알았습니다. 로마의 압정으로부터,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지켜주실 분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시고자 했던 “십자가의 길”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적어도3년이나 따라다녔으면, 주님의 십자가의 길이 어떤것인지를 알지못했을까?라고 말입니다. 이들이 깨닫지 못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적인 눈/귀가 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12제자들은 철저히 영적인 사람이 되지못했고, 아직까지 육신적 사람으로 남았던 것입니다.
성경을 볼때, 육신적인 눈(이성/합리/과학...)으로 보면, 온통 거짓말투성이의 책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볼때, 그때 구원의 길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12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배/그물/가족...) 예수를 따른듯 보이지만, 실상은 아직까지 세상적인 미련(돈과 명예와 권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고자 했던 십자가의 길은 제자들이 바랬던 길과 달랐습니다. 제자들이 바라봤던 십자가의 길이란 “누리는 것/소유하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어주는 것/포기하는 것” 이었습니다.
<도 전> 오늘 청년큐티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여서 값비싼 향유 한나드(300데나리온이상 가치)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가룟유다는 그것을 꾸짖으면서, 허비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헌신을 축복하시면서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기념하리라”(막 14:9절)고 하십니다.

어찌보면, 맨날 예수님과 동거하며, 말씀듣고, 제자훈련을 착실히 받았던 제자들보다 미천한 여종신분이었던 막달라 마리아가 칭찬받는 자의 모습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동기의 순전함”에 있습니다.
마리아는 단지 예수님 말씀듣고, 은혜받아서,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매일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겠다는 거룩한 소망(영적인 목적)이 있었던데 반해, 제자들은 그때까지 세속적인 열망(육적인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복음성가 - 어린양 예수)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의 가식적인 육적인 옷을 벗어버리고, 영적인 옷을 입게하소서”

3. 나는 죽고, 예수가 나타나야 합니다. (복음증거의 삶)
예수님께서 3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기쁨이 되며,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것...

1> 내가 죽어야 합니다. 
  아직까지도 내가 너무 강한것이 문제입니다. 아직까지 내가 설정한 인생의 목표성취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해서 문제입니다. 너무 고집이셉니다. 너무 성격이 거친게 문제입니다. 너무 말이 상처를 줍니다.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모든일이 내 스타일(방식)대로 진행되어야 만족해 합니다.
천국보다 이 땅이 더 좋은게 문제입니다.
주님보다 돈/권력/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나중심주의”가 있습니다.
나의 생각/나의 목표/나의 욕심이 내 삶의 중심에 포진하고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복음성가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2> 자기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주님은 먼저 버리라고 하십니다. 자기중심주의/이기주의와 같은 모습들을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하십니다. 오늘 내가/우리가 져야될 십자가는 어떤 것들입니다.
1. 가정의 십자가입니다. - 우리가 불신의 가정/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겪는 고난/역경이 있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상처받았던 아픈 기억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지고 가야 합니다.
2. 세상의 십자가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받았던 고난이 있습니다. 직장/동료들로부터 믿음 때문에 당해왔던 고난/역경이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세상사람들로부터 무시/모욕당했던 것들도 지고 가라고 하십니다. “당신, 예수쟁이 아니야? 믿는사람이 그렇게 하면 안되지?”
정말 옛날 성질같으면, 벌써 대판 싸우고 남았던 부분들이 상처로 남아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나의 십자가인줄알고 져야합니다.

3> 예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 주만바라볼찌라)

우리가 성도로서 최후에 승리하는 인생이 되기위해서는 인생의 목표를 바로 설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목표가 “증거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삶”이 될 때에 우리는 믿음의 승리자가 될수있지, 일반사람들처럼 소유의 개념(땅/돈/명예/권력..)이라면 결코 승리할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가 “오직 예수”라면 우리는 진정 성공한 자입니다. 승리자 인생인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나타내며, 표현하며,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38절에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란것을 부끄러워하는 신앙은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담대히 나타내며, 표현하며, 증거하는 삶이 되라고 합니다)

간 증> 오늘 새벽 송복임집사님이 함께 럭키아파트에 살고계신 한 아주머니를 소개해주셨는데, 은혜와 감동이 되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의 극진히 받았던 유복한 아주머니였는데, 3년전쯤 남편과 사별했다고 합니다. 엄청난 인생의 기반이 흔들리는 고통과 아픔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어떤이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제 생각에는 “예수님을 신랑삼고 매일 예수님과 동거하는 삶”을 살고 계신것 같습니다. 집사님의 말로는 항상 기쁨이 넘치고, 웃음이 가득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너무 부럽다는 것입니다. 반송제일교회에 다니는데, 글쎄 새벽기도회 가면서도 사탕을 들고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산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정말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성도의 모습이 아닐까요?) -언제부턴가 생업에 얽매여서, 예배도, 봉사와 헌신도, 기도의 삶도 차츰 무너져가는 성도들을 볼때에 이해는 가면서도, 더 큰 아픔과 목회적 자책을 하게됩니다. 과연 이게 올바른가?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