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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요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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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 윗사람을 기쁘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 한 가지는 윗사람이 무엇을 가장 싫어하는지 잘 살펴서 그 분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윗사람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그 사람의 앞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의 열심, 내 고집대로의 부지런함은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 상황에 잘 적응하는 것이 세상을 승리하는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2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그것을 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一.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실까요?

1.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히브리서 11:6에“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누구에게 자신의 진실함에 대해 의심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의 불쾌함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 어느 여고생이 교실에서 없어진 물건이 자기의 소행으로 오해를 받자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그는 유서에 “나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얼마나 신실하실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마태복음 5:18에“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하셨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가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다 성취되었습니다. 이러하신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자신의 직위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푸대접을 받아 본적이 없습니까? 정근모 장로님이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제직할 당시 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자신의 낡고 소형 승용차를 타고 약속한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호텔 안내자가 나와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습니다. 문을 열고“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느냐?”라고 하니까 그때서야 장관임을 알아보고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낡은 소형차만 보았을 뿐 사람은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불쾌했겠습니까? 이 일을 두고 훗날 그는 말하기를“우리나라는 참 이상하다. 차는 교통수단일 뿐인데, 왜 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할까?”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예수님을 그렇게 대접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늘나라를 버리시고 낮고 추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탄생하실 때에 방 한 칸 구하지 못해 발 구유에 탄생하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억울한 죄수가 되어 십자가의 극형을 받으셨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태복음 21:42)라고 하셨습니다. 건축자가 돌 하나를 쓸모없다며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돌은 버릴 돌이 아니라 건물에 가장 소중한 머릿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푸대접을 받으신 예수님의 경우가 바로 이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가치를 분명히 깨달아 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치를 모르면 그것을 쓰레기처럼 취급하게 됩니다. 옛날 아프리카인들은 진주의 가치를 몰랐기에 유럽에서 여행 온 여행객들이 주는 인형 하나를 받고 한 바가지 진주를 주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안타까운 일입니까? 훗날 아프리카의 한 청년이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이 학생은 보석가계에 들어가서 값진 진주를 훔치다가 채포되었습니다.“왜 남의 가게에 들어가서 귀중한 물건을 훔쳤느냐?”하고 취조를 하자“영국인들은 어리석은 우리 조상들의 값진 진주를 인형으로 수없이 거두어갔지 않으냐?”라고 하며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되고,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놓치게 되고 맙니다.

우리나라 대원군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복음을 이 땅에 전하고자 토마스 선교사를 태운 제너널셔먼호가 태평양을 건너 대동강에 도착했습니다. 대원군은 그 배를 불태우고 말았습니다. 그 배에서 성경을 한 아름 안고 뛰어내린 토마스 선교사, 그 귀하고 고마운 사람을 대동강에서 죽였습니다. 이러한 무지함이 국가의 발전을 지연시켰고 시대에 뒤떨어진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일본보다 발전이 뒤져 힘없는 나라가 되므로 36년간 나라를 잃은 국치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그 후유증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을 믿지 못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질문 가운데“하나님을 보았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조금만만 생각해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질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기가 보입니까? 전파가 보입니까? 사람의 마음이 보입니까? 우리의 옛날 역사를 내가 직접 보았습니까? 내 눈으로 직접 보았으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셔서 나타내신 역사의 기록입니다.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나 이조시대의 역사처럼 성경은 하나님이 함께하신 역사입니다. 이 기독교 역사를 대한민국 기독교 신자들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선진국 국민들 대다수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브리서 12:1)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같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 얻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하셨습니다. 사람은 무슨 말을 듣던지 듣는 대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마귀의 말을 들으면 마귀를 믿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로마서 10:14)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하늘로부터 어느 순간 갑자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19세기 세계적인 전도자였던 미국의 무디는 믿음에 대하여 말하기를“나는 믿음을 간구하면서 언젠가는 믿음이 내려와서 나를 번개처럼 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오는 것 같지 않았다. 오늘 나는 로마서 10:17을 읽었다.‘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나는 성경을 덮고 믿음을 간구했다. 또 성경을 펴서 읽었다. 그 후 나의 믿음은 점점 자랐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배의 소중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는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 믿음은 천국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승리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열쇠입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하셨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6:22~26에 전도자 바울사도가 겪은 고난가운데 이러한 기록이 있습니다.“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 사도와 그 일행이 전도하다가 채포되어 모진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바울사도 일행은 옥중에서 기도하며 찬송하는 가운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밤중에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며 수갑이 벗겨졌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은 자유의 몸이 되어 다시 전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믿어집니까? 이러한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중국이 공산국가가 되었으므로 그 나라에는 기독교가 말살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모진 핍박을 견디며 하나님을 섬기는 숨은 성도들이 수없이 많고 합니다. 중국정부가 허용한“삼자애국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공산당의 지시대로 하는 교회이므로 그 교회는 참된 성경적인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숨어서 비밀리에 하나님을 섬기는 지하교회 즉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가정교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다가 그들의 정체가 발각되면 감옥으로 끌려가 모진 고난을 겪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복음은 계속 증거되어 2000년 1월 가정교회 연합회의 보고에 의하면 그 숫자가 5,8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가정교회 연합회 대표인 윈 이라는 목사가 체포되어 정저우 최고 보안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모진 고문으로 양다리가 다 골절되어 스스로 걷지도 못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 감옥을 탈출하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1997년 5월 5일 아침 8시경 윈 목사는 아픈 다리를 끌고 3층 감옥에서 철창문 세 개를 통과하여 탈출했습니다. 문마다 간수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그를 보지 못하는 눈으로 앉아만 있었다고 합니다. 마당을 지나는데 30여명의 간수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보고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감옥소 정문까지 열려있었습니다. 나중 깨달은 일이지만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다리의 골절상은 언제 다 나았는지 깨끗하게 나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3층 감옥에서 그의 탈출을 지켜보고 있었던 죄수들은 훗날 증언하기를“윈이 감옥소 마당을 지나가는데 수많은 간수들 사이로 지나갔지만 아무도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라고 했습니다.
윈 목사는 그 후 계속되는 기적 가운데 독일로 탈출하게 되었고, 독일정부는 그를 난민으로 인정하여 여권을 발급해 주었습니다. 윈 목사는 지금 온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윈 목사가 현재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분이 안양의 한 교회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하셨습니다. 이 믿음을 얻기 위해 우리는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행위가 예배입니다.

2. 하나님은 잃은 영혼이 돌아올 때 기뻐하십니다.

오늘은 우리교회에서 세례예식을 행하는 날입니다. 세례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던 사람이 이제는 일생동안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겠노라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맹세하는 의식입니다. 교회의 가장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잔치가 펼쳐지는 날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12~14의 말씀에“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영혼 구원에 힘써야 합니다. 쉼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1~2의 말씀에“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사랑하셔서“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는 반드시 승리자가 됩니다. 실패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도록 살아가는 삶의 방법 중 한 가지가 복음을 전하여 잃은 영혼을 찾는 것입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은 에녹입니다. 동행이란 앞서지 않고, 뒤서지도 않은 순종자를 가리킵니다. 창세기 5:22~24에“에녹은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하셨습니다. 긴 세월 300년을 하루같이 순종하며 살아간 사람이 에녹입니다. 이 모습을 아름답게 보신 하나님은 죽을 경험하지 않도록 살아있는 몸으로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인 성경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에녹은 이와 같은 삶을 300년간 계속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죽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살아있는 몸 그대로 하늘나라로 데려가셨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효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착실한 제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저를 가르치신 스승가운데 한 분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오늘은 내가 무엇을 하면 하나님이 나를 보시고 기뻐하실까?”하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그를 참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목사로, 교수로,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고귀한 삶을 살다가 가셨습니다.

二. 하나님이 기뻐하심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본문에“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한복음 8:29)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최고의 은혜요,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그 누구도 해치지 못합니다. 누구도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승리자가 됩니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사무엘하 5:10에“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양치기 목동 출신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 다윗은 그 누구도 그를 당하지 못했습니다. 블레셋 나라 골리앗 장군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그 거한 앞에서 모든 이스라엘 군대가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전쟁에 나간 형들을 면회 갔던 다윗이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물맷돌 하나를 들고 나가 무장한 골리앗을 향해 던졌습니다. 이 돌이 투구 쓴 골이앗 장군의 이마에 박혀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나라를 건지므로 일약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다윗을 칭송했습니다. 이 영광도 잠시뿐 사울 왕이 다윗을 정적으로 여겨 시기하며 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10년이란 긴 날 동안 다윗을 해하고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해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사울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대왕이 된 후에도 수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믿음을 닮은 삶을 살아간 사람이 아브라함 링컨이었습니다. 그는 숱한 삶의 질곡을 지나면서 믿음으로 헤치고 나가 끝내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배운 것은 고작 초등학교 9개월뿐, 그런 그가 세계정치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이 링컨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링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살았습니다. 여덟 번의 큰 실패의 늪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불굴의 믿음, 상원의원 선거를 치르는 동안 목말라하는 노인에게 콜라 두병을 사주었다며 나머지 선거자금을 당 본부로 돌려보내는 그의 진실성, 흑인 노예를 해방시키려는 그의 박애정신, 이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 6:7~8)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간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에녹, 다윗, 심지어 우리 예수님까지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할 사람들입니다. 제자는 마땅히 스승의 정신과 스승의 삶을 본받아야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어떤 모습을 가장 기뻐하실까요?

첫째,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영혼을 불쌍히 여겨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기뻐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과 성령님의 감동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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