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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약신앙을 갖자 (시 8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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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약신앙을 갖자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셀라) (시편 89:3-4)


‘오늘 이 시대를 구할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을 하겠습니까?
아니, 다음 대통령을 뽑는다면 어떤 인물을 뽑아야 할까?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 세계적인 석학의 사람?
아니면 경제에 대한 밝은 이론과 경영 마인드가 있는 사람?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남에게 책 잡힐만한 것이 없는 사람?
과연 어떤 인물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옛 소돔과 고모라성은 의인 50명으로 시작하여,
최후의 10명만 있어도 멸망하지 않을 뻔 했는데, 그 10명이 없어 유황불로 멸망을 받았다면,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본다면 어떤 사람이 이 시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십니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신앙적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신분(身分)이 문제가 아니고, 삶의 처지나, 환경이나, 교육 정도나, 연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대로 보면 역사를 이끌어 간 사람들은, 그런 것에 구애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를 성취한 모세는 살인자였고, 제일 잘 믿노라고 자신했던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던 자였고,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던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들어 그 시대를 이끌어가게 하였습니다.
오늘도 이 시대를 구할 사람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스바냐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가장 혼돈스러웠던 시대를 살았던 예언자이었습니다.
스바냐서를 읽어 보면 당시 <므낫세>왕 통치 시대이었는데, 이 므낫세왕은 아버지 <히스기야> 왕과는 정 반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통치기간 동안 50년간 나라 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고, 의인을 탄압하고, 선지자들의 피를 토하는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습니다. 이 때 스바냐 선지자는 도탄 중에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예언의 핵심적인 요지는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라는 것과 하나님은 숨겨놓은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죄인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숨겨 놓았던 남은 자들에게는 기쁨과 영광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스바냐 3:12-13절에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고.....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남은 자>란 어떤 사람이라고 하였습니까?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이란 누구를 말하겠습니까?
그 시대에 제일 힘 없이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런 사람들이 누구라고 보십니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물들지 않은 성실한  크리스천들이라고 봅니다.

교회 안에서도 소리 없이, 이름 없이 봉사하는 사람들, 누구 앞에서도 겸손하게 어린이 같이 천진난만한 사람들,  비록 가난한 환경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장차 오실 주님 맞을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남은 자>들이란 말입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숨겨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로지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언약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1.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언약>은 <계약>이라는 말과는 좀 다릅니다.
<계약>은 쌍방이 서로 협의하여 맺은 약속이지만,
<언약>은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는 <수직언약>이라고 합니다.
수직언약은 흥정의 대상이 아닙니다.
수직언약은 오직 순종만이 요구될 뿐입니다.
순종하면 복이고 거역하면 죽음일 뿐입니다.

이 <언약>은 처음 에덴 동산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다 지으시고 모든 것을 사람에게 맡기면서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는 언약을 하였습니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창2:17)
결국 아담은 이 언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시 인종이 지면에 퍼질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연애하여 저들이 모두 육체가 되어버렸다고 하였습니다.(창6:1)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노아에게 언약을 했습니다. (창9:8-11)
물로 심판 할테니 너는 산에 올라 방주를 지으라고... 그러나 아무도 그 언약을 지키지 아니했습니다. 결국 노아의 8식구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홍수 후 다시 인류는 번성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저들은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언어를 혼잡케 만들어 오늘의 인류 분포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갈대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과 언약을 했습니다. (창12:1-2)
‘너는 일가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내가 네게 복을 주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너는 모든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니라’고.....
흉년으로 애굽으로 내려가 연명하게 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어 번창하게 하였습니다.
바로의 학정에서 씨를 말리려는 민족말살 정책으로부터 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번에는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 언약을 했습니다.
결국 이 약속이 파괴되었을 때, 이번에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십자가에 대속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당신 언약을 세웠습니다.(요3:16)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언약을 한번도 파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언약을 거역한 반역의 역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 언약을 성취하려고 남은 자들을 숨겨 놓으셨고, 그들을 통하여 역사를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언약을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언약을 믿는 <언약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충실히 바라고
지키려는 신앙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많이 배우고, 유능한 사람이 되고,
출세하여 성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사느냐?
않느냐? 가 문제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언약에 충실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청교들이었습니다.
17세기 청교들(Puritan)의 신앙은 언약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을 지켰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대로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저들은 그것을 위해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영국의 왕 메리왕 때 많은 언약신앙의 사람들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언약신앙의 사람들이란 개혁의지를 가지고, 자신들의 삶에서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신앙을 요약하면 <경건>과 <책임>이었습니다.
<경건>은 개인적인 신앙생활이라면 <책임>은 사회적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이 <경건>과 <책임>은 바로 <언약신앙> 위에 세워졌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이란 것을 믿었습니다.
언약을 지키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확실하게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철저한 경건생활이었고, 철저한 책임의식에서 살았습니다.

청교도들은 우선 가정과 자녀들에게 경건생활로 나타났고, 사회생활에서는 정직과 책임의식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개인의 경건생활이 사회생활에 미치도록 함이 그들의 생활 목표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야 할 새로운 크리스천 운동이라고 봅니다.

오늘 우리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은 잘못된 신학사상입니다.
우리는 지금 <믿음언약> <내기 은혜언약>에서 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는 은혜언약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은혜언약 신앙이 지금 너무나 값싸게 받아들여져 경건생활도 아니고, 책임의식도 없어진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면 기복신앙(祈福信仰)들입니다.
즉 복을 구하는 신앙이 뭐가 나쁘냐고 하겠지만,
복은 <언약>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복은 구하고 달라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도록 언약을 지키면 채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크리스천들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무엇입니까? 하나같이 얌체족들이라고 합니다. 복은 혼자만 받기를 원하면서, 책임감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3.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마 약속했습니다.
스바냐 3:12-13절에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까?
언약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언약을 지키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첫째,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거짓말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셋째, 남을 중상모략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먹고 누울 때 두렵게 할 자가 없겠다고 하였습니다.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적인 생활에서는 경건과
사회생활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청교도들은 어떻게 실천했는지 아십니까?
신대륙을 향해 가면서 선상에서 저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는 결의를 하였습니다.
존 윈스로비 목사의 인도로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맹세했습니다. 그들은 선상에서 10가지 자기들의 신앙을 약속하였습니다.
철저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고 만일 이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위에 임할 것이라고 확약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지켰으니 우리도 언약을 지켜야 한다고 거듭 서약하였습니다.

그 10가지 내용 중 첫째가 참 예배를 드리자,
둘째,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한다.
셋째,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가정과 자녀들을 교육한다.
넷째, 날마다 구원을 떨림으로 이루어간다.
다섯째, 형제들의 권고를 경청하고 형제들에 대하여 격려하고 위로한다.
여섯째, 서로간에 불화 있을때 빠르게 화해한다.
일곱째, 세상적인 일에 마음을 채우지 말고 깨끗하게 산다.
여덟째,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며 전도에 힘쓴다.
아홉째, 곤고한 성도들을 도와주며 함께 한다.
열번째,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간의 언약을 지키도록 한다.

그렇게 했더니 그들이 현재 미국의 정신적인 기초가 되었고, 오늘의 강대국을 형성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이런 새로운 운동이 펄쳐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철저한 개인적 경건생활과, 사회책임의식을 가지고,
먼저 악한 일에 손 대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고, 남을 모함하지 않으면, 분명히 대한민국은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이  것입니다. (김이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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