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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건축] 성전을 지을 장소 (대하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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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일은 성전 증축을 위한 헌금을 작정하는 주일입니다. 우리교회는 주차장, 교육관시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증축 공사를 하기로 기획위원회와 건축위원회에서 결의하고 다음주일에 작정헌금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내용입니다.
1절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전 지을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의 2대 왕 다윗이 백향목 궁전에 앉아 있다가 여호와의 법궤가 장막 속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목동 출신이요 이새의 말째 아들이었습니다.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어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전이 초라한 것을 보고 성전을 지어 바치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깨닫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이런 다윗의 마음씨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왕상 8:18).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로 인해 다윗의 이름을 평생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자손만대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터에서 피를 많이 흘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을 짓는 기회를 주시지 않고 그 아들을 통하여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성전은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성전을 지어 바치고자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장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되어 떠나게 되든지, 교회를 옮기게 되든지, 이민을 가게 되든지 하여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가 되어서도, 장로가 되어서도 일생 성전 한번 짓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은 가는 데마다 성전을 짓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골서 예배당 짓고 서울로 이사 왔는데 나가는 교회가 마침 성전을 건축하게 되어 성전을 짓게 됩니다. 얼마 전 어느 교인도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나가던 교회에서도 예배당 짓고 이곳으로 이사 와서 우리 교회에 등록했는데 예배당을 증축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된 일인지  가는 곳마다 예배당 짓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전 알 수 없어요.” 저는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라고 확신 있게 말해주었습니다. 사실 평생 살면서 한번도 예배당 짓는 일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에 비하면 큰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참여하게 됨을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도록 하였는데 예루살렘의 모리아산,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지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모리아산은 창세기 22장에 기록된 내용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장소입니다. 모리아산은 희생의 제물을 드린 곳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 내가 가장 귀히 여기는 것, 내 웃음의 전부를 제물로 바치는 곳입니다. 겉으론 번제로 아들을 드리는 것이 잔인한 희생으로 죽음을 요구하는 장소였지만 그 배후엔 부활의 생명이 예비 된 약속된 축복의 땅인 것입니다. 이곳을 성전 지을 장소로 지시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하면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 큰 바위가 놓여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렸던 곳입니다.

또,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같은 장소인데 세월이 지나 오르난이 고 땅을 소유하여 타작마당으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역대상 21장에 보면 다윗 왕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나라의 부와 권세가 강하여지자 어느 날 사탄이 그를 유혹했습니다. 인구조사를 통해 전쟁에 나가 칼을 쓸만한 군사가 157만 명이라는 보고를 듣고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런 다윗의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사실 인구 조사는 단순히 인구를 조사한다는 점에서는 죄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조사를 통하여 자신의 권한을 강화하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나타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큰 악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다윗의 태토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불신앙에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부강하게 된 것은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기 때문임을 다윗이 간과한 것입니다. 우리도 자주 이런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선지자 갓을 통해서 3가지의 형벌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즉, 3년 기근과, 3개월간 대적의 칼에 망하여 쫓기든지, 사흘 동안 온역으로 병들어 온 지경이 망하든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떨며 “하나님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기를 원치 아니 하나이다” 라고 했을 때 순간에 강한 군대 7만 명이 피를 토하여 죽어 갔습니다. 이에 다윗이 무릎 꿇고 두 손을 들고 자복 기도할 때, 갓 선지자를 통하여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가서 회개하고 번제를 드리라고 지시를 받았습니다.

다윗의 말을 들은 오르난은 자기 땅을 거저 다윗에게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값을 지불하고 번제를 드리려는 다윗의 정성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있어서 형식적인 것 보다 내용적인 면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을 드리지 아니하는 그럴듯한 외형적인 제사보다 자신을 함께 바치는 참된 제사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경건한 다윗이 모를 리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피정복민인 오르난의 제의를 거절하고 자신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하여 그에 상응하는 가격으로 구입하기를 원했습니다. 금 600세겔에 구입했다고 했습니다.  금 육 백 세겔은 당시 한 사람의 노동자가 약 100년 동안 일한 품삯에 해당되는 값어치 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것을 희생해서 드리는 자의 제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가 주께 드려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롬 12:1).

이렇게 다윗이 대가를 지불하고 희생 제사를 드린 그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성전을 지으라고 하신 것에는 큰 영적 교훈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희개의 마음과 희생적 믿음 위에 성전을 짓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 교포교회에서 목회 할 때 본 경험입니다. 미국 백인교회 가운데 부흥이 안 되어 문을 닫는 경우가 있어서 같은 교단에 속한 한인교회에  돈을 받지 않고 거저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는 1$ 주고 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입한 한인교회의 경우 대부분 부흥되는 교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비싼 돈을 지불하고 땅을 사서 예배당을 짓든지, 비싼 돈 주고 건물을 사서 예배당으로 개조하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똑같이 부흥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사람 누구나 돈을 좋아합니다. 돈을 싫어하는 이 없습니다.  그런 아까운 돈을 드리는 성도의 마음을 하나님은 보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 것은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한 것은 그들을 통하여 인류가 복을 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한국은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장남에게 다른 자녀보다  갑절을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모를 잘 모시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 잘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때 헌금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번 미국에 가서 교포들의 위상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뉴저지 에디슨에서는 교포 2세가 시장에 당선되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정범진이라는 청년이 뉴욕 형사법원 판사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미국 교포 가운데 변호사는 많이 나왔습니다.  뉴욕에서만도 1700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판사는 많지 않습니다. 정범진  판사의 아버지는 고려대학교 법대를 나오고 미국에 이민 와서 택시를 운전하면서 아들을 교육시켜 판사로 만들었습니다. 정 판사는, “나는 소수민족과 약자를 위해서 봉사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좋은 위치에서 일하게 하신 축복은 사명으로 연결하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예배당을 짓고 난후 3년 동안 장례식을 한 번도 치른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번 미국에 가서 제가 섬기던 교회의 관리집사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관리집사 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매우 귀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관리집사를 사명으로 알고 봉사하시는 분입니다. 자녀가 4남매가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막내부터 결혼했습니다. 제가 막내를 주례했습니다. 모두가 다 결혼을 했는데 큰 딸이 나이가 38인데도 결혼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근심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중매가 들어와 장로님 아들과 선을 보았다고 합니다. 40먹은 노총각인데 의사랍니다. 남자가 “어떻게 이렇게 예쁜 여자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지금에서야 나타났느냐”고 했답니다. 다 제 눈에 안경인 법입니다. 그러니 된 것 아닙니까.  그래서 곧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노처녀들이여,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그래요. 교회를 잘 섬기니 하나님이 그 집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이번에 노총각 노처녀들도 건축헌금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좋은 배필 주실 거예요. 새 예배당에서 결혼식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누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불행한 사람부터 골랐습니다. ‘배고픈 이’, ‘고독한 이’, ‘보람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이’, 이렇게 이어가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습니다. 그렇다. 행복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입니다. 세상에는 별소리가 다 있습니다. 유혹의 소리가 있습니다. 심방 가서 들은 얘기 입니다. 요즘은 남녀가 만나는  ‘미팅’이라는 것이 대학생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줌마들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있고 집에서 노는 아줌마들에게 이런 유혹이 많다고 합니다. 사탄의 음성도 있습니다. 어느 대학교 교수는 자다가 “아들아, 나 춥다. 이불을 덮어다오!”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자다말고 일어나 담요를 들고 공동묘지 아버지 무덤에 갔다가 얼어서 죽었습니다. 여러분, “아들아!”하는 소리 듣지 마세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제 후배 목사는 자녀들을 위하여 체육관도 지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번 증축 공사는 주로 교육관 시설을 넓히는 공사입니다. 자녀들의 교육에 투자를 아껴서는 안 됩니다. 자녀가 부모를 전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녀들 때문에 부모가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아는 선배 목사님은 진보신학을 해서 목회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도 너무 잘되었습니다. 사업이 망해야 다시 돌아와 목회를 할 터인데 사업이 잘되니 돌아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백혈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죽어가면서, “아버지,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나는 하나님 나라 예수님 곁에 가요. 예수님 모습이 보여요. 아버지 안보여요? 지금 천사가 나를 데리려 와요. 찬송가 불러주세요.”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회개하고 다시 돌아와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큰 교회에서 목회하고 계십니다.

이 좋은 역사에 우리 모두 함께 즐거이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제가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전에 이성봉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겨울에 손자가 감기에 들려 아파하니 할머니가 등에 업고 세 시간을 달래주더라는 것입니다. 만약 손자 무게만큼 나가는 돌덩어리를 업고 있으라면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세 시간을 업고 있으면서도 어려운지 모르는 것입니다. 사랑이 중요합니다.

유대인의 구전에 의하면 어느 형제가 서로를 생각하면서 달밤에 볏단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형은 동생네 가정엔 애들이 많아서 살림이 어려울 것 같아서 동생네 집에 볏단을 몰래 가지고 가서 놓고 왔습니다. 동생은 형이 부모를 모시기 때문에 살림이 어려울 것 같아 형네 집에 몰래 가지고 가서 놓고 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볏단이 전날과 똑같았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며칠간 반복하던 중 달밤에 볏단을 나르던 형제가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바로 이 볏단이 있었던 곳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다고 합니다. 그 형제의 사랑이 넘쳐흐르는 곳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모두 형제와 자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서로+서로 사랑하여 협력하면 이 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낼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김인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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