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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마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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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다같이 한 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끝까지 최선을 다하자」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벌써 12월이 되었고 오늘이 4일입니다. 금년이 이제 세 주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12월이 되면 사람들은 공연히 마음들이 들뜨고 있습니다. 거리와 상가에는 벌서 크리스마스의 상품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고 성탄절 노래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성탄절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 세상에 계셨더라면 그 옛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꾼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을 야단을 쳐서 내 쫓으시던 것처럼 다시 한번 예수를 빙자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을 책망을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 12월을 맞이하여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12월을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12월은 모든 것을 결산하는 달입니다. 기업들도 12월이 되면 결산을 해서 금년에는 과연 얼마의 흑자를 남겼으며 만약 손해를 보았으면 얼마의 손해를 보았는지를 결산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신앙의 결산” 을 해야 합니다. 금년 한 해 동안의 나의 신앙이 얼마나 성장을 하였는지 아니면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병들어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는 아닌지, 아니면 아예 식물인간처럼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는 아닌지, 결산을 해야 하며 또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하였는지를 결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마25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의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이 먼 곳으로 갈 때에 종들에게 그들의 재능에 따라서 달란트를 맡겼다가 돌아와서 회계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때 열심히 충성스럽게 일하여 많은 이익을 남긴 종들은 칭찬과 아울러 상을 받았지만 게으르고 불평이나 원망을 하던 사람은 결국 책망을 받고 가진 것도 빼앗기고 어두움에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들은 항상 주님 앞에서 결산하는 자세로 믿음생활을 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또한 12월은 모든 것을 정리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금년 년초에 작정하였던 것을 다하지 못한 것은 빨리 마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작정을 한 것이거나 의무 감당하지 못한 것도 갚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신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 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또 누구에게 채무를 진 것이 있으면 그것도 빨리 갚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을 정리하는 달이 바로 12월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 틀렸다고 체념해 버릴 것이 아니라 금년이 아직도 20여 일이나 남아 있으니 이 남은 기간에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마치 오늘 본문 말씀에 있는 대로 마지막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가서 한 시간만 일을 한 사람이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일한 결과로 하루종일 일한 사람과 똑같은 품삯을 받은 것처럼 남은 기간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기 전에 마지막 길인 베뢰아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가르치신 목적이 바로 천국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라고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려고 하신 천국의 비밀을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할 일은 많은데 일꾼이 없어서 우리를 천국의 추수꾼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마9:37-38)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때로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로도 부르십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품꾼입니다. 품꾼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만 열심히 하면 정한 품삯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실하지 못한 일군은 절대로 다시 쓰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 어느 때이든지 간에 항상 일꾼을 불러서 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고통을 받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사무엘, 이사야, 예레미야, 모두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쓰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간혹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부름을 거역하였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기도 한 사람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12제자를 비롯하여 바울과 같이 주님의 부름을 받아 쓰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일꾼을 부르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을 하였습니다.
삼상3:10절 말씀에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이 일꾼을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일꾼을 찾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2. 부름 받은 사람은 그 시기가 언제이든지 간에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마가복음11:13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열매가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그 나무가 말라죽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볼 말씀은 “예수님께서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 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열매의 때가 아닌데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신 것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말씀에서 무화과나무는 우리들 성도들은 말하는 것인데 우리 성도들은 우리 주님이 요구하시면 언제든지 열매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철이 아닙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내년에 열매를 맺겠습니다. 라고 핑계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항상 언제든지 준비가 완비되어 있다가 주님이 원하시면, 주님이 요구하시면, 주님이 쓰시겠다면, 언제든지 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부르실 때 내일 하겠습니다. 내년에 하겠습니다, 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하여야 합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세상에는 많은 초대가 있습니다. 결혼식의 초대가 있고, 생일잔치, 회갑잔치의 초대가 있고, 친목계 모임의 초대가 있고,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니 망년회를 갖는 초대가 있고, 많은 종류의 초대가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초대에 여러분들은 빠질 수 없다고, 빠져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조금도 신앙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당당하게 갑니다. 아무런 미안함 같은 기본 신앙 양심마저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하는 목사를, 잘못된 사람으로, 옹졸한 사람으로, 사람의 도리도 모르는 사람으로, 몰아 부치고 맙니다.
여러분들 중에 만약에 어느 날 대통령이 점심을 함께 하자고 초대를 하였습니다. 아주 신나서 그러마고 대답을 하였는데 이튿날 여수 시장이 점심 식사를 함께 하자고 초대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같으면 누구의 초대에 응하겠습니까? 유치원 아이들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초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서도 세상 사람들의 초대가 더 중요하다고 그리로 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세상 사람들의 초대와 하나님의 부름을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보세요 몸에 병이 나서 아플 때는 아프다고 못나오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한 번만 고쳐주시면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해 놓고 병이 낳으니까 이제는 잔칫집 다니느라고 主日을 범하고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다같이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찬송가 269장>
2. 웬일인가 내 형제여 마귀만 쫓다가
저 마귀 지옥 갈 때에 너도 가겠구나
3.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 물건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예수님 당시 유대 나라나 로마의 풍습에는 아침 6시에 일을 시킬 사람이 시장에 가서 품꾼과 하루의 품삯을 정하고 데려다가 일을 시켰습니다. 일찍이 불려간 사람은 그 날 재수가 좋다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늦도록 불려가지 못한 사람은 점점 불안해 질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오후 5시가 되도록 아무도 자신들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지 않는 그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였겠습니까? 이제는 거의 체념할 수밖에 없는 시간인데 뜻밖에도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얼마의 품삯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일을 하게 된 것 자체가 한없는 기쁨이요 축복입니다. 일의 소중함은 실업자가 되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아파서 고통을 당해 본 사람만이 건강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께 부름 받았다는 그것 자체가 축복 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집사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권사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장로가 안되면 어떻습니까? 지금 내가 예수의 부름을 받아서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내 영혼이 구원받은 그 사실이 귀중하고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문제는 부름 받은 시간이 문제가 아니고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였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회에서 언제 부름을 받고 언제 무슨 직분을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직분에서 얼마나 열심히 충성하였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먼저 들어온 사람들은 품삯에 대하여 불평과 원망을 하였습니다.
(마20:11)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사랑하는 주은혜교회 성도 여러분!!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고 한 말씀과 같이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죽도록 충성을 하였습니까?

이제 2005년이 12월로 접어들어서 마지막 고비를 지나고 있습니다. 마치 한해를 하루에 비교한다면 해지기 1시간 전과 같습니다. 해지기 한 시간 전에 들어갔어도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품삯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금년 한 해가 저물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충성을 한다면 주님은 반드시 처음 부름 받은 사람과 동일한 상급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3.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곳이 어디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주인이 품꾼들에게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 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주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는 곳은 포도원입니다. 포도는 이스라엘 성지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농산물 중의 하나로 이스라엘 곳곳에서 포도원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포도원에 대하여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가르치기도 하고 그리스도와 성도, 그리스도와 교회간의 관계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포도원은 두말할 것 없이 교회를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 고 한 것은 곳 “교회에 들어가서 일하라” 고 하신 말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를 등한시하고 또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세상으로 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바빠서, 어떤 사람은 흥미가 없어서,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또 어떤 사람은 사업이나 결혼 문제로 인해서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 경배와 예배를 드리는 곳이지 자기의 어떤 욕심이나 소원을 얻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기 때문에 교회에 모여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교제하며 충성하며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4. 주님이 부르시는 것은 지금 즉시 일하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부름을 받은 일꾼은 내일 일하라고 부른 것이 아닙니다. 지금 즉시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한 시간이 남았던지 두 시간이 남았던지 지금 즉시 일하라는 것입니다. 믿으시면「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은 일찍 젊어서 부름을 받고 직분까지 받은 분도 있지만 또 어떤 분은 늦게 믿어서 늙어서도 직분도 없이 평신도로서 믿음생활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얼마나 하나님께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여생을 열심히 하나님께 충성과 헌신과 봉사를 하여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일하는 것도 때가 있고 충성하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고후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모든 말씀은 현재를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살지만 거기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현재요 일하는 것도 현재입니다. 우리는 현재에 살고, 현재에 일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곳 일한다는 말과 상통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살아 있다는 것은 현재에 보람 있게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일로 미루지 마세요. 그리고 내년으로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내일이 있다. 내일 하라. 내일 해도 늦지 않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일은 아무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약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눅12:16절 이하의 말씀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부자는 내일을 알지 못하고 곡간을 크게 짓고 많은 곡식을 쌓고 몇 해 동안이고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자고 하였으나 그 날 밤에 그의 영혼을 하나님이 거두어 가실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내일 하면 되지” “내일부터 하지” “내년에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은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어떤 왕은 충신으로부터 올라온 상소를 “내일 읽지” 하고 미루었다가 그 날 밤에 암살을 당해 죽었습니다. 그 상소의 내용은 신하들 중에 역모를 꾀하는 무리가 있으니 자객을 조심하라는 상소였습니다.

현재는 항상 한 번밖에 기회가 없습니다. 내일이면 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바로 지금, 일하라고 주님은 우리를 불러 주신 것입니다. 내일이나 내년으로 미루지 말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상급을 예비해 주실 줄 믿습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은 많은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언제부터 예수를 믿었느냐를 중요시한 것이 아니고 지금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고 또 아무리 충성을 많이 하였다고 하여도 지금 나의 신앙이 어떻하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겔33:12-13)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 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 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그러므로 지금 현재의 믿음 상태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믿음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지금 당장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면 주님 앞에 갈 수 있을는지, 아니면 지금까지 입술로만 주여 주여(마15:8)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있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외식하는 자가 되어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에스겔서 33:20절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오후 다섯 시에 포도원에 들어가서 1시간만 일을 한 사람들은 아침 6시에 들어와서 일한 사람들과 비교하여 볼 때 그 일한 양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1시간 동은 저들은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하였기 때문에 똑같은 품삯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5년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 순간에 우리는, 바로 오늘의 소중함을 깨닫고, 열심히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풍성히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끝까지 충성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충성이나 헌신의 개념은 1회성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마24:1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즐기는 모든 운동경기는 마지막1초가 지나고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열심히 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이기고 있다고 하여도 방심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역전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농구에서는 마지막 1초를 남겨두고 3점 슛을 날려 역전되는 경우가 있고 또 축구도 마지막 1분을 넘기지 못하고 역전 꼴을 당하는 수도 있습니다.
또 여러분이 잘 아는 이솝의 우화 중에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토끼는 앞서가면서 거북이가 쫓아오려면 아직도 멀었으니까 나무 그늘에서 한숨 자고 가자고 한 것이 그만 거북이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1초라도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이제 12월을 맞이하여
금년이 다 가도록 결코 방심하거나 게으름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금년이 다 가도록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 앞에 부름을 받는 그 순간까지,
이 생명 마치는 날까지,
절대로 나태하거나 게으름을 부려서도 안되고,
방심해서도 안되고, 또한 뒤를 돌아보아서도 안됩니다.(눅9:62)
좌우로 치우쳐서도 안됩니다. 앞만 보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불레셋 나라에서 벳세메스로 가는 소들처럼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성도가 되어서 마지막까지 참고 견디어 승리하여 우리 주님이 예비하신 면류관의 상급을 받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 멘!> - 임영수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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