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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인생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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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심리학과 교수가 실험을 했습니다. 인간이 고통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에 관한 실험이었습니다. 텅 빈 강의실에서 차가운 물 양동이에 얼음을 넣어 아주 차가운 물을 만들고 맨 발을 담그는 것입니다. 참다못해 뛰쳐나올 때 까지 시간을 잽니다.
  다음 실험은 그 사람의 가장 친한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맨 발로 같은 조건에서 다시 실험을 했습니다. 그 때에는 놀랍게도 가까운 친구들이 함께 있을 때는 혼자 있을 때의 꼭 두 배의 시간을 잘 견뎌내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인생의 갖가지 고통 가운데 누군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 내게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이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이라는 시 입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 이 시의 배경은 현대인의 고독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시끄럽고, 바쁘고, 분주하고, 화려하게 살고 있지만 사실 그 내면의 깊은 속은 고독으로 울고 있습니다. 누군가 현대인을 가리켜 “현대인은 외로워서 울고, 함께 동행 할 사람이 없어서 울고, 함께 울어 줄 사람이 없어서 운다. 심지어 기쁨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운다.”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우리의 외로운 인생길에 친구가 되어 주실 수 있고, 함께 걸어가 주실 수 있는 그 한 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 분은 바로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겁한 목자들은 양떼가 어려움을 당하면 양을 버려두고 나만 살겠다고 도망치지만, 선한 목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양떼를 위험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버리고 희생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 분의 생명을 내어 놓으시고 그 분의 값진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분은 연약한 양 떼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에 보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길에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편 23편은 유명한 다윗의 시입니다.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편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찬송가에서도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라는 곡이 많이 불립니다. 한번은 성도들에게 “당신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때에 성경의 어떤 부분을 읽어주는 것이 좋겠습니까?” 란 질문에 10명 중 9명이 이 시편 23편을 들려주길 원했다고 합니다.

  시편 23편에는 우리 인생의 순례길이 담겨 있습니다. 일생을 주님과 함께 살다가 마지막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서 여호와의 집을 향해 가는 한 순례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잔이 넘친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또 마지막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는 것으로 이 시를 끝내고 있습니다.

  다윗만큼 많은 고난과 고통의 세월을 보낸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수많은 세월을 도피와 방황과 피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는 인생의 고통을 다 보내고 노년에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앉아있을 때 자신의 걸어온 삶을 회고하면서 이 시를 기록했다고 봅니다.
  고통과 괴로움의 골짜기 속에서도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심으로 내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고 내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가운데 있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다윗의 목자가 되신 하나님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목자가 될 수 있는 것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의 인생길의 목자가 되어 주심으로써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국기는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한 사람을 상징하는 별이 그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다윗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가를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신 삶, 그것은 바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요,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인생은 어떤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첫째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1절,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오늘 시인은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시니 부족할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양들의 습성은 배가 부르면 눕는다고 합니다. 누워서 잠을 자든지 쉰다고 합니다. 오늘 주님이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으로 이끌어 가시고 많은 꼴을 먹이시니 이 양떼들이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우리들의 목자시고 양떼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그 많은 고난의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삶의 부족함이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려울 때 마다 하나님은 그의 삶을 책임져주셨고 공급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도 사실 부요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늘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보니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빠듯한 삶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내 목자가 되시면 거기에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고 만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 40년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광야에 풀 한 포기 없는 곳이지만 아침마다 만나를 보내 주셨고, 동풍을 불어오게 하셔서 메추라기를 몰고 오셨고, 목말라 할 때는 반석을 쳐서 생수가 터지게 하셨습니다. 바로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신 삶은 부족함이 없는 삶입니다.

  한 교회의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시기로 했답니다. 한 주 전에 가야 할 교회의 사무원으로부터 설교 제목과 본문을 알려 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본문은 시편 23편 1절부터 6절까지요,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일러 주었는데도, 사무원이 의아한 듯이 “목사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 다음은 없습니까? 뭐가 좀 부족한 것 같아서요.”라고 되묻더랍니다. 목사님의 대답은 “여호와가 내 목자시면 되었지 뭐가 부족합니까?”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아내요 남편이 되었으면 되었지 뭐가 부족합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삶은 부족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통해서 감사할 수 있는 삶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시편 23편을 재미있는 사투리로 표현해 놓은 것을 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함께 웃을 준비가 되셨는지요? ^^
  시편 23편 1절, 2절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나님은 내 목자라카니 내사마 답답할게 눈꼽만치도 없는기라” 전라도 사투리로는 “앗따, 여호와는 시방 나의 목자신디 나가 부족함이 있겄냐?” 평양말로는 “아~ 여호와가 내 목잔데 뭐이가 부족하간?”

  맛만 볼 것이 아니라 경상도 말로 완역한 것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내사 마 답답을끼 없데이
시이프른 플구디 내 디비지고 쪼메 쉿다갈 또랑가로 델꼬가신다.
내 정신 챙기시사 올케 살아가 카심은 다 저 양반 체면 때문이라 카네.
내 죽을 뻔한 골짜구디 껌껌한데서도 간띠가 부가 잘 댕기는 것은
그 빽이 여사가 아인기라.
주의 몽디와 짝대기가 내를 지키시고
내 직일 놈 문디 앞에서 내 기 세아 주신다 아이가.
사는기 아무리 복잡다 케사도 저 양반이 맨날 지키주신다카이께내
내사 우짜든지 그 옆에 딱 붙어가 죽어도 안 떠날란다”

  우리들의 인생이 늘 주님 곁에 붙어있는 삶이되길 바랍니다.

  두 번째,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인생의 축복은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 입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소생’이라는 것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20년 넘게 목회하면서 보면, 처음에 교회에 왔을 때는 표정이 어둡고 여기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에 병색도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교회 나와서 설교를 듣고, 찬송을 따라 부르고, 기도를 배우면서 한 주 두 주 지나다 보면 그 새 얼굴이 환해집니다.
  전에 시무하던 교회의 한 분은, 얼굴이 까맣게 타고 병색이 짙었습니다. 약도 매일 먹다시피 하던 사람이었는데, 교회 나온 지 1년 만에 얼굴이 그렇게 좋아질 수가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나니 구역장이 되어 구역을 인도했습니다. 어찌나 열심히 봉사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회복시키는 힘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심령도 살리고, 육신의 삶도 소생시키십니다. 

  우리에게는 용모와 표정이 있습니다. 용모는 하나님 책임입니다. 그렇지만 표정은 내 책임입니다. 나이 40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어두운 표정, 힘든 표정, 밝은 표정, 그것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 우리가 밝은 얼굴로, 행복한 얼굴로 변화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이 살아나고, 육신이 살아나고, 얼굴 표정이 바뀌게 됨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처음 나오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아마도 모든 게 다 어색할 것이 분명합니다. 기도도 잘 못 알아듣겠고, 찬송은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실겁니다. 모르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한 주, 두 주 지나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말씀을 듣다가 찬송을 부르다가 눈물이 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이 내 마음에 감동을 주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할렐루야가 무엇인지, 아멘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교회 문화에 익숙하지 않지만, 몰라도 괜찮습니다. 오죽했으면 어떤 새신자가 교회에 왔다가 물어볼 것이 있어 교회에 올라 왔는데 담임 목사님을 찾는다는 것이 ‘주지 목사님 어디 계십니까? 하고 물었답니다. 절에 가면 제일 큰 스님을 주지라고 부르니 엉겁결에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시면 주님은 여러분을 반갑게 맞이하시고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이기에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면 내 영혼이 소생함을 얻습니다. 용기와 희망을 얻습니다.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의로운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의의 길이라는 것은 바른 길, 정직한 길, 생명의 길을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양 같아서 그릇된 길로 가지만 주님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그 분이 우리의 길 되신 주님만을 따라갈 때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이를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리석은 길로 갑니다. 돼지를 도살장에 끌고 가려면 그 앞에 콩을 던집니다. 콩 먹으려고 따라가다가 보면 도살장에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멸망의 길인지도 모르고 돈을 쫓아, 권력을 쫓아, 쾌락을 쫓아 따라갑니다. 그것이 인생의 진정한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인생의 바른 길로 인도하실 분은 바로 주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비게이토의 국제 선교를 담당하는 목사님이 캐나다 토론토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 시카고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뭔가 이상해서 다시 게이트를 확인해보니 엉뚱한 곳에 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많고 5분 안에 저 쪽 끝 까지 간다는게 통 불가능한 일처럼 보여 난감해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놓치면 집회 시간에 늦게 됩니다. 그 때 승무원 복장을 한 말끔한 신사가 와서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 팔을 꼭 잡고 따라 오세요.” “아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저는 토론토까지 비행기를 몰고 갈 조종사올시다. 설마 내가 가기 전에 비행기가 떠나진 않겠죠?”하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팔을 붙들고 간다면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세 번째, 주님이 함께 걸어가는 인생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주님이 함께 걸어가신다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음침한 골짜기가 있습니다. 질병의 골짜기, 불황의 골짜기, 인간갈등의 골짜기, 가정 분란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마지막 우리가 가야 할 골짜기는 사망의 골짜기 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도 두렵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염려와 두려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 두려움이 때로는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그 우울증 때문에 인생을 하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몇일 전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국에 유학 가 있는 삼성 회장의 셋째 딸이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참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을 다니고 있고, 결혼을 앞두고 있고, 그 많은 재산을 상속받을 터인데 뭐가 부족한 게 있었을까요? 먹을 것을 걱정했을까요? 무엇을 탈까 걱정했을까요? 그 많은 재산을 상속받기로 예약되어 있는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때로 인생에 돈이 행복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인생의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자멸해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길의 목자가 되어 주신다면 우리 삶은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33대 대통령인 아이젠하워가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에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몹시 마음이 불안하고 공포에 질려 두려움 가운데 떨었습니다. 그는 절친한 친구 빌 그레함 목사님을 초청해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신이 남긴 많은 업적 때문에 당신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당신의 죄가 용서받고, 당신은 천국에 이를 것입니다.”
  그 설명과 기도를 들은 후에 아이젠하워의 얼굴은 평안을 되찾았습니다.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다. 평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업적, 공로 때문에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피 때문에 제가 천국에 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고 그는 평안히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비록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떠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승리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시편 23편의 시인은 마지막 승리의 보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풀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나를 괴롭히던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리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어주신다고 했는데 이 기름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마음의 상처, 육체적인 상처, 지울 수 없는 상처들을 그것을 다 주님께서 기름으로 다 닦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이 땅의 삶이 끝나면 우리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축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 되시면 우리는 영원한 주님의 나라고 인도함을 받습니다.

  미국의 여섯 살 짜리 아이가 암에 걸려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아빠는 아이에게 “힘 들 때마다 주님이 내 목자가 되는 것(The Lord is my shepherd.)을 기억하렴.  첫째 손가락은 The야, 둘째 손가락은 Lord, 셋째 손가락은 is 넷째 손가락은 my 다섯째 손가락은 shepherd란다.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손가락을 꼽으며 기도하렴. 하나님은 바로 나와 너의 목자가 되시니 두려울 것이 없어. 하나님이 너의 목자가 되심을 꼭 기억하렴.” 그리고는 아빠는 출장을 떠났고, 엄마는 시장에 갔다 와 보니 아이가 이미 세상을 떠나 있었습니다. 엄마가 놀라 이불을 제쳐 보니, 아이가 오른손으로 왼쪽 손가락을 꼭 잡고 숨을 거두었답니다. 그 아이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그의 목자로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다윗의 목자만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나의 여러분의 목자가 되십니다.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피곤에 지친 영혼을 새롭게 해 주십니다. 우리를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나의 목자 되신 주님을 여러분 마음에 다 영접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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