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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레위의 축복을 누리자 (신 3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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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33: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신 33:9)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
(신 33: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
(신 33:11) 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 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1. 하나님을 향한 삶의 방향 전환이 저주를 축복으로 바뀌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저주가 축복으로 변한 사람입니다. 저주와 축복은 아주 멀리 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저주의 구조와 축복의 구조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구조는 동일합니다. 단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방향이 저주의 방향과 축복의 방향으로 다를 뿐입니다. 동일한 구조에서 세상을 향해 사는 사람은 저주로 향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사람은 축복을 향합니다. 그 방향의 경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사람의 구조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방향이 불행한 것입니다. 불행한 가정도 가정의 구조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 가정을 움직이는 사람의 삶의 방향이 불행한 것입니다. 문제는 구조에 있지 않습니다. 그 구조를 책임진 사람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는가, 아니면 세상을 향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때 우리의 외형적인 구조가 변한 것이 아닙니다. 그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변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저주의 인생에서 축복의 인생으로 바뀐 대표적인 인물이 레위인들입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그리고 성전에서 봉사의 직무를 담당하는 레위인들 모두 레위지파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알게 하는 지파입니다. 이들은 원래 시므온 지파와 함께 그 잔인성 때문에 한 지파로서의 기업을 누리지 못하고, 각 지파에 흩어져 살아야 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출애굽의 고난의 과정 속에서 그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레위인은 본래 잔인한 지파로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야곱의 딸 디나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였을 때 시므온과 레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겜 사람들을 속여서 그 곳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는 잔인성을 보였습니다. 창 34:25에 보면, 그들은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으면 그들과 한 민족이 되겠다고 약속을 하고도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3일째 되는 날 그 성의 모든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이 잔인성이 그들이 저주 받은 원인이었습니다.

창 49:5-7은 야곱을 통해 그들에게 선포된 저주의 예언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중에서 흩으리로다” 잔인성으로 인해 기업도 없이 각 지파로 흩어져 사는 저주입니다.

그러나 출애굽의 은혜로 그들의 잔인성의 방향이 바뀌자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계시를 받는 동안에 산 아래에서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산 아래 내려와서 이러한 패역함을 목격한 모세는 이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자원자를 모집했습니다. 출 32:26에 보면 이때 자원자로 나선 사람들이 레위 지파입니다. 이들의 잔인성이 바뀌어서 우상숭배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누구도 할 수 없을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형제와 친구들을 죽이는 일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레위 지파가 어려운 결단을 하고, 헌신함으로써 우상 숭배를 주동한 주동자와 이에 합류한 사람들을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레위지파의 잔인성이 선한 열심으로 바뀌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역사입니다. 형제와 친구까지도 죽여야만 하는 일에 헌신할 사람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서 악을 제거하지 못하고, 공동체 전체가 저주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 33:8-11은 그 결과로 받게 된 축복입니다.

2. 레위인이 받은 복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평강을 위한 네 가지 직무다.

출애굽 한 레위인들은 그 은혜로 인하여 그들의 잔인성이 원수 갚는 복수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러한 레위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창 49:5-7의 야곱의 예언이나 신 33:8-11의 모세의 축복에서 레위인의 삶의 구조와 겉모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주의 경우나 축복의 경우나 다른 지파들 속에 흩어져 살아갑니다. 그러나 방향은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레위인들은 출애굽의 은혜를 경험하기 전에는 분노와 혈기로 각 지파 중에 흩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의 은혜를 경험한 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로서 각 지파 중에 흩어져서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주는 자로 살아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신 33:8-11은 그 복의 종류를 네 가지로 압축하여 선포합니다. 이 축복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우리들이 받아 누리는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저주아래 있던 우리들이 믿음으로 받은 복입니다.

신 33:8-9에서 첫 번째 복은 “하나님의 신탁을 나르는 직무”입니다. 신 33:8의 전반절에서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레위지파 중의 제사장들에게 맡겨졌습니다. 제사장은 자신이 입은 에봇 앞가슴에 부착되어 있는 판결 흉패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다니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시적은 뜻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에게 우림의 판결법을 위임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삼상 14:36-42에는 사울이 제사장의 우림의 판결법으로 묻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삼상 28:6에서는 우림의 판결법으로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전달되지 않자 답답해하며 하나님의 뜻을 포기하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타락한 사울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우림”은 “빛들”을 의미하고 “둠밈”은 “완전”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판결 흉패에서 우림과 둠밈을 꺼내어 펼쳤을 때 둘 다 “Yes"로 나와야 하나님의 뜻으로 행할 수 있었을 것인데, 계속 ”Yes, No" 또는 “No, No"로 나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이러한 신탁의 권한을 레위인의 권한으로 여기셨습니다. 즉 레위인의 축복과 제사장의 축복을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직무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모두 레위지파의 복으로 동일하게 다루셨습니다.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신탁의 특권을 축복을 받은 것은 레위인들의 잔인했던 열심이 출애굽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인들의 변화를 두 가지로 검증하신 후 이 축복을 주셨습니다.

첫째 검증은 맛사, 므리바 물가에서입니다. 신 33:8의 후반절은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출 17:7에 보면 맛사와 므리바는 르비딤 지역에 있는 같은 장소입니다. 물이 없어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주신 장소입니다. 그래서 “맛사”는 “시련, 유혹”의미하는 지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명칭이고, “므리바”는 “꾸짖음”을 의미하는 지명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명칭입니다.

출 17:2에 보면 하나님은 이 사건을 하나님을 시험한 사건으로 보셨습니다. 아마 이때 레위지파 사람들이 하나님 편에 서서 어떤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물을 달라고 싸울 때 레위지파가 잠잠히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렸거나, 불평하는 다른 지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었거나 하는 어떤 행위가 있었을 것입니다. 레위인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였고, 하나님과의 다툼에서도 하나님 편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두 번째 검증은 앞에서 언급한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사건에서 하나님 편에 섰던 일입니다. 신 33:9는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최고로 여기며, 하나님의 거룩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레위지파의 믿음의 행위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견고한 믿음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두 역사적인 검증을 통하여 하나님은 과거에 잔임함으로 저주를 받아야 했던 레위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의 최고의 직무인 하나님의 신탁을 위임받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지파 가운데 흩어져 사는 더부살이 인생이 아닙니다. 겉모습은 야곱의 예언처럼 더부살이의 모습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들이 처한 곳의 모든 영적인 책임과 권한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말씀의 대행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각 영역에 레위인이 있어야 하나님의 복이 전달됩니다.

3. 레위의 복은 율법의 가르침으로 이스라엘의 생명을 보존하는 복이다.

레위지파가 받은 두 번째 복은 “주의 법도와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직무”입니다. 신 33:10의 전반절에서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라고 하시며 율법을 가르치는 직무의 복을 주셨습니다. 자신에게 저주의 예언을 해야 했던 야곱의 모든 지파 백성들에게 오히려 주의 법도와 율법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는 직무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법도(미쉬파트)”는 법률적인 각종 판결이나 선언이며 “율법(토라)”는 십계명 같은 “명령”입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청결한 것과 불결한 것의 구별을 가르쳤습니다. 거룩한 것과 거짓된 것을 구별해 주었습니다. 각종 관계들 속에서 하나님의 의로 판결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모든 정황에서 구별을 만들고 경계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제사장들의 구별과 경계를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즉 레위 제사장의 직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사 문제를 쥐고 있는 직무의 복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의 “구별과 경계”의 목적은 가두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생명을 보존하는 목숨 건 싸움입니다. 제사장들은 최선을 다하여 법도와 율법을 가르침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보존해야 했으며, 그들을 죽지 않게 지켜내는 직무 수행을 복으로 누려야 했습니다. 즉 다른 영혼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일생을 투자하며, 그들의 생명과 함께 복을 누리는 직무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법도와 율법을 가르치는 직무”는 제사장 직무 중 가장 힘든 직무이지만 그만큼 복된 직무입니다.

그래서 레위 제사장들이 타락할 때마다 제일 먼저 포기하는 직무가 “가르치는 직무”였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법도와 율법을 가르치며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보존하는 힘든 일을 포기하고 세 번째 직무의 복인 “제사집례”의 의무만을 다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르치는 직무를 포기하여 백성들의 생명을 세상과 우상의 밥이 되게 하고 제사만 드리려는 레위제사장들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삶 가운데 말씀을 적용하지 않으며 예배하러 오는 성도들을 향한 요구입니다.

레위지파가 받은 세 번째 복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직무의 복입니다. 신 33:10 하반절에서 “주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전체를 마음에 품고, 어깨에 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드리는 직무입니다. 레위 제사장들에게 법도와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온 백성들의 모든 삶의 열매들을 모아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들을 대표하여 제사 드리는 직무의 복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가르침으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생명을 보존하며, 각종 풍성한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 앞에 제사하러 나오는 백성들을 맞이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가는 레위 제사장들의 행복은 최고의 행복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이러한 복을 누릴 수 있는 직무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열심을 통해 생명을 보존한 사람들의 생명의 역사들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레위 제사장들의 마음은 행복이 충만할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받은 네 번째 복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선언하는 직무입니다. 신 33:11은 “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 나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레위 제사장들이 손을 얹고 축복을 선언하는 곳마다 온전케 되어 재산이 풍족케 되고, 그 손의 일이 성취되며, 모든 대적으로부터 승리하게 됩니다. 즉 제사장의 축복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샬롬의 평강이 임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인이 하는 직무의 일을 받으십니다. 레위인의 재산이 풍족하도록 레위인들이 축복하는 백성들의 재산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레위인이 보호받도록 레위인의 대적과 미워하는 자들의 허리를 꺾어버리십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은 이러한 복을 모든 백성들에게 나누어줍니다. 레위 제사장들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뜻이 선포되고, 생명을 보존하는 법도와 율법이 가르쳐지며, 삶의 모든 열매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예물로 드려집니다. 모든 축복의 열매로서 주의 평강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방향이 바뀐 자들로서 이러한 레위인의 축복을 세상에 선포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주는 삶은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평강을 나누어주는 삶입니다. 오늘날 세상 문화는 타락과 파괴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타락과 파괴 현장에 우리들이 들어갈 때마다 레위적인 축복으로 평강의 문화가 선포되어집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축복의 나눔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김종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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