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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라 (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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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1절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호적 하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로마의 통치자인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가 점령하고 있는 모든 지역의 인구조사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러한 로마 통치자의 행정 명령은 점령지인 유대 나라이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로 정혼한 상태의 호적 신고를 하기 위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다고 말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선진국들은 10년에 한번씩 인구조사를 합니다. 그래야 행정 통치에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로마 행정부의 유대 나라 인구조사는 다른 목적 때문에 합니다. 과거 일본이 우리 조선 인구에 대해 인두세를 받아갔듯이 세금 징수와 제일 큰 관계가 있습니다. 당시 인구조사에 응하는 사람들은 있는 자리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부모의 고향을 찾아가야 되는 불편이 있었습니다. 오늘 4절 말씀에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하러 올라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주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마리아가 만삭이 된 상태에서 갔습니다. 유대 나라의 지리적 조건을 보면 나사렛 동네는 북쪽 지역의 제일 끝에 있습니다. 또한 베들레헴은 남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작은 나라이기는 해도 한 나라의 끝에서 끝을 가야 되는데 교통수단이 없어서 걸어서 가야 합니다. 이 만삭된 여인이 그렇게 먼 길을 도보 여행한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도움을 받으면서 무사히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국가의 행정 명령에 따라서 전국에서 베들레헴 연고자들이 한꺼번에 다 몰려들었기 때문에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을만한 숙박 시설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관주인들에게 많은 돈을 줄 테니 방을 하나 달라고 하면 아마 그 실력을 보아서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가난한 요셉이 그만한 것이 없어 밀려나고 또 밀려난 장소가 마구간이 되었다고 봅니다. 유대 민족은 유목민의 생활문화이기 때문에 이 마구간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한국사회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마구간이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도저히 자거나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유목민 목자들이 흔히 양 떼나 소 떼를 관리를 위하여 급한 대로 잠을 잘 수 있는 정도의 마구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상식 수준의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 사회나 또 어느 때나 만삭의 부인들은 특별보호 대상으로 취급합니다. 만약 우리가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는데 버스에 만삭된 여인이 올라탔다면 그를 보는 순간 누구든지 일어나서 그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보호 대상이라 그런 것입니다. 만약 그런 여인이 옆에서 괴로움을 표시한다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주변의 사람들은 달려들어서 그의 불편을 해결해 주는 도우미 역할을 합니다. 그런 사람은 특별 보호 대상입니다. 어떤 경우에나 우리 사회에서도 기차 여행이나 혹은 장거리 버스 여행 때 이런 만삭 여인의 출산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즉석에서 전부 돈을 거두어서 축하금을 전달하고 환영을 해줍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지나가다 여행객이 그 땅에서 아기를 낳았다면 그 아기는 부모가 어느 나라 국적이든, 미국과 전쟁을 하는 적군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어린 아기는 미국 시민권자로 만들어 줍니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기는 미국 시민이 받을 수 있는 정부 혜택을 평생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그냥 주고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격까지 줍니다. 그래서 원정 출산을 하러 가는 것입니다.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므로 그렇게 축복을 받아야 되고 그렇게 인격 대우를 해주어야 된다는 철학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마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얼마나 많은 집을 다니면서 방 하나를 얻기 위해 열심히 요청하지만 한 사람도 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오래하다 보니 온갖 것을 다 경험하게 됩니다. 선진국들은 출산과 임종을 반드시 병원에서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집에서 어린 아기를 낳으면 그 수속이 너무 복잡하고 사생아 취급을 하고, 또 죽는 것도 별안간 어디에서 죽으면 그 조사하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누가 죽였는가, 어떻게 죽었는가 등 아주 골치 아픕니다. 그래서 반드시 병원에서 의사의 입회 하에서 출산하고 임종하도록 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도 이민을 많이 갔잖아요? 미국은 직장 문제가 아주 심각하단 말입니다. 심각하다는 것은 그 직장의 법을 어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단결석을 하거나 결근하게 되면 불이익을 많이 당하게 되니까 아주 철저하게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을 잘해야 됩니다. 그런데 아기를 낳는 가정이 교인들 가운데 많잖아요? 이 어린 아기가 내가 몇 월 몇 시에 태어나겠다고 광고를 합니까? 사실 의사의 진단도 정확하지 않잖아요? 예고 없이 어린 아기들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어린 아기는 나오고 시간은 급한데 이 산모를 도와줄 남편이나 가족들은 수백 리 밖에 있는 직장에 나가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 때가 많단 말입니다. 그런 때는 할 수 없이 목사가 도우미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급하게 연락을 받고 출산모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아기를 낳도록 도와준 적이 세 번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번은 새 색시가 첫 아기를 출산했었는데 내 차안에서 죽는다고 얼마나 소리를 치는지 나는 차 안에서 아기 나오는 줄 알고 보통 당황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출산하는 여인은 누구든지 어떤 경우가 되었던지 도와주어야 합니다. 잘 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 마리아는 아무도 안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날 밤 요셉은 평생에 가장 진땀을 빼는 밤이 되었을 것입니다. 가장 안전한 분위기에서 주변의 많은 도움과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의 생명력 탄생에 동참하는 행복한 고난이 출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방 하나 선물해 주는 이웃을 만나지 못하므로 마구간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메시아 출생의 사건이 주는 교훈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제일 먼저는 예수의 성육신(the Incarnation) 사건은 초림이나 재림이나 그 성격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인류 구원의 하나님의 성취가 이렇게 급한 상황, 예측할 없는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는가입니다. 유대인들은 적어도 700~800년 정도의 시간을 메시아 출현의 기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유대 사회의 메시아 출현 대망 사상은 마치 대한민국 사람들이 남북통일을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더 간절한 일이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들려오는 예언자의 소리가 끊어져 모든 사람들이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언제 메시아가 오실 것인가? 기다리고 있을 때 어느 날 광야에 마침내 하늘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소리 나는 곳으로 모두 달려가 봅니다. 그들은 자기들 앞에 나타난 예언자를 보고 ‘이는 메시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메시아라고 생각하니까 모두 사람들이 그가 말하는 대로 다 합니다. 그때까지 유대 백성은 세례라는 종교 의식이 없었습니다. 할례는 받았지만 세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요한이 “너희들은 모두 세례를 받으라!”했을 때 성경 말씀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이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때 그들은 세례 요한이 자기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인줄 알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19절에 보면 온 백성이 세례 요한에게 가는 것을 본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누구요? 메시아냐?”라고 물었습니다. 1장 20절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나는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온 자라.” 1장 29절에 가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 메시아를 소개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왔노라.” 이렇게 자기 신분을 밝힙니다. 여기 나타난 하나님 뜻이 무엇인가? 초림 예수의 출생은 시기를 알리지 아니한 가운데 실현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 사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초림 예수를 기다렸던 유대인들 못지않게 재림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 오실 것인가?”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도적같이 임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초림 메시아를 기다렸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로마 통치자 아구스도가 호적 명령을 내려서 모든 국민이 선친의 고향 연고지를 찾아가 인구 조사에 응하기 위한 국가적 행사의 바쁜 틈에 인류의 메시아가 탄생하실 것이라는 계산을 아무도 못했습니다.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재림 예수의 시기도 똑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하기 위해 온 국민이 흥분해 있는 그런 시간에 오실 지도 모르고, 우리 집 아들 장가를 들이는 분주한 결혼식 날 예수께서 재림하실 지도 모르고, 올림픽 경기 도중이나 예배 도중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지도 모르는 초림 예수의 성육신 사건과 다시 오실 재림 예수의 모습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성격이 같다는 것입니다.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다만, 오시는 방법만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초림 예수는 고난의 종으로 오셨는데 재림 예수는 영광 중에 심판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마구간 하나를 빌려 인간의 몸으로 출생을 하시게 됩니다. 만약 그날 저녁 어떤 사람이 요셉과 마리아의 이 딱한 사정을 보아서 방을 하나 제공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집은 그때부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성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마구간으로 간 이유를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라”고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분명한 것은 요셉이 만삭된 마리아를 데리고 여러 사관, 즉 여관의 방을 주문했던 것이 확실합니다. 사실 이 여관집 주인들은 그런 상황의 임산부를 보았다면 자기 집 안방이라도 내주어서 도우미를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경우의 부부가 여행 중에 애처로이 갈 곳을 몰라 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누구도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가 한번 왜 이렇게 방을 구하지 못했는가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별안간 전국에서 연고지를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로 붐벼 제일 대목을 보는 사람들이 여관집 주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관비는 부르는 것이 값이 될 만큼 돈에 눈이 어두워서 경쟁을 합니다. 이 며칠 동안 큰 수지를 맞추어야 된다고 모두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유대인의 재물관이 있어요. 지독스럽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물질 관계 최고의 실력자들이 됩니다. 우리가 학생 시절에 1,596년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솔직히 반 유대인 감정 작품입니다. 고리대금 유대인 샤일록크가 자기의 라이벌 안토니오에게 돈을 꾸어주고 기한 내 갚지 못할 때는 가슴의 고기 1파운드 떼어낸다는 약속으로 계략적 돈을 꾸어주고 갚지 못하니까 그를 죽이려고 하는 사건입니다. 나중에 재판 결과를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재판 결과는 두 가지로 나왔습니다. 하나는 “이러한 악독한 샤일록크의 재산을 우리가 모두 다 철수한다.” 두번째는 “네가 믿는 하나님은 잘못된 하나님이다. 예수가 소개한 하나님을 믿어라. 개종하라!” 그것이 판결입니다.

베들레헴의 그 많은 사관의 주인들과 주민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에게 빈 방 하나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2,000년 전 예수 탄생의 사건을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들은 어떤가? 우리 마음은 어떤가? 마찬가지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마음속에는 주께서 언젠가 찾아오셔서 거하실 방을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 복잡스러워서 욕심이 많아서 교통정리가 안될 만큼 많은 소원들이 우리 마음을 언제나 가득하게 메우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나쁘거나 불필요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직접 설교하신 내용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봐요.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을 복음의 진수라고 해서 ‘산상보훈’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신 중에 가장 진수가 되는 교훈이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산상보훈에서 가장 중심적 교훈이 어디인가? 인간이 평생을 통해서 가장 마음을 많이 쓰는 문제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인정하시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너희가 그렇게 가장 마음을 많이 쓰고 있는 시급한 문제보다도 더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이 있으니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마음 속에 너무 소원이 많아서 교통정리가 안될 만큼 가득 찬 너의 마음 가운데 그의 나라와 그 의가 들어갈 틈이 없으니까 만일 너희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너희 마음속에 그렇게 생각하고 살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 마음 가운데 먼저 해야 될 일에 대해 분명한 선언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제가 이민자들을 위한 목회를 오랫동안 했는데 가장 어려웠고 또 가장 잘했다고 나 스스로가 평가하는 것이 교회 건축을 크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다소 반대 운동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설교를 했습니다. “청교도들이 이 땅을 찾아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믿음으로 통나무 예배당을 건축하고 추수감사절 예배 때 농사지은 모든 곡식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 제일주의, 그의 나라의 그 의를 먼저 구하는 믿음 때문에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오늘의 미국을 건설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돈 벌어서 좋은 집 사고, 좋은 자동차 타고, 아이들 좋은 학교 다 보내고 그러면 하나님 집은 꼴찌예요? 먹고 나머지 저 마구간에 집어던져도 괜찮을 만하게 하려느냐? 그러면 하지 말아라. 반대할 자는 반대하라. 추진하겠다.” 그래서 99퍼센트가 저를 따라서 이루었어요. 1퍼센트의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왔어요. 지금은 다 잘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의 가장 중요한 방에 먼저 모시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내가 바빠요. 예수님은 저 마구간에 가서 좀 가만히 계세요. 내가 이 중요한 일 다 처리한 다음에 그때 만나드릴 테니 좀 가만히 계세요.”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내가 잠잘 방이라도 예수님이 필요할 때 내어드릴 수 있는 마음!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는 것은 바로 아기 예수를 나의 가장 따뜻한 중심 공간에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언제나 그런 믿음으로 사십시오. 절대 손해가 안 납니다.

비가 몹시 쏟아지는 어느 저녁에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가 방을 얻으려고 필라델피아 어떤 호텔에 들어왔어요. 호텔 종업원 하나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방을 하나 주십시오.” “어떡하죠? 방이 없습니다. 모두 꽉 찼습니다. 일주일 동안은 빈방이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이 필라델피아에서 미국의 유명하고 굉장히 권위 있는 컨벤션이 있으므로 미국의 저명인사들은 이 도시에 다 몰려있고 기자들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따라와서 묶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방 하나도 못 얻을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서 방이 하나도 없군요. 우리가 여러 군데 다녀봤는데 정말 방 얻기가 너무 힘듭니다.” 이 노부부는 비가 쏟아지는 저녁에 난감했습니다. 그때 그 종업원은 “비가 쏟아지는데 어디를 가셔도 방이 없을 테니까 괜찮으시다면 제가 자는 누추한 종업원용 골방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라도 쉬시려면 쉬세요.” 그래서 따라가 보니까 정말 협소하고 누추해 보이는 방이었습니다. 그 종업원이 거기서 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방이 없으면 할 수 없이 여기서 하루 좀 쉬게 해주세요.” 그 종업원은 성의를 다해서 방을 치우고 그 손님을 자기 방에서 쉬게 하고 자기는 잘 곳이 없어서 그날 밤 잠을 자지 않고 밤새껏 일을 했습니다. 아침에 그분들은 너무나도 잘 쉬었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숙박비를 주려고 하는데 그 종업원은 “어이구, 아닙니다. 그 돈을 받으면 제가 법에 걸립니다. 이 방은 제가 쓰는 방이지, 숙박비를 받고 내어주는 방이 아니라서 우리 호텔 규정에 어긋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받고 싶어도 못 받습니다. 그러니 안녕히 가시기 바랍니다. 또 오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은 종업원들에게 말을 했어요. “이 호텔 사장은 참 행복한 사람이요. 당신 같은 종업원을 두었으니 말이요. 필요가 있어서 찾아온 손님을 최대한 도와준 당신은 사실 이 호텔 사장 감이요. 고맙소.” 그러며 헤어졌어요. 몇 년 만에 그 종업원에게 뉴욕에서 초대장과 비행기표가 배달되었습니다. 한번 꼭 와달라고 써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종업원이 기뻐서 ‘아,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이렇게 정중한 초대장과 비행기표까지 보냈나?’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뉴욕 맨해튼에 새로 건축된 최고급 호텔이었습니다. 그 노부부가 건축한 호텔입니다. 주인은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사장으로 쓰고 싶어서 내가 이 호텔을 건축했소. 오늘부터 이 호텔의 사장으로 일해 주시오.” 그 젊은이는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워돌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초대 사장이 된 ‘조지. C. 볼트’ 씨입니다. 그래서 사장이 된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 호텔은 전 세계 대통령이나 귀빈이 뉴욕에 올 때 그 호텔에서 묵습니다. 하루 저녁 자는데 3,000달러입니다. 초라한 자기 방 하나를 하룻밤 제공한 조지. C. 볼트 씨는 자기 방을 하룻밤 제공하고 세계에서 제일 호화스러운 아스토리아 호텔의 초대 사장으로 일했어요. 주님을 위해서 방을 내드리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방이 없어 마구간으로 쫓겨난 예수, 헛간으로 집어던진 축복! 교우 여러분 마음의 가장 거룩한 장소는 언제나 주님께 드리세요. 이번 성탄이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세상에서 너무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어서 주님은 우리 마음에 거하실 방이 없습니다. 주님을 가장 거룩한 안전한 장소에 모실 수 있는 믿음의 준비가 있어서 그런 마음으로 성탄을 맞게 하여 주사 우리 삶이 하나님께 큰 축복의 동기가 되는 축복을 맞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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