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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사람의 중요성 (롬 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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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여러분들의 사랑과 기도가운데 한 주간 방글라데시 선교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여행하면서 방글라데시가 이렇게 먼 줄을 처음 알았습니다. 오전 9시에 출발하여 싱가폴을 거쳐 다카에 들어간 시간이 다음 날 새벽 2시였습니다. 무려 16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물론 중간에 공항에서 기다린 시간이 있긴 했지만 비행시간만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니까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보통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완전히 한바퀴 돌려면, 지금 간 것만큼의 3번을 더 가야 합니다. 15000키로 정도가 됩니다. 시속 1000키로의 속도로 달리는 빠른 비행기로 이렇게 오래 걸리니까 지구가 넓기는 넓습니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고 여기와 저기에 사는 사람들이 만나기 힘든 넓고 넓은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지구 땅입니다.

  우주의 세계는 지구보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비행기의 속도로 100만 키로를 달려야 달의 궤도에 다다릅니다. 거기에서 10억키로를 달려야 태양계를 벗어나고, 10조를 한 광년으로 보는데 1000만 광년을 더 가면 대우주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을 초월한 거리이고, 과학으로 측량할 수 없고,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이 우주의 세계입니다.

  이 넓고 넓은 세상, 높고 높은 우주, 많고 많은 사람가운데 만약 나의 존재를 표시한다면 한 점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티끌과 같고 먼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나 한 사람의 가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나를 아신다고 말합니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며 듣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가치입니다. 한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고, 나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하나님의 세계에 한 사람이 얼마나 큰 영향이 있는지 모릅니다.

  본문은 바로 그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한 사람 아담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뒤 처음으로 만드신 사람입니다. 오랜 세월의 인류역사와 인간 삶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 사람 아담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으로 얼마나 큰 영향이 미쳤는지 모릅니다. 성경은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간에게 임한 결과를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

  우선, 죄입니다. 12절을 보시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라고 말합니다. 처음 사람이었던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불순종하여 죄를 범했습니다. 그 죄의 결과로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불행한 인간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죄로 그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게 됨을 죄의 결과로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말합니다. 아담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아예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모태에서부터 죄 중에 우리가 잉태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보통 죄가 없다고 생각되는 갓난아이도 죄인입니다. 어린아이도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죄는 배워서, 때가 묻어서, 살아봐서 짓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짓습니다.
인간에게 원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세상을 지배합니다. 죄가 사람을 파멸로 몰아갑니다. 믿지 않는 사람만이 아니라 믿는 사람도 죄를 짓습니다.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아파합니다. 죄가 인생의 문제입니다. 바로 그 죄도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원죄와 자범죄, 인간 삶에 나타나는 모든 죄는 아담 때문입니다. 아담은 그 시대에 살던 아주 보잘 것 없는 작은 사람이었지만, 지금 이렇게 큰 영향을 주고 만 것입니다.

  또한, 죄의 결과로 임한 것이 사망입니다. 본문에서 계속해서 이것을 알려줍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을 로마서 6장 23절에서 잘 알려 줍니다. 아담이 범죄 한 뒤 그에게 육신의 사망이 왔고 그것이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마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로 인하여 죽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반드시 한번 죽습니다. 늙은 사람도 가지만 젊은 사람도 갑니다. 여자도 남자도, 종도 주인도, 가진 자도 없는 자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기독교인도 모슬렘도, 옛날사람도 지금사람도, 모두 죽습니다. 바로 한 사람 아담이 범죄 한 결과로 생긴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는 인간에게 육신의 죽음만 온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도 임했습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은 범죄하기 전에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범죄이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만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보다 영적인 사망이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사랑과 교제가 단절된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인해 나타난 결과입니다. 한 사람 아담은 많은 사람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죄가 이렇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한 사람 예수입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한 사람 아담과 함께 한 사람 예수를 소개합니다. 한 사람으로 죄와 사망이 온 것처럼, 한 사람 예수로 모든 인간에게 미친 축복을 선언합니다. 역시 두 가지의 축복입니다.

  우선, 은혜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선물이 많은 사람이 넘쳤으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는 저주요, 심판이요, 불행이요, 멸망이었지만, 이제 예수로 우리에게 크고 놀라운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늘 이 시대에 신앙 생활하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되십니까? 그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는 밥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살고 없으면 죽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제공합니다. 삶의 편리와 물질과 풍요까지 모두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가지를 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 은혜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바로 주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가 임하였고, 그 은혜로 먹고 우리가 오늘을 살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 예수님으로 인한 두 번째 축복은 바로 구원입니다. 여기 말씀에 선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 선물은 곧 구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은혜도 임했지만, 또한 구원도 임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느니라” 성경은 또 이렇게 강조합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 오직 예수님으로만 구원을 받고,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아버지께로 갈 수 있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중의 하나입니다. 공항에서부터 알수 있습니다. 공항인데도 불이 희미합니다.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온 사람들이 달려들어 유리창을 두드리며 손을 내밉니다. 거리나 사람이나 그렇게 지저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 전쟁이후인 50년대로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빈민가를 돌아보면 더 열악합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사나 할 정도입니다. 부유하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이 기본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이렇게 못사는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영적인 문제가 더욱 크다는 것입니다. 그곳의 하루는 새벽 4시에 동네 이쪽 저쪽의 이슬람사원에서 새벽 기도하라고 깨우는 소리로 문을 엽니다. 그것이 낮에도 밤에도 계속 됩니다. 그 나라는 전 인구의 85%가 모슬렘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아닌 석가나 모하메드가 구원을 준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가난한 것입니다. 주님이 없는 곳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구원을 줍니까? 누가 인생의 문제, 가난의 문제,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줍니까? 누가 과연 내 죄를 위해 대신 죽어준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분이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물과 피를 흘리며 갈보리로 가셨습니다. 오직 예수 외에 구원이 없습니다. 인생의 문제, 죄의 문제, 가난의 문제, 삶의 문제를 해결할 분은 오직 예수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 예수로 인해 이런 축복이 왔습니다. 은혜가 임했고, 구원이 왔습니다. 이 세상에 오직 예수님 외에 구원이 없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시면서,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소개하고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한 사람 바울입니다. 한 사람 아담이 중요하고, 한 사람 예수님이 소중한 것처럼, 한 사람 바울이 역시 중요합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신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 바울 역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를 통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영향은 1세기를 살던 성도들과 이 편지를 받고 있는 로마교회 성도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까지도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당대는 물론이고 그가 죽은 이후 지금 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놀라운 힘이요, 영향입니다. 작고, 미약하고, 말도 못하는 약점 투성이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그 시대에 보여주었던 삶이 아주 귀했습니다. 그 삶의 모습 역시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우선, 그의 헌신입니다. 바울은 오직 복음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뒤, 전 세계를 돌면서 복음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때로 외로움도 있었고, 많은 위험도 있었으며, 지치고 힘든 사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복음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바로 한 사람 바울의 헌신으로 복음이 곳곳에 전해진 것입니다. 바울 때문에 유럽이, 미국이, 그리고 대한민국이 복음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 바울은 크지 않았지만, 그의 영향은 이처럼 온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미친 것입니다.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다음 날 저는 그곳의 선교사님과 함께 다시 비행기를 타고 그 나라 국경근처의 한 농촌마을로 갔습니다. 그 이유는 거기에 모슬렘을 믿다가 개종한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개종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까지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재판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이젠 조금 더 자유의 몸으로 그 마을을 예수 믿게 하려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처럼 복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바울을 아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당신은 바울과 같은 사람이라고 강조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도, 또 다른 개종자도 어쩌면 자기들이 모두 바울과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 자기들도 바울처럼 믿는 사람을 핍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알았고,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받음을 체험하고, 이제 자기가 바울처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역할을 잘 감당하라고 부탁하며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선교는 이런 한 사람의 헌신으로 이루어집니다. 한 사람의 선교사, 한 사람의 바울과 같은 자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빛을 발합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복음을 위하여 바울처럼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의 결단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한 헌신만 하지 않았고, 참된 성도로서의 삶을 결단한 사람입니다. 그 삶이 로마교회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에게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당시 로마교회에는 여러 가지 이단 사상과 잘못된 교리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성도들을 바로 잡아주기 위하여 펜을 들었습니다. 그는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삶과 결단을 개인적으로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아 여기까지 달려온 바울의 삶을 강조하면서 그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로마교회에 커다란 도전이 되었고,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여러 지역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바울의 바르고 참된 삶이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 나의 결단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내가 바로 서면 가정이 살고, 내가 바로 하면 교회도 잘 됩니다. 내가 참되고 바르게 서 있으면 내가 속한 직장과 일터와 내가 속한 나라도 잘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며 소홀히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 사람으로 역사가 시작되었고, 한 사람으로 삶과 죽음이 결정이 되었습니다. 점과 같고 티끌과 같은 존재이지만 지금 나의 의지와 결심을 통해 큰 영향을 줍니다. 결국 내가 잘해야 합니다. 내가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고 성경보고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내가 정직해야 하고, 내가 바르고 참되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바로 나의 이런 결심과 의지로 내가 속한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주 작지만, 나로부터 역사는 시작됩니다.

  이 시대는 바로 그런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헌신하는 한 사람, 결단하고 의지로 충성하고 본이 되는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한 주간도 그런 마음으로 새롭게 문을 여시고, 믿음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서해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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