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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롬 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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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을 위기에 빠지게 되었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외치게 되는데, 우리나라말과 영어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차이가 나타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물에 빠졌다거나 불난 집에 갇혔다거나 하면 열이면 열 다 "사람 살려!"라고 소리칩니다.
  "나 살려"라고 하는 대신에 '지금 여기에 사람이라는 귀중한 생명 하나가 죽어가고 있으니 살려 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누가 듣게 되든지 간에 그 절박함과 간절함을 한순간에 느끼게 하고 당장 뛰어들어 살려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힘이 이 '사람 살려!'라는 짧은 말 속에 아주 잘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은 그런 '사람 살려'(Save me.)라는 따위의 말은 전혀 쓰지 않고 그저 "도와줘!"(Help!)라고만 소리칩니다.
  정식 문장으로는 "날 도와줘!"(Help me.)라고 해야 할 것인데 거기서 "나를"이라는 말까지 생략하고 그냥 단음절의 말, 문자 그대로 '외마디 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 살려'라는 네 음절의 말보다는 훨씬 간결하니까 그처럼 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외치기에는 훨씬 낫기는 합니다만,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좀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지금 다 죽어가는 사람이라면 그런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답게 '사람 살려.'라고 좀 애처롭게 부르짖을 것이지 '나는 아직 스스로 살아날 힘이 있으니까 좀 도와만 줘.'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말로 하자면 미국사람 특유의 독립심의 발로라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좀 도도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슨 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든지 간에 문제는 그 소리를 듣고 그 사람을 살려줄 수 있는 구조자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듣는 사람이 없다거나 혹 듣고 달려오기는 했지만 도와 줄 힘이 없다면, 그 절박한 외침은 그냥 안타까운 소리로만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처럼 헛수고로 끝나는 경우가 절대로 없는, 아주 확실한 '구명 요청의 소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가, 원래 저주 아래에서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다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까?

  1.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는 더 이상 다른 구조를 요청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본문 4절과 5절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고 기록했습니다.

  '율법' 하면 오늘날 신약 시대에 사는 성도들에게는 일단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이지만, 사실상 율법 그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율법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한 형태이며, 여기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한 것처럼 그것을 완전히 지킬 수만 있다면 분명히 구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며, 그래서 율법은 그 대신에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지킬 도리가 없는 죄인인 것을 겸손하게 깨닫고 인정하게 만들어 주는 기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의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만 필요했던 것이며 이제 예수님께서 화육강생하심으로써 율법은 그 역할을 다 마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런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이루기 위하여," 즉 죄에 대한 형벌이 공의롭게 집행되기 위하여 죄인 대신에 당신께서 스스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그런 십자가 대속을 "믿는 모든 자에게"는 "율법의 마침"이 되신 것입니다.
  즉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셨을 뿐 아니라 실제적인 구원 능력이 없는 율법의 약점을 완전히 채우심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구원 문제에 대하여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일 것도, 의존할 것도 전혀 없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6절과 7절에 기록하기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30장 11절부터 14절에 기록된,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과 그대로 일맥상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거나 음부에 내려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와야 하는 것 같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화육강생도 부활승천도 다 이루어졌습니다.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도록 하기 위하여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는 일들은 이미 예수님 편에서 다 해 놓으셨으므로, 사람이 그런 불필요한 노력을 추구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이 구원 받기 위해서는 이제 다른 아무 노력이나 수도나 정진 따위가 필요 없고 오직 그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기만 하면 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사람이 교통사고가 나면 반드시 바로 그 자리에서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부상당한 사람을 도와준다고 섣불리 움직이게 하거나 하면 오히려 더 위험하기 때문에 그저 경찰이 와서 사건 현장을 정리하고 전문 응급요원들이 와서 부상자를 치료하고 후송하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실제로 빌딩 붕괴 같은 대형사고가 났을 때 통제되지 아니하는 자원자들이 전문 구조요원들의 작업을 오히려 방해하게 되는 경우도 자주 생기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신의 구원 문제를 오직 이 문제에 대하여 유일한 전문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맡겨야 합니다.
  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은 예수 그리스도 단 한 분뿐이며, 구원의 길로 안전하게 보내어 주실 수 있는 믿음직한 구조요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헛된 구원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까?
  전혀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율법 준수'에 자기 생명을 걸었던 당시의 유대인들과 같이, 오늘날도 사람들은 구세주가 아닌 교주에게 자기 구원을 의지하고 구원의 복음이 없는 종교에 자신의 생명을 맡기고 있습니다.
  정말 다 쓸데없는 일이며 오히려 참된 구원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신, 모든 헛된 노력을 종결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기만 하면, 다른 아무 구원주도, 다른 아무 종교도 전혀 필요 없게 됩니다.
  구세주는 정말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는 사랑과 능력을 소유하고 계신 진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단 한 분만으로 충분한 줄로 믿고, 실로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는 줄'을 깨닫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는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8절 말씀에 보면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말씀이 네 입에, 네 마음에 가까이 있다'는 말씀은, 복음이란 것이 결코 믿기 어렵거나 고백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영접하기 아주 쉽도록 이미 가까이 와 있으며, 그것을 자신의 말로 신앙고백하기에도 쉽도록 입에도 가까이 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앞의 7절에서 보았듯이 성자 하나님 편에서 하늘을 건너서 우리 사람에게 이처럼 가까이 오셔서 복음을 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순서란 그런 마음과 입으로 신앙고백만 하면 되는 것인데 바로 이어지는 말씀이 그 뜻입니다.

  9절과 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에는, 사람이 기독신자가 되고 구원 얻게 되는 과정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하며"라는 말은 '공적으로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그 신앙고백의 초점은 "예수를 주로" 믿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만이 자신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며 자기 신앙의 유일한 대상이 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 또한 믿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그 신앙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죄와 사망으로부터 승리하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까지 믿어야만 예수님을 진짜로, 제대로 믿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는다는 말은 잘 하지만 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으심과 승리의 부활'을 빼놓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것은 틀린 신앙이며 그런 신앙고백은 절대로 그 사람을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부활도 믿지 않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영생 부활시켜 주실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10절에서는 그 믿음의 방법이 구체적으로 명시되고 있는데, 그것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은 신앙의 내적 작용이 일어나는 곳이며 '입'은 신앙의 외적 작용, 즉 공적 고백이 나오는 곳입니다.

  우리는 '외적 고백'이 없는 '내적 신앙'이라는 것은 무효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0장 32절과 33절에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분명히 밝히셨기 때문입니다.
  사람 앞에 나타내는 공적 고백은 자신 속에 있는 신앙의 진실을 천명하는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비난과 핍박을 피하기 위하여 겉으로는 부인했지만 속으로는 믿었다.'라는 말은 절대로 성립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런 신앙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부인하실 것이라고 이미 선언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내적 신앙'이 없는 '외적 고백' 역시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하신 말씀이 그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세상에서 교회 다니고 예수 믿었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중에 예수님 재림하시게 되면 여기에 속하게 될 사람들이 아마 아주 많을 것입니다.
  입만 가지고 예수 믿었지 마음으로는 전혀 바로 믿은 적이 없었던 교인들, 그런 '바리새인 통속의 외식자'들, 그런 '쭉정이 신자'들은 재림하신 주님께서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실 때에' 여지없이 날려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른다'는 것은, 이처럼 오직 예수님만을 그 믿음의 대상으로 믿는 것이며,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으심과 육체적인 부활승천을 그 믿음의 내용으로 믿는 것이며, 그 예수님을 자기 마음으로 진실로 믿고 자기 입으로 공적으로 시인하는 바른 방법으로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직 성경만이 이런 믿음의 대상과 내용과 방법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호흡이 중단되었거나 화상을 입은 사람을 제대로 살려내고 치료하는 방법은 오직 응급요원들과 의사들만이 아는 일입니다.
  죄인을 구원해 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며 그 하나님께서는 오직 성경에만 그 길을 계시해 놓으신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성자나 다른 신을 주로 믿는 것은 전혀 틀린 신앙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나 부활의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면 제일 중요한 알맹이가 빠진, 역시 절대로 구원받지 못할 가짜 신앙입니다.
  사람에게 바른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는 유일한 책인 이 성경 말씀의 증거를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바로 믿고 오직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라고 입으로 고백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는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제 본문 1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은 결론적으로 기록하기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선포했습니다.

  "누구든지"라고 말씀하신대로 이런 구원의 복음은 인종, 민족, 사회계급에 아무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졌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사람이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 어떤 종류의 부끄러움도 당하지 않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독신자도 자기 인생을 통하여 실수, 실패할 수 있고 남 앞에서 부끄러운 꼴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아니할 분야가 단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생구원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는 신앙인은 이 마지막 영생구원에 자신의 모든 것이 다 걸려 있는 사람입니다.
  평생 열심히 믿고 살았는데 구원 받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창피한 노릇은 없습니다.
  그야말로 완전히 인생을 헛되게 살고 망쳐 버린 대표적인 못난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신자가 적어도 영생구원에 있어서만큼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재삼재사 보증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불완전하고 무능력한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하여서만 이루어지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는 전 인류를 다 구원하실 수 있을 만큼 구원의 능력이 풍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확증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12절에 보면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 많은 사람이 구원 받게 되면 힘이 달리게 되는 그런 유한자가 아니라, 구원해 주실 모든 사람들에게 오직 혼자서 구세주가 되셔도 넉넉하신 분이십니다.
  즉 그 "한 주님"만 해도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13절에서 증거하는 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너무나도 멋진 대단원에 도달하고야마는 것입니다.
  대포를 발사하게 될 때 1000발 중에 한 개 정도는 '낙오탄,' 즉 조준했던 탄착 예정 지점에 떨어지지 않고 엉뚱한 곳에 떨어지는 포탄이 나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천당에 도달하는 데에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생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단 한 명의 낙오도 오차도 실수도 없이 반드시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믿음과 구원의 인과관계를 100퍼센트 완전무결하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구조대원들은 자주 실패하게 됩니다.
  물에 빠졌던 사람을 건져내어 놓고 열심히 인공호흡을 했지만 결국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길 것입니다.
  맥박이 멈춘 사람의 심장에 전기 충격기를 대고 몇 번이나 시도를 해도 결국 무위로 끝나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아주 드물기는 하겠지만, 구조대원 쪽에서 당황해서 실수함으로써 원래 살릴 수 있었던 사람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구조대원이나 의사들에게는 허탈감, 무력감, 그리고 죄책감마저 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에게 그런 실패는 단 한 번도 생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을 살려 주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너무나도 '부요'하여 '모든 믿는 자'들을 다 살려 주셔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의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구원은 '실패 확률 제로'이며 '백발백중'일 뿐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살려달라고 부르는 사람을 구원해 주려 하시다가 실패하는 부끄러움을 당하실 리가 결코 없으니, 우리 기독신자들이 그런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다가 구원 받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세상 사람들로부터 당할 리도 결코 없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간단하면서도 그 결과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이 신기하고도 쉽기 짝이 없는 구원의 길을 꼭 찾고 그 은총을 꼭 함께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칭함을 받아 결국 영생 구원 얻는 신앙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다른 도를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다른 종교를 찾아서도 아니 됩니다.
  그런 구원을 얻게 되는 길은 성경에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계시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만을 구세주로 믿고, 그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부활 승천하셨음을 믿고, 그렇게 마음으로 믿는 것을 입으로 고백만 하면 그것이 곧 진짜 '신자'가 되는 길입니다.
  그처럼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앞에서 우리 주님은 '다른 신'의 도움을 받거나 '다른 종교'와 협력해야만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실 수 있는 '부끄러운 구세주'가 결코 아니십니다.
  "나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의 구세주로 믿습니다."라고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오직 당신의 은혜와 능력만으로도 단 한 명도 실패하지 않고 반드시 구원 받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9.11 사태'가 일어났을 때, 테러범들에게 공중납치를 당한 비행기 안에서 승객들이 자기 가족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절박한 통화를 받고도 가족들이나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 비행기들의 자폭에 의하여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빌당의 잔해 밑에서도 어디선가 휴대폰을 통하여 구조 요청을 발하는 소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용감한 소방대원이나 그처럼 희생적인 구조대원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손 써 볼 아무 도리가 없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살려달라고 외쳐도 그 요청에 응답하고 구원해 줄 사람이 없을 때, 안 그래도 애절한 그 소리는 더욱 비참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성경 말씀은 절대로 그처럼 공허한 메아리로, 혼자 부르다가 결국 힘이 빠져 죽게 되는 비참한 소리로 끝나지 않을, 구조 가능성 100퍼센트의 소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바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내기만 하면 반드시 '구원을 얻으리라'고 보장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 살려!"의 간절함과 "도와 줘!"(Help!)의 간결함이 바로 "주여!"라는 이 한 마디의 외침에 다 들어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전 생명을 내걸고 크게 높이 불러야 할 가장 중요한 소리가 바로 이 "주님, 나를 구원해 주옵소서."라는 소리인 것입니다.
  다른 주의 이름을 찾을 필요가 없는 자, 정말 믿어야할 예수님만을 믿고 그 신앙을 진실하게 고백하는 참된 신자가 됨으로써, 그 믿음으로 인하여 틀림없이 영생구원을 함께 받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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