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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기가 좋사오니 (막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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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아름다운 교회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왜냐하면 말씀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여전히 현실의 삶 속에서는 문제들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삶 속에서는 부딪치면서 변하지 않는 문제들 앞에서 다시 좌절하고 실망하여 낙심하며 신앙으로 이겨 나가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신앙은 자꾸 올라가려고 하는데 우리의 삶이 자꾸 자꾸 끌어 내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더 이상 비상하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도록 만듭니다.
설교시간에는 믿음이 생깁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확실한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삶 속에서 다시 들어가면 확실하게 접목되지 못하고 다시 다운되고 실망되고 마음이 우울해 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절실한 숙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안고 있으면 믿음도 삶도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습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와 모세와 더불어 말씀을 나누신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환상적인 광경입니까? 얼마나 감격스러운 경험입니까? 베드로는 은혜 받았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 받으면 너무 너무 좋습니다. 모든 할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을 가집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예배시간이 좋습니다. 비전이 생기고 확신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믿음을 갖습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기에서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려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 받았다면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문제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타깝지만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입니다.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를 외면하고 도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문제를 향하여 나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은혜 받은 사람들이 은둔하거나 도망하는 자의 삶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원하셨다면 베드로가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 “그래 너희들 죄 많은 세상에 너무 고생하였지 여기에다가 초막을 짓고 숨어서 살아라.”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았다면 그 신앙이 삶 속에서 접목되고 이것이 적용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 따로 삶 따로, 믿음 따로 생활 따로, 비전 따로 실망 따로, 따로 국밥입니다. 여러분 따로따로의 신앙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다람쥐 첵바퀴 돌 듯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도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면서 저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답이 무엇입니까? 그때 주신 말씀이 바로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귀신들린 한 아이를 아버지가 데리고 와서 고쳐 둘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아무리 능력을 행사해 보려고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풀리지 않고 창피만 당하였습니다. 그때 한 제자 예수님께 조용히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8)

그때에 예수님이 하신 답이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신앙으로 풀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정도 기도해 놓고 그것이 다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극복될 때까지, 완전히 믿음이 내 삶 속에서 능력이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도 기도입니다. 둘째도 기도입니다. 셋째도 기도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과 삶이 일치될 수 있는데 안 된다고 생각하고 안하는 것입니다. 안되는 것이 아니고 안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되는데 기도를 안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세상에 다시 보내시는 것은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합시다. 이길 때까지 기도합시다. 기도하면서 싸웁시다.

또한가지 우리가 각오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대화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사건을 기록한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여러분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해준 사람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예언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예수님께 이런 말씀을 했을 것입니다.
“당신께서 율법을 완성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대로 그 길을 가십시오.” 그 길이 어떤 길입니까? 십자가의 길입니다.

엘리야도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씀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 예언자들이 지금까지 당신이 오셔서 백성을 구원할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을 성취시켜야 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영광의 변화산에 머물러 있지 않으시고 그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왜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입니다. 십자가가 앞에 있지만 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여러분에게 어떤 십자가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고 가셔야 할 십자가 무엇입니까?
재정적인 무거운 짐입니까? 사업의 대한 무거운 짐입니까? 사람들에 대한 부담감입니까?

안타깝지만 지고 가셔야 합니다. 너무나 괴찮고 힘들어도 매고 가셔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이것이 바로 주님이 가셨던 길입니다.

2차 대전 당시의 일입니다. 영국의 전함 가운데 그레이스호라고 하는 전함이 있었습니다. 함장이 이 전함을 몰고 지금 출정을 하고 있습니다. 한참 가고 있는데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습니다. 불이 반짝입니다. 이 배가 어떤 배입니까? 대 영국의 함정입니다. 이 배의 함장의 자존심은 대단합니다. 다른 배가 비껴가면 갔지 자기는 비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전을 쳤습니다. "여기는 대영제국의 전함이다. 빨리 북쪽으로 10도 꺾어서 지나가라." 그랬더니 그쪽에서 응답이 들어왔습니다. "여기는 2등 수병입니다. 남쪽으로 10도 꺾어서 지나가십시오." 이 함장이 화가 났습니다. "무엄하다. 대영제국의 전함을 무엇으로 보는가! 니가 어서 빨리 북쪽으로 10도 꺾어라. 나는 꺾을 수 없다." 그때 그 쪽에서 대답을 합니다.

"여기는 등대입니다. 빨리 꺾지 않으면 함장님이 탄 배가 침몰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멈춰 서리라. 나의 가고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라는 고백이 우리 삶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는 예수님께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7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하나님이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지고 갈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이는 내 사랑하는 딸이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이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사랑하는 아들이라.” “이는 내 사랑하는 딸이라.”고 인정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에게 지어진 십자가를 힘들지만 지고 사십시다. 피하지 말고, 도망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그럴 때 주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라.”라고 말씀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일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실 것입니다.
(이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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