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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대로 하였더니 (왕하 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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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올 한해 여러분이 들은 최고의 굿뉴스는 무엇입니까? 또 남은 한 달, 여러분이 듣고싶은 최고의 굿뉴스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고3 학생들과 학부모님이 계시다면, 수능고사 성적이 예상했던 것 보다 20점쯤 올랐다는 소식은 어떻습니까? 오늘이 교사 임용고사를 치르는 날인데, “축! 합격”의 소식은 어떻습니까? 직장 다니는 분들은 아마도 “진급”이 최고로 기분좋은 소식이요, 아파트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한참 물오른 판교 지역에 당첨되었다는 소식, 충청도 공주에 땅을 사 놓았는데 그간 땅값이 많이 올랐더라는 소식도 여러분에게 절로 콧노래가 나올 기쁜 소식일 듯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넘어서, 그의 인생이 통째로 바뀐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는 요즘 말로 하면 한 나라의 국방부 장관이요, 훌륭하고 인기가 높았던 아람 나라의 군대장군, 바로 ‘나아만’이란 인물입니다.

  열왕기하 5장 1절 말씀에 보면,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라고 말합니다. 크고 존귀한 자... 곧 그는 부러운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한 나라의 2인자의 자리에 있고, 권력의 실세요, 큰 용사에,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전쟁에 나가 승리함으로 민족을 위기에서 구한 자였으니, 그의 자긍심은 참으로 대단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의 가족들도 부귀 영화를 누리고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이었을 듯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권력도, 명예도, 가족도... 모두 다 가졌지만 그의 마음엔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의 몸속엔 말 못할 병, 문둥병이 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화려한 무공훈장과 옷을 벗고, 벌거벗은 몸에 퍼져가는 문둥병을 보았을 때 그의 비애를 예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점점 더 멋지고 근사한 것으로 자기를 포장하려고 하는데 바로 나아만의 모습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람 사람들이 이스라엘 지역에 갔다가 한 포로소녀를 잡아왔는데 그 소녀가 나아만의 집 부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주인의 문둥병 소식을 알게된 소녀가 나아만의 부인에게 한 이야기를 전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훌륭한 선지자가 있는데 거기가면 주인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왕에게 나아가 허락을 받고, 왕이 준 많은 선물과 편지를 가지고 이스라엘로 건너 갔습니다. 어떤 한가한 사람이 그 선물의 양을 가만히 계산해 보니, 100만 달러 정도가 된다고 하니, 우리나라 돈으로는 10억 정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로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갑자기 아람의 2인자 장군이 왔는데 편지 내용을 보니 왕은 오히려 얼굴이 하얘질 노릇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도 아닌데 어찌 문둥병을 고친단 말인가...” 문둥병은 지금도 못 고치는 병 입니다. 이건 곧 천형으로 통하는 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생각하기를 ‘분명히 이들이 트집을 잡고, 빌미를 잡으려고 이 사람을 보냈구나.’ 해서 옷을 찢고 괴로워했습니다.

  이 소식을 엘리사가 듣고 본인의 집으로 데려오기를 청했습니다. 드디어 엘리사의 집으로 나아만이 병거를 끌고 당도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본인이 나와서 영접하기는커녕 사환 하나를 보내서 고작 전한다는 말이, “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십시오. 그러면 깨끗해 질 것 입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우리 나라에 가면 얼마든지 좋은 강이 많이 있는데 고작 저런 강에 들어가 그냥 몸이나 씻으라니... 그냥 돌아가려는데에 부하들이 말립니다. 여기까지 왔는으니 속는셈 치고 한번 해 보자는거지요. 부하들의 권면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가서 옷을 벗고 일곱 번 몸을 담그었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네! 그의 병이 깨끗이 낫고 어린 아이처럼 흰 살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가져온 선물도 엘리사는 내가 고친게 아니고 하나님이 고치셨으니 받을 이유가 없다고 해서 돌려 보냈습니다.
  나아만은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내가 온 천지만물에 여호와 하나님 밖에는 신이 없음을  믿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이 흙을 퍼 가서 하나님께만 예배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왕이 아람 신을 섬기기 때문에 그 자리에는 같이 동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만 섬길 것이니 그것만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며 건강한 몸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 겉으로 보기에 아무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아만처럼 고침받아야만 하는 문제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경제적인 문제, 가족의 갈등,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건강의 문제등... 우리 모두는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가지고 어디로 가야 할까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만이 인생의 해결자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방백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나아만은 이스라엘을 찾아갔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를 통해 지시를 받고 그대로 했더니 그의 몸이 건강해지고 놀라운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나아만과 같은 축복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아만으로부터 이러한 축복을 입는 비결을 배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첫째로, 나아만은 어린 계집종의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함께 5장 1-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아멘. 

  나아만은 그동안 많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의 병 소식을 은밀히 들은 사람들은 각종 문둥병에 좋다는 특효와 방법을 많이도 전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참 많이도 속았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오늘 이 계집아이의 세미한 소리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듣지 말아야 할 얘기를 듣고 그대로 행함으로써 인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남 얘기를 듣고 땅투기를 했다가 망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리, 생명의 소리, 오늘 이 주의 종의 소리는 여러분이 들을 때 복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라는 소리! 들으셔야 합니다.
  오늘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은 전도자의 소리를 듣고 오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자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 소리는 여러분들이 잘 못 되기를 바라는 소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축복 받는 비결을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바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변화된 사람은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건국대의 부총장을 지내신 유태영 박사는 소망교회 장로님이시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그는 서울에 혼자 올라와 힘들게 고학을 했다고 합니다.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나서는 남의 집 쓰레기통을 뒤져 밥이 다 쉬어 곰팡이가 피어 오른 것을 모아 서 물에 살살 씻어 죽을 끓여 먹으며 학교에 다녔답니다. 그런 그가 절망하지 않고 이 모든 일을 해 낼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데에 있었습니다. 성경의 음성을 들은데에 있었습니다. 그는 돈 한 푼 없이 덴마크로, 이스라엘로 유학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부총장을 지내고, 텔레비전에도 나오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들어야 할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그에게도 절망적인 소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또한 호서대학교 총장을 지낸 정권모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늦게 예수를 믿었습니다. 아들이 병으로 고통받을 때 아들을 업고 병원에 다니다가 어떤 분으로부터 복음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 진리의 소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때, 그는 교회 장로님이 되고 훌륭한 인물로 존경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과학자가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들어야 할 소리를 들었습니다.

  얼마전 이명박 시장에 관한 기사를 보았더니, 어려서 그의 집이 너무 가난해 가출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답니다. 그러나 늘 자기를 붙잡는 것이 어머니의 기도하는 음성이었다고 합니다. 그 음성 덕분에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지금도 믿음으로 살아서 시장도 하고, 앞으로 대통령 후보로도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들어야 할 소리를 꼭 들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교회에 참 잘 나오셨습니다. 오늘 저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여러분의 인생에 복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 시중에 많이 읽히는 책 중에 “진호야 사랑해”라는 책이 있습니다. 진호의 어머니 유현경씨가 쓴 책입니다.
  그녀는 의사와 결혼했습니다. 살림도 괜찮고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사랑과 축복 속에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좀 이상합니다. 남들이 무슨 얘기를 해도 신경을 안 쓰고, 두 살이 되어도 엄마 소리를 안합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괴성을 지르고, 도통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라서 유치원을 갈 수도 없었고, 놀이터에 앉아서는 모래를 집어 눈에 비비지 않나, 밥은 걷어차고 초컬릿과 라면만 먹을 뿐 이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야구 방망이로 유리병, 액자를 다 깨뜨리고 그 유리알을 눈에 넣고 비비며, 자기 머리를 문에다 찧으며 자해하곤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진호 엄마는 아파트 11층 베란다에 나가서 그만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의사인 아버지도 남한산성 길을 따라 출근하다가 이 차를 몰고 저 절벽으로 돌진해 그냥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을 정도로 그 가정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진호는 “발달성 자폐아”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어느 날, 옆집에 사는 혜린이 엄마가 진호와 진호 엄마를 초대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진호가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려 또 다시 놀러가기도 어려운 마음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만났던 찬석이 엄마와의 만남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몇 분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구역 예배 자리에 진호 엄마를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아이 키우는게 얼마나 힘드냐고, 어디 갈 일 있으면 우리한테 진호를 맡기고 가라는 오랜만에 듣는 따뜻한 말에 진호 엄마의 마음이 풀렸습니다. 어려서 성당에 잠시 다니기는 했지만, 그 자리에서 진호 엄마는 처음으로 예배라는 것을 드렸습니다. 그 후 진호 아빠와, 엄마, 진호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처음 들은 설교가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이었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이 참 벅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몇 주 후 주일 예배에서 창세기 13장을 본몬으로 한 “바라봄의 법칙”이란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바라보는 곳을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듣고 마음에 깊은 감동을 얻었습니다.
  진호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도화지 두장에다 그림을 그렸습니다. 첫째 그림은,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식사하는 행복한 모습, 초컬릿과 라면만 먹는 진호가 밥 한 그릇 더 달라는 그림을 그려 벽에 붙였습니다.
  또 한 그림은 진호가 중학생이 되어 학교 교실에 앉아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필기하는 그림을 그려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들 진호를 이렇게 되게 해 주세요. 이 그림처럼 변화되게 해 주세요.”

  무려 13년을 기도했습니다. 꿈과 비젼을 가지고 그렇게 기도가 이루어질 줄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13년이 지난 지난 9월, 체코에서 열린 수영선수대회에서 19세의 진호가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배영 200미터 금메달, 자유형 200미터 은메달, 배영 100미터 동메달 이 세 개의 메달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호 어머니는 말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너의 어머니이기를 바라노라.” 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녀에게 들려오는 많은 음성이 있었지만,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기도할 때, 진호는 숨어 사는 자폐아가 아니라 당당하게 세계에 내어놓고 자랑하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들려오는 이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로, 나아만이 이러한 축복의 사람이 된 비결은 자존심과 편견을 내려 놓았다는데에 있습니다.

  왕의 소개를 받고 나아만이 선지자의 집에 갔지만 선지자의 환대는커녕 사환 하나가 나와서 지시를 하는데 그는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나를 이렇게 대우하는데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성경 5장 11절,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아멘.

  따지고 보면, 나아만은 병 고치러 왔지 대우받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도 보면 종종 교회 와서 자신이 대우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교회에 왔을 뿐입니다. 오늘 나아만은 체면, 자존심 때문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사람들도 체면을 많이 따집니다. 옛날 양반은 아침을 굻어도 “어험~! 아침 잘 먹었다!” 합니다. 몇 번 권하면 그제서야 “맛 좀 보지~!”라고 밥 상 앞에 앉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엔 체면에 대한 말도 많아서 “제 얼굴을 봐서 한번 봐 주세요.”한다든지, “면목이 없습니다.”, “뵐 낯이 없습니다.”등등이 모두 체면문화에서 온 말입니다.
  그는 자존심이 상해서 돌아가려고 했지만, 결국 그는 은혜를 입기 위해서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만 했습니다.

  나아만에게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엘리사가 나와서 내 상처에 손을 얹고 축복하고 안수하며 종교 의식을 행할 줄 알았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구? 우리 아람에는 맑은 강이 더 많은데 이 더러운데 들어가란 말이야?” 하는 편견 말입니다.

  사람은 다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번 고정되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시골에 있었을 때 존경하는 목사님이 이런 모습이었다 하면, 도시에 와서도 그 목사님 생각에 곧잘 비교하기 일쑤입니다.
  또한 자기 나름대로 교회 안 나가도 착하게 살고, 구제 하고 양심적으로 사니 나 같은 사람은 예수 안 믿어도 구원 받을 거야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자기 생각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선하고, 착하고, 자기 공로가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사도행전 16장 31절에서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들도 여러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으니 교회 안의 직분 가진 자들이나, 목사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 자신도 목사이지만 제 자신이 맘에 들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런 말이 있겠습니까? 어떤 집사님이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예수님이 반갑게 나와서 맞이하시더랍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몇 일 후 목사님이 왔는데 온 천국이 다 술렁술렁 하더랍니다. 이 집사님이 그것을 보고 시험에 들었습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대접받는데 천국에 와서까지 예수님이 버선발로 나가서 환대하니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 말씀이 “여보게 자네가 이해하게나. 목사는 몇 백 년 만에 처음 온 거야.”하더랍니다.
  교인의 좋지 않은 모습, 목사의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데 걸림돌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의 반응 앞에 “내 생각에는...”이라고 말하지만, 환자는 의사 앞에 가서 온전히 맡겨야만 합니다. 나아만은 결국 자존심과 편견을 내려 놓고, 지혜롭게도 부하들의 말, “내 아버지여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시면 어찌 합니까?
그까짓 몸 일곱 번 담그는 게 뭐 어렵습니까?”라는 말을 받아들여 요단강 물에 몸을 담급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나오셨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편견의 벽을 다 내려놓으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준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아만이 축복을 받게 된 것은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13절, 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여전하여 어린 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아멘.

  나아만은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요단강에 와서 화려한 외투를 벗었습니다. 병거에서 내렸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던 그 몸, 부끄러운 추한 몸을 드러냈습니다.
  신앙이란,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고 내가 얼마나 몹쓸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 나 자신은 의로워 질 수 없어요. 이 죄된 몸으론 하나님께 갈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도와주세요. 하나님이 은혜를 주세요.’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달을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야 합니다. 나아만은 벌거벗은 몸으로 그 부끄러운 상처를, 그 문둥병의 몸을 가지고 요단강에 자기 몸을 담갔습니다. 한 번 담그고 나왔습니다.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여섯 번. 그냥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뭐 그냥 상처가 좀 나아진다던가, 진물이 좀 멈추면 좀 좋은데, 그냥 그대로입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일곱 번째 들어갔습니다.
  유대사회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치료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 종들이 놀랐습니다. 나아만 자신도 놀랐습니다. 자신의 몸이 우윳빛처럼,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하게 변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너무 너무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 길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엘리사에게 감사했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 14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했습니다. ‘말씀대로’라는 말에 밑줄을 치십시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요, 살아있는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이요, 기적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풍랑을 향해서 잠잠하라고 말씀하시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향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했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의 말씀은 생명의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누가복음 5장 5절에 보니,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는데도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베드로야 저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던져 보아라.” 베드로의 대답은, “밤새도록 잡았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니 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아멘!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말씀에 의지해 그물을 내린 베드로의 그물엔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옆 사람들을 불러서 함께 그물을 끌어올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에 의지한 삶에 풍성한 축복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2장 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고 나갈 때에 보니 처음부터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럴 때 그는 놀라운 축복을 입고 믿음의 조상으로 우뚝 설 수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시 편 19장 7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 한다”고 했습니다. 죽어가던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딪히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말씀을 들으십시오. 말씀을 읽으십시오. 말씀을 적으십시오. 말씀을 연구하십시오. 거기에 소망이 있고, 거기에 살 길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영혼의 질병인 죄를 치료 받으려면 말씀대로 주님 앞에 나오셔야 됩니다. 나아만이 가졌던 이 영적인 문둥병이 바로 죄와 같은 것입니다. 죄는 영적인 문둥병과 너무 흡사합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화상을 입고, 칼에 베어도 아픈 것을 못 느낍니다. 죄에 오염되면 감각이 없어집니다. 내가 악을 행하고도 이게 악이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고도 양심에 가책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둥병에 걸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영혼에 문둥병이 걸리면 감각이 없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죄는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갈등하게 만들고, 범죄하게 만듭니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어느 중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애가 학교를 몇 달 다니다가 자살해버렸습니다. 왜 죽었는지 알아보니 성격이 소심한 탓이라고 해서 그냥 자살로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죽기 전에 유서는 안 썼지만 자기 엄마에게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엄마, 제가 너무 괴로워서 학교에 다닐 수가 없어요. 우리 반 친구 누구 누구 10명이 날 괴롭히고 때리는데... 살 수가 없습니다. 저 먼저 갑니다. 엄마, 죄송해요.” 그 아이를 괴롭힌 친구들은 그 아이가 자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를 때리고, 놀리고, 빼앗으면서 얼마나 쾌감을 느꼈을까요. 사람들 마음속에 그런 죄악 된 근성이 있습니다. 남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합니다. 남을 괴롭히고는 즐거워합니다. 쾌감을 느낍니다. 이상한 자학적인 증세입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입니다.

  몇 년 전에는 어떤 젊은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어떤 여자를 치었습니다.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뒤에 타라고 해놓고서는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성폭행을 하고 죽여 버렸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다 발각되었습니다. 죄라는 것은 숨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 한 이후에 그 죄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중국 지린성에서 벤젠이 유출되어서 러시아 하얼빈까지 그 오염된 물이 떠내려갔습니다. 이 물을 마시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뻔한 일입니다. 상류에서 독이 번진 물은 하류까지 다 오염시킵니다.
  1984년 인도의 한 카바이드 공장이 폭발한 일이 있습니다. 20만 명이 죽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여파가 아직도 남아서, 아이를 낳으면 등뼈가 없고, 기형아가 나오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죄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모릅니다. 진정 인간의 행복은 죄의 문제를 해결할 때에만 오는 것입니다. 죄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죄가 인간을 파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때에 거기에 진정한 행복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죄의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니까 한 번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분의 보혈만이 우리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아만은 그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담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은혜의 요단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 밑의 보혈의 강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여러분의 죄를 깨끗케 하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드러내셔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8절에 보니까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 죄를 내어 놓고 주님을 내 구주로 영접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시편 30편 1절에 보니까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림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아만이 치료를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오늘 주님 앞에 나아오신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서 여러분의 인생이 새로워지고 영혼이 잘됨처럼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이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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