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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하나님의 답을 들었으면 (렘 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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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를 ‘눈물의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고난의 예언자’라고도 합니다.
예레미야는 고난 때문에 눈물을 자주 흘리기도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눈물을 많이 흘린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역과 범죄를 보면서 비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또 그 범죄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을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자주, 그렇게 많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눈물은 귀한 눈물입니다. 필요한 눈물입니다.
우리도 세계의 여러 문제, 이 나라의 여러 문제, 이 사회에 넘쳐흐르는 여러 가지 죄악들을 보면서 몸부림치며, 고뇌하며, 눈물을 흘려야합니다.
우리도 눈물의 예언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예레미야서 9장은 눈물의 예언자로서 예레미야의 모습이 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9장은

어찌하여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10절을 보세요.

내가 산들을 위하여 울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라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가 불타고 황폐해질 것을 생각하며 울부짖는다는 말입니다.

12절의 전반부,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할 자가 누구인고”도 그런 사람이 없어서 고통스럽다는 탄식입니다.
이스라엘이 패망하고 황폐해질 것을 깨닫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힘들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할 자” 이 사람이 바로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는 앞일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그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받아서 이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때는 하나냐라는 거짓 예언자가 있어서 예레미야를 괴롭혔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의 후반부에서 예레미야는 비통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 같이 불타서 지나가는 자가 없게 되었느냐?

이것은 지금 한국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던지고 싶은 할 질문입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이 사회가 이 모양이 되었습니까?’
‘왜 이렇게 혼란합니까?’
‘어찌하여 언론기관, 노동계, 공익기관 종사자들, 이념갈등, 그리고 국회, 저 모양입니까?’

이런 것을 말하면 ‘목사님, 복음만 전하세요.’ 하는 성도들도 계십니다.
저도 복음만 전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소금이 왜 귀합니까?
썩기 쉬운 것들 사이에 들어가서  녹아서 그 썩는 것을 막아야 소금입니다.
소금 회사 창고에 쌓여 있는 소금은 귀한 소금이 아닙니다.
복음이 소금 회사 창고에 갇혀 있는 소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도들의 구성이나 의견은 다양합니다.
그래서 정치나 사회 문제에서 어느 한 편을 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입장이 어떻든지 간에 지금 이 나라가 큰 어려움을 만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사학법이 통과된 다음에 교회 지도자들의 입에서 ‘순교를 각오한다.’라는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공동번역 성서」는 12절을 

어찌하여 이런 변을 당하게 되었는지 알 만한 사람도 하나 없습니다. 어찌하여 이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지, 모조리 타서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 사막이 되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셔야 나가서 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 더욱 강한 말을 사용해 가며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질문에 대해 무엇이라고 대답하십니까?
13절과 14절이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13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이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그리고 14절에서는 바알을 따른 것을 꾸짖고 있습니다.

13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목소리, 모두 오늘날로 말하면 성경입니다.
‘성경을 버렸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답입니다.

시편 89편 30절에서 32절까지에

만일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내 율례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나라는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 회초리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채찍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정치인들이나 백성들이 성경 말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믿는 사람들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규범이 되는 귀한 말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해서 손해 보는 일, 없습니다.
나쁜 일 없습니다.
실제로 ‘나는 교회에는 다니지 않지만 성경에 있는 말씀들은 누구보다도 귀하게 여깁니다.’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 저희들만이라도 성경 말씀을 귀중하게 여기고 성경 말씀에 순종하고 성경 말씀대로 행하기에 힘쓴다면 이 나라의 모습은 지금과는 훨씬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아까 소금이 썩기 쉬운 물건에 들어가서 썩는 것을 막는 이야기를 했는데 소금은 조금만 처도  그 일을 합니다.
때때로 국제사회에서 국가청렴도, 또는 국가부패지수, 이런 것들을 발표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인은 보통 인구의 4분의 1, 최소한 5분의 1은 됩니다.
이 소금이 정말 짠맛을 가지고 있는 소금, 자기를 녹여서 할 일을 하는 소금이라면 우리나라는 청렴도는 아주 높고 부패지수는 아주 낮은 나라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나라가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이렇게 황폐해진 것은 내가 준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 있는 답을 들었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겨야합니다.

하나님은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소중하게 여겨야합니다.
성경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성경책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교양서적들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교훈집들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문학작품들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고전들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그런 상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살펴보세요.
말씀을 소중하게 여길 때 나라가 왕성했습니다.
율법을 버릴 때 나라가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기원전 400년 전 쯤에 구약시대가 끝납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때로부터 신약시대가 시작됩니다.
그 사이에 약 400년의 공백이 있습니다.
이 공백기를 신구약중간시대라고 합니다.
마카비라는 집안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갔기 때문에 마카비 왕국 시대라고도 합니다.
이 중간시대의 일을 우리는 잘 다루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간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중간시대의 역사는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페파네스의 가혹한 통치, 마카비 집안의 독립운동, 마카비 왕실의 내분, 그렇게 하다가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이야기, 여러 가지 중요한 사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왜 소홀하게 여길까요?
왜냐하면 이 중간시대에는 말씀운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을 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없는 시대는 정말 광야 같은 시대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400년 만에 세례요한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는 말씀으로 말씀운동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므로 신약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커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특별히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육자회담도 중국이 의장국이 되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먹거리 문제를 비롯하여 우리의 일상생활 여러 분야에 중국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종교 자유는 아직 바람직한 상태가 아닙니다.
가내교회 지도자들이 단체로 체포당했다, 구타당했다, 재판에서 몇 년 징역형을 언도 받았다, 이런 소식들이 계속해서 외신을 타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번 APEC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올 때 일본을 거쳐 왔는데 일본 교토에서 중요한 성명을 하나 발표했습니다.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밝히는 성명이었는데 거기에서 중국을 향해 ‘자유와 개방만이 국가 간 신뢰를 강화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중국인민들은 제재의 우려 없이 성서 등을 얻고 싶어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중국에서는 지금 성경을 가지려면 여러 가지 제약이 있고, 제제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APEC을 마치고 중국을 방문했는데 중국에 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강와스(缸瓦市)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성도가 이 일을 두고 저에게 ‘부시 대통령. 멋있어요, 달라요.’ 하더군요.
이것도 중국 통치자들을 항해 ‘온전한 종교 자유를 주시오.’ 하는 시위입니다.
어느 신문은 이 기사 제목을  ‘부시, 中 교회서 예배, 종교자유확대 촉구’라고 달았습니다.
「조선일보」는 이 일을 보도하면서 “미국 정부가 신앙의 자유를 부정하는 나라로 지목해 특별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한 나라에서 부시 대통령의 첫 공식 행사는 일요예배에 가는 것이었다. 일본 교토 연설에서 중국을 향해 ‘자유를 두려워하지 말라’ ‘설교’했던 부시 대통령이 ‘행동’으로 중국에 ‘종교의 자유를 확대하라’는 압력을 행사한 셈이다.‘라고 했습니다.
중국이 날로 발전하고 있는데 신앙의 자유가 온전하지 못하다면,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마음대로 갖지 못하고 읽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발전이 아닙니다.
그것은 중국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됩니다.
작년 11월에 종교 자유에 관한 제7차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종교 자유가 탄압 받고 있는 나라로 북한과 사우디, 중국, 에리트레아, 이란, 수단, 미얀마, 베트남 등 8개국을 꼽았습니다.
여기 열거된 나라들 가운데는 이른바 아주 가난한 나라들이 여럿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탄압해서 잘 되는 나라는 없습니다.
이 보고서를 인정한다면 중국은 경제면에서는 세계의 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정신문화면에서는 아주 가난한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경제적인 발전도 불안한 것이 됩니다.
불안전한 신앙의 자유, 성서를 마음대로 구할 수 없는 일은 중국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땅이 이렇게 황폐해진 것은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다.’ 하는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 저 구석에 두었던 말씀을 다시 찾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순종하기에 힘써야합니다.

읽는 것, 듣는 것, 아는 것과 순종이 별개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순종하기 위해 읽는 것이 되어야 하고, 순종하기 위해 듣는 것이 되어야 하고, 더 잘 순종하기 위해 아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골라가며 순종해서도 안 됩니다.
전체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해가 잘 되는 말씀, 공감할 수 있는 말씀, 특히 나에게 유익한 말씀에만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씀,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말씀, 나에게 불리한 말씀일수록 더 잘 순종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지키기 쉬운 말씀 아닙니다.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지키기 쉬운 말씀 아닙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지키기 쉬운 말씀 아닙니다.
더구나 이 말씀이 선포될 때 오른편 뺨을 치는 사람들, 속옷을 빼앗는 사람들,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로마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은 그냥 오 리를 가는 것이 아니라 짐을 지고 오 리를 가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 사람들에게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짐을 지게하고 오 리를 운반하게 할 수 있는 할 권리가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럴 때 자원해서 십리를 가는 것, 쉬운 일입니까?
간 빼고, 쓸개 빼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해가 되지 않고, 지키기 어려운 말씀들을 선포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런 말씀이기에 이 말씀을 ‘보배와 같이 귀한 말씀, 보훈(寶訓)이다.’라고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산위에서 주신 보배와 같이 귀한 말씀이기에 ‘산상보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고 손해가 되는 그 말씀들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는 조금씩 확장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중국적자들입니다.
좋은 의미의 이중국적자들입니다.
이 땅의 나라 국민으로서 국적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법입니다.
우리는 땅위의 나라 백성으로서 법을 잘 지켜야합니다.
땅위의 나라 법과 하늘나라의 법이 어긋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려우시더라도  하늘나라의 법을 더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미국에 노예제도가 실시되고 있을 때 오벌린 대학의 교수들은 노예제도를 반대했습니다.
그 때 유명한 부흥사 찰스 피니가 있었는데 이 분은 성경은 인간은 노예로 만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기독교인은 노예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오벌린대학의 교수들과 오벌린 시민들은 피니의 이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오벌린 대학은 남부의 노예들이 북부로 탈출하는 길목에 있었습니다.
피니를 중심으로 한 오벌린 대학의 교수들은 탈출해 오는 노예들을 맞아 주었고  그들이 죽으면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오벌린대학 교수들의 집은 도망쳐 오는 노예들이 숨는 곳이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연방법은 도망친 노예는 반드시 주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오벌린대학 교수들은 이 법을 지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체포대가 도망친 노예를 쫓아 오벌린까지 왔습니다.
이 체포대는 그 노예를 체포해서 남부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오스턴 교회의 교인 수백 명이 체포대를 둘러싸고 그 노예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캐나다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오스턴 대학 교수들을 비롯해서 21명의 주민이 구속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이 미국 노예해방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때 법의 뒷받침을 받고 있던 노예제도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로 기록되어 있고 지금도 미국사회를 괴롭히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부흥사 피니가 중심이 되었던 오스턴 불복종운동은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일로, 모범적인 신앙인의 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너무 힘들어서 순종하지 못했으면 ‘하나님, 내가 믿음이 약해서,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렇게 하면 내게 너무 손해가 되기 때문에 이번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믿음 약함을 용서하여 주소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세요.
하나님께서 순종할 수 있는 강한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말씀을 그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전체를 그대로 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 가운데 어느 한 말씀, 또는 몇 말씀만이라도 택해 그것부터 그대로 행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힘쓰시기 바랍니다.
아까 산상보훈의 몇 말씀을 인용했는데 먼저 산상보훈을 잘 지키기 위해 힘쓰세요.
산상보훈은 천국시민의 헌법이기 때문입니다.
산상보훈 전체를 지키기 어려우면 그 가운데 있는 주기도문,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것이라도 먼저 지키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1929년에 전라도 광주에서 학생들의 항일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평양의 학생들도 거리에 나가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때 장로교는 신학교가 평양에 있었습니다. 평양신학교 학생들도 만세를 불렀습니다.
성서원어를 가르치는 선교사가 ‘목사가 될 사람들이 시위는 무슨 시위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이 분은 조지 엥겔(George O.  Engels: 1864~1939)선교사인데, 한국 이름 왕길지(王吉之)라고 했습니다.
원래 독일 출신인데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 선교부의 파송으로 한국에 온 분이었습니다.
평소에도 학생들을 야단을 잘 치는 무서운 교수였습니다.
학생들이 여기에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민족의 서러움도 이해하지 못하는 선교사에게 배울 수 없다고 수업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평양신학교 교장은 스테시 로버츠 (Stacy  L Robert: 1881~1946) 선교사였습니다.
한국 이름은 나부열(羅富悅)이었는데 ‘라디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안도에서 선교 하느라고 평안도 사투리를 배워서 말을 끝낼 때 ‘~했디오.’ 했는데 그 분의 성 ‘라’에  이 ‘~디오’를 붙여서 이런 별명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분은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습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졸면 졸지 말라고 하지 않고 ‘심은 대로 거둘 것이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네가 수업 시간에 졸았으니, 네가 이 다음에 목사가 되어 목회할 때 설교 시간에 교인들이 졸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무서운 말이고 지나고 보면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분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이 좀처럼 졸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분과 관련된 이야기들 가운데 부러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 분은 성서신학 교수였는데 성경 거의 전부를 암송했다고 합니다.
학생이 무슨 질문을 하면 답은 으레 ‘무슨 성경 몇 장 몇 절을 읽어보시오.’ 이것이었다고 합니다.
명답 가운데 명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학장이 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해 아무리 애써도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왕길지 선교사 물러가라!’ 는 소리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나부열 학장이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했는지 아십니까?
학생들에게 ‘여러분, 마음대로 해도 좋은데 여러분은 이 다음에 목회할 때 주기도문은 외우지 못할 것이오.’ 했습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조용해졌다고 합니다.
주기도문 가운데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개성이 강한 교수가 말을 잘못한 것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주기도문을 외우겠느냐?‘ 학장은 이런 뜻으로 그렇게 말했고, 학생들은 그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선 나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 사람을 용서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고서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여러분, 우리는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은 15절과 16절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고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지금 겪는 것보다 더 심한 혼란을 겪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5절과 16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 그들을 흩어 버리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이 그대로 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7절 이하에서는 이스라엘이 초상집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우리는 성서주일에 성경을 열심히 읽자, 성경을 더 많이 펴내자,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올해 성서주일에는 지금 우리나라가 겪는 어려움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순종하지 않고 행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그리고 이 답을 들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겨야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행하기에 힘써야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 지금 이 사회가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소망을 바라보며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시고, 말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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