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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예수 왜 오셨나? (막 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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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운 겨울, 함박눈이 몹시 내리는 성탄절 날이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남편을 따라 성탄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며 아내는 계속 의심을 토해 냈습니다.“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실 수 있지? 난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을 수가 없어요!”남편은 의심하는 아내에게 계속 설명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집문 앞에 이르러 이상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참새들이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먹이를 얻지 못해 집 문 앞에서 비실비실 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얼른 광으로 들어가 먹이를 가지고 와서 새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푸드득 하며 날아 가버렸습니다. 남편은 실망하여“새들아! 난 너희들을 해하려는 것이 아니야, 이것을 먹지 않으면 너희들은 굶어서 얼어 죽어.”새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이 뜻을 어떻게 너희에게 전할 수 있겠니? 내가 새가 되지 않고서는....”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내의 뇌리에 번쩍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그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속 사랑을 베풀었지만 인간들은 하나님 품을 떠났던 거야.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이야. 그리고 그 사랑을 십자가로 표현하셨던 거야.”아내는 고개를 떨구면서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세계적인 명절인 성탄절을 얼마 앞둔 이 시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먼저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예수님이 바닷가에서 많은 사람을 가르치시고 지나가시다가 레위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관원을 매국노와 같이 여겨졌습니다. 동족인 유대인에게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하여 유대나라를 정복한 로마 정부에 정해진 세금을 바친 후 차액은 자기들이 착복했습니다. 즉 로마의 앞잡이였습니다. 이러한 세리들이었기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천대 받는 세리인 레위에게 예수님께서“레위야야 나를 좇으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레위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은 옛 사람을 벗고 옛 친구들을 송별하는 잔치요, 새로운 출발의 잔치였습니다. 이 자리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참석하여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 몇 명이 예수님의 제자에게 묻기를“너희의 선생은 위대한 줄 알았는데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보니까 그렇지 않구먼”하면서 비방조로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이 저들의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신 것입니다. 성탄절을 앞둔 이 시간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하므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一.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오셨습니다.

불교에서는 자비한 자를 찾고, 유교에서는 인자한 사람을 찾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지혜 있는 자를 찾았고, 바리새인은 의인을 찾았습니다. 오늘날 이 땅위에 60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데, 이 가운데 참된 의인이 있습니까? 성경은 말씀하시기를“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라고 했습니다. 의인을 찾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이 땅위에 참 지혜자가 있겠습니까? 참 인자한 자가 있겠습니까? 자비한 자가 있겠습니까? 성경은 세상 만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예레미야 17:9)고 하셨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인간에게 참 자비가 어디에 있겠으며, 참 인자함과, 참 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어떤 사람들만 있을까요? 죄인들만 가득합니다. 이렇게 가득 찬 죄인을 부르시고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모두가 죄인이요 인간쓰레기인데, 인간은 자기가 죄인임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정확합니다.

마치 암 환자와 같습니다. 어느 유명한 의사가 병으로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습니다. 담당의사가 하는 말이“조그만 혹이 있었는데 별 일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하며 위로 했습니다. 사실은 치료가 불가능한 위암이었습니다. 암에 걸린 이 의사가 퇴원하여 텔레비전에서 암 환자에 대하여 방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의사가 암 환자를 수술하려고 환자의 배를 째고 보니 너무 악화된 상태라 손을 못 쓰고 다시 덮었습니다. 그리고 식구들이게는 암이라고 말했지만 본인에게는“조그마한 혹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을 때어 버렸으니 곧 회복이 될 것입니다.”하고 위로해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의사가 그 광경을 보며 하는 말이“답답해라. 저렇게도 자신의 병을 모르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답답하긴 자신이 더 답답한 사람이 아닙니까? 의학 박사이면서 자신의 몸속에 수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된 위암을 모르니 말입니다. 얼마 뒤 그 의사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날 자기 몸에 병이 든 줄을 모르는 가운데 무서운 병에 걸린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병인 줄을 모르고 병을 키우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처럼 죄를 먹고 마시면서도 자기는 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렇게 무지한 죄인들에게 죄악을 깨닫게 하며, 회개케 하여, 죄악으로부터 건지시고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암이 인간의 의술로 고칠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면, 죄악은 영혼의 암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지옥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절망 상태에 삐진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암 환자가 자신이 사망의 문턱에 이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같이, 자신의 죄로 인해 지옥의 형벌이 문 앞에 이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여유 만만하게 살아갑니다. 이 안타까운 사실을 보고 계실 수만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二.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은 어떠한 구원입니까?

홍수에 휩싸여 떠내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밖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방법을 찾아 건져주어야만 합니다. 지금 이 지구상의 인생 전체가 죄악의 홍수에 빠졌습니다. 더러운 죄악의 물을 먹고 마시며 죄악의 홍수에 떠내려가서 지옥이라는 불 못에 첨벙첨벙 떨어질 찰나입니다. 이런 불쌍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을 구원하시되 세 단계의 구원을 주셨습니다.

1. 과거에 대한 구원입니다.
지난날의 죄를 용서하시고 형벌을 면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요한복음 5:24에“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미 구원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라는 과거사를 쓰고 있습니다.

2. 현재 계속되는 구원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해 주시는 구원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근심하며 낙심할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주님을 생각하며 그 앞에 나아서 무릎 꿇고 간구해야 합니다. 왜 내게 이러한 어려움이 왔을까 하며 깊이 생각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깨달은 마음의 간구에는 반드시 주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위로와 해결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라”(시 편50:15)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 성도는“너 금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너 쓸 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하는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젊은이 둘이서 깊은 강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건너가는 도중 한 청년이 다리 밑을 내려다보니 푸른 물결이 소용돌이를 치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자꾸 내려다보던 그 청년은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듯 비틀거렸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다른 친구가 그에게 소리쳤습니다.“위를 봐! 하늘을 봐!”그렇습니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여러 장벽을 바라보면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를 바라보고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절망이란 없습니다. 어떤 역경과 슬픔이 점령하더라도 결코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환난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서양 속담에“흐르는 냇물에서 돌들을 치워버리면 그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역경과 고난의 돌을 치워버리면 우리는 간구와 기적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를 바라보는 믿음과 소망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총은 고난을 통해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9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유배생활을 한 뒤 <죄와 벌>이라는 명작을 썼습니다. 이탈리아 출신 단테는 정적들에 의해 추방된 뒤 방랑을 하면서 <신곡>이란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헨델의 메시아도 호화스러운 작곡실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헨델은 반신불수로 치료비로 쓰고자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갇힌 후 그곳에서 불후의 명작을 작곡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교회의 문제, 나라의 문제, 모든 어려운 문제를 그때 그때 해결하는 계속적인 구원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거운 짐 진 자들의 쉼터입니다. 이 쉼터에 부지런히 오셔서 쉬며, 새 힘을 얻어 험한 세상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3. 미래의 영원한 구원을 주십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듯, 이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나라의 유산입니다. 로마서 8:16~19의 말씀에“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장차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이 완전한 구원입니다. 과거의 죄 사함을 받은 성도, 근심과 걱정에서 구원 얻은 성도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은 천국 문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이미 그때 예수님이 천군천사와 함께 마중 나와 계십니다. 그곳에는 근심이 없습니다. 고통이 없습니다. 수고함이 없습니다. 슬픔이 없습니다. 이별도 없습니다. 다툼도 없습니다. 완벽한 복지낙원입니다. 이곳에 우리들을 인도하시고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1)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 천국을 나타내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와“하늘나라 (Kingdom of Heaven)”가 있습니다.“하나님의 나라(神國)”는“하나님이 통치하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하늘나라”는 우리가 장차 들어가서 살아갈 실재 장소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2:28에“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천국(Kingdom of Heaven)”이 아니라“신국(神國)”입니다. 이“하나님의 나라”는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 과 가정과 교회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이 통치 하는 나라를 의미합니다.“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이라는 말씀은, 즉 마귀가 지배하던 세상, 가정, 우리 마음에서 마귀를 쫓아내 성령이 지배하시는 영역이 되면 이 세상에서부터“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라고 물을 때 누가복음 17:20-21에“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도“하나님의 나라”이지“하늘나라(Kingdom of Heaven)”가 아닙니다.“하늘나라(天國)”는 실재하는 장소입니다. 하늘은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하늘(일층 천)이 있습니다. 대기권 하늘(Sky)입니다. 새가 날아다니고 비행행기가 날아다니고 비가 내라는 하늘입니다.

둘째하늘(이층 천)이 있습니다. 이 이층천은 우주(Space)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하늘(창세기 22:17)입니다.

셋째하늘(삼층 천)이 있습니다. 삼층 천은 천국이 있는 하늘(Heaven)입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이 있는 하늘입니다. 고린도후서 12:2에“내가 그리스도 안에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간 자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3층천 천국에 가 본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11:4에는“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실재의 장소가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우주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주 하늘(Space)에서 별들 사이를 들여다 보면 해와 달, 다른 별들이 없고 오직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가 있다고 합니다.“하늘나라”(Kingdom of Heaven)는“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와 달리 실재하는 장소이며 셋째 하늘에 있습니다.

2)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1) 천국에는 밤이 없습니다.
밤은 어둡고, 흑암과 좌악의 장소입니다. 밤은 위험하고 공포의 대상입니다. LA나 뉴욕에서는 밤에는 위험해서 나가 걸어 다니지 못한다고 합니다. 천국 에는 이런 밤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5에“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회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영화로운 빛이 천국의 구석구석을 비추므로 해나 달이나 전기불이 필요 없는 곳입니다.

(2) 천국에는 질병과 고통이 없습니다.
의술이 발달하여 많은 질병과 고통을 치료합니다마는 아직도 온갖 고통과 불안과 질병이 많습니다. 한 가지 난병을 제압하고나면 또 다른 난치병이 생깁니다. 의술이 신종 불치병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이런 질병, 불안, 고통이 없습니다.

(3) 천국에는 죽음과 슬픔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슬픔과 죽음이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죽음과 슬픔이 없고, 병원도 없고 공동묘지도 없습니다.“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요한계시록 21:1-4)고 하셨습니다.

(4) 천국에는 염려와 근심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염려와 근심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사업 때문에, 자식 때문에, 입학 때문에, 온갖 염려와 근심을 하게 됩니다. 염려와 근심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생명을 끊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염려와 불안과 근심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걱정과 근심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우리의 본향, 천국에 가야 근심과 걱정이 없습니다.

(5) 천국은 유혹과 죄가 없습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시킨 후 계속하여 인간을 타락시키고 범죄케 합니다. 마귀가 없는 곳이 없고, 유혹과 죄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순간순간 죄의 유혹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사탄 마귀가 다시는 들어오지도 못하므로 죄나 유혹이 없습니다.

(6) 천국은 변함이 없습니다.
자연도 변합니다. 세상은 다 변합니다. 만년설이 녹아내리면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도 해마다 조금씩 침식해 들어가면서 변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나라와 정권도 변합니다. 바벨론도, 로마 제국도 멸망했습니다. 인심도 변합니다. 오늘의 사랑이 내일은 미움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3) 천국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1) 아름다움이 가득합니다.
이 세상 도시는 악함과 해함과 위험이 있으나 천국에는 아름다운 도성이 있습니다. 위험이나 해함이 없고, 질병이 없으므로 병원이 없습니다. 죄인이 없으므로 형무소도 없는 곳입니다. 이사야 65:25에 기록하시기를“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셨습니다.

(2) 기쁨과 행복이 기득합니다.
천국에는 슬픔과 근심 대신에 기쁨과 행복만이 영원히 계속되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노래가 항상 들려오고 생명수 강이 흐르고 강가에는 온갖 과일이 날마다 열립니다.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과 아름다움에 관하여 밝히시기를“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요한계시록 22:1-2)하셨습니다.

(3) 아름다운 집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집을 두 채를 마련해야 합니다. 한 채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육체가 머무는 집이요, 또 하나는 하늘나라의 집입니다. 하늘나라 집은 이 세상에 살면서 내가 지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먼저 집을 다 지은 후 그 집으로 이사를 가듯 하늘나라의 집도 이 세상에서 지은 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이루고 있는 집의 재료에 대해 성경에 기록하시기를“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 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요한계시록 21:11-21)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19-20)하셨습니다.

(4) 천국에는 성삼위 하나님과 천사들과 앞서간 성도들이 있습니다.
천국에는 순금으로 된 거리가 있고, 열두 진주 문과, 찬란한 면류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꿈속에서 예수님을 한번만 보아도 평생 잊지 않고 기뻐하는데, 심지어 꿈에 목사를 한번 보여도 어쩔 줄 모르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물며 천국에서는 영원히 날 구원하신 예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 영원히 함께 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이곳으로 인도하시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구원에는 세 단계의 구원이 있습니다.
첫째, 지난날의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시는 것입니다.
둘째,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험한 세파의 고난에서 구원하여 이기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영원한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여 영원한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탄절 준비에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또 성탄 축하카드나 축하 메일을 주고받습니다. 이러한 것도 좋은 일입니다만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를 깊이 되새기면서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감사함이 있고, 소망이 있고, 기쁨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올바로 살아가려는 각오와 다짐이 있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는 복음증거의 열정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세계적 명절인 성탄절을 맞아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우리 모두에게는 성탄의 축복이 심령마다 가정마다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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