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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리더십(4)] 리더의 정체성을 위한 4가지 핵심질문 (히 11: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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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세우기를 위한 세 번째 주제인 리더쉽에 관한 말씀을 듣고 있고, 오늘이 그 마지막 네 번째 시간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의 생각 속에서 ‘나는 관리교회의 헌신된 일꾼으로서 리더의 역할을 감당해야한다’는 의식이 생겨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은 리더쉽에 대한 마지막 말씀으로, 위대한 구약의 영적리더였던 모세를 중심으로, 영적리더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정체성이란 변할 수 없는 자기 가치를 의미합니다. 다시말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정체성이 하나님 안에서 발견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모세보다 더 큰 일을 행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네 가지 선택을 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선택이 됩니다.
구체적으로 모세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는 모든 지도자에게 필요한 네 가지 질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네 가지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 음성을 함께 듣고자 합니다.

1.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모든 지도자들에게 첫 번째로 던져야할 질문입니다.
모세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이집트 왕실에서 성장했습니다. 처음부터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었던 모세에게 이 문제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그가 성장해서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을때, ‘내가 정말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모세의 앞날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인생이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있음을 알았습니다.
먼저, 그는 바로의 손자로서 인생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바로의 손자로서의 인생을 선택한다면 그에게는 모든 명성과 호화로운 삶 그리고 권력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모세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이 길을 선택한다면 그는 궁전에서 쫓겨나서 비천함 삶과 노예로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 여러분들은 어느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본질을 확인하는 일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자기본질을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짓된 삶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 선택은 모세의 나머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결단이 되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본문에서 우리는 모세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 24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습니다.
‘칭함’이란 단어의 뜻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그렇게 불러준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모세는 칭함, 곧 거짓된 삶을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만드신 본연의 모습으로 남기를 원했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실 때 우리 각 사람에게 분명한 목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서는 날에, 하나님께서는 너는 왜 바울과 같은 사람이 되지못했냐고 묻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너 다운 너’가 되지 못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온 세상에서 여러분은 오직 여러분 자신, 곧 하나뿐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여러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고, 그것을 이루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기초입니다. 이것이 정체성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려는 시도를 이제 그만 두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누구인가?
여러분이 존경하는 어떤 분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의 몸짓, 목소리, 옷을 입는 취향, 그리고 생활 스타일 까지 모방해 보십시오. 성공적으로 모방한다고 해도 그 사람과 당신은 동일한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성공한 삶이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할 때 거기에서 여러분들은 놀라운 자유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유전자, 부모, 그리고 환경까지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욥10:8)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여기에서 “만드신”을 의미하는 헬라어 “포에마”의 어근은 “시(詩)”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의 창조적 예술 작품으로서 고유한 존재입니다. 작품이란 같은 것이 두개일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일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매일을 삶을 통해 그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특성들, 능력들, 경험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영적리더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와같은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져야 합니다.

2. 책임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인생 전반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삶을 통해서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가에 대하여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현명하게 결단해야합니다.
히브리서 11:25을 보십시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본문에서 “좋아하고”로 번역된 헬라어는 “선택하다”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 다음으로 주신 큰 선물은 선택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사실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분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의 문제는 책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내 인생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내 사역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됩니다.

모세는 선택에 있어서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부정과 긍정의 선택을 잘했습니다.
히브리서 11:24, 25절에서 모세는 부정과 긍정의 선택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선 24절에서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합니다. 부정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25절에서 모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했습니다.

둘째, 자신 스스로 가야할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어렸을 때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24절에, 모세가 장성하였을 때, 이제 모세가 하나님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선택하셨지만, 만일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사용하셨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선택하셨지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축복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선택은 그가 영적으로 성숙해졌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성숙한 자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책임있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셋째,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습니다. 24절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라는, 이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명예와 권력과 평안과 만족, 부귀와 존경을 받는 자리인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와, 광야의 고난과 배고픔과 십자가를 져야하는 어려운 상황에 대한 선택입니다.
이 어려운 선택의 순간에 모세는 하나님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고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궁전에 사는 것보다 광야에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적어도 영적리더는 이런 길을 가야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앞서서, 안락함이나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고 선택을 한다면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리더는 다음의 3가지를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 리더는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헌신에 힘입어 사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과 개인적인 깊은 교제가 필요하며 스스로 사역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의 기도만으로 여러분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장성했을 때 여러분 스스로가 모세와 같은 결단과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둘째, 내 인생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불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흐름속에는 실패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너무 쉽게 이루어집니다. 물론 세상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내게 닥쳐오는 일들에 대해서는 책임있게 통제하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열정이라든가? 하나님과 가까이 함의 문제도 결국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거나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져야 합니다. 예배에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행위를 아나 모세는 하나님의 길을 안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불기둥을 보았으며,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을 보았고, 홍해가 갈라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길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과 더 가까이 하기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내 인생에 대하여는 나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망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인생을 망치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도 여러분의 인생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렸다면 여러분의 선택을 아무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내 책임의 문제입니다.
여호수아는 불순종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엣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 15)라고 자신의 태도를 선택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이었습니다. 그는 선택적 삶을 사는 모세를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그는 모세와 똑같은 선택의 문제가 왔을 때 이렇게 선포합니다. 당신들이 뭐라고 말하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런 사람이 영적리더입니다. 망설이며 때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길을 가기 위하여 매순간 책임있는 선택을 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3. 우선순위에 대한 질문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삶의 우선순위와 관련됩니다. 우리는 가치 판단의 기준, 도덕적 기준, 윤리적 기준, 영적인 기준 그리고 우선순위에 대하여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모세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히브리서 11:26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 말씀 가운데 “여겼으니”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여겼으니”란 ‘평가하다’를 의미하는 단어로 저울로 무엇을 측정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 말은 무엇의 가치를 판단하다는 의미입니다.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혹은 기분에 따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 인생이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이며, 무엇이 의미 있는 나의 삶인가 하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하게 된다면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분명하게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하여 열거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분명하게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소중한 것을 선택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에 달려있습니다. 그런점에서 가치관은 그 사람의 인생의 목적이 됩니다.

모세의 가치관은 하나님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적 가치관으로 선택을 하지 않았으며 우선순위가 분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모세의 가치관이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목적을 이 세상의 명예보다 훨씬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손자로서 그리고 왕권의 후계자로 모든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명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명예는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시 명성을 얻을 수 있지만 다음 순간 잊혀 집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명성과 비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명예보다는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둘째, 세상의 쾌락보다 하나님의 일을 훨씬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모세는 두 가지 분명한 삶의 자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왕족이 누리는 쾌락과 히브리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난의 삶을 동시에 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속에서 모세는 옳은 일을 선택을 했고, 그것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고난 없이 위대한 사역을 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아이를 양육하는 고난 없이 훌륭한 자녀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모세는 고난의 길을 갔습니다. 주님도 고난의 길을 갔습니다. 위대한 영적 리더는 모두 쾌락보다는 고난의 길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삶은 산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요구되는 영적리더는 불편함과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봉사, 헌신, 사역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들만이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세상의 재물보다 훨씬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금은보화가 내적인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평안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때 비로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재물이 인생의 의미와 자유 그리고 물건을 사는 기쁨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재물을 많이 소유한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얻기 위해서 평생을 허비하는 재물을 모세는 완전히 포기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이와 같이 결단하도록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26절에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가 그 대답입니다. 모세가 재물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미래의 꿈을 통하여 결정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치관들은 여러분들의 비전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비전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땅의 명예, 쾌락, 재물이 아니라 미래에 주어질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4. 헌신에 대한 문제입니다.

네 번째 마지막 질문은 나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얼마나 온전히 헌신하고 있는가? 입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목표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모세를 쓰신 이유입니다. 모세는 인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내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바로 인내에 있으며, 인내의 비결은 바로 비전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볼 것이 아니라 마지막 목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들은 일종의 장애물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일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모세의 사역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인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아무도 없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2주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갔습니다.
보통사람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도자들을 향한 믿음의 시험입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응답을 얼마동안 기다릴 수 있으십니까? 속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여러분들은 포기하는 경우가 없으십니까? 인내는 비전 성취의 열쇠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7-18).
사도 바울 역시도 사역을 위해서 많은 인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1:8-9).

인내한다는 것은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란 분명한 목표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오늘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인내로 되어집니다. 교회 사역도 인내의 열매입니다. 행복이나 축복의 길은 인내에 있습니다. 리더로서 부름 받은 여러분들에게 있어야 될 가장 중요한 영적 성품과 자질은 인내입니다.
고난이 있을 수 있고 어려움이 닥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사람을 통하여 이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하나가 된다거나, 의견을 일치한다거나,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은 오직 인내로서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은 영적리더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영적리더다운 삶을 살아가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살펴 보십시오.
그리고 참된 영적리더로서 인내하며 헌신하는 고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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